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결혼해도 로맨스를 즐겨요

아이들이 없을 땐 아내와 로맨틱 데이트

by 막시

아내와 서래 마을 몽마르트 공원으로 데이트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날의 콘셉트는 대학생 커플이었습니다. 아내는 청치마 원피스를 입고 저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둘이 데이트하는 모습을 찍으려고 셀카봉도 챙겼습니다. 차를 두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마치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대학 시절 연애하는 듯 설레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혼 10년이 됐을 때도 아내가 가끔 저에는 “여보를 보면 아직도 설렌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날은 저도 설렜습니다. 생각해보니 요즘은 설렌다는 말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문득 요즘도 설레는지 한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그날 일부러 가보지 않은 곳, 조금 더 낯선 이국적인 곳으로 떠났고 마침 그곳이 서래 마을 몽마르트 공원이었습니다. 서리풀공원과 몽마르트 공원을 잇는 누에다리에서 마치 외국에 온 것처럼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누에다리를 건너 몽마르트 언덕을 가는 길에는 토끼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귀여운 토끼를 보니 토끼에게 토끼풀을 주던 어린 시절도 잠깐 떠올랐습니다. 몽마르트 공원에 도착하니 작은 프랑스가 펼쳐졌습니다. 에펠탑 그림도 있고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고흐, 고갱, 피카소 같은 예술가들의 조형물도 있습니다. 춤을 추는 파리지엔 동상도 있었습니다. 파리를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는 프랑스 예술가들과 사진을 찍고 춤추는 파리지엔 옆에서는 그들처럼 춤도 추고 수줍은 입맞춤도 했습니다. 그날의 콘셉트는 연인이었으니까요.

벤치에 앉아서 몽마르트 공원 예찬론을 펼치다 내년에 유럽여행을 가면 몽마르트 언덕은 꼭 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 프랑스에 가면 에펠탑도 봐야 되고 센 강 유람선도 타야 된다며 서로 생각나는 대로 프랑스 낭만여행을 상상했습니다. 잠시나마 프랑스에 흠뻑 빠졌습니다. 5월의 따사로운 햇살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습니다. 어떤 날보다 시원하고 달콤한 커피였습니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프랑스를 느낀 후 서래 마을로 내려가 어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피자와 파스타, 맥주를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는 사이 맥주로 건배도 했지요.

“오늘 참 좋다, 그치?”

“그러게, 태권도 관장님이 참 고맙네, 하하하”

우린 아줌마와 아저씨였지만 마음만은 20대로 돌아간 참 낭만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날은 아들이 태권도에서 단체로 체험학습을 간 날입니다. 딸은 친구들과 체험학습을 갔었지요. 태권도 관장님 찬스를 쓴 날입니다. 그날 우리 부부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여섯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서울에 연고가 없어 둘만의 오붓하고 달콤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기에 연인 같은 부부 아닌 가족 같은 부부이지요. 그런데 정말 1년에 한두 번 정도 연인 같은 부부의 기회를 잡습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어린이집 찬스로 한두 번, 태권도 다닌 이후에는 태권도 도장에서 한두 번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라고 기회를 줍니다. 그런 날에는 정말 로맨틱한 시간을 보냅니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데이트를 한 것처럼 말이지요.


아이들과 늘 함께 하니 아내와의 데이트에 목마릅니다. 우리는 엄마 아빠이기 이전에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니까요. 그래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이 본인의 일정으로 엄마 아빠에게 달콤한 로맨틱 타임을 줄 그날을 늘 기다립니다. 그래 봤자 반나절이고 길어도 오전부터 오후까지입니다. 아이들은 오후가 되면 집에 돌아오니까요. 그러다 보니 그 짧은 시간이 더 알차고 달달합니다. 가보지 않았던 데이트 장소를 찾게 되고 낯선 풍경은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다시 연애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가끔은 둘만의 시간이 반나절도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가까운 극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지 못하는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때론 <라라랜드>같은 로맨틱 영화일 때도 있고 때로는 요즘 대세 배우 김태리가 주연한 <아가씨>같은 19금 영화일 때도 있습니다.

고작 영화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아내와 연애를 할 때는 고작 그 영화에 즐겁고 설렜었죠. 그래서 영화를 볼 때도 가끔은 옛날 생각이 나곤 합니다.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두근대고 손에 땀이 나던 그때 말이지요.

로맨틱 데이트를 하나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2016년 결혼 10주년 여행을 오키나와로 가기로 예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행 출발을 며칠 앞두고 일본에 제법 큰 지진이 났습니다. 일본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이들은 제법 무서워했고 딸은 못 간다고 선언했습니다. 저도 안전상의 문제가 있는데 굳이 여행을 강행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여행을 취소했습니다. 대신 하루는 우리 부부 둘이 데이트를 했습니다. 그날이 금요일이라 첫째는 학교 찬스를 둘째는 어린이집 찬스를 썼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이미 휴가를 낸 우리 부부는 파주 프로방스 마을로 로맨틱 데이트를 떠났습니다. 프로방스 마을로 간 <동화의 연인>이 됐지요. 아이들을 보내고 바로 출발한 터라 문을 연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건물이 예뻤던 어느 카페에 들어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난 10년을 되돌아봤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좋다는 이야기, 서로 더 아끼며 사랑하며 살자는 이야기, 앞으로 다가올 10년, 20년도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렇게 커피타임이 마칠 때쯤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여기 말고 제대로 꽃구경할만한 곳 없을까?, 오늘 같은 날 계절도 좋고 날씨도 너무 좋아, 여기서 보내기엔 너무 아까워”

그때가 봄꽃이 만발한 4월 말이었습니다. 저는 어디가 좋을지 폭풍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에 우리 부부에게 딱 좋은 곳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회심의 웃음을 지으며 아내에게 말했지요.

