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에서 만나는 아빠들의 로망
2015년 예산에서 개최됐던 힐링&마라톤 콘서트라는 대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온천으로 유명한 예산에서 개최된 그 대회는 온천호텔이 포함된 1박 2일 가족여행 맞춤형 대회였습니다. 여행과 마라톤을 같이 좋아하는 제겐 두말할 필요 없이 좋은 대회였지요. 가족과 함께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에 좋겠다는 생각으로 온 가족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대회 전날 예산에 도착해서 대회 주최 측에서 제공한 프로그램을 즐겁게 소화하고 저녁 늦게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숙소가 온천호텔이라 여장을 풀자마자 바로 온천으로 향했습니다.
딸은 엄마가 데리고 갔고 저는 아들을 데리고 남탕으로 갔지요. 미니미를 데리고 목욕탕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노천탕으로 나갔습니다. 역시 목욕탕은 노천탕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만큼 좋은 날이었습니다. 하늘에는 달이 걸러있고 노천탕은 조명으로 빛나고 봄날의 저녁 바람은 실내에서 더웠던 열기를 상쾌함으로 만들었으니까요. 그런데 4월 초라 그런지 유아였던 아들은 조금 쌀쌀함을 느꼈나 봅니다. 저녁에 낮아진 기온도 한몫했고요. 처음 미니미를 노천탕에 데리고 갔을 때 탕은 뜨겁고 밖은 춥다며 빨리 실내로 가자고 하더군요. 안에 들어와서 잠깐 놀더니 무슨 꿍꿍이가 생겼는지 다시 나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저 미니미가 하자는 대로 쫄랑쫄랑 따라다녔습니다. 그때가 다섯 살이니 아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불안했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두 번째 밖으로 나갔을 때 아들은 노천탕 여기저기를 다니더니 바닥에 벌러덩 누웠습니다. 탕의 물이 넘쳐 바닥이 따뜻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물 뿌려줘.”
뜨거운 물을 뿌려주니 고개를 흔들며 깔깔댔습니다.
그거 아시죠? 부모는 아이들의 웃음을 볼 때 세상에 없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거요. 다섯 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모습으로 자기가 웃을 수 있는 가장 예쁜 웃음으로 몸짓과 함께 웃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웃고는 웃음을 그칠 때쯤 다시 물을 뿌리라 하더군요. 그걸 5번 반복했습니다. 저는 정말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세상에 없는 행복감을 느꼈지요. 그때 우리를 지켜보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그 이상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들이 계셨습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의 할아버지를 보니 그분들도 만면에 아빠 웃음을 가득 짓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보면서 정말 우쭐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기 계신 할아버지들이 우리 부자를 보며 옛날 당신들이 자녀를 키우던 때를 생각하시는구나. 우리를 보며 그때의 행복했던 모습을 돌아봤구나.’
저는 잠시나마 할아버지들의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 우리가 뿌듯했습니다.
실내로 들어와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서준아, 우리가 할아버지들을 기쁘게 한 것 같아. 사랑해.”
아빠의 말을 아들이 이해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들은 도리어 제게 물었지요.
“아빠, 뭐라고?”
아이에게 완전히 이해시키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아빠와 서준이가 재미있게 노니까 할아버지들이 우리를 보고 웃었잖아. 우리의 모습이 재미있었나 봐.”
그 이후에도 저와 아들은 실내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놀다가 다시 노천탕에도 몇 번 나가며 아들과 목욕놀이를 즐겼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내와 밖에서 만나자고 한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아들과 수없이 많은 목욕을 했지만 그날이 유독 오래 기억이 남습니다. 아마 그때 노천탕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그분들의 웃는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그때 할아버지들이 지었던 흐뭇한 모습이 기억에 선합니다. 아마도 그분들이 봤던 모습은 우리 부자가 아니라 수십여 년 전 당신과 당신 아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세상 모든 아빠들은 아들과 목욕하는 로망이 있습니다. 아들이 태어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것 중에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이 목욕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모든 아빠들이 아이들과 목욕을 하고 기뻐합니다. 아마 예산 온천에서 만난 할아버지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어린 아들과 목욕하며 기쁘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시계태엽을 좀 더 과거로 돌려보겠습니다. 첫째가 태어나고 조금 지나 아이의 목욕을 시켜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작아 한 손으로 아이를 받칠 수 있을 때였지요. 그때 아이와 눈을 맞추며 씻겼을 때 아이는 온몸으로 까르르 웃었습니다. 물론 또 언제 웃었냐는 듯이 입을 양쪽으로 최대한 벌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요. 서툴렀지만 아이의 변화무쌍한 표정과 행동이 귀엽고 신비롭고 감탄스러웠습니다. 그런 딸이 훌쩍 자라 어느 순간부터 아빠와 목욕탕에 갈 수 없을 만큼 자랐습니다. 