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막시 Feb 03. 2021

달리는 시각 장애인 @남산 달리기

편견


눈 내리는 남산 둘레길을 달리다 나란히 달리는 두 사람을 만났다. 둘 사이의 간격은 1m가량 됐는데 딱 그만큼 길이의 끈이 서로를 이어주고 있었다. 문득 요즘은 못 만나지만, 코로나가 없던 시절에는 1년에 서너 번씩 만나던 동호회 형님이 생각났다. 미소가 순박한 그는 옛날에 태어났으면 장군 아니었으면 마님 여럿을 밤잠 설치게 했을 게 분명한 사람이다. 역사 속 인물로 치면 임꺽정이요 영화배우로 치면 실베스터 스탤론이다.


달리기 경력 3년 차쯤 되던 어느 날이었다. 나와 나란히 달리던 그가 본인이 소속된 또 다른 마라톤 클럽 <해피레그>에 대해 이야기했다.  해피레그에서 시각 장애인과 함께 달렸다고 했다.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마님만 홀릴 거라 여겼던 그에게 나도 홀렸다. 혼자 뛰기도 벅찬 마라톤 풀코스를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함께 달렸던 이야기에 내 눈은 마치 세상에 없던 미인을 보는 양 토끼 눈이 됐고 나의 눈길은 그의 얼굴을 샅샅이 어루만졌다. 그의 거친 살결과 우락부락한 근육과 달리 그의 마음에는 뜨겁고 보드라운 피가 흐르는 것이 분명했다.


주말을 맞아 남산을 달리기 코스로 정한 이유는 남산이 눈 호강을 하며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보다 달리기 경력이 짧은 두 친구에게 남산의 매력을 속속들이 알려주고 싶었다. 남산타워에 오르는 동안 심장은 힘들다고 아우성치지만 눈은 좋다고 춤춘다. 나는 심장에게는 튼튼해지는 거라고 다독이고 눈에게는 충분히 누리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정상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인생이 아니다. 계획대로 됐다면 나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그대도 그런 생각이 들 수는 있겠으나, 부모님께 묻지는 마라. 차가운 손이 그대의 싸다구를 강타할 수도 있으니까.


계획대로 됐다면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여자와 한 방에서 자고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아이들과 삼시 세끼를 먹을 것이다. 그래서 계획대로 안 된다고 시들시들한 상추가 될 이유는 없다. 사람은 밭에서 갓 딴 상추처럼 싱싱해야 우선은 내가 좋고 그다음은 내 주위 사람이 좋다.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가족이거나 친구다.


명동역에서 남산으로 뛴지 고작 10미터도 되지 않았을 때 한 친구는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친구는 미국에서 부산 사투리를 배워 돌아왔다. 캘리포니아 사투리가 부산 사투리보다 더 사골국이라  친구가 말을 할 때마다 웃음을 참느라 곤혹스럽다. 밥을 먹을 땐 친구에게 말하지 말라고 꼭 일러둔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에 잘게 잘게 부서진 음식 폭탄이 터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면서.


출처 : 관광공사 한국관관광 100선

걷던 친구가 남산에 도착하자마자 말했다. "둘레길을 걷고 있을 테니 둘이서 달려."

친구를 혼자 두기가 아쉬워 발걸음이 주춤했으나, 함께 걷는 것이 정답은 아닐 수 있겠다 싶었다. "혹시 중간에 만나지 못하면 9시에 케이블카 앞에서 보자."

그러고는 다른 친구와 둘이서 나란히 천천히 달렸다. 2km쯤 달렸을까? 몸이 막 풀린다 싶었을 때 또 다른 친구가 무릎이 시큰거린다며 스트레칭을 했다. "먼저 가, 곧 따라갈게."


계획에 있던 남산타워는 머리 위에서 풍선이 터지듯 사라졌다. 사라진 남산타워는 멋진 서울 야경과 사진도 함께 데려갔다. 그때부터 나는 두 친구가 걷는 페이스에 맞춰 뺑뺑이 달리기를 했다.

마침 함박눈이 내렸다. 생각지도 못한 눈이지만, 나의 수준은 대충 어린아이 또는 개와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길은 하얗게 변했고 남산은 낭만으로 둘러싸였다. 눈 내리는 남산 둘레길을 달리며 내 모습은 마치 혀를 늘어뜨리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어린 시절 우리 집 누렁이의 모습이었다.  


뺑뺑이를 돌다 서로의 손을 사랑의 끈으로 이은 두 러너를 다시 만났다. 뒤에서 달리는 시각 장애인은 달리기가 꽤 익숙한지 힘든 기색이라곤 시골 아이 손톱의 때만큼도 없었다. 이미 꽤 오래 달린 러너가 분명했다.


달리기 대회에 나가면 달리는 시각장애인이 꼭 있다. 나는 10년 이상 달리며 달리기 대회에 나간 횟수만큼 그들에게 익숙해졌지만 처음 그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놀라웠다. 달리는 시각 장애인이 있다니? 달리고 싶어 하는 시각 장애인이 있다니? 장애인을 대하는 나는 늘 그런 식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장애인은 늘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장애인인 내가 그런 생각을 했으니 가족 중에 장애인이 없는 일반인들이야 오죽할까 싶었다.


장애인도 남이 좋아하는 건 좋아하고 남이 싫어하는 건 싫어한다. 보통 사람의 비율만큼 달리기를 좋아할 것이고 보통 사람의 비율만큼 추운 겨울을 싫어할 것이다. 오늘 남산에서 만난 시각장애인도 달리며 기분이 좋아졌을 것이고 차가운 겨울을 달려낸 데 대한 뿌듯함은 나와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똑같이 보지 못했을까? 잠시 생각하면 물속 고래가 모습을 드러내듯 대답도 떠오른다. 아마도 세상 사람들의 시선으로 그들을 봐서일 것이다. 엄마를 바라본 세상 사람들의 시선으로 나 또한 장애인을 바라봤을 것이다. 사람은 얼마나 마음을 씻고 또 씻어야 장애인은 딱 한 곳이 불편할 뿐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될까?


달리기를 하면 시도 때도 없이 막걸리가 머리 위에 떠다니는데 이 날은 브런치 스타일로 식사를 했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명동에 내리는 눈을 보니 20여 년 전 연애하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뜻밖에 내린 눈과 남산, 그리고 명동이라는 공간이 나를 순식간에 20여 년 전으로 데려갔다. 그때도 이토록 이른 아침이었고 눈이 내렸다.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 친구와 함께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진정시켰다.  


갈 때도 순식간이더니 올 때도 순식간이었다. 커피로 가득 찬 머그잔이 바닥을 드러냈을 즈음 나는 현실로 돌아와 다시 아내 곁으로 가고 있었다. 20여 년 전 이른 새벽 나를 일으킨 아내는 장애인인 나의 엄마를 엄마라고 부른다. 참 다행이다. 그녀의 눈에는 아직 또는 여전히 편견이 자리 잡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리기에도 정답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