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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pmage . Jan 01. 2016

화폐가 주는 단절, 해체 그리고 망각

여섯 번째 이야기

『상처받지 않을 권리』라는 책을 읽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별다른 부연은 필요 없을  듯하다. 그러나 여느 교양철학 책과는 확실히 다르다. 전개 방식이 독특하다. 책은 문학작가의 작품을 통해 자본주의 속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일상과 현상을 저항감 없이 노출시키고, 철학가의 안경을 통해 우리가 자본주의 속에서 상처받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역설한다. 역설의 첫 장을 '화폐경제가 만든 무의식의 트라우마'로 시작한다. 화폐경제, 말 그대로, 화폐를 매개로 상품이 교환되고 유통이 되는 경제. 책은 내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해진 자본주의 속에서의 화폐경제에 대한 문제를 말한다. 그것은 화폐라는 매개체로 인하여 발생된 단절의 문제이다.


"화폐경제는 물물교환의 시대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인격성(Personalty)과 물질적 관계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해체해버린다. 매 순간 화폐경제는 인간과 특수한 사물 사이에 완전히 객관적이며 그 자체로는 아무런 특성도 없는 돈과 화폐가치를 삽입시킨다. 개인과 소유 사이의 관계를 일종의 매개된 관계로 만들어버림으로써 화폐경제는 이 둘 사이에 거리가 생기도록  만든다........ 이를 통해서 돈은 한편으로는 모든 경제 행위에 미증유의 비인격성을 부여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은 정도로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고양시키게 된 것이다."
- 상처받지 않은 권리, 강신주 著 -


Money, with space between(1994), John Baldessari


화폐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물물교환의 시대였다. 물물교환 시대는 직접 경작한 농산물, 직접 기른 가축, 직접 제작한 수공업 물품 등을 마을 안팎의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여 교환하는 시대였다. 그 시대의 약점이란 교환 시점의 불일치, 제한된 거래자의 수, 지리적 제한, 잉여생산물의 부족, 저장기술의 한계, 이동능력 부족 등이었고, 그래서 경제 발전 속도는 느렸을 것이다. 하지만 책은 이것이 물물교환의 전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직접 대면을 통한 생산물의 교환은 거래 당사자들간의 관계 형성의 계기를 제공하고, 거래 당사자들은 지속적인 거래를 통해 당사자간의 인격적인 관계를 발전시켰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화폐경제에서는 직접 교환은 없다. 책은 이 점을 지적하면서 짐멜의 사유를 통해 화폐가 "인격성과 물질적 관계 사이에서 나오는 상호의존성을 해체한다."고 말한다. 즉, 화폐가 인격성과 물질적 관계 사이에 매개가 되면서 이 관계 사이에 거리를 생기도록 만든다고 지적한다. 실제 우리는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대형마트나 재래시장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노트북과 인터넷 그리고 약간의 신용거래 능력만 있으면 손쉽게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다. 이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지역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과 화폐(또는 신용)를 통해 거래하는 것이다. 물론, 화폐는 자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책은 자본주의 속에서의 화폐가 사람과 물건, 사람과 사람에 대한 상호의존성을 해체시킨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런 해체는  더욱더 발전되어 예전에는 사고팔 수 없었던 것들도 화폐를 통해  사고팔게 한다. 마이클 센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는 무엇까지 교환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는지 말해준다.


"1900년대와 2000년대의 초, 일부 야생동물 보호 단체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생물다양성 관리자들은 멸종위기기에 놓인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시장 인센티브를 사용하는 방법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만약 목장 주인이 제한된 수의 검은코뿔소를 사냥할 수 있는 권리를 사냥꾼에게 팔 수 있도록 허락한다면, 코뿔소를 번식시키고 돌보면서 밀렵으로부터 보호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著 -


 경제적 효율성에서 보면, 돈 많은 사냥꾼에게 수명이 다한  검은코뿔소의 사냥권을 팔고, 대가로 받은 권리금으로 더 많은  검은코뿔소를 보호할 수 있다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경제적 가치만으로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과연 떳떳한 거래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차피 수명이 다한 동물일 뿐이라고 합리화할 수 있을까? 인간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당연 지을 수 있을까? 물론, 단정 지어 답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보편적 윤리라는 것이 존재하기 어렵고, 설사 존재 한들 모든 시대, 문화, 환경, 문명 등에 통용될 수 없다. 서로 약간은 다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런 것들이 너무 쉽게 망각하거나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화폐가 아닌 물물교환이었다면 농장에서 농장주가 상업적 목적 없이 애지중지하게 애정을 담았던 늙은 코뿔소를 효율성이라는 이유로 사냥권(코뿔소에게는 사형 집행권)을 손쉽게 팔 수 있었을까?

Untitled(money can buy you love/1985), Barbara Kruger


코카스파니엘 밍키에게 삶이란 작은 정방형의 쇠창살 케이지가 전부이다. 그마저도 온전히 몸을 펼 수 없다. 게다가 밍키에게 허락된 활동이란 매우 제한적이다. 다섯 손가락으로 세어봐도 충분하다. 먹기, 숨쉬기, 싸기 그리고 임신과 출산. 밍키는 휴임기 없이 강제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다. 밍키의 몸은 천천히 그리과 완벽히 부서져 갔다. 밍키의 정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밍키는 이렇게 삶을 억지로 이어가다가 죽을 운명이다. 밍키의 엄마처럼. 그러던 어느 날 밍키는 사육장 밖에서의 수 대의 자동차 엔진 소리와 그 수의 몇 배가 되는 사람들의 다그침과 고성을 듣는다. 밍키는 아마 자기가 조만간 엄마와 같은 종착에 다다를 것이라고 직감한다. 밍키는 더 이상 새끼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밍키의 눈에 흐르지 않는 눈물이 고인다. 몇 마리의 새끼가 자기 품을 떠났는지 그리고 어디로 갔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자기 처지가 처량한  듯하다. 아니면 이제 쓸모없어져 버린 자신이 조만간 가죽이 벗기고 살을 베어질 것에 허망해 하는지 모른다. 드디어 거대한 철문 앞에 걸어진 자물쇠가 풀리고 사육장 안으로 빛과 함께 사람들이 들어온다. 밍키는 예전에 꼬리 물기를 멈추고 가만히 앉아 헐떡거린다.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한 듯이.


