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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keSummer Jan 12. 2023

나 드라이한 여자야

똑똑똑, 잠자는 글 깨워드립니다

드라이한 게 좋다.


바스락 소리가 나기 전 그렇게 말려있는 그 자태가 좋다. 나뭇잎이라면 밟아서 소리를 듣고 싶고, 그게 마음이라면 똑똑똑 노크를 해보고 싶다.


지난여름에서 가을로 넘어오는 끝자락에서 축축함에 무너졌다. 열정의 찐득함과 미련의 쿰쿰함이 그대로 썩어 들어가 숨이 막혔다.


"아 하세요. 왼쪽으로 크게 벌리세요. 마취 주사 들어갑니다. 아프면 손드세요. 괜찮으세요?"

윙 드릴 소리와 함께 뜨겁게 달궈진 쇠 냄새가 풍긴다.


"어깨에 힘 빼세요."


선생님, 저는 어깨에 힘을 뺄 줄 몰라요. 잘 때도 힘을 주고 잔다니까요. 어깨에 힘을 뺀다고 어깨에 힘을 또 주게 되는 거 아세요?


아끼고 아껴둔 10월 연차를 왼쪽 아래 어금니 충치치료에 쓰다니. 현금으로 지불해도 혜택이 없으니 미련 없이 카드로 긁는다.


"일시불로 해주세요."


다음 주 월요일 오후 5시 30분으로 진료 예약을 잡고 2층 계단을 걸어서 내려왔다. 시간은 오전 10:47분. 집에 들어가기 싫다. 재택근무자는 집이 직장이다.







하철역 광장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왼쪽 오렌즈 안경원 쪽으로 갔다가 오른쪽 티월드 대리점 쪽으로 갔다가 뒤로 꺾어서 리얼 케이크 앞에서 케이크 구경을 한다.


마침 신호등이 켜진다. 사람들 틈에 껴서 길을 건넌다. 한살림에서 장을 보고 싶진 않다. 지음에 가고 싶다. 데이터를 켜고 검색창에 '치과마취하고 커피 마셔도'라고 검색한다. 된다는 답을 찾고서 씩씩하게 길을 나선다.


오늘은 에티오피아 스페셜티 원두를 골랐다. 그걸 마셔도 된다고 결심했거든. 왼쪽은 느껴지지 않지만 오른쪽으로 한 올 한 올 머금어 본다. 오늘은 배가 안 아플 거야.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거든.


드라이해보려고 한다.


완벽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체액에서는 벗어 나온 기분이 들었다. 손끝에 늘 느껴지던 그 마음들은 이제 가을바람에 날아갔다. 오늘 우리 집 거실 습도는 10%이다.



사진: UnsplashAnnie Spratt


사진: UnsplashKaffeeb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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