차량 차체자세제어장치(ESC)의 모든 것
운전석 주변을 자세히 보면, 자동차가 미끄러지는 그림과 함께 ‘ESC OFF’라고 적힌 버튼이 있다. 겉보기엔 단순한 스위치지만, 이 버튼은 차량의 생명줄이라 불릴 만큼 중요한 장치다.
호기심에 눌렀다가, 눈길이나 빗길에서 차량이 순식간에 미끄러져 제어를 잃는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ESC(차체자세제어장치, Electronic Stability Control)는 차량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차량 통제 시스템의 핵심이다.
스티어링 휠 각도 센서, 바퀴 속도 센서, 요(Yaw) 센서 등이 운전자의 조향 의도와 차량의 실제 움직임을 비교하고,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가 감지되면 특정 바퀴에만 제동을 걸거나 엔진 출력을 줄여 차량이 안정적으로 자세를 회복하도록 돕는다.
즉, 운전자가 실수하더라도 ESC는 이를 감지하고 즉각적으로 개입해 사고로 번지기 전 차량을 ‘잡아주는’ 안전 기술이다.
ESC 기술은 1990년대 중반, 보쉬와 메르세데스-벤츠가 공동으로 개발했다.
1997년 벤츠 A-클래스가 ‘무스 테스트(Moose Test)’ 중 전복 위기를 겪었을 때, ESC의 개입으로 차량이 안정되며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ESC가 교통사고 사망률을 3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으며, 현재는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모든 신차에 ESC 장착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생명줄을 잠시 꺼야 하는 예외적인 상황도 있다.
예를 들어
▲눈길·진흙길·모래길 등에서 바퀴가 빠졌을 때,
▲정기검사 중 속도계 테스트를 할 때,
▲전문 드라이버가 서킷에서 차량의 한계를 테스트할 때 등이다.
이런 경우를 제외한 모든 일반 도로 주행에서는 ESC를 끄면 위험하다.
게다가 ‘ESC OFF 버튼’을 짧게 누르면 TCS(트랙션 컨트롤 시스템) 만 비활성화되지만, 3~5초 이상 길게 누르면 ESC까지 완전히 해제된다.
즉, 일반 운전자가 공공도로에서 길게 눌러 끄는 것은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하는 것과 다름없다.
ESC는 운전자의 실수를 보완하는 ‘보조 장치’가 아닌,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안전장치다. 브랜드마다 VDC, ESP, DSC 등 이름은 다르지만, 그 역할은 동일하다.
‘OFF’라고 쓰여 있다고 해서 함부로 누르는 순간, 차량은 더 이상 당신을 지켜줄 수 없다. ESC를 끄는 행위는 도로 위의 안전망을 스스로 해제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