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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Mar 07. 2021

나무가 인생사진을 만든다고?

나무야 고마워!


인생 사진을 찍으러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지인이 있다. 코로나 이후 그는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산에 다닌다. 나의 지인처럼 이제 막 산에 입문한 사람을 요즘은 산린이(산+어린이)라고 부른다. 산에 다니고 나서 산린이가 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인생 사진은 해외에 있는 줄 알았는데, 진짜는 산에 있더라."


산에서 찍은 사진이 해외여행 때 찍은 사진보다 낫다는 말이다. 내가 산에 다니지 않았다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냐며 구박했겠지만, 나도 종종 산에 다니고 인생 사진을 꽤 얻은 사람이라 흐뭇하게 웃으며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치 옛날부터 알았다는 듯이 젠체하며 한마디 했다. "아이고 도시 촌놈아, 그걸 인제 알았나?"


달리기를 하며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동갑내기 모임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이달의 포토제닉을 선정한다. 이달의 포토제닉에 선정되는 사진 절반이 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산에 무엇이 있길래 인생 사진과 포토제닉이 나올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산에서 가장 흔한 나무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작년 여름부터 매주 한 번씩 서울 둘레길을 달려 8주 만에 완주했다. 서울 둘레길은 8코스 157km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의 길이 서울 외곽의 산으로 이어져있다. 둘레길을 달리며 사진을 꽤나 찍었는데, 하나같이 나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가끔 바위와 길이 나를 빛나게 하기도 했지만, 나를 더 특별하게 한 건 나무였다. 나무는 주로 배경의 주연이었고 가끔은 조연으로 내 옆에 우뚝 솟아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나무와 무척 가까웠다. 시골에서 살았던 까닭에 산은 나의 놀이터였고 산에서 가장 흔한 나무는 나의 장난감 재료였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나는 낫이니 톱이니 하는, 나이에 비해 꽤나 위험한 연장을 들고 이산 저 산으로 다녔다. 처음에는 사촌 형이나 동네형들을 따라다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 또는 동네 동생들과 다녔다.


나무로 만든 건 주로 활, 칼, 새총 같은 사냥놀이용 장난감이었다. 좋게 말하면 어릴 때부터 상남자였고 나쁘게 말하면 21세기가 가까워졌음에도 여전히 원시인을 벗어나지 못한 무식한 아이였다. 화살촉으로는 못을 사용했고 새총의 총알로는 단단한 돌을 썼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그때는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시대였고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놀이와 안전에는 관심을 기울일 만큼 여유가 없었다. 덕분에 우리가 얻은 건 지금의 아이들이 그토록 바라는 자유였다. 요즘 아이들이 지긋지긋해하는 잔소리 따위는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오는 미래의 이야기였다.


장난감의 소재가 됐던 나무는 주로 가시나무, 참나무, 소나무였다. 우리 동네 뒷산과 앞산에 가장 흔한 나무였기 때문이다. 가끔 새총을 만들 Y자 가지를 얻기 위해 제법 굵은 나무를 잘라야 할 때가 있었는데 소나무는 대충 몇 번 밀당하면 잘렸고 참나무는 제법 정성 들여 밀당해야 넘어갔다.  성질 급한 아이들은 참나무를 자르다 포기하고 소나무를 찾았다. 여우가 신포도라고 합리화하고 여자가 안 넘어오면 여자가 싫증 났다고 말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참나무 같은 활엽수는 단단하고 소나무 같은 침엽수는 물렁하다는 건 삼십 년이 지난 최근, <나무의 시간>을 읽고서야 알게 됐다. 그때 그걸 알았다면 나는 타고난 나무꾼이니 선녀를 만나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앗, 가만 생각해 보니 선녀는 나무꾼을 버려두고 하늘로 도망갔으니 타고난 나무꾼이 아니었던 게 천만다행이다. 거기에 더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성희롱으로 큰 곤욕을 치르고 있을 테니 꿈에서라도 나무꾼이 아닌 게 다행이다.


