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북니버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pmage Oct 11. 2020

누구나 ‘콩알’이다

일곱 번째 책 - 『콩알』 김영미 시 /홍지연 그림

어느 고즈넉한 시골의 나직한 야산 아래에 나무 병풍으로 둘러싼 소박한 농가가 보인다. 농가의 빨간색 '' 슬레이트 지붕 아래로 너른 마당이 있다. 마당의 오른편에는 담벼락을 타고 사람 키를 훌쩍 넘긴 덩굴 사이로 닭장과 화단이 있다.  건너편 넘어 담벼락 바깥에는 비닐하우스  동이 보이고, 바로 앞에 할머니가 밭일을 하시는 듯하다.  옆에 바둑이, 할머니 외로울까 싶어 옆에 진득하게 앉은 모습이 듬직스럽다. 그리고 마당 한가운데에 파란 방수포에는 콩알들이 정겹게 다닥다닥 붙어서 한낮의 햇볕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나무가 물들고 콩이 노르스름한 것을 보니 가을이다. 그런데 수탉  마리가 닭장에 벌어진 틈을 비집고 나왔다. 노랗게 익어간 콩을 보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기어코 수탉이 방수포 위에 난장을 렸고 콩알   떼구루루 굴러서 화단에 떨어졌다. 화단은 봉숭아꽃, 맨드라미, 코스모스 으로 어우러진 색의 향연장이다.  화려함 앞에서 콩알의 모습을 볼품없어 보였으리라. 낡고 헤진 파란색 방수포에서  콩알의 마음은 아마도 놀라움 , 걱정 반이었을 것이다. 때마침 빨간색 바탕의 검은색 물방원피스를 입고 날아온 무당벌레가 콩알을 보더니 못생겼다 무안을 준다. 콩알은 대꾸도 못하고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할머니는 아까운  한알이 떨어졌다며 손수 콩알을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화단에 덩그러니 남은  화려함을 잘난 척하던 무당벌레. 어느새 날은 저물어 어둑해졌고, 농가의 방에 켜진 불은 정겹기만 하다.

최근 출간된 시그림책 『콩알』의 줄거리이다. 특별한 내용이 없다. 그저 한적한 농가의 한 때를 다룬 이야기이다. 하지만 시그림책 마지막 장의 '그림작가의 말'을 읽으면, 이 시그림책이 여느 그것과는 다르게 특별한 진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는 '콩알'이 자신임을 고백한다. 작가는 못난 외모로 인해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못생긴 별명으로 불리며 자랐다. 그래서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움츠린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짐작컨대, 그녀의 마음속에 자신의 편견과 자책이 켜켜이 쌓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작가는 자신을 알아주는 그 누군가를 만나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작가는 자신을 가둔 오랜 편견과 자책의 껍질을 깨고 본연의 당당한 '나'로 돌아온 듯하다. 아마도 그 일련의 과정 중의 하나가 김영미 시인의 '콩알' 낭송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시그림책의 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작가는 담담히 진심을 전하고 있다. 우리 모두 다른 누군가에게 소중하고 어여쁜 존재라고 말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 ,1889년  /  삼나무가 있는 밀밭, 1989년 / 빈센트 반 고흐>

좋은 글은 번드레하지 않고 담백하고 간결하다. 글에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고, 진심은 작가의 경험과 고백에서 나오며, 독자는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구절이 있다.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이 진실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이는 비단 문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이나 조각 같은 예술 작품에도 똑같이 적용되며 때에 따라서는 문학보다 더 크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나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나 '삼나무가 있는 밀밭’ 작품 등을 보고 있으면, 그가 주관적으로 묘사한 내적 정경이 나를 위로하며, 미국 노년 작가 '메리 로버트'의 여러 작품을 보면 꾸미지 않은 미국 농가의 서정성에 알 수 없는 포근함을 느낀다. 이런 문학과 예술의 역할이 시그림책에게도 적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콩알’에 묘사된 한적한 농가의 고즈넉한 풍경과 할머니의 투박하니 아름다운 손금에서 내 어렸을 적 외가가 떠오르며 한없이 그 기억이 그리워진다.

<The Spring in Evening, 1947, Grandma Moses / 할머니 손금, '콩알' 김영미 시 / 홍지연 그림>

 

사실 따지고 보면 처해진 상황과 위치에 따라 누구나 '콩알'이 된다. 그때는 참으로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잊고 만다. 주변으로부터 만들어진 편견을 내 잘못으로 잘못 치환하여 스스로를 자책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모두가 우리를 인정해야 우리가 빛이 나는 것이 아니듯, 우리를 모르는 모두가 우리를 부정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둠에 갇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를 알아주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 빛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를 알아주는 이는 반드시 존재한다. 그가 배우자, 자식, 부모, 연인, 친구 또는 새로운 인연일 뿐이다. 이 복잡한 이야기를 아주 간단하고 확실하게 전달하는 책이 이 시그림책이 아닌가 싶다. 혹여 당신이 그 ‘콩알’이라면 이 책이 당신을 위로할 것이다.


※ 글과 사진을 상업적인 용도 사용 및 무단 편집하여 게시하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사진 출처 : 위키아트, 도토리숲 출판사 블로그

매거진의 이전글 왜? 달러와 금 투자 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