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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Feb 27. 2021

마라토너지만 탐험가처럼!

Explore more!


나이키의 슬로건 <just do it>이나 아디다스의 슬로건 <imposssible is nothing>은 스포츠에만 어울리는 건 아니다. 이런 슬로건은 인생에도 의미 있다. 때로는 용기를 때로는 도전정신을 북돋워준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특정 스포츠 브랜드를 구입하지만, 누군가는 가슴 뛰는 슬로건이 까닭일 것이다. 문득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브랜드의 슬로건도 궁금하다.


나는 러닝 티셔츠를 구입할 때 꼭 스포츠 브랜드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나이에 맞지 않게 캐주얼 브랜드의 옷을 구입하기도 한다. 한 살이라도 어려보이겠다는 몸부림이기도 하지만, 일반 캐주얼 브랜드도 기능성 소재를 활용한 옷을 만들기 때문이다. 언젠가 쇼핑을 하는데 <Explore more>라는 슬로건이 박힌 옷을 만났다. 그 순간 내 심장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 듯 쿵쾅거렸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하지만, 정해진 코스를 달리듯 정해진 삶을 사는 건 매력이 없다. 인생에 예습과 복습이 가능하다면 살고 싶은 마음이 툭 떨어질 게 분명하지 않을까? 누군가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입사했을 때 마라톤처럼 살면 10년 뒤에는 옆에서 일하는 과장이 되고 20년 뒤엔 건너편에서 일하는 부장이 된다. 그런 삶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해 좋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 번 사는 인생을 남들처럼 살기엔 태양이 너무 찬란하다. 사람들이 죽을 때 후회하며 하는 말 중에 하나가 "그때 그거 해볼걸..."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당장이라도 더 도전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솟는다. 쇼핑센터에서 만난 티셔츠에 적힌 슬로건 <Explore more>처럼 말이다.


대단한 행복이 어딘가에 숨어있는 듯 찾아 나서지만 결국 행복은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파랑새가 저 멀리 있다고 찾아 나서지만 결국 내 곁에 있다는 동화 <파랑새>는 행복을 찾는 인간의 삶과 닮았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더없는 행복을 느낀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등산을 하거나 달리기를 하며 꽃 피고 단풍이 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누린다는 사실 자체로 잔잔한 흥분을 느낀다.


오랜만에 휴가를 냈다. 따뜻한 오후 햇살이 나에게 얼른 나오라고 손짓했다. 아직 2월이지만 반발과 반바지로 갈아입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썼다. 러닝화부터 마스크까지 블랙으로 맞추고 <Explore more>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 내 딴에는 한껏 멋을 낸 것이다. 바깥으로 나가니 계절은 봄을 건너뛰고 여름이 된 듯 따뜻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입으니 기분은 더 좋아졌다. 빨리 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도 알 수 없는 힘으로 달리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달리기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도전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트레일 러닝을 하며 산을 만나 등산과 암벽 등반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안나푸르나나 몽블랑을 찾아 떠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수영과 싸이클을 하며 트라이애슬론에 도전한다. 그들은 조명을 받는 것처럼 더 화려하고 멋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도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사촌 형이다.


예전에 군대에 갓 전역했을 때 한창 암벽에 빠진 그가 나에게 암벽등반을 하러 가자고 했다. 지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걸 알지만 당시에는 특공대를 전역했다는 객기 하나로 그를 따라나섰다. 지금은 암벽이 힘보다 기술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돌도 씹어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힘만 있으면 암벽 따위는 쉬울 줄 알았다. 나는 무엇이든 경험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이지 상상만으로 무엇인가를 예측하는 수재나 천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암벽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는 나를 배려해 초급 암벽등반코스를 갔지만, 객기는 정말 객기일 뿐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나보다 나이가 열다섯에서 스물이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는 바위를 나는 낑낑대며 겨우 버티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 특공대고 나발이고 기술 없는 힘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그때 암벽에 빠졌던 사촌 형은 나에게 <Explore more>하는 삶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이후에 그는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을 하더니 요즘은 산악스키까지 한다. 암벽과 빙벽을 하러 요세미티나 몽블랑으로 떠나고 산악스키를 하러 러시아에 간다. 도전하는 사람이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 뿌듯하기도 하고 동기부여도 된다.


내가 사촌 형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쭈쭈바 때문이기도 하다. 시골에서 산 나는 어린 시절 사촌 형들과 누나들을 따라다녔다. 다섯 살쯤 되었을 때다. 사촌 형들은 일을 했고 나는 경운기를 장난감 삼아 놀았다. 다섯 살 아이에겐 꽤나 위험한 장난감인 경운기와 놀다 동력 벨트에 손가락이 끼었다. 나는 세상을 깰 듯이 울었다. 그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분명히 장군감이라고 했을 게 분명한데, 안타깝게도 나는 훗날 사병으로 전역했다.


멀리서 일을 하던 사촌 형은 쏜살같이 달려와 나를 달래고 자전거를 타고 번개처럼 사라졌다. 사촌 형이 다시 나타났을 때 나는 울다 지친 후였다. 울음소리는 그쳤으나 딸꾹질을 하며 언제라도 곧 울 태세였다. 그런 내게 사촌 형은 쭈쭈바를 안겼다. 달달한 쭈쭈바를 빨면서 울음을 그쳤다. 손에 흙과 기름이 묻었고 손톱 밑에는 시커먼 때가 가득했다. 원래 튼 볼은 눈물에 더 불어 텄고 얼굴은 콧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었다. 요즘 보는 아이들의 귀여움이라곤 하나도 없는 세상 불쌍한 아이였지만, 그 순간만은 너무나 행복한 아이였다. 그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다섯 살을 통틀어 내가 기억하는 순간은 그때뿐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누구나 후회하지 않은 삶을 고 싶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하고 싶은 건 해야 한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결혼도 하는 게 낫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탐험가의 삶을 추구한다. 그렇다고 도전이 꼭 극한 스포츠일 필요는 없다. 사람은 각자 하고 싶은 성향이 다르니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아주 사소하더라도 괜찮다. 작은 도전이 반복되면 어느 날 큰 도전을 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옛날 첫 암벽등반 후 나는 재미로 실내 암벽등반을 놀이로는 해봤지만, 제대로 된 야생에서 한 적은 없다. 암벽등반을 자꾸 하다 보면 어느 날 히말라야에 오르다 자연과 하나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까닭이다. 차라리 오래 살며 하나라도 더 많은 도전을 하는 게 낫다. 내일은 몰라도 오늘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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