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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보다 민감한 그래서 더 행복한
By Topmage . May 15. 2016

직장인, 고통받는 도덕주의자를 위해

일곱 번째 이야기

1.

남자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사무실 사람들은 곁눈질로 시계를 확인한다. 그는 왼손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든 채 친밀감의 표시로 오른손을 흔들면서 들어온다. 하지만 아무도 진실하게 반기지 않는다. 형식이나 격식만을 겨우 갖춘 인사가 오갈 뿐이다. 갑자기 키보드의 거친 자판 소리가 쉼 없이 이어지자 윈도우 작업표시줄에 메신저 창이 경쾌하게 깜빡깜빡거린다. 남자는 커피를 텀블러에 붓고는 다시 일어나 담배를 들고 휴게실로 향한다. 사람들은 그가 적어도 30분 동안은 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의심한다. 그가 사라지자 사무실 한 남자가 담배를 들고 맞은편 자리의 다른 남자를 보면서 검지를 위로 치켜올린다. 그 둘은 복도를 왼쪽으로 끼고돌아 흡연할 수 있는 옥상으로 연결된 비상구로 가버렸다. 상대적 박탈감의 짧은 한 숨을 내쉬는 사무실의 몇몇 만이 덩그러니 사무실을 지킨다. 그리고 한 시간이 되기 전에 남자는 돌아왔다. 그는 과장된 호탕한 웃음으로 어색함을 숨기면서 사무실 사람들의 눈치를 살핀다. 그 어느 누구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외투와 지갑을 들고 다시 자리에 일어나 조용히 사무실을 나간다. 전혀 놀랍지 않지만 남자는 오후 2시가 다 되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남자는 다시 한번 호탕한 웃음으로 자신이 만든 상황을 희석시키려 한다. 냉소와 적대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면을 쓴 채 그의 웃음에 가까스로 호응한다. 남자는 팀장이다.

상사에게 올린 기안서 때문에 한참 동안 존재적 무가치와 모멸감을 받고 돌아온 후, 가까운 동료와 함께 피는 담배 한 개비는 위안이 된다. 폐로 깊게 머금었다가 풀어내는 거친 연기 뒤로 동료가 "무슨 일이에요?"라는 질문도 우리를 위로한다. 하지만 동료가 느닷없는 간섭과 뜻밖의 논리로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순식간에 동료를 상사와 같은 부류로 치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최대한 동료의 동조를 끌어내기 위해 불편한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며 이렇게 말해야 한다.


"당신의 말도 일리가 있군요."

The smokers, Honore Daumier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 동료들과 보낸다. 단순히 물리적 시간과 한정된 공간을 같이 점유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와 동료는 가족들만큼이나 가까운 관계이어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서로가 뒤섞여 상대를 조작하려거나 조작당하지 않으려고 보이지 않게 밀고 당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 선택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 회사생활이고 그 속에서 우리를 통제하고 감독하는 조직이 회사임을 감안할 때, 회사 동료 간의 온전한 관계 이면의 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그저 비난만 할 수는 없다. 어쩌면 이런 식의 밀고 당기는 조직 생활은 삶의 영위를 위한 생존의 일차적 도구이자 암묵적인 동의 일지 모른다. 그리고 암묵적 동의 사이에는 분명히 넘지 말아야 하는 선(Line)이 있다.

『어느 사회나 구성원이 타인으로부터 의심을 받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믿어야 하고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관념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사회 관습의 일부는 법전으로 명문화되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상식(Common sense)이라고 불리는, 윤리적 판단과 실용적 판단이라는 거대한 집합체 안에 보다 직관적인 것으로 녹아 있기도 하다...... 중략..... 이런 관습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공격적으로 비칠지 모른다. 상식이 의문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상식에 대한 판단 자체가 너무 민감한 것이거나 정밀한 표적의 검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알랭 드 보통, 철학적 위안 -』

