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온가족 독서를 해요

상상이 현실이 된 온가족 독서

by 막시

"아빠 책 읽자, 아빠 책 읽어줘."

밤 열 시가 되면 아들은 아빠를 불러 책을 읽자고 합니다.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하는 말이지요. 아들이 이 말을 하기 전에 딸은 벌써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책 읽자는 말을 하면 아내와 제가 동참합니다. 그러면 온 가족 책 읽기가 시작됩니다. 저나 아내가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책 읽는 소리가 나지만 아들이 스스로 책을 읽는 날에는 책 넘기는 소리만 납니다.

한 번씩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보면 딸은 딸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각자 책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이런 우리 가족의 모습이 조금은 신기합니다. 온 가족이 독서하는 모습은 결혼 초기에 한 번쯤 상상했던 행복한 가족의 모습 중 하나이니까요. 그 상황이 지금 제 앞에 펼쳐지니 신기할 수밖에요. 그래서 매일 열 시가 다가오면 온 가족이 책을 읽는 모습을 떠올리며 흐뭇해하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온 가족이 독서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작년 딸아이가 학교에서 했던 <가족 독서마라톤>이었습니다. 독서마라톤은 말 그대로 독서를 마라톤에 접목한 놀이형 독서입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책의 1페이지를 마라톤의 1m로 계산합니다. 독서마라톤 종목도 마라톤 종목처럼 3K, 5K, 10K, 하프, 풀코스로 나눠져 있습니다. 대신 3천 쪽, 5천 쪽, 만 쪽, 2만 천 쪽, 4만 2천 쪽을 읽어야 구분되지요. 그때 딸은 악어 코스(5천 쪽)를 선택했습니다. 가족 독서마라톤이니 온 가족이 누나와 딸을 도와주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미취학 아동이었던 아들은 주로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그림책은 그림이 많으니 당연히 쪽수를 채우는데 유리합니다. 그래서 주말에 날 잡고 도서관에 가면 3백 쪽씩 읽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나가 악어 코스 완주는 물론 월등한 기록을 내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습니다. 딸은 5천 쪽만 읽으면 되는 악어 코스를 신청했지만 아들의 적극적인 도움과 우리 부부의 보탬으로 최종 기록은 1만 5천 쪽을 넘겼습니다. 딸도 뿌듯했지만 그것을 보는 우리 부부도 뿌듯했습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는 글이 새겨진 비석이 있습니다.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은 볼수록 마음에 드는 문구입니다. 저는 책에는 한 사람의 삶이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의 삶이든 배울만한 가치가 없는 삶은 없습니다. 삶을 책에 녹였으니 그 책은 한 사람의 축소판이고 책을 읽는 사람은 짧은 시간에 한 사람의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거지요. 책에 대한 저의 마음이 이러니 책 읽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기분 좋을지 짐작하실 것입니다.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책을 좋아했습니다. 첫 아이다 보니 우리 부부가 책도 많이 읽어주고 책도 많이 샀습니다. 책을 좋아한 딸은 동생이 생기자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딸이 동생에게 책 읽는 모습을 딸 몰래 한참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너무 예뻐 사진으로 찍어두기도 했었지요. 그건 제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일상 중 하나였고 그 행복을 좀 더 오래 어디엔가 담아두고 싶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딸이 결국 독서마라톤을 만나 온 가족에게 독서습관이라는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올해 초의 일입니다. 딸은 독서마라톤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독서의 매력에 한층 더 빠졌습니다. 스스로 고무되어 저에게 독서 레이스를 하자고 했습니다.

"아빠, 나랑 책 누가 많이 읽나 대회하자."

"우리 딸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냥, 한번 해보고 싶어."

"아빠가 읽는 책은 네가 읽는 책 보다 두꺼워 불리할 것 같은데?"

"음... 그럼 쪽수로 해, 쪽수로 하면 공평할 것 같은데?"

"좋아."

"아빠, 내가 이기면 내가 원하는 걸 선물로 해주라."

"아빠가 이기면 뭘 해줄 건데?"

"아빠가 이기면 없어, 하하하, “

"그럼 불공평하지. 아빠가 이겨도 아빠가 원하는 거 해주기."

"그래, 그럼 하는 거다."

"ok."

심판 역할을 하고 있는 아내가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독서 레이스 중에는 누가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확인하면 안 돼!"

아빠의 독서량과는 관계없이 딸이 본인의 독서를 하라는 안전판이었습니다.

그때 딸은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 했습니다. 핸드폰 바꿔주면 안 되냐고 몇 번 물었지요. 아마 독서 레이스를 이기면 스마트폰을 사달라는 속셈이었을 것입니다. 딸은 반드시 아빠를 이겨야 하는 이유가 있었고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워낙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으니까요.


저는 제가 이기고 지는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독서 레이스를 통해 딸아이가 책을 더 좋아하고 독서습관을 더욱 견고히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책을 읽으면서 저도 딸과의 진정한 승부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기회에 독서량을 늘려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딸의 승리는 미리 예견됐지만 딸에게 긴장감도 주고 아빠도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딸에게 "서영아, 아빠 오늘도 책 하나 다 읽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딸은 제법 신경 쓰이는지 곧바로 책 읽는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정작 딸아이와 독서를 통해 선물을 받은 것은 저입니다. 2018년 한 해 95권의 책을 읽었으니까요. 저의 연평균 독서량은 30권~40권인데 딸 덕분에 독서량이 두 배 이상 증가한 거지요. 이런 추세로 간다면 올해에는 꿈의 100권 돌파도 가능해 보입니다. 제 기준으로 1년에 1백 권 읽는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이건 정말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제가 1년에 1백 권을 읽는다는 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책을 읽는 시간이면 늘 뿌듯합니다. 책을 한 권 다 읽고 독서기록장에 기록할 때마다 배움이 있어 좋고 책 읽은 숫자를 하나씩 늘려가는 성취감에 흐뭇해집니다.


