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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pmage Sep 29. 2015

배신과 나락의 과거로부터 묶인 그를 위한 바램

경력직으로 (이전)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이다. 야근의 연속이었던 어느 날 예정에 없는 술자리가 생겼다. 팀장이 전화를 받고 큰소리로 웃더니 나를 불러 같이 가자고 한다.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빨리 친해질 요량으로 참석했다.  그때 술자리에서 김 차장을 처음 만났다. 김 차장은 자기소개에서 스스로를 이전 팀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니까 김 차장은 내가 입사한 부서의 팀장이었고, 팀장은 그 밑에 있던 중간관리자였다. 그 당시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자리였기 때문에 김 차장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저 한낱 술자리에서 갖은 만담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김 차장에게 갖었던 첫 느낌은 그저 술 좋아하는 회사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또한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나에게 이 글을 쓰게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회사가 업무통합을 애쓰는 시기에 내가 입사했는데, 그때 나는 통합업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실무기획자이며 실행자였다. 내가 만든 업무통합의 절차(Process)와 규칙(Code)은 완전히 생소한 것이었고, 오랫동안 예전 업무에 익숙했던 직원들에게는 반가운 소리는 아니었다. 당시 주도권을 가진 임원의 강력한 추진으로 진행되었다지만, 실제 내가 느끼는 직원들의 거부반응은 사실 큰 스트레스였다. (저항은 예상했지만 나도 익숙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런 크고 작은 저항들이 계속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어느 날, 김 차장의 전화가 왔다. 내가 받지 않고, 내 밑의 대리가 받았다. 수 분의 전화로  일단락되나 싶더니, 김 차장이 부서를 방문해서 격앙된 목소리와 욕을 섞어 가며 나의 업무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사실 김 차장이 하는 업무로 봐서는 이해가 가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결 못할 것은 아니었다. 결국은 팀장에게 가서 약간의 압력행사를 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었지만 그는 그렇게 할 말을 다 하고 돌아갔다. 그 이후에 김 차장은 내게 자주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할 때는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인해 그의 업무가 저항을 받거나 방해를 받는 이유가 있었다.  나도 그때는 자주 반복되니 짜증이 났었다. 김 차장이 그런 행동이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내가 하는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번도 통합업무를 해본 적이 없는 회사였기 때문에 숟가락 하나 더 얹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본래의 프로젝트는 왜곡되어 있었을 때였다. 그런 것들에 막혀서 김 차장의 업무는 사실 힘들 만했다. 아무튼 김 차장은 내게 그러면서 그에게 느낀 점은 단순히 업무의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수준이 아니었다.


    "너희 팀은 그러면 안돼. 너희 팀은 그런  프로젝트하라고 있는 팀이 아냐."
    "왜 너희들은 이렇게 일을 하느냐. 왜 다른 부서 생각은 안 하는 거야."

 솔직히 다른 부서의 사람들도 그 정도의 불편함은 받아 드리면서 일을 했다. 이유는 임원 회의에서 결정한 거였으니까. 즉, 회사 경영진의 결정이니 따라가야 하는 거였다. 하지만 김 차장에게는 이런 결정은 안중에 없다는 느낌이 강했다. 왜냐면 내가 그렇게 느꼈기 때문이다. 내재적 방법이 객관적일 수 없어 모호할 수 있지만 나도 직관이라는 것이 있다. 회사 경영진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내게 하는 것 같았다. 왜냐면 내가 경영진이 결정한 이 프로젝트를 실무기획자이면서 실행자였으니까, 즉 손발이었으니까 나를 임원이라고 투영하여 전이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 나도 그것에 역전이 당해서 짜증이 날 때로 났었으니까. 어쨌든 전화로 내게 반복하다가, 나중에는 나를 불러내서 아메리카노를 한잔 사주면서 이 모든 원인 관계를 설명하려고 하고 때로는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도대체 무엇을 설득하려고 하는지 모를 정도로 헷갈렸다.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김 차장과 팀장간의 기싸움이 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국 사건이 터졌다. 김 차장이 속한 부서의 여직원이 진행한 업무가 도화선이 되었다. 여직원은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 업무에 익숙하지 않아서 실수를 했는데,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건 팀장이었다. 김 차장이 메일을 쓰고 전화를 팀장에게 했다. 팀장은 매우 언짢아했다. 팀장도 참을 만큼 참은 것 같았다. 게다가 김 차장이 속한 부서에서 계속된 통합업무 절차와 규칙을 계속 어겨서 팀장이 이만저만 곤란한 적이 아니었다. 게다가 산으로 가는 통합업무 프로젝트는 에베레스트를 향해 (뚝심 있게) 가고 있었다. 결국 팀장은 김 차장의 요청을 간접적으로 거부해버렸다. (물론 그 간적접 방법의 도구는 나였다.) 몇 번의 전화가 오갔고 사내 메신저는 불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은 김 차장은 이 싸움에서 져버렸다. 나는 고래싸움에 새우 신세였다. 나조차 내가 처량했다. 그러나 나의 처량함에 비해 김 차장이 느끼는 절망감이나 부끄러움은 더 큰 것이었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김 차장은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술을 먹자고 한다. 내가 김 차장을 처음 봤을 때 거부할 수 없을 때처럼, 이 술자리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미 그는 발톱과 이빨이 빠지고 크게 벌어진 상처까지 입은 노사자 같았다. 그런 그를 위로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왠지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사무실 밖에서 만나서 근처 조개집으로 갔다. 조개를 구우면서 마치 그런 기싸움이 있었냐는 듯이 시원한 게 맥주를 입으로 들이 붓기 시작했다. 소맥의 청량감이 목구멍을 자극하고 위를 쓸기 시작했다. 조개가 입을 벌리고 관자를 혀처럼 축 늘어졌을 때 그가  이야기했다. 그가 어떻게 현재 위치에 오게 되었는지.