“우리 아침고요 수목원으로 가자!”

“가평? 거기 좋데?”

“응, 완전, 이거 봐봐, 어마어마해.”

아내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자동차로 2시간을 달려 아침고요 수목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때까지 본 가장 아름다운 정원, 가장 멋진 꽃들의 향연이 펼쳐졌습니다.

“와, 여기 진짜 예쁘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우리 왜 이제 왔을까?”

아침고요 수목원에 입장해서 입구 언덕을 넘어 정원을 만났을 때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며 예쁜 꽃을 배경으로 아내의 사진을 찍고 옆에서 구경하시는 분께 부탁하여 우리 둘의 데이트 사진도 찍었습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던 그날, 싱그러운 나무와 화사한 꽃들이 어울려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정말이지 우리 둘이만 보기에 너무나 아까운 장면이었습니다.

"여보, 우리 아이들 데리고 여기 다시 오자. 여기 너무 좋네."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무리 연인처럼 데이트를 하고 있어도 아이들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엄마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 인생의 주인공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면 제 인생의 여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습니다. 아내입니다. 그래서 제 핸드폰에 등록된 아내의 이름은 <여우주연>입니다.

학교 찬스든 태권도 관장님 찬스든 아내와 둘이 로맨틱 데이트를 떠날 때는 진짜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생각이 듭니다. 라라랜드의 두 주인공인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처럼 말이지요.

잠깐 영화 <라라랜드>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라라랜드>는 꿈을 찾는 두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스토리도 좋은데 음악과 배경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두 주인공은 주차해 둔 차를 찾아 언덕을 올라가고 그곳에서 춤을 춥니다. 배경음악으로는 흥이 절로 나는 노래 <Another Day of Sun>가 흐르지요. 그 장소가 LA에 있는 그리피스 천문대입니다. 영화를 처음 본 그 순간은 물론 가끔 그 춤을 유튜브로 찾아서 볼 때마다 나도 그곳에서 <Another Day of Sun> 노래에 맞춰 아내와 함께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라라랜드>는 저에게 꿈을 심어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제가 핸드폰에 아내의 이름을 <여우주연>이라고 저장한지는 10년도 넘었습니다. 결혼하고 바로 등록을 했으니까요. 여우주연이라고 저장해놓으니 은근히 좋은 점이 있습니다.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내를 좀 더 행복한 여주인공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말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은 우리 인생에선 주연은 아니라는 것, 아이들은 본인의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 부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됩니다.


저는 성철 스님의 주례사에 큰 감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철 스님은 주례사에서 아내나 남편을 자식보다 먼저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아이를 먼저 생각하면 부부간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교육문제로 안 해도 되는 이사를 하고 안 해야 되는 기러기 부부 생활을 한다는 말씀도 하셨지요. 제 기준으로는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습니다.

아내의 핸드폰 이름을 <여우주연>이라고 등록하니 자연스럽게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아내가 되었고 아이들보다 아내를 먼저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무리 내 아이가 예쁘고 사랑스럽더라도 와이프 퍼스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아내는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서영아 서준아, 엄마가 누구를 제일 사랑하는지 아니?”

아이들은 배시시 웃으며 대답합니다.

“아빠”

그럼 옆에서 저도 똑같이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서영아 서준아, 아빠는 누구를 제일 사랑하는지 아니?”

이번에는 또 저런다는 듯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답합니다.

“엄마”

아이들에게 이렇게 묻는 아내가 늘 고맙고 사랑스럽습니다.


얼마 전에 지인들과 강릉으로 당일치기 달리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새벽 세시에 출발해서 솔밭이 있는 강릉의 강문해변과 송정해변, 카페거리가 있는 안목 해변과 북 방파제, 아름다운 시와 조형물이 있는 경포호를 달렸습니다. 강릉이 그렇게 아름답고 멋진 곳인 줄 몰랐습니다.

그 여행을 하면서 아내와 꼭 로맨틱 데이트를 하러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주는 찬스 날 떠나려고 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요.

하지만 벌써 그날을 꿈꿉니다.

아름다운 강문해변에서 일출을 보고 송정해변으로 이동해서 솔밭에서 산책을 하고 우륵 미역국과 생선구이로 맛있는 아침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안목 해변으로 가서 방파제 등대 끝까지 걸으며 데이트를 하고 산토리니 느낌이 물씬 나는 카페에서 라떼를 한잔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경포호를 걷다가 운치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 잔잔한 물결이 이는 경포호를 바라보며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장면도 상상합니다.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그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노천카페가 될 것입니다.

음악은 스마트폰이 있으니 영화 <라라랜드>의 City of Stars를 들어야겠습니다. 아내와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춤추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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