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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Jan 21. 2021

달리기에도 정답 없다.

항상성의 법칙과 할 만큼의 법칙


"아빠, 나는 왜 밤에는 자기 싫고 아침에는 계속 자고 싶을까?" 아들이 물었다. 순간, 내 머리는 물레방아 굴러가듯 돌아갔다. 곧 적당한 이유가 떠올랐다. "그건 말이야, 사람은 하던 걸 계속하고 싶기 때문이야. 밤에는 안 자고 있으니 자기 싫고 아침에는 자고 있었으니 자고 싶은 거지."

항상성의 법칙으로 설명한 나의 그럴듯한 대답에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은 곧 자기 할 일을 했고 나는 적당한 이유를 떠올린 내가 기특해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아들은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30년 촌놈으로 살아온 나보다 사투리를 더 잘한다. 학교에 가지 않은 까닭이다. 매일 듣는 아빠의 사투리에 자기 계발까지 더하더니 청출어람이 됐다.

사투리 쓰는 아들이 귀엽지만 계속 쓰는 건 별로다. 가능하면 아들과 대화를 할 때는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서울 말을 쓴다.

그런 내가 어색했을 것이다. 아내가 곁에서 웃겨 죽겠다고 킥킥댄다. 그럴 때마다 나의 반응은 한결같다. "고마 웃어라. 쫌"


겨울 달리기는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밖에 나가면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싸다구를 때릴 거라는 걸 아는 까닭이다. 그래도 나가는 사람은 나간다. 전신에 조금씩 흩어져 있는 의지를 모아 모아서 일어나고 꾸역꾸역 옷을 입는다.

추울수록 옷을 하나씩 더 껴입는다. 온도가 0에서 아래로 멀어질수록 몸은 더 미라가 되어 눈만 빼고 온몸을 똘똘 싸맨다.

항상성의 법칙을 깨는 스스로 기특해하며 나가지만 찬 바람을 맞으면 여지없이 몸이 움츠러든다. 프라이팬에 올려진 생선이 조르라 들듯이 말이다.


겨울 달리기는 문밖을 나가기가 제일 힘들다. 그때까지 항상성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단 밖으로 나가면 좀 수월해지지만 몸이 풀리기까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추울수록 필요한 시간은 늘어난다. 그만큼 겨울 달리기 어렵지만, 결국 겨울도 달리기에 굴복한다. 일단 2km 10분쯤 달리면 승부의 추가 기운다. 다리를 규칙적으로 조금 더 움직이면 마침내 겨울은 말한다. '네가 이겼다.'


그때부터는 계속 달리고 싶다. 항상성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5km, 7km, 9km, 10km가 지나면 희한하게 그만 달리고 싶어 진다. 아들에게 말한 항상성의 법칙에 금이 가는 순간이다. 항상성의 법칙에 따르면 10km가 지나도 계속 달리고 싶어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으니까 말이다.


문득 또 하나의 법칙이 떠오른다. 할 만큼의 법칙이다. 할 만큼 달린 것이다. 아들에게 다시 설명해 줘야 할까 하는 생각이 찾아온다. "계속 자고 싶은 건 자고 싶은 만큼 자지 않았기 때문이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세상 모든 부모와 마찬가지로 나는 아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내 아들인 까닭이다. 남의 아들이면 잠을 자던 자지 않던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세상 모든 부모가 자식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 모든 아이들은 좀 더 늦게까지 꿈속에 있고 싶어 하니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다'라는 믿음이 내 혈관을 타고 전신을 돌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의 경험과 내가 받은 교육이 만든 결과다. 이런 믿음은 '일찍 일어나는 벌레가 일찍 잡혀 먹힌다'라는 생존의 법칙을 외면한다. 역시 사람은 보고 싶고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항상성의 법칙과 할 만큼의 법칙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항상성의 법칙이 때로는 할 만큼의 법칙이 작용한다. 이 두 법칙을 좀 더 넓게 보면 세상에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때로는 항상성의 법칙을 따르고 때로는 깨야 한다. 때로는 할 만큼의 법칙을 따르고 때로는 할 만큼의 법칙을 깨야 한다.


겨울 달리기를 하기 위해선 항상성의 법칙을 깨야 한다. 좀 더 편한 달리기와 건강한 달리기를 위해선 할 만큼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좀 더 강하고 나를 넘어서는 달리기를 위해선 다시 할 만큼의 법칙을 깨야 한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달리기도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주의해야 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경험이 짧다.


달리기도 인생처럼 정답이 없다.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자신에게 딱 맞는 걸 스스로 조금씩 찾아야 한다. 99명이 맞다고 해도 나는 그들과 다른 유일한 사람일 수 있는 까닭이다.


고수는 항상성의 법칙과 할 만큼의 법칙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법칙을 알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사람이 진짜 고수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렇게 되기는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42.195km 풀코스를 3시간 안에 뛰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래도 고수가 되는 길로 꾹꾹 한 발자국씩 옮긴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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