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년 신혼여행지로 시간여행 떠나요
신혼여행은 누구에게나 최고의 여행이지요. 우리는 호주 시드니와 골드코스트로 5박 6일 동안 신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그전에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내도 신혼여행이 고작 두 번째 해외여행이었지요. 그러니 해외로 떠난 신혼여행이 얼마나 좋았겠어요?
지금도 시드니와 골드코스트를 떠올리면 설렙니다. 벌써 12년이 됐지만 우리는 1년에 몇 번은 호주를 강제 소환하여 신혼여행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호주에서 만난 커플, 지금은 ‘형서가족’이라고 부르는 한 가족 덕분입니다.
패키지 상품으로 간 신혼여행에서 5박 6일 중 초반 2박 3일은 우리 부부 단독 여행을 했고 후반 2박 3일은 지금은 '형서가족'이 된 그 커플과 함께 여행을 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기분 좋은 상태에서 함께 2박 3일을 여행하다 보니 제법 친해졌습니다. 그때 우리도 맞벌이를 했고 그 커플도 맞벌이를 하고 있어서 대화도 잘 통했습니다. 마침 그 커플이 우리보다 나이가 많아 저는 형이라 부르고 아내는 언니라고 부르며 편하게 지냈지요. 우리는 2박 3일 동안 같을 일정을 소화했고 돌아올 때도 같은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때 커플의 집은 서울역 앞이었고 우리는 대구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밴을 타고 서울역까지 이동했지요. 2박 3일 동안 제법 정이 들어 헤어질 땐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해서는 서로에게 말했습니다.
"아쉽다, 우리 꼭 다시 보자."
"당연하죠, 형과 형수 덕분에 정말 더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우리는 서로 한 번씩 포옹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다음에 꼭 보자는 인사를 했지만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진짜 다시 볼 수 있을까?'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아내가 막 임신했을 시점이었어요. 그때쯤 어느 주말 아내가 그 신혼여행 커플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언니, 잘 지내요?"
"어머, 보연아, 반갑다. 그동안 잘 지냈어?, 우린 지금 고향에 가고 있어. 뱃속 주니어와 함께^^"
"어머, 언니 축하해요, 사실 저도 임신했어요. 푸하하"
"어머, 보연아 축해해, 어쩜 이런 일이 있니? 신기하다 그치?"
그 신혼여행 커플도 그때 임신을 한 상태였지요.
아내에게 그 커플도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형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형, 축하해요. 신혼여행을 같이 갔다고 아이도 같이 생기나 봐요, 하하하."
"그러게, 정말 신기하다. 우리가 쭉 만날 인연인가 봐?"
"그러게요, 생일도 비슷하겠어요. 조만간 축하모임 한번 해요."
전화통화를 하고 몇 달 뒤 우리는 두 예비 엄마의 임신을 축하하며 첫 번째 만남을 했습니다. 그렇게 추억 속에 묻힌 뻔한 호주 신행 커플의 인연이 다시 살아있는 인연이 된 것이지요.
신혼여행 이후 우리는 부산 해운대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강제 소환했습니다. 시드니와 골드코스트의 이야기, 함께 와이너리에 가서 와인과 함께 식사를 했던 이야기, 호텔에서 함께 호주 맥주인 VB와 포엑스를 마시던 이야기를 했지요. VB와 포엑스를 마시면서 말이지요.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여행을 함께 했던 인연이다 보니 이야깃거리가 풍부했고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뱃속에 있었으니 아이와 함께 할 미래의 이야기도 많았으니까요.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만남은 정말 즐겁고 유익하게 마무리됐습니다.
그때 헤어질 때는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아니라 '다음 만남은 어디서 하지?'로 바뀌었습니다.
그 여행을 한 뒤에 아내와 형수는 수시로 연락을 하고 지냈고 저도 형과 자주 연락을 하게 됐습니다. 두 딸들은 엄마들의 뱃속에서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 우리 딸은 9월에, 형의 딸은 10월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즈음에 형은 회사를 옮겨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우리의 물리적 거리가 서울과 대구 사이에서 대구에서 부산 사이로 바뀐 거지요.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는 훨씬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부산과 대구를 오가며 우정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신혼여행의 추억과 첫째 아이가 동갑내기 딸이라는 인연에 우리의 우정은 더 깊어졌고 마치 가족처럼 서로의 집에서 편하게 하룻밤 머무는 사이가 됐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서울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우리는 서울로 이사를 했습니다. 다시 부산과 서울로 멀어진 것이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형은 다시 회사를 옮겨 용인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역시 계속 만날 인연이었던 것이죠. 우리는 그때부터 쭉 서울과 용인을 오가며 우정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우리 둘째가 태어났을 때 형네 가족은 축하 인사차 산후조리원에 방문했습니다. 그때 형수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보연아, 너 둘째 보니까 나도 둘째를 가졌으면 좋겠어, 부럽다, 정말."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요?
우리 아들이 5월생인데 형의 둘째는 정확히 10달 뒤인 다음 해 3월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아이를 보고 집중적으로 둘째 만들기에 돌입했던 것 아닐까요?
그래서 첫째는 딸로, 둘째는 아들로 두 가족 모두 4인 가족으로 완성됐습니다. 여러모로 우정이 더 두터워질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지요.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좋은 인연을 이어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성별이나 연령대가 달랐다면 지금처럼 자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만나기 어려운 관계가 되어 옛날 사진이 옷장 깊숙이 잠들듯이 우리 인연도 추억 속의 신혼여행 커플이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인연을 이어준 아이들이 더 고맙습니다.