산은 가장 자연과 가까운 공간이다. 그곳에는 인공적인 것이라고는 찾기 힘들다. 가장 흔한 건 역시나 나무다. 봄에는 꽃으로 여름에는 푸른 잎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겨울에는 상고대로 걷거나 달리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산을 걸으면 나무가 만들어내는 피톤치드로 마음까지 깨끗해진다. 전날 술을 먹었다면 피톤치드가 해장의 역할도 할 거라 기대하지만, 나무가 만들어내는 기운은 산신령보다 강하지 않아 더 정신을 혼미하게 할 수도 있으니 산을 달리거나 걷는 전날에는 가급적 술을 삼가야 한다.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를 만나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압도적인 웅장함에 기가 눌릴 것도 같지만, 나무의 특성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품어주는 것이니 쭉쭉 뻗어있을수록 더 기분이 좋다. 월정사 가는 길에 만난 전나무 길, 담양에 있는 메타세쿼이아 길, 강릉 해변에 있는 솔숲 길도 그랬다. 그곳에서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포토제닉이 된다. 간혹 내가 이렇게나 멋졌나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그저 나무에 고마워하며 어깨를 으쓱하면 된다.


나무가 만들어주는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해 꼭 멀리 가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 산림이 우거진 나라다. 서울만 해도 그렇다. 가깝게는 지하철 몇 정거장 멀게는 한 시간만 움직이면 나무가 우거진 멋진 숲과 산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세계 어떤 나라보다 아웃도어 의류 시장이 발달했는데, 한때는 세계 곳곳에 아웃도어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죄다 한국인이란 이야기까지 있었다. 도시 근교에 있는 멋진 산이 만들어낸 패션 트렌드가 패션 테러리스트를 만든 건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산이 더욱 각광받는다. 여행에 갈증을 느낀 사람들이 근질근질한 몸과 마음의 욕구를 해소하려 산을 찾는 까닭이다. 예전에 산에 가면 막걸리 한잔 걸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에는 선남선녀 커플이나 레깅스를 입고 요가를 하듯 유연한 자태와 탄탄한 몸매를 드러낸 2030 세대들이 더 많다. 멋진 나무 아래나 웅장한 나무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이나 포토제닉을 얻으려는 그들을 바라보면 흐뭇한 웃음이 절로 난다. 그들을 지나친 나의 눈길은 하늘 높이 우뚝 솟은 나무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다시 걷거나 달리며 혼잣말한다. 저 멋진 청춘들도 나무의 고마움을 알면 좋겠다.  


산에서 찍은 사진이 해외여행 때 찍은 사진보다 낫다는 말이다. 내가 산에 다니지 않았다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냐며 구박했겠지만, 나도 종종 산에 다니고 인생 사진을 꽤 얻은 사람이라 흐뭇하게 웃으며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치 옛날부터 알았다는 듯이 젠체하며 한마디 했다. "아이고 도시 촌놈아, 그걸 인제 알았나?"


달리기를 하며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동갑내기 모임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이달의 포토제닉을 선정한다. 이달의 포토제닉에 선정되는 사진 절반이 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산에 무엇이 있길래 인생 사진과 포토제닉이 나올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산에서 가장 흔한 나무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작년 여름부터 매주 한 번씩 서울 둘레길을 달려 8주 만에 완주했다. 서울 둘레길은 8코스 157km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의 길이 서울 외곽의 산으로 이어져있다. 둘레길을 달리며 사진을 꽤나 찍었는데, 하나같이 나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가끔 바위와 길이 나를 빛나게 하기도 했지만, 나를 더 특별하게 한 건 나무였다. 나무는 주로 배경의 주연이었고 가끔은 조연으로 내 옆에 우뚝 솟아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나무와 무척 가까웠다. 시골에서 살았던 까닭에 산은 나의 놀이터였고 산에서 가장 흔한 나무는 나의 장난감 재료였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나는 낫이니 톱이니 하는, 나이에 비해 꽤나 위험한 연장을 들고 이산 저 산으로 다녔다. 처음에는 사촌 형이나 동네형들을 따라다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 또는 동네 동생들과 다녔다.


