 김 차장이 예전 팀장일 때 그는 한창 전성기였다. 팀에서 사원, 대리, 과장, 차장을 거치면서 팀장이 되었다. 그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팀원들한테도 어느 정도 신뢰와 신망이 있었다. 술을 좋아해서 거친 말들이 있기는 했지만, 당시 부하직원들이 미혼들이라 술자리 시간과 횟수가 많아도 상관없었다. 임원들의 신망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새로운 직원(팀장)이 왔다. 지방에서 일하던 직원이 실력을 인정받아 본사로 온 거였다. 김 차장은 그를 맞이했다. 그리고 김 차장은 그에게 이런저런 일을 맡겼다. 앞으로 이렇게만 일하고 지내면 영원할 것 같았던 날이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그를 끌어내렸다. 임원과의 의사결정의 마찰로 인하여 그는 큰 경력의 오점을 남긴다. 팀장에서 물러난 것은 물론이지만 다른 팀들은 전전하기 시작한다. 마치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처럼어느 한 곳에 움막을 짓고 적응할 만하면 다시 짐을 꾸리고 떠나듯이 말이다. 그 와중에 그는 자신을 굽히지 않고 저항했다. 그러나 저항을 하면할 수록 그가 서있을 자리를 점점 좁아져 갔다. 그리고 그가 떠난 자리는 지방에서 온 팀장의 차지가 되었다. 게다가 자신이 받던 임원의 신망은 그의 독차지였다. 팀장은 그런 면을 잘 알아차렸던 것 같다. 팀장에게도 권력과 출세의 욕구가 있었던 것이었다. 김 차장이 팀장으로 보고해야 할 어느 날, 그 자리를 현재 팀장에게 강제로 맡기라는 경영진의 지시가 떨어진다. 그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철저히 버림받은 것이었다. 그가 느꼈을 모멸감과 부끄러움은 어느 정도였을까? 상상하기 싫다. 아마 죽고 싶을 정도가 아니었을까? 김 차장은 그렇게 팀장에서 강제로 물러났다. 불명예였다. 그도 알았던 것 같다. 갈등이 있던 임원에게 머리를 숙였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다는 것을. 그러나 그의 고집과 성격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불명예스럽지만 버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양 극단에서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거였다. 그런 그를 위로했던 건 과거의 자기를 계속 간직하면서 사는 거였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내게 전화해서 예전 팀장처럼 말했던 것이다. 자신의 영광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자 말이다. 자기를 아는 사람이 아니니까 오히려 더 강하게 할 수 있었다. 그는 그리워했다. 그때 그 시절을. 그는 미련이 있다. 그때 그 시절을. 과거에 있던 그를 현재의 그가 계속 그리워하며 미련을 두고 있었다.

그는 내게 메신저를 하고 전화를 한다. 그리고 내게 이야기한다. 나는 들어준다. 들어주면서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억지 주장이 많으니까. 2년 전에 김 차장은 통합업무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다가 이제 통합업무 해체를 거부한다. 모순이다. 기안서가 승인 난 이후에 계약서를  검토받을 수 있다는 선행후행이 뒤바뀌는 이야기를 한다. 임원의 의사결정으로 해체되는 업무를 거부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모순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자신을 현재로 끌어내린 임원들에게 칼의 날카로움을 들이대지 못한다. 그냥 나를 임원으로 투영하고 예전에 하지 못한 어설픈 복수를 할 뿐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결국 끝까지 다 들어준다. 다 들어주고 나면 내게 수고한다고 한다.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너 뿐이라고 한다. 그는 매번 반복한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현재와 마주하지 못한 채 말이다. 나는 그가 겪었던 과거의 잔재와 지금 그가 서있는 현재가 통합되기를 바란다. 그에게 느끼는 애처로움이 이후에는 근거 없는 당당함으로 보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것이 김 차장 안으로  내면화되기를 바란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지만, 과거에 붙잡힌 현재는 미래에 저당 잡힐 수조차 없으니까. 그리고 나도 휘둘리기 싫으니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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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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