누가 내 반려견을 죽였나, MBC PD수첩(사진출처 - 뉴스엔미디어)

 작년 약 1조 8천억이었던 반려동물 시장은 2020년에는 약 6조 원의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이 숫자 만큼 반려 시장은  자본화되었고, 시장은 점점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성장만큼 반려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성장하지 못했다. 이미  오래전에 반려동물은 자본주의의 물화로 전락했다. 반려동물 시장이  자본화되었다는 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이런 자본화를 부추기는 것이 공급자가 아니라 수요자라는 점도 알까? 알 수 없을 것이다.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알았던 적도 있지만 망각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 망각을 교묘히 이용하고 파고들어 욕망을 부추기고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게 한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든지 원할 때 값을 치를 적당한 화폐(돈)만 있다면, 애견삽에서 손쉽게 강아지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2014년 2월 4일에 MBC PD 수첩에서 방영한 "누가 내 반려동물을 죽였나"를 사람들이 봤다면, 애견삽에서 강아지를 사는 것을 잠시라도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과연 내가 강아지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생후 2주가 되자마자 모견과 강제 분리되어 사회화 교육 없이 애견삽에 전시된 강아지가 건강할 리가 없다. 이런 강아지를 입양한 견주가 강아지를 평생 동안 책임 양육할지는 확실치 않다. 손쉽게 구하게 되면, 손쉽게 버리는 법이다. 밤마다 운다고, 배변 훈련이 안된다고, 꼬리가 길다고, 피서지에서 귀찮다고, 신발이나 옷을 못쓰게 물어버렸다고, 헛짖음과 하울링이 잦아 시끄럽다고 파양을 결정할지 모른다. 어쩌면 그저 도로 밖에 내다 버리거나 산채로 땅에 묻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렇게 망각되어 간다. 우리가 무엇을 다루는지 모른 채.


누가 내 반려견을 죽였나, MBC PD수첩


surrogate mother(사진출처 - 헤럴드 경제, 뉴욕타임스)

 반려동물보다 더 심각하게 자본화의 물화가 되어가는 것이 있다. 대리모 산업과 태아 거래이다. 예전에 불임부부는 대리모의 역할을 친족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없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 - The One with Phoebe's Uterus) 그러나 대리모에 산업이라는 꼬리표가 달라붙기 시작하면서 대리모는 산업 자본주의 물화가 되어버렸다. 미국(일부 주), 인도, 우크라이나 등에서는 상업적 대리모를 합법화했다. (최근 까지 태국은 친족에 한해서 허용되었지만, 최근 일본에서 벌어진 태국 대리모 사건으로 상업적 대리모 금지법이  승인되었다) 대리모의 비용은 인도에서는 약 2만~6만 달러(2070만 원 ~ 6220만 원), 미국에서는 최소 12만 달러(1억 2440원) 수준이라고 한다. 또한 상업적 대리모가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리모 산업이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어떻게 다룰지 불 보듯  뻔한 일 아닐까? 불행히도 그런 일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중국에서 사산된 태아로 만든 캡슐을 국내에 밀반입해서 유통한 적도 있었고, 최근에는 이미 중국에서 아기를 납치하여 불법적으로 매매하는 입양 사이트도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화폐의 기원은 아주 멀고 먼 오래전이다. 그러나 화폐는 사람과 사람을 단절시키는 속성을 가졌고, 이 단절은 사람 간의 도덕적, 인격적, 직접적 관계를 해체시킨다. 그리고 산업 자본주의가 이 속성을 우리가 의식할 수도 없는 수준까지 가속화하고 심화시켰다. 우리가 앞으로도 의식할 수 없는 상태로 자본주의적 화폐경제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우리는 분명히 지극히 개인화된 삶을 영위하고자 할 것이며 모든 인격적인 관계를 닫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망각에 영원히 잠식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의식해야 한다. 무의식 속에서 자리 잡은 자본주의 욕망을 알아차리고 거부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자본주의의 물화로 전락하지 않고,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fin-


※ 밍키는 동물보호단체로부터 구조되어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임시 보호를 받고 있다가,  안락사되기 전에

     아주 좋은 주인을 만나 입양되었다. 현재, 그 둘은 아무도 끓을 수 없는 진정한 유대를 쌓아가고 있다.


※ 기사출처

      - 태국, 상업적 대리모 금지법 승인(미주일보)

      - 대리모 논란 재점화…"불임 희망" vs "아기공장"(세계일보)

      - 대리모 1명 출산에 960만 원…태국 대리모 출산 현황(SBS)


※ Cover Picture : Washington Money  - Robert Silvers(로버트 실버스에 대해 알고 싶다면)

※ 본문의 사회학자 : 짐멜 게오르그 Georg Simmel(짐멜 게오르그에 대해 알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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