나무로 만든 건 주로 활, 칼, 새총 같은 사냥놀이용 장난감이었다. 좋게 말하면 어릴 때부터 상남자였고 나쁘게 말하면 21세기가 가까워졌음에도 여전히 원시인을 벗어나지 못한 무식한 아이였다. 화살촉으로는 못을 사용했고 새총의 총알로는 단단한 돌을 썼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그때는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시대였고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놀이와 안전에는 관심을 기울일 만큼 여유가 없었다. 덕분에 우리가 얻은 건 지금의 아이들이 그토록 바라는 자유였다. 요즘 아이들이 지긋지긋해하는 잔소리 따위는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오는 미래의 이야기였다.




장난감의 소재가 됐던 나무는 주로 가시나무, 참나무, 소나무였다. 우리 동네 뒷산과 앞산에 가장 흔한 나무였기 때문이다. 가끔 새총을 만들 Y자 가지를 얻기 위해 제법 굵은 나무를잘라야 할 때가 있었는데 소나무는 대충 몇 번 밀당하면 잘렸고 참나무는 제법 정성 들여 밀당해야 넘어갔다.  성질 급한 아이들은 참나무를 자르다 포기하고 소나무를 찾았다. 여우가 신포도라고 합리화하고 여자가 안 넘어오면 여자가 싫증 났다고 말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참나무 같은 활엽수는 단단하고 소나무 같은 침엽수는 물렁하다는 건 삼십 년이 지난 최근, <나무의 시간>을 읽고서야 알게 됐다. 그때 그걸 알았다면 나는 타고난 나무꾼이니 선녀를 만나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앗, 가만 생각해 보니 선녀는 나무꾼을 버려두고 하늘로 도망갔으니 타고난 나무꾼이 아니었던 게 천만다행이다. 거기에 더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성희롱으로 큰 곤욕을 치르고 있을 테니 꿈에서라도 나무꾼이 아닌 게 다행이다.


















산은 가장 자연과 가까운 공간이다. 그곳에는 인공적인 것이라고는 찾기 힘들다. 가장 흔한 건 역시나 나무다. 봄에는 꽃으로 여름에는 푸른 잎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겨울에는 상고대로 걷거나 달리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산을 걸으면 나무가 만들어내는 피톤치드로 마음까지 깨끗해진다. 전날 술을 먹었다면 피톤치드가 해장의 역할도 할 거라 기대하지만, 나무가 만들어내는 기운은 산신령보다 강하지 않아 더 정신을 혼미하게 할 수도 있으니 산을 달리거나 걷는 전날에는 가급적 술을 삼가야 한다.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를 만나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압도적인 웅장함에 기가 눌릴 것도 같지만, 나무의 특성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품어주는 것이니 쭉쭉 뻗어있을수록 더 기분이 좋다. 월정사 가는 길에 만난 전나무 길, 담양에 있는 메타세쿼이아 길, 강릉 해변에 있는 솔숲 길도 그랬다. 그곳에서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포토제닉이 된다. 간혹 내가 이렇게나 멋졌나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그저 나무에 고마워하며 어깨를 으쓱하면 된다.


















나무가 만들어주는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해 꼭 멀리 가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 산림이 우거진 나라다. 서울만 해도 그렇다. 가깝게는 지하철 몇 정거장 멀게는 한 시간만 움직이면 나무가 우거진 멋진 숲과 산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세계 어떤 나라보다 아웃도어 의류 시장이 발달했는데, 한때는 세계 곳곳에 아웃도어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죄다 한국인이란 이야기까지 있었다. 도시 근교에 있는 멋진 산이 만들어낸 패션 트렌드가 패션 테러리스트를 만든 건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산이 더욱 각광받는다. 여행에 갈증을 느낀 사람들이 근질근질한 몸과 마음의 욕구를 해소하려 산을 찾는 까닭이다. 예전에 산에 가면 막걸리 한잔 걸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에는 선남선녀 커플이나 레깅스를 입고 요가를 하듯 유연한 자태와 탄탄한 몸매를 드러낸 2030 세대들이 더 많다. 멋진 나무 아래나 웅장한 나무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이나 포토제닉을 얻으려는 그들을 바라보면 흐뭇한 웃음이 절로 난다. 그들을 지나친 나의 눈길은 하늘 높이 우뚝 솟은 나무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다시 걷거나 달리며 혼잣말한다. 저 멋진 청춘들도 나무의 고마움을 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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