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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Feb 10. 2021

마흔 넘어 찾은 우정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같은 친구


"인간은 엄마의 자궁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외로운 존재래"

"누가 그래?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어째서 사람은 끊임없이 사랑과 우정을 갈구할까? 한번 생각해 봐. 어릴 때는 엄마의 사랑, 청소년 때는 친구의 우정, 성인이 되면 다시 연인의 사랑, 그 이후엔 다시 자식의 사랑, 아이를 키운 후에는 무엇이든. 사람은 끊임없이 사랑과 우정을 갈구하잖아. 태어난 그 순간부터 말이야. 너는 아니니?"


언젠가 친구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특별한 답을 하지 않았고 친구의 질문은 시간이 흘러도 아리송했다.  나는 늘 외롭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가 항상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근원적인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이나 우정을 끊임없이 갈구했고, 그래서 항상 주위에 가족이나 친구가 있었던 건 아니냐는,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논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얼굴에 주름이 하나씩 생기며 사랑과 우정이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했다. 나를 지극히도 아끼던 외할머니와 할머니, 연민으로 가득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대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새로 생겼다. 십여 년 전 서울에 오면서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는 조금씩 멀어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도 멀어진다'라는 격언은 사랑에만 해당되지 않았다. 멀리 있는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니 그들이 여전히 친구인가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고향 친구는 최고'라는 착각에 허우적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돌이켜 보면 마흔셋이 되기 전에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태어난 동네, 다녔던 학교, 들어온 회사에는 늘 친구 같은 사람이 있었다. 시간은 친구와의 관계를 가깝게도 멀게도 했다. 한때는 둘도 없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연락조차 하지 않는 친구도 있다. 연인과의 사랑처럼 우정도 시간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관심이 제일 중요했다.


내가 마흔이 되는 동안 세상은 바뀌었다. 어린 시절 상상도 하지 못한 SNS가 등장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만 친구가 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내 손안에 있다. 나와 같은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사진과 글을 보며 동질감을 느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마음에 자리 잡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아직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지 못한 건 아닐까?


반년 전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달리기를 하는 누군가의 이름에 눈이 고정됐다. 아이디의 젤 뒤 숫자가 내가 태어난 생년과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친근해 보였다. 어딘가에 달리기를 하는 동갑내기 친구들의 모임이 있지 않을까? 온라인 커뮤니티를 검색하다 네이버 밴드에서 달리는 동갑내기 모임을 찾았다. 가입을 했더니 나를 환영하는 댓글이 줄줄이 기차가 됐다. 만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하는 반말이 낯설었지만, 동갑이니까 금방 이해되며 적응됐다.


그렇게 알게 된 친구들과 가끔 만나 달리며 친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의 달리기와 일상을 응원하고 공유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도 깊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를 함께 하고 달리기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가 확장될 땐 웃음과 공감, 그리고 기대가 우리 앞뒤를 맴돈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대화엔 웃음이, 직장이나 아이와의 이야기엔 공감이, 내일에 대한 이야기엔 기대가 양념처럼 따라다닌다.


한 친구가 등산을 제안했다. 그러지 않아도 설산의 풍경과 겨울산의 상고대를 누리고 싶었다. 작년 이맘때 제주도 1100 고지에서 만난 상고대가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고민하지 않고 가기로 했다. 새벽 세시 반에 일어나 준비하고 네시 반에 월악산으로 출발했다. 7시에 만난 친구는 반가운 미소로 나를 맞았다. 상고대를 보려면 서둘러 올라야 한다며 앞장서 길을 재촉했다.


월악산 주봉의 이름은 영봉이라고 했다.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가 떠올랐고, 웃음이 나며 고개를 갸웃했다. 멋진 이름은 어디다  놔두고 영수와 철수처럼 흔한 영봉이 됐을까? 잠시 머물던 궁금증은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오르며 사라졌다. 천천히 오르는 덕에 헐떡이지는 않았지만 월악산 이름에 왜 '악'이 들어갔는지는 충분히 이해됐다. 악산이라고는 처음인 사람들이 이곳을 걸을 때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올 '악 악 악 악 악'이 귀에 들리는 듯했다.  


며칠 전 지난 두 달간 달린 산티아고 둘레길 가상 완주 메달이 도착했다. 월악산을 걸으며 잠시 마음을 산티아고로 보냈다. 눈은 월악산을 보고 있지만, 마음은 산티아고를 걷고 있었다. 종교인은 아니지만 언젠가 한 번은 걷고 싶은 길이다.