이젠 몸무게도 40Kg이 넘어 쉽게 들 수도 없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튼튼하게 자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딸이 어렸을 때 함께 씻어주고 목욕하면서 아이가 주는 기쁨을 더 듬뿍 받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대신에 둘째가 충분히 아빠를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밤 9시 전에 집에 들어오면 꼭 아이와 함께 샤워나 목욕을 합니다. 아이는 매일 태권도를 하며 땀을 흘리니 씻어야 할 이유가 있고 저도 아이와 샤워를 하면 기분 좋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들은 목욕탕에 들어올 때 아빠 놀라게 하기, 노래하기, 춤추기로 아빠를 더욱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기쁨에 즐거움까지 장착한 것이지요. 아들은 아빠를 먼저 목욕탕에 들여보낸 후 제가 비누로 세수를 할 때까지 문틈으로 아빠를 지켜보며 들어갈 타이밍을 잡습니다. 제가 얼굴에 비누칠을 해서 눈을 감고 있을 즈음 살금살금 다가와 숨고 제가 샤워기에 물을 틀어 샤워를 막 시작하려고 할 때 소리칩니다. 아빠가 놀라지 않으면 표정이 금방 뾰로통해집니다. 그래서 아이가 소리치면 일부러 큰소리로 “앗, 깜짝 놀랐잖아!”라고 말하며 제법 과장된 몸짓으로 놀란척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진짜 아이가 다가오는지 모르고 놀랄 때도 있습니다. 진짜 놀람이든 가짜 놀람이든 그다음에는 아들을 번쩍 안아서 아이의 심장을 느끼는 5초간의 포옹을 합니다. 저는 그 순간 아빠라는 사실이 너무 행복합니다.
아들은 목욕탕에서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아빠에게 자기가 추는 춤을 따라 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목욕탕에서 아빠와 아들이 춤을 추는 모습!
우리 집이니 좀 떠들면 어떻고 좀 요란스러우면 어떤가요?
가끔은 아빠와 아들이 즐겁게 웃는 모습에 아내와 딸이 빠끔히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아들 덕에 기쁨이 피어나는 순간이지요.
목욕은 당연히 최고의 스킨십입니다. 그리고 부자지간 할 수 있는 최고의 소통법이라 생각하지요. 요즘은 아들이 아빠의 몸과 자기의 몸에 대해 조금씩 궁금한 것이 생기는 때입니다. 유난히 누나에 비해 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들이라 그렇겠지요?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엄마는 가슴이 뽈록한데 아빠는 왜 아무것도 없는지, 아빠는 털이 있는데 자기는 왜 없는지 물어봅니다. 저는 아들이 성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보였을 때 벼락치기 성교육을 했습니다. 팟캐스트와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공부를 한 결과 아이가 궁금해하면 최대한 솔직하게 답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아직 몰라도 되는 부분은 살짝 돌려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에도 사실만 말합니다. 목욕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성교육을 시작하게 된 거지요. 굳이 따로 성교육 시간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욕을 통해 덤으로 성교육을 할 자연스러운 시간도 얻게 된 것이지요.
부모들에게 성교육만큼 신경 쓰이는 게 아이들의 사춘기입니다. 아이들이 별일 없이 사춘기를 넘기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부자간의 목욕이 아이가 사춘기를 극복하는 튼튼한 근육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빠와의 꾸준한 목욕이 아이의 감정 계좌에 충분한 저축이 되리라 믿으니까요. 영국 센트럴 런던대학교의 심리학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빠와 함께 목욕한 경험이 없는 아이들의 경우 30% 정도가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긴 반면 일주일에 2~3번 아빠와 목욕한 아이들은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3% 이내라고 합니다.
이것은 아이와 신체 접촉 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랑의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옥시토신은 아이의 정서발달과 사회성을 높이는데 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목욕이니 아빠들이 당장 오늘부터 아이와 목욕을 해야 할 이유가 되는 거지요.
자녀와의 목욕을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하면 아이가 자라도 어색할 일이 없겠지요. 이제 제법 자란 딸과 목욕은 못하지만 스킨십은 매일 빠뜨리지 않고 합니다. 출근이나 퇴근 때, 또는 잠자기 전에 아이를 안아줍니다. 이제 덩치가 엄마만큼 커서 이 아이가 아내인지 딸인지 눈을 감고 있으면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자랐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아이를 안아주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줄 생각입니다. 아이를 안는 것이 어색해지면 아이와 나 사이에 벽이 하나 생기는 것이니까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엄마는 아이들을 열 달 동안 뱃속에서 키웁니다. 그것을 시간으로 따지면 7,200시간입니다. 아빠가 매일 1시간 아이와 목욕을 해도 엄마처럼 열 달을 채우려면 20년이 걸립니다. 매일 1시간씩 20년 동안 목욕하기가 가능할까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아이와 매일매일 목욕하고 안아주는 것을 20년간 하면 아빠도 엄마만큼 아이와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가능하면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빠가 아이를 씻기고 함께 목욕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엄마만큼 친해질 수 있으니까요. 물론 저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은 아직 8살이고 앞으로 10년은 함께 목욕할 시간이 남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