드 보통에 따르면 결국 선(Line)은 우리가 생존을 위해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기준 관념인 셈이다. 회사에서 이 선(Line)의 일부는 사규와 내규로 명문화되고, 대부분의 나머지들은 회사 구성원들이 응당 따라야 하는 상식이 된다. 상식은 몇 번을 읽어야 겨우 이해가 되는 규정집이 아니다. 상식은 누구나 단박에 판단이 가능하도록 직관을 품고 있다. 그런 직관은 윤리적이며 실용적인 판단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동료(특히 상사)가 이 선(Line)을 넘는 순간, 우리는 설명하기 힘든 씁쓸함과 묘한 배신감을 느낀다. 문제는 이런 순간이 반복될 경우, 우리는 선(Line)에 대한 보편성과 형평성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을 품는 배경에는 우리와 동료는 그저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있다. 표면적 지위와 그에 걸맞은 옷차림 그리고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부의 정도뿐만 아니라 내면적 성품의 좋고 나쁨을 걷어낸다면, 우리와 동료는 다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와 동료는 생김새와 속내가 다를지언정 모두가 눈, 코, 입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 이전의 주종의 수직관계가 아니라 계약의 수평관계로 맺어진 동료가 선(Line)을 넘을 경우, 그로 인한 특권을 동료만 누린다는 데 의문을 갖는 것이다.

Conference at night - Edward Hopper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누구든지 최고의 부자나 최소한의 가난한 삶을 면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균등한 생활, 경제적 차별금지, 적정한 소득을 보장한다고 나와 있듯 누구나 평균적, 평등한 경제·사회생활을 보장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세계 인권선언에도 그대로 새겨져 있고 인간은 존엄과 (자유)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고 분명히 각인돼 있다. 이를 넓게 해석하면 누구나 존엄자, 즉 대통령처럼 높은 대우를 평등하게 받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렇듯 평등은 자유와 함께 헌법에 철저히 보장되어 있는 거의 절대적인 권리로써 누구든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 없는 평등은 없고, 평등하게 보장되지 않고 소수에게만 독점되는 자유도 가짜다. - 위키피디아_평등, 박동천《정치학 특강》모티브북 49~50쪽 -』

사려 깊고 충실한 화자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고 그냥 지나쳐버리기 일쑤다. 모든 이들에게는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자신의 실수, 과오, 회피 그리고 편법을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던가. 쓸모 면에서는 그들이야말로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확실한 존재들일 것이다. 사람으로서의 동질성만이 있을 뿐이다. 가식과 혐오를 벗어던지고 생각해보면 좋거나 나쁘거나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 알랭 드 보통, 키스 앤 텔-』

그러나 이러한 의문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만약,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의문을 노출시키는 경우, 자칫 동료에 대한 공격성으로 받아들여지거나 회사의 불평분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냉소와 적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신에 가지런한 치아를 보이게 웃으면서 묘한 스무고개를 주고받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식은 회사 생활에 있어서 매우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외롭지 않기 위해서이다. 적어도 공식적으로 동료라는 인정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좀 아프게 말하면 따돌림당하지 않기 위함이다.


『공동체의 구성원 대부분으로부터 자신이 그릇된 존재라는 비난을 받는다면, 무척 놀랄지도 모르겠다. -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선(Line)을 명문화하려는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겠지만, 인간의 모든 행동을 명문화해서 간섭할 수 없다. 설사 명문화한다고 해도, 권력이라는 힘의 논리가 반영되는 순간 모든 것은 희석되어 불명확해진다. 물론, 동료의 행동에 불만을 품은 개인 또는 몇몇이 용기를 내어 자기 비용(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지불하고 인사담당자 또는 임원에게 사실에 근거한 고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상 대부분의 그런 시도는 보기 좋게 빗나갔었고, 받아들여진다 한들 해프닝으로 끝났었다. 그나마 우리에게 위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과에 상관없이 용기를 내었다는 사실 그 뿐이었다.




