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어느 별에서 왔니?
아이가 말을 시작하더니 이내 폭풍처럼 말을 쏟아냈습니다. 어린이집에 보냈더니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유치원 다니면서는 엄마 아빠도 없는 한자 자격증을 땄습니다. 어느 날 소녀시대의 <라이언 하트> 노래에 맞춰 소녀시대 멤버보다 더 예쁘게 춤을 췄습니다. 한 번은 몇 날 며칠 그림을 그리더니 엄마 아빠에게 그림 동화책을 만들어 보여줬습니다. 어떤 날은 동생과 함께 엄마 아빠에게 스토리가 있는 연극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창의적인 공연이라니!”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여준 아이는 ‘엄친딸’이 아닌 ‘우리 딸’입니다.
누구보다 뛰어난 운동능력을 보여줍니다. 야구나 축구를 할 때 공을 맞히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일곱 살 때 장난 삼아 나간 마라톤 대회에서 5km를 완주해버렸습니다. 춤은 또 왜 그렇게 잘 추는지요. 싸이의 <뉴페이스>와 <I LUV IT> 노래만 나오면 싸이보다 더 싸이답게 춤을 춥니다. 아이가 춤을 너무 잘 춰서 그 모습을 어디다 영원히 보관하고픈 생각에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데 끝말잇기 놀이를 할 때는 엄마 아빠를 이길 때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와 구구단 놀이를 하더니 구구단의 원리를 깨쳐 누나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여준 아이는 ‘엄친아’가 아닌 ‘우리 아들’입니다.
이 상황이 우리 아이들에게만 해당될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부모라면 누구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처럼 본인들이 잘하는 것을 타고나니까요. 그리고 타고난 재능으로 엄마 아빠에게 자신들의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우리 아이들이 남들보다 조금 더 많아 보이는 것은 아이가 둘이다 보니 하나를 키우는 부모보다 두 배 많아서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잠시 글 읽기를 멈추고 생각해보세요. 아이가 훌쩍 자란 부모님들은 옛날 아이가 어릴 때 보여주었던 재능을요. 지금 한창 자라는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아이가 보여주는 재능을 생각해보세요. 무엇이 떠올랐고 무엇이 보이시나요? 무엇을 보았던 아이의 재능에 흐뭇했을 것입니다.
하버드대학교 인지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인간의 두뇌가 9가지 다중 지능을 갖고 있다는 다중인지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아홉 가지 지능에는 언어지능, 논리수학 지능, 공간지능, 신체운동 지능, 음악 리듬 지능, 개인 간 지능, 개인 내 지능, 자연 친화 지능, 실존지능이 있습니다. 다중인지 지능에 따라 세상 모든 아이들을 보면 누구나 타고난 지능을 하나 이상씩 갖고 있습니다. 일례로 얼핏 보면 하찮게 보이는 동물과 식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는 자연 친화 지능의 소유자로 곤충의 아버지인 파브르의 천재성이 있는 것이고 성인이 되어 세계 최고의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을 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친구와 놀기를 너무나 좋아하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아이들은 개인 간 지능의 소유자로 미래의 지도자가 될 피가 흐르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자라 UN 사무총장이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요.
우리 아이들을 이 다중지능 이론에 대입해보면 딸은 언어지능과 신체운동 지능에서 재능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신체운동 지능과 논리수학 지능에서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잘하는 딸은 제2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맨부커’상을 받은 작가 한강 씨처럼 자랄 수도 있겠지요. 아들은 역대 한국 최고 축구 선수라 불리는 박지성 선수처럼 자랄 수도 있고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 부부는 이런 우리 아이들의 재능을 보며 때론 기뻐하며 때론 감탄합니다. 그리고 가끔 서로 마주 보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때론 말로 때론 눈빛으로요.
“천재네 천재, 이 아이들은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을까?”
우리 아이들이니 당연히 우리를 닮은 부분이 많습니다. 저는 체육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육상 선수였고 지금은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에게는 꿈의 기록이라 불리는 서브 3(풀코스 3시간 이내)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아내도 운동을 곧잘 하는 편입니다. 같이 배드민턴을 치고 탁구를 하면 공 다루는 능력이 보통의 여자들과는 확연히 다를 만큼 잘한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처남이 탁구선수를 거쳐 장애인 국가대표 코치를 하고 있으니 아내에게 체육인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래서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을 볼 때는 ‘역시 우리 아이’라는 생각으로 흐뭇합니다.
