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이웃사촌이 생겼어요

놀이터에서 만난 이웃사촌과 대를 이은 브로맨스

by 막시

저는 외동아들로 태어났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사촌들과 한집에서 성장했습니다. 옆집에는 육촌도 살고 있어서 외로울 일이 없었지요. 한 동네 사촌 육촌만 모아도 10명이 됐으니 무슨 놀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한 동네 사는 사촌과 육촌을 통틀어 막내여서 뭔가 잔심부름을 많이 한 기억 외에는 늘 즐겁고 신나게 놀았던 기억으로 가득합니다. 아, 생각해보니 아쉬운 것이 하나 더 있네요. 제 바로 위 육촌형이 세 살 터울이고 모두 그보다 나이가 많다 보니 토요명화 같은, 지금 생각하면 12금도 안 되는 영화를 볼 때마다 저는 어리다며 안 끼워줬습니다. 물론 제가 초등학교 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여름이면 냇가에서 고기 잡으며 수영하고 겨울이면 얼음썰매를 탔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라면을 끓여 머리를 맞대고 후 후 불어가며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나고 즐거운 추억입니다.

자전거도 사촌, 육촌 형들이 가르쳐줬고 축구와 야구도 형들한테서 배웠지요. 물론 싸울 때도 있었고 형들이 미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형들을 따라다녔고 함께 모여 웃고 떠들며 신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젠 자주 만나지 못합니다. 다들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며 자기 가족 챙기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물리적인 거리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이유지요. 같은 동네에 살지 않으면 마음이 있어도 쉽게 만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일 년에 명절 빼고는 한두 번 겨우 만납니다. 옛날에는 매일 봤던 사촌 육촌을 지금은 일 년에 고작 서너 번 정도 만나니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큰 만큼 1년에 서너 번 만나는 반가움은 더 큽니다. 만날 때마다 옛날 우리가 함께 했던 추억 이야기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막걸리 잔을 기울입니다. 모두 촌놈이라 술도 늘 막걸리를 마십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누나들은 맥주를 더 좋아합니다. 누나들도 촌녀인데 말이지요.


저는 직장 초년 때까지 군 복무로 경기도 파주에 있었던 2년을 제외하고는 30여 년을 경상도에서 터전을 두고 생활한 사람입니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친척들과 친구들이 경상도 인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부터 서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삶이 약간은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편히 만날 친구도 사촌도 없었거든요. 물론 결혼한 후라 아내와 아이가 있었지만 아내와 아이만으로 채울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지요. 그건 정말 딱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버드 그랜트 연구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행복의 비밀을 알아보기 위해 1938년부터 약 80년에 걸쳐 진행한 연구입니다. 이 연구는 조지 베일런트 박사가 펴낸 행복의 조건이란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버드 그랜트 연구결과는 인간의 삶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관계>라고 말합니다. 부부관계, 친구관계, 형제 관계, 자녀 관계 등 인간관계가 좋을수록 행복도가 높아지는 것이지요.


제가 서울에 막 올라왔을 때 저의 행복은 어땠을까요? 당연히 좋지 않았습니다. 관계에 문제가 생긴 거지요. 가까운 곳에 친구도 사촌도 이웃도 없었습니다. 아내와 어린 딸 외에는 나의 생각과 생활을 공유할 사람이 없었던 거지요. 물론 직장 동료가 있었지만 직장동료와는 인간적인 부분을 공유하기 쉽지 않음을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즈음 저는 의도되지 않은 외로움을 느끼게 됐지요. 그렇게 2009년부터 2011년까지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행복의 조건 측면에서 이웃사촌과 친구가 없는 채로 살았습니다.


2011년 아들이 태어나고 제 삶의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아들이 태어나고 아내는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그리고 놀이터에서 엄마들을 사귀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 사는 네 가족이 모였습니다. 그것이 이웃사촌 우정의 시작이 됐습니다. 비 오는 날 네 가족이 정자에 모여 파전도 먹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파티를 하고 놀이터에 모여 아이들 그네를 밀어주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어른들은 커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만남의 시작은 아들의 출생입니다.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내의 휴직도 없었고 절대 우정을 나누고 있는 지금의 이웃사촌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웃사촌 네 남자의 우정은 함께 배드민턴을 치고 자전거를 타고 등산을 하며 쌓아갔습니다. 틈틈이 가족들과 함께 여행도 다니고 외식도 했었지요. 매년 집집마다 돌아가며 하고 있는 크리스마스 파티는 각자 다른 동네에서 살고 있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웃사촌들과의 추억 중 압권은 단연 말레이시아 여행입니다. 네 가족 중 한 가족이 쿠알라룸푸르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고 우리는 매년 돌아가며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쿠알라룸푸르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한 가족은 말레이시아에 있었으니 세 가족이 말레이시아로 떠났지요. 거기서 함께 먹고 놀고 자며 행복한 추억 한 아름 담았습니다. 이웃사촌들과 함께 한 3박 5일간의 쿠알라룸푸르 여행은 저의 인생 최고의 여행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때 인생사진도 얻게 됐습니다. 현지 가이드 투어로 믈라카로 가서 어느 모스크 앞에서 아내와 연인 콘셉트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이 정말 예뻤습니다. 그래서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바꿨더니 지인들에게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딸이 찍어준 사진이라 더 의미 있는 사진입니다.

