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준중형 세단, K3 단종
한때 ‘첫 차’의 대명사였던 기아 K3가 국내 시장에서 완전히 퇴장했다. 2012년 첫선을 보인 뒤 10여 년 동안 준중형 세단 시장의 한 축을 담당했지만, 결국 영원한 라이벌인 현대 아반떼의 견고한 벽을 넘지 못한 채 조용히 단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결말을 단순한 실패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 지금의 시장 환경과 기아의 방향성을 살펴보면, K3의 퇴장은 오히려 더 큰 전환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었다.
K3 단종의 가장 눈에 띄는 이유는 판매량 격차였다. 2023년 한 해 동안 아반떼가 6만 5천여 대 팔린 반면, K3는 1만 3천여 대 수준에 그치며 5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아반떼는 과감한 디자인과 하이브리드 모델을 앞세워 시장을 선도한 반면, K3는 1.6 가솔린 단일 파워트레인 체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변화가 빨랐던 경쟁 모델과 달리 K3는 점차 소비자의 선택지에서 밀려났다.
K3가 부진했던 배경에는 더 큰 흐름이 자리잡고 있었다. 국내 시장의 무게추가 완전히 SUV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준중형 세단이라는 차급 자체가 빠르게 축소된 것이다.
K3는 전장 4,645mm·전폭 1,800mm·전고 1,440mm·휠베이스 2,700mm 등 준중형 세단으로는 충분한 공간과 14.1~15.2km/L의 준수한 연비를 갖췄지만, 소비자들의 시선은 더 넓고 실용적인 셀토스·코나 같은 SUV로 향했다.
더 이상 준중형 세단이 ‘첫 차’나 ‘패밀리카’의 기본값이 아닌 시대가 온 셈이다.
자동차 제조사는 유한한 생산 라인과 개발 자원을 가진다.
기아는 전체 수익성과 미래성을 고려해 더 높은 수요가 있는 SUV 라인업(셀토스·스포티지 등)과 향후 브랜드 성장을 책임질 전동화 모델에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판매 부진 모델 정리’ 그 이상으로, 전체 포트폴리오를 재편해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선택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K3(해외명 포르테)는 북미 시장에서는 여전히 연 12만 대 이상 판매되며 아반떼와 대등한 인기를 누렸다.
즉, K3의 단종은 제품력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시장의 특수성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는 단종됐지만, K3의 명맥은 끊기지 않았다. 기아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후속 모델 K4를 공개하며 세단 라인업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K4는 전장 4,710mm, 전폭 1,850mm로 아반떼보다도 커졌고, 193마력의 1.6 터보 엔진과 약 30인치 파노라믹 디스플레이 등 압도적인 사양을 탑재했다.
이는 단순한 세단 유지가 아닌, 글로벌 전략 차종으로 진화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