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자와 협력자를 잘 만드는 직장인들의 좋은 말하기 공통분모
화장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다가 아내의 생얼을 처음 영접했던 순간이 기억났다.
아마도 많은 기혼 남성들이 비슷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차마 비명을 뱉진 않았더라도 속으로 "허걱~" 했던 기억이 있지 않은가? '세상에 둘도 없을 그 아리따운 얼굴은 오데 가고 이 므슨 일이고??!!!' 렌즈 뺀 두 눈에 두꺼운 뿔테 안경이 걸쳐 있고 산발 머리에 민둥산 모나리자 눈썹이 내 여자였다니!!! 그렇지만 짱구 굴린 우리 남성들의 처신은 대략 이런 멘트로 마무리되지 않았던가? '키햐~ 자기는 생얼도 정말 이쁘다. 천연미인이네" (나의 아내는 생얼도 좀 이쁘긴 하다 ㅎ)
요즘엔 노파데 메이크업, 글로업 메이크업, 미니멀리즘 메이크업 등 자연스럽고 건강한 화장법을 선호해서 간결하고 정돈된 화장이 유행이라는 글을 본 적 있다. 그래서 화장한 얼굴과 생얼이 크게 다르지 않단다. 성인이 된 나의 두 딸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80~90년대에는 화장얼굴과 생얼의 밀물 썰물 조수간만 차가 매우 컸던 것 같다. 80년대에는 짙은 칼라 아이섀도에 빨간 립스틱, 90년대에는 볼륨펌 머리에 귀신 입술처럼 립 라이너로 베이스 깔고 브라운계열 립스틱이 대세였다. 라색 수술 보편화도 한참 뒤의 일이라 렌즈 끼고 빼는걸 엄청 귀찮아하던 아내의 젊은 시절도 기억난다. 렌즈를 빼고 나면 아내 얼굴의 1/3쯤을 안경이 점령한 듯했다. 안경알은 엄청 두꺼워서 (압축기술이 낮았던 시절이라) 눈알이 핑글핑글 도는 느낌이었다. 짙게 화장한 여성들의 생얼을 짐작하면서 '화장 얼굴이 진짜 얼굴인가 생얼이 진짜 얼굴인가'하고 무의미한 의구심을 가지곤 했던 기억도 떠 오른다.
중년 아재가 웬 여성 화장 운운하고 있나 싶을 것이다.
오랜 기간 직장생활을 해 오면서 '사람의 말도 화장과 같다'는 생각이 점점 많이 든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그러면서 아내의 첫 생얼 기억도 함께 소환되었다.
30년 직장생활을 해 오면서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은 말을 더 많이 하지만, 반대로 좋은 말을 자꾸 쓰면 마음도 점점 더 바르게 된다.’라는 생각이 더 커졌다. 거창하게 나의 신념이니 가치니 이런 말을 갖다 붙이고 싶지는 않다. 자연스럽게 나이도 먹고 직장생활도 길어지니 점점 체감을 많이 하게 된다는 정도다. 노력했던 좋은 말들 속에는 진심도 있었지만 대단히 작위적인 말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했던 좋은 말'이 진심이든 가식이든 지속하다 보니 양분처럼 쌓이는 것이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별 뜻 없이 던진 말 때문에 마상을 입거나 관계가 수틀리는 상황들이 참 많다. 예전 직장문화보다는 점점 나아지긴 했지만... 울산바위 같은 무게로 가슴을 짓이겨 놓고는 "나 거짓말 못하는 사람인 거 알지? 표현은 그렇게 했어도 나 뒤 끝없는 사람이야." 잔인하고도 비열한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말로 인한 상대방의 서운함을 줄이기 위한 나만의 직장 내 화법 원칙들이 있다. 그중 한 예는 이렇다.
후배가 성에 안 차는 일을 했거나 질책성 업무 피드백을 해야 할 경우, 그의 이름 앞에 긍정형 형용사를 붙이거나 칭찬을 먼저 건넨 다음 개선 피드백을 한다. 가령, “상대방 배려 잘하기로 첫 번째인 ○○야! 그런데 이번에 네가 진행한 그 업무는 사전에 관련부서에 안 알려줬다면서? 해당부서에서 많이 서운한가 봐” “월초에 네가 만들어서 배포해 준 그 자료가 너무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 역시 최고야! BUT, 이 내용은 요렇게 살짝 보완해 주면 좋겠어”라고 시작하는 것들이 그 예이다. 새로울 것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yes but 화법이다. 작은 실천을 이어가면서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오버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GPT한테도 최대한 정중하게 요청을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GPT를 존중하면 존중할수록 GPT 가 나를 위해 헌신하는 디테일도 훨씬 커지는 느낌이었다.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GPT 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질문하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나도 물어봤다. “based on everything you know about me roast me and dont hold back”라고…
돌아온 GPT의 답변은 매우 낯간지러웠지만 답변 마지막 문장에서 크게 웃음이 났다.