우리는 1년에 세 번쯤 만납니다. 각자의 집에서 한 번씩 만나고 한 번은 여행을 갑니다. 만날 때마다 신혼여행을 강제 소환하여 2006년 6월로 시간 여행을 떠납니다. 우리의 대화 주제에는 항상 호주와 신혼여행이 있습니다. 다시 호주로 여행을 떠나는 계획도 세웁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 떠날 생각을 하지요. 그러니 만날 때마다 설레고 기분이 좋을 수밖에요. 신혼여행 이후로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시드니와 골드코스트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말이지요.
그때는 넷이 신혼여행을 했는데 지금은 넷이 더해져 여덟이 함께 하는 여행이 되겠지요. 아이들과 함께 오페라하우스에서 사진을 찍고 유람선을 타고 호주의 야경을 보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신혼여행 때 넷이서 사진 찍었던 곳에서 여덟이 사진을 찍고 스테이크에 와인을 먹었던 그 와이너리에 가서 바비큐 파티를 하면 좋겠습니다. 골드코스트 무비월드에 가서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 해변에서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는 광경을 떠올려봅니다. 상상만으로도 두근대는 여행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리마인드 신혼여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 여행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는 미지수지만 멀지 않은 날에 꼭 가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지금은 형이 된 그때 그 신혼여행 커플과 함께 말이지요.
우리는 경상도 부부고 그쪽은 전라도 부부입니다. 전라도 커플 덕에 저는 좋아하는 음식이 하나 생겼습니다. 형이 부산에 살 때 그 집으로 놀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형수가 준비한 음식 중에 홍어삼합이 있었습니다. 형이 음식을 들고 나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제 장모님이 보낸 거야."
저는 그때까지 홍어를 잘 못 먹었습니다. 그날 이전에 한번 먹은 게 다였지요. 홍어를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독특한 향에 선뜻 접근하기가 쉽지 않고 한 번으로 맛을 느끼기에도 쉽지 않은 음식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제가 처음 홍어를 먹었을 때는 몇 점 먹고는 함께 먹던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홍어는 쉽지 않네요."
그런 경험이 있는 제가 그날 두 번째로 홍어를 만났습니다. 일부러 준비한 홍어를 못 먹는다고 할 수 없었지요. 그런데 비주얼은 최고였습니다. 형수의 맛깔스러운 데코레이션 덕에 일단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희한했습니다. 제가 홍어를 그때 두 번째로 먹었는데 처음 먹었던 기억과는 완전히 다르게 정말 맛있었던 거지요.
"와, 정말 맛있네요. 홍어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인 줄 몰랐어요."
그날 준비된 홍어는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와 함께 제가 다 먹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홍어의 맛에 빠졌고 그때 이후로 홍어삼합은 꾸준히 찾아서 먹는 음식이 됐습니다. 신혼여행과 아이들 덕분에 이어진 인연이 준 큰 선물이었지요.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사람을 만나 평생 맛있게 먹을 음식을 알게 됐으니 이것만으로도 저는 형 가족에게 덕을 단단히 본 사람입니다.
두 가족은 한해 세 번쯤은 꾸준히 만나다 보니 웬만한 친구보다 훨씬 친해졌습니다. 서로의 집을 왕래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서로 축하하는 사이가 됐으니까요. 어른이 되어보니 예전에 저 혼자 친하게 지냈던 친구보다 아내와 아이들도 소통이 되는 사람과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 만남이 더 편하고 좋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관계는 여러 조건이 완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아이들도 아주 사이가 좋습니다. 첫째 딸들은 둘 다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고 둘째 딸들은 초등학교 1학년, 예비 초등학생이다 보니 두 가족이 함께 모이면 자연스럽게 어른은 어른들끼리 두 딸과 두 아들은 각자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놉니다. 두 딸들은 벌써 잠도 자기들끼리 잡니다. 친구랑 파자마 파티를 하는 거지요. 아직 둘째들은 어려 엄마 아빠와 함께 자지만 내년만 되어도 자기들끼리 잔다고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희한하게 싸우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손댈 일이 없는 아이들이지요. 우리가 유일하게 할 일은 먹을 것을 주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행 커플이 참 좋고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습니다.
형네 부부도 우리와 마찬가지 생각이었는지 한 번은 형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땅콩 집을 지어 함께 사는 게 어떤지 물어봤습니다. 저는 그 당시만 해도 땅콩집(하나의 땅에 두 개의 단독주택) 자체를 몰랐습니다.
"땅콩집이 뭐예요?"
건설회사에 다녔던 형이 상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땅콩 집에 살자는 건 한 마디로 같이 살자는 의미였습니다. 딸들은 친구고 아들들도 한 살 터울이니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다고 했지요.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도 좋고 우리도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돈과 회사였습니다. 형이 이야기한 용인에 땅을 살 돈도 마련하기 쉽지 않았고 용인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출퇴근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거 같은데 현실이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지금은 돈과 회사가 필요하지만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면 돈과 직장에서 자유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년만년 회사를 다닐 것도 아니고 집값이 비싼 서울에 꼭 살아야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나이가 들면 무엇보다 함께 놀 친구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살아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두 가족은 우리가 이사 가는 두 달 뒤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형 가족이 집들이 겸 우리 집에 오기로 했습니다. 그때 다시 한번 땅콩 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습니다. 그리고 포엑스나 VB 맥주를 준비해서 다시 2006년 신혼여행 시절을 강제 소환할 생각입니다.
나이가 들어 은퇴하면 더 자주 보게 되겠지요. 우리가 사는 집에서, 형네 가족이 사는 집에서 한 번씩 돌아가면서 나들이하는 재미도 있을 테고요. 아직은 10년이나 20년 뒤의 일입니다. 그런데요, 시간은 정말 빨리 흐르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 그날이 훌쩍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형 말대로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 있는 땅콩 집에서 벤치에 앉아 신혼여행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호주 맥주를 마시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