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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만년 부장

14년째 부장이 재미있게 일하고 즐겁게 사는 법

by 꿈꾸는 아재

나는 일명 '직업이 부장인 사람'이다.

대기업 직장생활 30년에 14년째 부장이니 그 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겠다.


입사 동기가 197명이었는데 대리에서 차장까지 나는 늘 가장 먼저 승진을 했다.

그리고 팀장 3년 경험 후에 부장 직행한 후로는 지금까지 똑같은 일을 16년째 하고 있다.

내가 16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나의 방어기제 관점에서는) '내가 대체 불가능한 Specialist이기 때문'이고 (타인의 객관적 관점에서는) '다른 일은 써먹을 데가 없는 고인 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유력 임원 후보로 올랐던 적이 몇 번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확인된 사실은 전혀 없다. 정확하게는 소설에 가까운 낭설이었다. 그저 위로용으로 건네주는 주변의 전언 아니었나 싶다. 냉정하게 보자면 딱 부장까지가 내 그릇과 실력이었다. 한 때 나는 그것을 관운과 사내정치의 문제로 스스로 생각을 비틀기도 했다. 정신건강에 좋으니까. 나는 소중하니까.


여기까지 내 글을 읽은 님께서 만약 주니어 직장인이라면 이런 마음이 생길 수도 있겠다.

'긴 세월, 좋은 직장에서 꿀 빨아 온 사람이군!' '열악한 노동의 애환은 잘 모르겠군' '부장으로 만수무강했으니 이제 유능한 후배들을 위해 내려 오심이...'


상당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고 솔직히 반론할 논리도 변변찮다.

그래도 무장해제 당하듯 모조리 수긍하기에는 좀 억울한 측면도 있다. 그래서 소심한 항변 몇 가지 풀어놓고 나서 후반부에 이 글의 핵심 본론으로 나가 보려고 한다.


먼저 실토부터 하자면, 나는 직장생활의 상당 기간 동안 워크홀릭이었다.

야근 도와달라고 아내를 주말에 사무실에 데리고 간 적도 종종 있었다. 몇 달간 개발 프로젝트로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와중에 임직원들 앞에서 특강 하다가 급성 갑상선 항진증으로 쓰러져서 엠블런스에 실려 병원에 간 적도 있다. 그러고도 정신 못 차리고 무리를 범하다가 암에 걸려 휴직도 해 봤다. (지금은 8년이 지났다.) 참으로 아둔하고도 미련했다. 과거로 돌아가라면 그런 워크홀릭은 절대 되지 않겠다.


그러나 그것은 무식하게 일한 방식 자체에 대한 후회일 뿐, 돌아가더라도 일에 대한 관점과 태도는 바꾸지 않겠다. 사실, 그것이 내가 브런치에 입문하게 된 이유의 상당 부분이기도 하다. (앞으로 매주 올릴 글에서 하나씩 풀어놓을 계획이다.)


대기업의 인적자원과 인프라를 충분히 누렸을 테니 소수의 직원으로 북 치고 장구 쳐야 하는 정신적 육체적 고단함을 잘 모를 것이라는 말에도 반론하지 않겠다. 맞는 말이다. 굳이 덧붙이자면, 많은 부서들이 통폐합하고 인원 줄이는 동안 나는 19명으로 시작한 부서원을 최고로 많을 때는 46명까지 늘렸다. 경영진에 정치해서 얻어 낸 증원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현장으로부터 '저 부서는 회사에 큰 도움이 되니 꼭 더 키워야 한다'는 아우성이 최고 경영진의 귀에 들어가게 해서 이뤄 낸 모든 구성원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 안에 녹아 있는 십 수년간 동료들의 노력도 흡사 북 치고 장구 치는 수준이었다.


관계 문제로 (특히 상사)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긴 세월 겪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관계의 고통의 경험을 적어도 동료 후배들에게 전이시키지 않으려 애써 왔다. 그 결과 회사 내에서 내가 속한 부서원들의 이직률이 가장 낮았다. 간혹 개인적 사유나 꿈을 쫓아 회사를 떠난 직원들도 단 한 명 끊김 없이 연락하고 있고 반갑게 만나고 있다. 어느 날 회사 행사에서 후배가 내 뒷모습 사진을 찍어 보낸 적이 있었다. "부장님의 생물학적 뒤태는 그리 멋지지는 않지만 내면은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뒷모습입니다. 그 뒷모습 변하지 않길 바랍니다."라는 글도 보태줬다.