2.
"째깍거리는 소리가 계속 나고 있다. 남자가 책상의 가장자리에 놓아둔 시계는 수도 없이 째깍거렸지만 정작 시계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사무실 사람들은 그런 사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에 몰두한다. 몇 개월 전에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의 일치를 확인했지만 크게 달라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남자에게 사무실 사람들은 익숙해졌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을 향한 비난을 비웃기라도 한 듯, 오히려 당차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한다. 남자의 말은 주술과 같은 힘을 발휘한다. 사무실 사람들은 남자와 말을 주고받으면 감정의 격랑에 치닫는다. 대화가 끝나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남자에게 응당 해야 할 자신의 업무를 사무실 사람들에게 넘기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부탁이나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은 남자에게 구식이다. 남자는 동료의 수고로움을 기만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기안을 올리거나, 고급인력의 낭비를 주장하며 자신의 일을 거부하거나, 인수인계로 흐려진 업무의 경계를 이용해 아무 관련 없는 사람에게 넘기거나, '나는 모르니까, 할 수 없다'라는 원초적 입장으로 상대를 무시하거나, 자리를 오랫동안 비우는 간단한 방식으로 일을 넘긴다. 하지만 남자를 향한 수 억 개의 비난의 화살을 하늘 높게 쏘아 올려도 소용없다. 남자는 가볍게 비웃으며 그저 두 팔 벌려 서있을 뿐이다. 남자는 오늘도 저녁을 먹겠다며 6 시에 나가서 저녁 9시가 다 되어서 돌아왔다. 법인카드로 즐기는 저녁과 당구는 이제 남자에게 회사 업무가 된 셈이다."

여러 심리학자들 중에 인간의 성격에 독특한 관심을 쏟은 사람들이 있었다. 성격이 인간에 내재된 고유 자아라고 본 학자도 있었고, 성격을 통계적 수치로 보편적인 유형화가 가능하다는 학자도 있었으며, 성격이 생물학적 유형에 맞닿아 있다는 학자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주장의 차이를 논하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성격이 인간에 가장 중요한 특질이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특질을 이해하는 것이, 항상 상대방을 이해하는 첫 단계이지 않을까? 달리 말해 상대의 성격을 알아야 그에 걸맞은 대응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리학자들처럼 연구와 실험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상대의 성격을 자동으로 탐색한다. 그게 우리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방법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남자를 표현할 수 있는 형용 사은 이렇다.
  - 오만한, 건방진, 무례한, 착취적인, 비공감적인,
  - 강한 자의식, 자기중심적, 자기과장적, 성공지향적
  - 강한 주목/인정 욕구, 자기 숭배를 강요하는, 타인이 자신을 시기 질투한다고 믿는.』

회사는 조직적이며 관습적이다. 회사는 성실하고, 주의 깊고, 협조적이고, 사려 깊고, 유능한 사람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의 행동이 회사가 원하는 덕목에서 너무 멀리 벗어난다면, 우리는 회사에서 환영받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회사의 덕목을 주변에게 보이기 위해 허언을 호언처럼 하고 잘못된 결과에 대한 질타에도 교묘한 책임전가를 일삼는 다면, 주위 동료에게까지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과도한 자기 주목과 자기 숭배에 목이 마른 사람이 작은 권력이라도 틀어쥐게 된다면, 자신만의 성공을 위해서 동료를 착취 대상으로 전락시킬 것이다. 이러한 일관된 행동과 모습은 본인도 어쩔 수 없는 특질 일지 모른다. 차가운 빙벽들에 둘러싸인 자신에게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줄 부싯돌과 거대한 장작나무 같은 도구들 말이다. 남자는 타인과의 친화적인 관계를 통해 온기를 얻는 방법보다 그저 더 쉽고 편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설사 남자가 이 방법의 부작용을 알게 된다 한들 쉽게 바꿀 수 없을 것이며, 그때는 이미 추락하여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해서 선(Line)을 넘어 특권을 누리려는 걸까?