혼자 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깨를 두드리거나 함께 웃을 사람과 함께 갈 것이다. 혼자 느끼면 보는 게 다지만 둘이 가면 함께 감탄하고 이야기를 나누니 기쁨도 두 배 기운도 두 배가 될 테고, 외로울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간혹 혼자 있을 때가 훨씬 좋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외로움이라는 DNA가 애초에 없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분명하다.


산은 오를수록 멋진 풍경을 안겼다. 신령스러운 바람이 부는 순간 상고대가 펼쳐졌다. 다들 이걸 보러 겨울산을 찾는구나 싶었다. 내가 연신 '와~'를 찾는 동안에도 직진밖에 모르는 친구는 끊임없이 앞을 향했다. 전생에 시간당 5km를 행군했던 로마군이었음이 분명하다. 잠시 불러 풍경 사진과 인물사진을 번갈아가며 찍으며 월악산의 절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고스톱을 칠 때는 스톱도 해야 하고 등산을 할 때는 멈춤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판과 다음 풍경이 이어지니까.


영봉에 도착했다. 영봉에 오르는 계단은 수직처럼 가팔랐고 계단 옆에 깎아지른 절벽을 볼 때마다 악 소리가 났다. 산 아래는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상에는 신령이 살 것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제야 천왕봉처럼 멋진 이름 대신 영봉이란 이름이 됐는지 알게 됐다. 다리는 신령이 나타난 것처럼 후들거렸다.


영봉에 오르자 감격 대신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때렸다. 특히 싸다구를 세차게 후려쳤다. 서둘러 자리 잡고 컵라면을 꺼냈다. 보온병에 담아온 물을 부었다. 왠지 뜨겁지 않은 느낌이었다.

"물이 좀 식은 거 같아."

"보온병은 좋은 걸 써야지. 새로 하나 사라" 친구가 승리자의 웃음을 지었다.

친구가 가져온 보온병은 번쩍번쩍 광이 났다. 반면 내 보온병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여기저기 멍이 들고 중간에는 주름도 하나 있었다.


잠시 기다렸다 라면을 저었다. 물이 차가운 건 착각이었다. 반면 친구의 보온통에서 나온 라면은 과자처럼 뻣뻣했다. 멍이 들고 주름도 잡힌 내 보온통이 이겼다. 나는 킥킥대며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었다. 친구가 "라면이 왜 이렇지?"라고 말했을 때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다가 라면이 목구멍 대신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기침이 튀어나왔다.


추울수록 바람이 싸다구를 때릴수록 맛있다는 라면의 참맛을 느꼈다. 월악산 영봉의 풍경은 스위스 융프라우와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누군가 융프라우에서 먹은 신라면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융프라우라고는 가본 적 없는 내가 융프라우를 떠올리며 먹은 라면도 잊지 못할 것이다. 콧구멍까지 맛본 라면 맛을 어찌 잊겠는가?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 살 날이 더 많이 남았다. 백 살까지 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과학과 의학의 발전 속도를 보니 백 살보다 더 살 것 같다. 오늘 새로 만나는 친구와 우정을 쌓아도 이전에 만난 어떤 친구와 쌓은 우정보다 높아질 것이다. 더군다나 나와 같은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 빨리 더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내게 꼭 맞는 친구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이 마흔이 너머 새로운 애인을 찾아다닌다면 미친놈 소리를 듣겠지만 새로운 우정을 찾는다면 누가 욕하겠는가?


친구가 꼭 여럿일 이유는 없다. 나와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괜찮다. 우리는 애인이 한 명이라도 잘 살지 않는가? 내가 외롭지 않게 사는데 꼭 필요한 친구라면 내 근처에 있는 사람이 아닌 나와 꼭 맞는 친구를 찾아 떠나보자. 멀리 떠날 필요는 전혀 없다. 어마어마한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검색 몇 번에 클릭 몇 번이면 충분하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 옛날 친구 아쉬워 말자. 우리는 과거를 사는 사람이 아니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갈 사람이다.      


덧붙이며...

보덕암에서 영봉까지는 4km, 영봉에서 덕주사까지는 5km입니다. 9km의 등산로지요. 등산을 오른 사람이라면 6시간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봄여름 가을에는 충주호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겨울에는 설산과 상고대의 절경을 누릴 것입니다. 멋진 풍경과 인생 사진을 원하는 그대에게 월악산을 권합니다. 친구 또는 애인과 함께 가면 좋겠지요? 애인이 딴 그녀 또는 딴 그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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