비록 내 그릇과 실력은 부장이 천정이라는 것은 수긍하지만 우려먹는 꼰대가 안되려고 바등바등 노력도 한다. 작은 일례로, 극 아날로그형인 내가 요즘 핫한 AI 나노 바나나도 회사 아재들 중에서는 제일 먼저 활용했을 거다. 흠흠;; Make를 활용한 업무자동화도 개인적으로 배우고 있다. 제대로 일 하라고, 새롭게 배우라고 후배들에게 강압할 필요 없이 내가 솔선하면 된다. 노력의 선택은 후배들의 몫이다.


우리 동료들에게 내 장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블라블라~' 말한다. 고쳐야 할 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블라블라~, 또 그리고 블라블라블라~' 한다. 당연히 단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가 앞으로 매주 브런치에 짬짬이 공유하고 싶은 <슬기로운 직장생활> 중에서 떠오르는 키워드만 말하자면 대충 이런 거다.


◇ 나는 회사의 주인이 아니다. 무모한 주인의식은 공허하다. 그러나, 우리 회사 사옥 모퉁이 벽돌 하나는 나의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내가 만들어낸 우리 회사 그 벽돌만큼은 많이 사랑한다. 그게 나의 애사심이다.


◇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이윤 창출이 목적이다. 내가 밥값을 하는지 못 하는지는 누구보다 나 스스로 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일잘러와 일못러의 선택 또한 오롯이 나의 몫이다.


◇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 슬픈 사실이지만 거래다. 그러나, 회사에 빨대 꽂힐 수 있으니 영혼 갈아 넣지 말고 대충 하라는 주변의 말에 경도되지 마라. 회사가 돈 주고 나의 능력을 사 가는 이상으로 회사의 자원과 노하우를 공짜로 내 개인의 내공으로 Give & Take 하라. 나의 사적 인맥과 경쟁력의 대부분은 회사를 지렛대로 쌓았다.


◇ 나의 분발과 도전에 진심 박수 쳐 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탓'에 익숙하고 늘 불안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처럼 머물러 있는 동료들을 보면서 안도하고 물귀신처럼 주저앉힌다. 끊임없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확장해야 한다. 난 너무 늦게 시작해서 후회하고 있다.


◇ 나의 '성취'에 밥숟갈 얹듯 앞에서 환호해 주는 사람을 경계하고, 나의 '실패와 좌절'에 함께 아파하고 용기를 주는 사람을 가까이 하라. 사람으로 자주 상처받지만 치유도 결국엔 사람이 해 준다.


◇ 회사 내에 빌런이나 도라이를 뒷담화하지 마라. 나도 경계성 빌런 도라이일 수 있다. 뭐든 나부터 작은 것부터 지금부터 먼저 말조심하고 행동 똑바로 하면 된다.


◇ 나 홀로 만들어 낸 성과도 절대 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실은 그들과 함께 만든 것이다. 나의 공을 그가 가로채더라도 과도하게 분개하지 마라. 회사는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장으로 나아가는 내 발걸음은 나를 알아준다.


◇ 직급이나 직책은 대개는 내가 만든 것이지만 '평판'은 타인이 만들어 주는 나의 명함이다. 때로는 내가 믿고 있는 나 자신보다 남들이 알고 있는 내가 실체적 나일 수도 있다. 경쟁력이 되는 평판을 만들어라.


◇ 만약 당신이 더할 나위 없는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당신을 몰라주고 버리려 하는 것을 알아챈다면 하루 전에 당신이 회사를 먼저 버리면 된다. 그때까지는 회사를 진심으로 애정하라. 스스로를 애정하는 것이다.



대략 위와 같은 내용이다. 그 외에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휘발되지 않게 기록으로 남겨 볼 생각이다.

30년을 지나와 보니 직장생활에 정답도 왕도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누군가 먼저 걸어간 사람들의 지혜를 가까이하는 부지런함만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때가 많았다. 일상과 직장생활의 단상을 넘나들면서 이곳 브런치에서 풀어놓고 싶은 내 글이 단 한 명에게라도 잠깐의 생각 추스름을 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하겠다. 주절주절 긴 글 읽어줘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어쨌든 직장생활의 석양 노을을 바라보게 되는 즈음이 되니 김구 선생께서 자주 읊조리셨다는 이 한시가 종종 되뇌어진다.


답설야중고 불수호난행(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 수적후인정(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길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 PS : 제가 위와 같은 사람이었다고 해서, 가정생활을 완전 내팽개쳐 온 사람은 아니었음을 소심하게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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