『........ 미국 학생들을 가지고 실험한 경우에는 1/4이 이기적인 합리적 행위자, 즉 '악당'이다. 이들은 벌금을 물리는 방식으로 강요하지 않는 한 절대 공공재에 기부하지 않고 무임승차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이들과 정반대인 사람들도 1/4 정도인데, 이들은 무조건 협력하는 사람들, 즉 '성인'이다....(중략)... 수가 가장 많은 집단은 '조건부 협력자', 즉 도덕주의자이다. 도덕주의자들이 선호하는 것은 모금함에 기부해 모든 사람이 더 나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기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장치가 없어 무임승차가 급증하면 도덕주의자들은 이런 기회주의적 행동에 정나미가 떨어져 협력을 철회한다. 그렇지만 처벌하는 길이 있으면 그것을 이용해 악당들에게 벌금을 물린다.(도덕주의자들은 자기 비용을 직접 지불하더라도) 그러면 벌금을 물지 않으려고 악당들도 할 수 없이 기부를 하기 시작한다. - 피터 터친, "War and Peace and War"  -

Free Rider

만약, 남자의 행동에 변수(처벌)를 가할 적절한 제도(장치)가 있고 그것이 효과적으로 활용된다면, 동료들의 일부(도덕주의자)들은 자신의 비용(남자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지불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회사는 더 이상 직원들의 협력을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한국 회사는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회사의 논리는 사규 또는 내규로 명문화하여 직접 통제하기에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설사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하다. 이는 회사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회사를 대신해서 직원을 괴롭혀줄 꼭두각시를 방관하는 것과 다름없다.



3.
회사 생활은 고단하다. 현대사회에서 만연된 미래에 대한 불확실이 조장하는 불안 때문에 고단하다. 회사는 불확실한 시대에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우리들을 채근한다. 또한 회사는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지 못하면 우리의 삶도 그만큼 팍팍해질 것이라고 협박한다. 그래서 우리는 회사가 있어야 우리도 살 수 있다는 전제를 믿고 회사를 위해 전력을 다한다. 그러나 정보의 비대칭성, 시간의 양극화, 시대적 불합리 덕분에 우리가 회사로부터 얻어가는 것은 퀭하고 흐린 눈, 지치다 못해 주저앉은 것 같은 어깨, 나이에 맞지 않게 풍성한 흰머리, 예사롭지 않은 검진 결과지, 늘어나 쳐진 뱃살 그리고 가족의 한 달 생계를 위한 급여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회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불안으로부터 지키려 하기 보다는, 당장 우리 책상 건너편에 앉아 있는 동료와 대결을 통해 점한 우위를 누리는 것으로 불안을 잠재우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동료와 제대로 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우리보다 앞서가는 동료의 등을 보면서 나만 뒤쳐진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이 동료에 대한 질투에 기름을 붓기도 한다. 또는 우리는 동료가 선(Line)을 넘음으로써 발생한 약간의 이익을 우리의 손해로 즉각 환원하여 동료를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우리와 동료가 비경쟁적인 구도에 조금이라도 비껴서 있었거나 불안을 덜어주는 약간의 뭔가가 있었다면 삶이 퍽퍽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을. 물론 회사는 이런 우리의 고민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에 익숙하다.


『대도시의 우글거리는 군중들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가장 강하게 느끼기 마련이다..... 대도시인 만큼 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반드시 그의 정서적 안정으로 나타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 주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짐멜 게오르그-』


City Roof - Edward Hooper


안타깝게도 우리가 외로움과 쓸쓸함에 강한 존재가 아니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삶의 물질적 영위와 함께 삶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데, 그 속에서 불안과 갈등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살피고 자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만, 우리가 완숙된 자본주의에 점진적으로 유린되면서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위축되고 예민해진 채로 말이다.


고백하건대, 사실 나도 어떻게 우리 스스로를 보살펴야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또한 방법론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내 방법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현재 우리가 겪는 감정에 대해서는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가 어떤 감정에 휘말리는지는 피상적으로 알지만, 깊숙한 감정을 달래 주지는 못한다. 또한, 단순히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잘못된 까닭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가 당당해지는 삶을 사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속한 세상을 진실 있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적어도 남자가 나와 같이 외롭고 쓸쓸하고 불안해 떨고 공포를 알고 생존에 발버둥 치는 보통사람임을 알때, 나는 그에게 예전보다 당당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fin-


※ Cover Painting : 에드워드 호퍼의 Office in a Small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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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Painting : Wikiart.org / - Picture :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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