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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keSummer Mar 26. 2023

3,470만 원을 아꼈으니 오늘은 24,600원을 쓴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캐나다병

천천히 걸어왔다. 지음 사장님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하얀 블라인드가 쳐있다. 지난번에 선결제한 걸로 원두를 사려고 했는데, 아쉽다. 집에 스틱커피밖에 없는데. 터덕터덕 걷다가 세븐일레븐 덱 위에 앉아 있는 검은 헬멧을 쓴 배달부 옆스쳐 지나간다.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음 주문을 기다릴까. 앗 죄송합니다. 부딪히진 않았지만 속으로 말이 증발 된다.      




헬레나쌤과 비비안나 쌤과 같이 갔던 카페로 향한다. 도밍고였는데 플라시도도밍고는 아니고 노이도밍고다. 고민하지 않고 손잡이를 밀고 물 흐르듯이 들어가는 이 흐름이 아름답다. 고민하지 않는다는 건 지난번에 확신을 줬다는 거지. 서로에게 그런 관계가, 그런 장소가 있다는 게 벅차다.      


작은 테이블은 너무 통창에 붙어있다. 고민이다. 안 쪽 자리는 다섯 명은 족히 앉을자리인데 다행히 손님이 한 테이블만 있는 걸 확인 후, 커다란 테이블에 등이 보이게 앉는다. 주문을 하고 돌아설 때 알았지. 그 테이블의 주인공을. 아는 척을 할 기력이 없는 번아웃 증상러는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마침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내적 다행이다를 외치지. 오늘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하고도 얘기하고 싶지 않다.  


    



노트에 써내려 간다. 아메리카노에 바닐라 까눌레를 시켰어. 3,800원을 더 썼어. 그리고 칼로리 계산을 하지 않았어. 이제 원지처럼 살 거야. 하루에 커피 한 잔 할게요를 두 번 이상 할 수 있고, 버터크로와상도 사이드로 주문할 수 있는 간을 갖고 싶다. 원지의 간이 탐이 난다. 아메리카노도 먹고 싶고 라떼도 먹고 싶을 때 오 그래? 그럼 두 잔 시키자. 가끔씩은 자신한테 이렇게 대접해 줄 수 있는 게 진정한 부자의 간이다.    

 

초록 트레이에 하얀 머그컵에 담긴 아메리카노의 크레마가 고급지다. 옆에 마카다미아 넛을 모자처럼 쓰고 있는 까눌레는 아름답다. 7,800원을 쓰고 이렇게 뿌듯할 수 있을까. 성공한 재택근무자가 여기에 있다.

     

3월에 그 무섭다는 캐나다병이 도졌고, 이주공사 상담을 받고 3월에 9월을 경험하는 기적의 상상능력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설렘보다는 무언가 버거움이 강했다. 다행히 계약서를 받기 전에 아이가 혼자 다닐 수 있는 법적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고, 하마터면 타국에서 일하다가 집에 경찰관과 사회복지사를 만날 뻔했다. 물론 이 모든 건 인프피의 상상력에 존재할 뿐이다.  

    


번아웃이지 뭐.     


번아웃은 뭐다. 극복하라는 거다. 바닥을 쳤으면 올라오면 된다는 거다. 캐나다 병은 오늘 포장해 온 감자치즈 스콘으로 치유하면 된다는 거다.      


들어가십쇼쇼쇼쇼*    


                                                                                                     *원지의 하루에서 마무리 인사      

원지의 하루 중에서 캡쳐

추신

24,600원

아메리카노+까눌레=7,800원

크림라떼=6,800원

감자치즈스콘 2개=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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