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기운에 눈을 떴다. 내 손을 꼭 잡은 아내와 곁에 선 아이들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그제야 내가 어느 요양원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곧 먼지가 되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을 껌뻑이며 가족들을 차례차례 바라보았다. 지난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찾아왔다. 나는 늘 바삐 움직였고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내일을 향해 끊임없이 달렸다. 문득,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하얗게 쉰 머리카락, 쭈글쭈글해진 피부, 얼굴에 핀 검버섯은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지만, 지금 이 순간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는다.
꺼이꺼이 한참을 울고 나서야 호흡이 잦아들었다. 내가 괜찮아졌을 때 아내와 아이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나는 다시 목메었다. 그 와중에도 째깍째깍 시계 소리는 조금씩 소리를 높였다.
다시 삶이 주어진다면 하루하루 찾아오는 오늘을 기쁘게 누릴 텐데...
한 평생 함께 했던 아내가 고맙고 미안했다. 없는 힘을 짜내 아내의 손을 잡았다. 흐르는 눈물 아래에서 아내의 입술이 떨렸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웃으려 했지만 생각대로 안 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다가와 내 얼굴을 만지는 순간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었다. 마치 목에 사래가 든 것처럼.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멀어졌다. 그 순간 눈에 새겨진 것은 수많은 영광스러운 장면이 아닌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활짝 웃던 어느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