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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Jan 31. 2021

초등학생은 가방을 메고 러너는 러닝화를 신는다

어설픈 환경주의자가 되자.


어린아이가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면 부모들은 어떤 가방을 살지를 고민한다. 좋은 가방과 공부를 잘하는 학생 사이에는 과학적 상관관계가 곰이 인간이 되는 확률만큼 없지만,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은 하해와 같아  무엇이든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 한다. 옛날 보릿고개 시절에는 가방 살 돈이 없어 밤 잠을 설치며 한숨을 짓던 부모도 많았지만 지금은 시절이 좋아 그런 부모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입학을 앞둔 아이가 춤을 추듯 마음에 쏙 드는 가방을 산 부모의 얼굴에도 미소가 일렁인다.


식구가 많은 집에는 아이의 가방을 명분으로 많은 돈이 모인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돈이 많이 모이면 살림에도 도움이 되고 아이의 가방도 덩달아 좋아질 텐데, 세상은 그렇지 않다.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가방을 명분으로 건네는 돈의 단위가 커진다. 그건 사람에 따라 돈을 달리 대하는 인간의 법칙이다.


아이는 엄마의 마음에 드는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뒤뚱뒤뚱 학교에 간다. 노란 병아리처럼 귀여운 아이의 손을 잡은 부모는 사진을 찍느라 두 손이 모자를 지경이다. 학교에 앉아 선생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기특하고 대견한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겹치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뒤뚱뒤뚱하던 아이는 꽃이 피는 봄을 지나며 더 이상 뒤뚱거리지 않는다. 큰 가방에도 제법 익숙해진 까닭이다. 햇볕이 내리쬐는 긴 낮과 매미가 우는 짧은 밤을 보내고 시원한 바람을 맞고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조금씩 자란다. 추운 겨울을 맞아 옷깃을 여미더니 어느새 다시 개구리 소리에 귀 기울인다. 드디어 아이는 언제 뒤뚱하던 시절이 있었냐며 당당히 한 발짝 내딛는다. 그리고 어느 날 엄마에게 당당히 요구한다. "엄마 나 가방 바꾸고 싶어."


어린 시절 이유 없이 뛰어놀던 아이는 조금씩 자라며 달리기와 멀어진다. 그리고 어느 날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주위에서 달리기를 추천하면 달리기를 해 볼까 하는 마음을 갖는다. 초등학교 입학할 땐 엄마가 알아서 가방을 사줬는데, 성인이 되어 달리기를 할 땐 엄마가 러닝화를 사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라면서 자기도 모르는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게 분명하다. 엄마가 초등학교 첫 가방을 사주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는다. 어린 시절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땐 신던 신발을 신고 달렸다는 사실도 잊는다. 어떤 것은 희한하고 어떤 것은 안타깝다.


갓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일깨워주고 싶다. 어린 시절 신었던 신발은 어쩌면 검정 고무신, 어쩌면 슬리퍼였을 수도 있다. 이제 갓 달려볼까 마음먹은 사람에게는 발에 들어가기만 하면 어떤 운동화든 괜찮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어떤 가방도 문제없듯 이제 갓 달리는 사람에게 운동화는 그다지 문제 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하고 달리기를 잘하기 위해선 나가서 달려야 한다. 지금 당장 신발장 문을 열어보자. 운동화 한 켤레는 있을 것이다. 그것을 신고 나가자.


시커먼 운동화는 때를 타지 않는다.

러닝화부터 먼저 찾지 말고 본인과 달리기부터 알자. 아이가 엄마에게 가방을 바꿔 달라고 할 때는 가방이 불편하거나 자신의 취향이 생기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갓 시작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몇 번 달리다 보면 조금씩 불편하거나 주위에 달리는 사람의 운동화를 보고 갖고 싶은 것이 생길 것이다. 그때 새로 하나 구입하면 된다. 두 번째 러닝화를 살 생각을 할 때쯤 당신은 이미 러닝화를 좀 아는 사람이다. 본인의 달리기 수준과 취향, 그리고 달리는 목적도 알게 될 것이다.