이웃사촌은 그냥 말만 이웃사촌이 아닙니다. 엄마 아빠들이 삼촌과 이모의 역할도 합니다. 한 번은 아들이 수족구병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출근을 해야 돼서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막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웃사촌이 구세주로 나타난 것이지요. 이웃사촌 엄마가 우리 아이를 돌봐줬습니다. 워낙 다정하고 아이들을 잘 챙기셔서 우리 아들도 유난히 '이모'라고 부르며 좋아했습니다. 그때 아이의 동네 이웃 이모가 아들을 돌봐준 덕으로 우린 정말 난감한 위기를 탈출했습니다. 서울에 친척이나 친구가 없었던 우리는 여러모로 이웃사촌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 놀 때는 서로가 보호자의 역할을 했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는 믿고 맡아줄 이모 삼촌이었습니다. 이웃사촌은 놀 때만 이웃사촌이 아닌 꼭 필요한 상황에서도 늘 이웃사촌입니다.


이웃사촌은 정말 이웃일 때라야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매일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는 가족은 말할 것도 있고 고양에 살고 있는 가족도 조금은 아쉽습니다. 다행히도 옆 동네에 살고 있는 이웃사촌과는 지금까지도 탄탄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달리기가 좋다고 추천해서 지금은 운동도 같이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각자 아들만 데리고 1박 2일 여행도 했습니다. 중미산 천문대에서 별도 보고 고기도 구워 먹으며 이웃사촌의 우정을 더 깊이 쌓았지요. 아빠들뿐만 아니라 두 아들들도 두 아빠들처럼 브로맨스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친형이 없는 아들에게 옆 동네 사는 이웃사촌 형은 늘 친형 같은 존재입니다. 며칠 전 아들에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번갈아가며 말하기를 했습니다. 그 질문 중에 하나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형은 누구냐?’였습니다. 저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이웃사촌 형의 이름을 대더군요.


몇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즈음 저는 비박 산행이 버킷리스트였고 이웃사촌 형과 함께 도봉산으로 비박 산행을 갔습니다. 산에서 별을 보며 남자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그리고 행복한 가족을 위한 여러 가지 생각을 공유하며 오랜 시간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살아가면서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비박 산행 버킷리스트를 이웃사촌과 하게 된 것이지요.

이웃사촌들과의 산행 추억은 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한 번은 새해 첫날 수락산으로 일출을 보러 갔습니다. 그때는 네 남자가 함께 산행을 했습니다. 마침 그날 함박눈이 내려 산을 오르는 내내 설산의 장관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발이 푹푹 빠지는 바람에 체력적인 소모가 컸던 날입니다. 우리 넷 중에 제일 연장자이고 지금은 말레이시아에 있는 형이 체력 고갈로 퍼졌습니다. 산을 내려와서 식사를 하는 중에 들어보니 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너무 힘들었던 것이지요. 그때 당시에는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힘든 기억도 즐거운 기억 못지않게 행복한 추억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웃사촌 형에게 그날의 추억이 그럴 것입니다.

이웃사촌들과 쌓은 멋진 추억과 행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우리가 살았던 아파트 여기저기, 강화도, 양평, 파주, 고양, 철원, 평창은 물론이고 멀리 말레이시아까지 추억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갔던 거리와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만큼 우리의 행복과 우정도 크고 깊습니다. 이 우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당연히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파티를 할 계획입니다. 작년에는 파주의 어느 아웃렛 인근에서 크리스마스 쇼핑이 있는 1박 2일 여행을 했는데 올해는 어디서 행복한 이웃사촌 크리스마스 파티를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아이들이 만들어준 이웃사촌의 행복은 우리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도 행복합니다. 네 가족의 아이들은 모두 여덟 명입니다. 아들이 둘이고 딸이 여섯이지요. 딸들 중에 우리 딸이 맏언니입니다. 그래서 딸은 5명의 이웃사촌 여동생이 생긴 것이지요. 아들은 둘밖에 없으니 더 돈독한 브로맨스를 쌓을 수밖에 없습니다. 두 아들은 친형제가 없으니 더 잘 지냅니다. 정말 형이 하나 생기고 동생이 하나 생긴 거나 마찬가지지요.

아이들은 어릴 때보다 요즘 더 잘 지냅니다. 예전에는 가끔씩이라도 다툼을 했는데 이제는 다툴 일도 없습니다. 작년에 파주 크리스마스 파티 때 세 가족 여섯 아이를 모았더니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논다고 우리 어른들은 밖에 나가서 놀다가 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밖에 나가서 여유를 즐기며 산책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왜 벌써 왔냐고 탄식을 했습니다. 정말 친구처럼, 형제자매처럼 잘 지내는 이웃사촌 아이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기쁘고 아이들에게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만들어준 정말 좋은 인연입니다. 저는 이 인연을 죽을 때까지 소중히 이어갈 것입니다. 세상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단연 최고인 이웃사촌이니까요.


이웃사촌을 만드는 쉬운 팁을 알려드릴까요?

주말에 청소와 빨래는 아빠가 하고 엄마를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보내면 됩니다. 엄마가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면 이웃사촌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아빠는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아무리 오래 있어도 이웃사촌을 만들지 못합니다. 놀이터에 아이와 함께 나오는 보호자가 엄마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아빠들은 내 아이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더 큰 이유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빠들은 내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아이가 노는 것을 지켜보다 그냥 집으로 돌아갑니다. 실제로 제가 여기저기 물어보고 주위를 둘러봐도 아빠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서 동네 이웃과 친해진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다릅니다. 엄마들은 내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또 그 아이의 엄마와도 인사하고 이야기하며 금방 친해집니다. 엄마의 힘일 수도 있고 아줌마의 힘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엄마들이 친해지면 아빠에게 이야기하고 가족이 함께 만납니다. 이웃사촌과의 우정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어떤가요? 공감이 되시나요?

아이가 어리다면 이번 주말부터 엄마가 놀이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아빠들이 집안일을 좀 책임지는 건 어떨까요? 그래서 이웃사촌을 만나 누릴 수 있는 많은 행복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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