저는 잘 못하지만 아이들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춥니다. 이런 부분은 아빠를 닮지는 않았지만 엄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는 대학교 때 기타 동호회에서 보컬로도 활동했을 만큼 노래를 잘합니다. 제가 가끔 노래대회에 나가보라고 부추기기도 할 정도니까요. 춤도 노래와 전혀 무관하지 않으니 아이들이 노래와 춤을 잘 추는 것까지는 납득이 됩니다. 여기까지도 ‘어느 별에서 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딸이 그림대회에서 상을 받고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구단을 깨치는 상황에선 정말 감탄하고 놀랐습니다. 우리와 완전 다른 모습이었으니까요. 거기에 더해 딸이 처음 동생과 함께 공연기획을 하고 공연을 했을 때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전혀 그쪽에 재능이 없었으니까요. 우리 부부가 없었던 재능을 아이들이 보여줄 때 정말 우리 아이들은 천재라는 생각이 들며 이 아이들은 지구에서 온 아이가 아니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아이의 천재성을 볼 때마다 '기쁨 3종 세트'라는 생각을 합니다. 기쁨 3종 세트 안에는 '아이들의 재능 자체를 보는 기쁨', '주위의 칭찬을 듣는 기쁨', '아이들의 재능이 현실이 되는 꿈을 꾸는 기쁨'이 있습니다.
딸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닐 때 그림 그리기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이젤과 대형 도화지를 선물해서 따뜻한 봄날에는 짚 앞 천변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었습니다. 딸아이의 그림을 보면 늘 흐뭇했고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빠인 저는 그림을 워낙 못 그려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 점수는 항상 '미'와 'C'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딸은 어느 별에서 왔는지 그림을 잘 그렸던 아이였지요. 딸의 그림을 봤을 때는 늘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대를 나와 동화책 삽화를 그리기도 했던 지인이 딸아이의 그림을 칭찬하기도 했으니 제가 딸아이의 재능에 얼마나 기뻐했을지는 쉽게 짐작할 것입니다. 딸아이가 미술로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그림이 미술관에서 발행되는 책에도 실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고 행복한 기억입니다. 그때는 이 아이가 고흐 같은 세계적인 화가가 되려나 싶어 화가가 되는 꿈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딸아이의 재능을 보는 기쁨, 딸이 수상을 하며 칭찬받는 기쁨, 딸이 화가가 되는 상상의 꿈을 펼쳤으니 그야말로 딸아이의 천재성이 준 기쁨 3종 세트가 완성된 순간이었습니다.
작년에 아들 어린이집에 학부모 상담을 갔었습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아버님, 서준이와 찍은 사진을 자랄 때까지 보관해야겠어요. 서준이가 운동을 너무 잘해서요, 나중에 국가대표가 돼 TV에 나올 것 같아요.”
저는 태연한 척하려고 했지만 입이 찢어지는 것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습니다. 평소에도 본인이 달리기 천재라고 생각할 만큼 운동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는 아들입니다. 아들의 재능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더군다나 선생님의 극찬까지 받았고요. 마침 요즘은 아들의 꿈이 축구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조만간 바뀌겠지만 지금은 아들이 박지성 선수나 손흥민 선수처럼 멋진 축구선수가 되는 상상을 합니다. 이렇게 또 기쁨 3종 세트가 완성됐습니다.
딸이 먼저 자신의 재능을 보이며 우리를 기쁘게 했습니다. 사 년 후에는 아들이 태어나 누나에 뒤질세라 본인의 천재성을 보여줬습니다. 두 아이들의 성향이 닮은 면도 있지만 다른 면도 많아 우리는 완전히 다른 영역의 재능을 보며 두 배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어느 별에서 왔을까?”라는 생각을 수시로 하면서 말이지요.
요즘은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우리 아이들의 천재성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세상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천재인 줄 알지만 어느 날부터 서서히 천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는 세간의 말을 수긍하면서 말이지요.
딸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천재성을 조금씩 감추고 있습니다. 요즘은 아주 가끔 동생과 함께 즉석 공연을 하거나 노트에 써놓은 글 정도로만 자신의 재능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천재성을 감추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본인의 재능이 아닌 부분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교육 현실이 제일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은 세상 모든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점점 하향 평준화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받아도 여전히 천재가 될 수 있도록 하려면 학교 교육을 바꾸면 되겠지요.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으니 조금은 답답합니다. 바꿀 수 있다고 해도 바꾸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자라서 성인이 될 테고요.
그러면 아이의 천재성을 보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무엇일까요? 아이들이 어릴 때 아이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아닐까요?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으면 그만큼 아이의 천재성을 볼 시간이 많아지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 할수록 아이가 보일 천재성도 다양해질 테니까요.
다행히 우리 집에는 여전히 다양한 재능을 보여주는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이 앞으로 몇 년간은 천재성을 보여 줄 것이니 아쉬움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습니다.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영화의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어느 날 우연히 본인이 달리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재능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갑니다. 미식축구 선수로, 군인으로, 탁구선수로 멋진 삶을 살지요. 그의 삶은 새우잡기를 하고 달리기를 하며 계속됩니다. 영화가 현실과 같지는 않겠지만 포레스트 검프의 삶은 누구보다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며 ‘아이들에게 언어지능, 논리수학 지능만 강요하지 않고 어린 시절 아이들이 보여주는 재능대로 살게 하면 포레스트 검프처럼 아이들의 삶도 탄탄대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도 인생을 처음 살아보니 정답을 알 수 없고 더군다나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인생이니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시도하기가 주저되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여전히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나고 그에게 미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