옷은 대충 입어도 아무 문제없는데 러닝화는 가끔 대충 입으면 문제가 생긴다. 발이 사람 생김새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내 엉덩이가 짝궁둥이라는 소리를 들어봤지만 매일 보는 내 발이 짝발인지는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됐다. 이것도 수십 켤레의 러닝화를 신어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은 처음 러닝화를 살 때 본인의 발을 제대로 알아보지만 그렇지 않은 보통 사람은 많은 경험을 하며 알게 된다.


무식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런 말은 이제 화석이 되어야 한다. 몸은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하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체득한다. 또한 조금 빨리 알고 늦게 알고는 긴 인생을 봤을 때 별 차이가 없고 결국 알게 된다는 사실에선 동일하다.  


새 운동화를 신으면 기분이 좋다. 먼지라도 묻을까 조심스럽다. 그러다 날이 쌓일수록 먼지도 쌓인다. 그러면 조금씩 마음이 무뎌지다가 한가한 어느 날 운동화 빤다. 먼지를 털어버리거나 물수건으로 닦아버리면 되는데도 굳이 빤다. 사람에게는 청결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운동화를 신고 온 천지를 다 누볐다. 신발은 금방 더러워졌다. 때론 소와 개의 똥도 묻었다. 자주 빨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성인이 되어 달리기를 하면 러닝화가 더러워질 일이 거의 없다. 10km를 달려도 먼지가 묻어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흔적도 남지 않는다. 다행이다.


신발은 굳이 빨아달라고 말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빤다. 이제 빨 때가 됐다 하며 신발 끈을 푼다. 손으로 빨기 싫으니까 망에 넣어 세탁기에 돌려버린다. 간혹 뜨거운 물에 빨아 신발이 쪼그라드는 불상사도 생긴다. 갑자기 줄어든 신발에 난감해하며 한참을 고민하다 아내에게 묻는다. "세탁기에 돌린 운동화가 줄었어."

한심한 표정을 애써 감춘 아내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원래 뜨거운 물에 빨면 줄어"

속으로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이고 속 터져, 내가 미쳐, 누구를 탓해, 저런 화상이 될 줄 모르고 좋다고 웃은 내가 잘못이지...'


운동화를 직접 빨기도 아내에게 한 소리 듣기도 싫은 그대에게 비장의 무기가 있다.

환경주의자!

어느 날 나는 <파타고니아-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라는 책을 읽었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경영철학을 알고자 읽었으나, 경영자도 철학자도 되지 못했다. 대신 어설픈 초보 환경 주의자가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굳이 빨지 않아도 되는 신발을 세제를 듬뿍 넣어 빨았다. 손빨래가 싫어 세탁기에 돌렸더니 간혹 여기저기 실밥이 터지거나 줄어들기도 했다.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몇 번 신지도 않은 러닝화를 버렸다. 그러면서도 자원을 낭비하고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신발을 만드는 데는 탄소가 발생하고 내가 버린 운동화는 쓰레기가 된다. 내가 쓴 세제는 어느 곳으로 흘러가 탄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치거나 때로는 덜 정화되어 물고기와 동물의 입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에이, 어떻게 더러운 러닝화를 신고 달려?"라는 질문이 마음속에 불쑥 찾아온다면 "나는 환경을 생각하는 러너야"라는 대답을 하자. 러닝화를 빠는 횟수만큼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별로 더러워지지 않는 러닝화 그냥 신어도 괜찮다. 더러운 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먼지 따위는 티도 안 나는 짙은 색 운동화를 사라. 당신은 환경을 사랑하는 환경주의자니까.


아, 깜빡할 뻔했다. 남들은 달리는 당신의 운동화에 별 관심이 없다. 번쩍번쩍하는 최신형 러닝화라면 모를까, 그것도 유효기간은 한 번뿐이다. 안타까운 건 당신이 새 러닝화를 신는 첫날 만나는 사람이 당신의 신발에 관심을 가질 확률도 매우 낮다. 당신이 제일 잘 안다. 당신은 누군가의 러닝화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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