딸과 저의 독서 레이스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연쇄적인 긍정 효과를 주었습니다. 아빠와 누나의 독서 레이스를 지켜보던 아들도 제게 말했습니다.

"아빠, 나랑도 독서 레이스 하자, 내가 이기면 레고 2개."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많은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호기를 마다했을까요?

"알았어. 독서 레이스를 하려면 독서기록장을 사야 해. 그리고 책을 읽을 때마다 독서기록장에 기록해야 해."

"알았어. 할게."

이렇게 아들의 독서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아들이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누나가 책을 좋아하는 마음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누나는 이미 책의 매력에 빠졌고 아들은 아직 그 단계는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들은 누나와 아빠의 독서 레이스를 보고 독서 레이스를 시작했지만 책 읽기는 들쭉날쭉했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아들에게 당근을 제시했습니다.

"서준아, 너 책 10권 읽을 때마다 아빠가 작은 선물 하나씩 할까?"

"진짜? 오예, 근데 10권은 너무 시시하지 않아?, 30권?”

"30권은 너무 많아, 20권 할래?"

"그럼 그냥 25권으로 하자."

그렇게 아들은 책을 25권 읽을 때마다 선물을 하나씩 받습니다. 보통 매달 선물 하나씩 주는데 아들은 거의 매번 베이블레이드 팽이를 사고 있습니다. 벌써 몇 달이 지났고 아들은 팽이를 제법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들도 제법 책 읽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딸이 일으킨 독서 바람을 아내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올해 어느 해보다 책을 많이 사고 있습니다. 저와 딸은 독서 레이스를 한다고 많이 사고 아내와 아들도 서점에 갈 때 함께 책을 보다 보니 같이 사게 되는 거지요. 어떤 달은 적에는 10권 많게는 20권을 살 될 때도 있습니다. 책은 늘 거실과 방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책이 눈에 자주 보이면 관심이 가고 그중에 본인의 관심을 끄는 책이 한두 권은 있게 마련이니까요. 아내가 그런 케이스입니다. 제가 구입한 책을 하나씩 보더니 이제는 온 가족 독서 물결에 동참했습니다. 제가 주로 사는 책이 부모 자녀교육, 행복, 힐링, 여행 책이니 아내도 충분히 관심 가지고 볼 만한 책인 거지요.


온 가족 책 읽는 우리 가족을 볼 때마다 참 기분 좋은 가장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다 보면 한 번씩 아이들의 책을 읽어주거나 혼자 아이들의 책을 볼 때가 있습니다. 아내가 제가 산 책 제목을 보고 읽기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트리나 폴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집에서 발견하고 읽어 봤습니다. 저는 올해 본 책이지만 1972년에 출간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4백만 부가 팔렸고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호랑 애벌레가 꼭대기를 올라가는 애벌레를 무작정 따라 올라가다 노랑 애벌레를 만납니다. 우여곡절을 겪지만 노랑나비가 된 노랑 애벌레의 사랑으로 호랑나비가 됩니다. 저는 이 책을 앉은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었습니다. 책도 재미있고 내용도 좋았지요. 아이들 덕분에 발견한 책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벌레가 상대방을 짓밟으면서 꼭대기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오르는 모습에서는 사람들의 의미 없는 욕망이 보였고 노랑나비의 사랑으로 호랑나비가 되는 장면을 보았을 때는 사랑 또는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희망을 발견하고 꿈을 이루는 따뜻한 우리네 삶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의 책이지만 저에게도 깨우침을 주는 책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가끔은 어릴 때 봤던 책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찾는 책도 있습니다.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그런 책입니다. 이건 대한민국 정규 교육을 마쳤으면 누구나 보았을 책인데요. 저는 이 책을 아이에게 읽으면서 중간중간 생각을 하느라 몇 번 책 읽기를 멈췄습니다. 마치 나무가 부모이고 소년은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는 소년에게 아낌없이 주면서도 행복했고 더 이상 줄 것이 없어 아쉬워했으니까요. 딱 부모의 마음이었습니다. 이 책처럼 나이가 들어 다시 보면 큰 깨달음을 주는 책을 종종 알게 됐습니다. 이런 책은 아이가 없었으면 영원히 몰랐을 책이고 다시 잡지 않았을 책이지요.


아이가 책을 좋아하니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 더욱 커져 좋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통해 꿈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 아이들이 바르게 자랄 것이라는 믿음, 아이들이 무엇이든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책이 분명 삶을 위한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책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많이 얻게 되니 아이들도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 거지요.

지난 주말에는 딸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서영아, 엄마 아빠는 네가 무슨 일을 해도 별로 관여하지 않고 하는 대로 두는 이유가 뭔지 아니?

"..."

"서영이를 믿으니까, 서영이가 무엇을 하든 너를 믿으니까."

이러한 믿음의 바탕에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우리 딸의 모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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