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막시 Feb 23. 2021

나는 인세 한 푼 못 받은 작가다.

출판사의 불편한 진실

누군가 나를 작가라고 부르면 여전히 어색하다. 첫 책을 출간한 지 1년 반이 지나 익숙해지기 마련인데도 여전히 낯설다. 온전한 작가가 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인세를 받지 못한 것도 중요한 이유다. 꼭 인세를 받아야 작가가 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정성 들여 쓴 글이 책으로 출간됐으면 계약서에 따라 인세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나는 아직 첫 책에 대한 인세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인세 없는 무료 계약을 한 건 아니다. 표준계약서에 따라 계약을 했다. 그런데 왜 못 받았을까? 출판사가 말로 한 약속과 계약서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나도 소송이나 기타 등등의 강경한 대응을 하지 않은 탓이다. 선인세라도 받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첫 책이 나온다는 기쁨이 너무 커 인세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소송을 하지 않은 이유는 고작 1백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받으려고 누군가와 다투고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상하는 상황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돈을 받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다. 줄 때까지 독촉할 것이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전화와 문자를 해서 언제 줄 거냐고 다그친다. 손님이 드나드는 서점이라면 죽치고 않아 왜 약속을 안 지키고 인세를 안주냐고 시끄럽게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출판사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다.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삐딱선을 타면 언제나 더 강경하게 나갈 수 있다. 

출판사 대표는 겉으로는 미안하다 꼭 주겠다고 한다. 물론 나는 믿지 않는다. 돈은 입금이 되어야 믿어지는 존재다.


내가 그 출판사를 선택했으니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 책임이다. 100% 내 책임, 그리고 출판사 책임. 


그런데,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상황을 겪는 작가가 많았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이유는 작가들이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밝히기 어려운 이유는 쪽팔리기 때문이고. 나도 지인들이 인세는 얼마 받았냐고 물으면 말을 흐렸다. 한 푼도 받지 못했는데 자꾸 물어서 난감했다. 부끄러웠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그냥 솔직히 털어놓았다. 한 푼도 못 받았다. 출판사가 돈을 안 준다,라고 말했다.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형 출판사라고 약속을 잘 지키고 인세를 꼬박꼬박 줄지는 의문이다. 많이 팔리는 책을 쓴 작가에게는 인세를 잘 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작가에게는 어떨지 궁금하다. 아마도 잘 주지 않을 것이다. 대형 출판사가 약속을 잘 지키는 출판사라는 등식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그만큼 커진 이유는 약속을 잘 지켰기 때문이리라,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은 크다.


대부분의 작가는 을로 시작한다.  계약금(선인세)을 받아야 정상이지만, 첫 출간을 하는 대부분의 작가는 출간도 감지덕지라 인세 따위는 그러려니 한다. 출판사는 아주 드물게 선의로, 대체로 악의로 계약금 없이 계약한다. 책이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기면 인세를 어떻게든 주겠지만 그런 책도 많지는 않더라.


책은 팔렸는데 인세가 안 들어오면 내 정성과 노력이 대우받지 못한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하다. 늘 인세로 머리가 복잡하지 않지만 한 번씩 생각이 나고 그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책도 보기 싫어진다. 홍보 따위는 전혀 안 한다. 물론 표지 안에는 소중한 내용이 있다. 조금씩 마음은 출판사에 대한 깊은 배신감을 채워간다. 마음을 정리하려면 뭔가 정리가 필요하다. 포기하거나 돈을 받거나. 그리고 계약 해지와 절판도 필요하다. 내가 갈 길이다. 


종이책을 출간한 작가에 만족하고 인세는 잊어도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속았다는 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정성 들여 쓴 원고가 안타깝기도 하다. 책을 내는 과정은 출산을 하는 과정과 같다고 하는데, 내 아이가 아무렇지 않은 대우를 받으니 쉽게 마음을 정리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이 모든 과정의 좋은 경험은 됐다. 


요즘 나는 첫 책에 관해 언급 자체를 안 한다. 하루빨리 돈을 받고 계약을 해지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 계약을 하지 않았어야 했지만,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이 나에겐 없다. 나는 그저 사람의 말과 계약서를 믿는 사람이다. 돈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진작 알았지만, 사람이 먼저 보이지 돈이 먼저 보이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에 유명한 배구 선수들이 학폭으로 배구 인생에 종친 사건이 발생했다. 과거의 심각한 잘못이 미래의 성공을 한  순간에 앗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출판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렵다면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하고 작가에게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고 작가와 소통을 한다면 책도 더 잘 팔리고 경영의 어려움도 해소할 수 있을 텐데 어찌 됐든 간에 거짓으로 순간을 회피하니 서로 힘들어진다. 거짓말을 일삼는 출판사는 성장하지 못할 것이고, 운 좋게 성장하더라도 결국 나중에 들통날 것이다.


결국 나는 인세 한 푼 못 받은 작가다. 나쁜 출판사를 만나 기분이 별로다. 빨리 그 출판사와 인연을 끊고 싶다. 


그리고 다행히 괜찮은 출판사와 두 번째 계약을 했다. 선인세도 받았다.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그럴 리 없길 바라지만, 절대로 첫 출판사의 경험을 겪고 싶지 않다. 작가로서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출판사가 잘 되는 길인데, 그걸 출판사가 모를까? 정말 모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초등학생은 가방을 메고 러너는 러닝화를 신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