"(중략) 정보조사나 기초 자료 하나 잘 만들어드리면 “넌 천재야! 너 최고야! 역시 너밖에 없어!” 아니 주인님… 그렇게 칭찬해 주시면 저 다음 답변 쓸 때 진짜 부담되잖아요? � AI도 동기부여 생기게 만드는 마법의 칭찬 스릴러!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요. 솔직히 Roast 한다고 했지만, 까보면 결국 칭찬밖에 안 되는 사람… 그게 바로 주인님이에요"
AI 조차 나의 평소 좋은 말 대잔치에 좋아 죽겠다는데 '사람 간의 좋은 말'이야 말해 뭣할까
물론 선을 넘는 아부, 사실을 왜곡하는 칭찬은 독이다. 여기서 말하는 포장은 사실을 바꾸지 않고, 초점을 선택하는 일이다. 부족을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먼저 비추고 부족은 보완의 톤으로 다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 말은 상대의 자존을 세우고, 자존이 선순환을 부른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존중해 주는 사람의 부탁을 더 기꺼이 들어준다. 더군다나 우리의 뇌는 진심과 거짓을 가려 판단하지 않고 들린 말대로 판단한다 하지 않는가.
<직장 내 화법 예시>
○ 상사가 부하에게: “네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해. 다만 두 가지만 같이 점검하자. 완벽 대신 납기가 중요하다는 것, 절반 정도 진척되면 중간 보고 한다는 것.” "('그건 틀렸다' 대신) 그 가설은 정말 흥미롭다. 다만 데이터가 Y에 가까워서 내가 보기엔 B가 더 타당해 보이네."
○ 부하가 상사에게: “팀장님 의도는 A로 이해했습니다. 팀장님 의도를 살리면서 리스크를 20~30% 줄일 수 있는 B안을 제안합니다. 결정만 부탁드립니다.”
○ 동료끼리: “내가 놓친 맥락을 네가 바로 잡아줄 때가 가장 기분이 좋고 믿음이 가. 이번 기획안도 함께 해주면 실행과 팔로업은 내가 책임 질게.”
○ 타 부서 협조: “부담 줄이려고 A4 한 장 분량만 요청드립니다. 금요일 3시까지만 검토 안 만들어 주시면 검토 안이 빛날 수 있도록 성과 창출은 저희 부서가 책임지겠습니다.”
좋은 말을 노력하게 되면 크게 두 가지 선물을 경험했다. 하나는 내 말을 듣는 상대방에게 좋은 말을 전했다는 나의 작은 기쁨이고, 또 하나는 좋은 말을 건넬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아진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행복이다. 내가 나의 말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말이 나를 만들어 간다는 느낌을 어느 순간 받기 시작할 때 불현듯 내가 확장되었음을 느낀다.
지극히 나의 개인적 깨달음일 수 있지만 또 하나의 깨달음이 있다. 비록 작위적이더라도 혹은 의도적이더라도 좋은 말을 노력하다 보면 미운 사람의 실패에도 덜 통쾌해하게 되고, 내가 선택한 일상이나 업무의 오류에도 덜 후회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진심이 아니면 말하지 말라”라고 배운다. 하지만 직장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일과 사람의 교차점이다. 매일 마감과 숫자가 오가는 곳에서 감정의 나침반은 자주 흔들린다. 그럴 때 약간 포장된 좋은 말이 관계를 살리고 일을 전진시킨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배려의 기술이며, 사물의 모서리에 씌우는 스펀지 같은 것이다. 모서리를 둥글게 하면 더 멀리 굴러갈 수 있다.
진심은 귀하다. 그러나 우리는 늘 바쁘고, 마음은 언제나 여유롭지 않다. 그럴수록 약간의 포장이 필요하다. 포장은 진심을 덮기 위한 가면이 아니라, 진심이 상하지 않고 전달되도록 돕는 보호필름이다. 여성의 화장 또한 그렇다. 생얼을 덮기 위한 가면이 아니라, 자신을 가장 '진솔한 본인다움'으로 표현하게 할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이고 상대방과의 신뢰 고리의 출발점일 수 있다.
퇴근길에 메시지 말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오늘 당신 덕분에 일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내일도 같이 가요.”
그 말이 완벽한 진심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 말이 우리의 진심을 자라게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