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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Apr 30. 2021

<글너머> 더 잘 쓰고 싶은 작가들의 모임을 마치며..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함께 읽고 공유한 이야기


작가가 되기 전에 나는 내용이 좋으면 출판사에서 알아서 책을 만들어주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글 쓰는 사람으로서 자존심 따위는 하나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작가로서의 자존심은 글을 쓸수록 함께 커지고 있는데, 문제는 어디까지 더 잘 써야 할지 나조차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노오력?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맴돈다. 바른길은 있다. 읽고 생각하고 쓰기.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더 빨리 실력을 쌓고 싶기 때문이다. 생각한 방법은 더 잘 쓰는 사람에게 배우기가 첫째고 그 과정을 누군가와 함께 하기가 둘째다. 이렇게 나온 모임이 글 잘 쓰고 싶은 작가들의 모임 <글너머>다. 이 모임도 누군가의 생각과 도움과 참여로 가능했다.  확신하건대, 세상에 니 혼자 이룬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건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기억하자. 니 혼자된 건 없어요. 알았죠?


글너머 1기로 선택한 책은 스티브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것도 누군가가 남긴 평이었거나 추천이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저절로 이 책을 알게 된 건 절대 아니다.


이 책은 글 잘 쓰고 싶은 사람에게 탁월한 도움을 준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알아보자. 1947년생인 스티븐 킹은 1974년에 장편 <캐리>로 데뷔해 50여 편의 소설을 출간했고 <그린마일>과 <미저리>등 다수의 작품은 영화가 됐다. 그의 아내 '태비'도 작가다. 부부가 같은 직업을 가진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소설가의 배우자가 소설가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금 책의 첫 표지를 보고 알았다. 생각해 보니 조정래 선생님의 아내 김초혜 님은 시인이다. 이렇게 만나기도 하는구나... 첫 독자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대박이지 뭐!


그의 실력은 나무랄 데가 없으니 그가 하는 말을 머리에 새기기만 하면 된다.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 머리말에서 이런 말을 한다. 뒤죽박죽이던 성장기를 보내는 동안 야심과 소망과 행운과 약간의 재능이 함께 작용했다.

야심+소망+행운+재능=성공, 이건 말할 필요 없는 성공 방정식이다.

뭔가 빠진 것 같다. 노력? 노력은 야심에 들어가 있다고 본다. 야심 있는 사람은 반드시 노력한다. 야심은 나쁜 감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대체로 드라마에서 성공을 향해 돌진하는 남자가 여자를 버리는. 그건 그냥 드라마다. (스티븐 킹은 가끔 불완전한 문장을 쓰라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고수의 말을 따라 할 생각이다.)


스티븐 킹은 자신이 작가가 되는 과정을 1부에서 펼치는데, 그는 이력서라고 말한다. 킹은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맞다. 재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는 쉽지 않다. 엄마와 몇 명의 선생님이 킹의 재능을 발견하고 인정했다.


지금 글을 쓰는 사람은 어린 시절 한 번이라도 글쓰기 대회에 입상했거나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아니면 최근이라도. 그러면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1%의 재능만 있으면 99%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채우면 된다. 아니라고? 맞아요. 대 작가는 그렇게 했어요. 요즘 조정래 선생님의 글을 보니 나의 노력은 부끄럽기 짝이 없어요.


만약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면 재능을 발견하라. 방법은 쉽다. 아무 글이나 쓰고 드러내라. 가능하면 당신을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들이 당신의 재능을 발견해 준다. 그때부터 당신은 글쓰기에 재능 있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비난의 대상이 된다. 킹은 이렇게 말한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남의 기분을 망쳐놓고 싶은 사람도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누군가 도저히 따르지 못할 수준이 되면 모를까, 글의 세계에는 그런 게 없다. 돈은 단위가 정확해 넘사벽이 있지만, 글은 단위가 없어 정량적인 평가가 불가하다. 누구도 비난의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찾아보지 않았지만 세계적 문호인 톨스토이나 괴테를 비난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고 우리나라의 박경리 선생님이나 조정래 선생님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글이 너무나 탁월해서 비난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의 과거 이력으로, 그것도 아니면 외모로 비판한다. 글을 쓰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남의 비판에 초연하기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자. "아주 지랄을 하세요."  


대신 내가 쓴 글을 무조건 칭찬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 킹에게는 아내 태비였다. 당신이 작가 또는 작가가 되고자 하면 당신의 태비가 있기를 바란다. 킹은 이런 말을 한다.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굳이 믿는다고 떠들지 않아도 좋다. 대개는 그냥 믿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킹은 작가가 된 자신의 이력을 마무리하며 이런 말을 한다.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이 말이 무엇인고 하면, 글쓰기가 인생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다. 글쓰기가 당신의 인생을 더 낫게 만든다면 이어가고 망치고 있다면 당장 때려치워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억지일까?


2부 연장통에선 단어, 문법, 문단을 이야기한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 책을 꾸준히 읽어야 하는 이유다. 더 좋은 단어를 찾고 바른 문법과 문단 나누기를 제대로 해야 한다. 어떻게? 잘 쓴 글을 보고!

어떤 단어를 써야 할까? 나는 유식한 척하는 단어를 최대한 자제한다. 책은 중학생 수준이면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그래야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말도 공감한다. 그렇다고 내가 베스트셀러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더 잘 쓰고 싶을 뿐이다. 실력이 쌓이고 운이 따라주면 '낭중지추', 아! 어기고 말았다. 낭중지추는 주머니 속에 바늘이 튀어나온다는 말인데, 내가 좋아하는 말이라 어려운 말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꼭 쓰고 싶다. 낭중지추를 믿고 한결같이 쓸 생각이다.

문법을 배운 건 고등학교 때가 유일한데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문단도 중요하다. 요즘 책일수록 문단이 많다. 읽기 쉽기 때문이다. 작가의 일관성만 있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왜 니가 거기서 문단을 나눴는지 설명만 가능하다면 문제없다는 말이다. 단 한 줄의 문장이 한 문단이 될 수도 있다. 그때도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킹은 3부 창작론에서는 어떻게 글을 쓰느냐에 대해 알려준다. 소설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서술, 묘사, 그리고 대화다. 우리가 읽는 모든 소설에는 서술이 있다.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서술이 필요하다. 묘사도 있다. 독자의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려면 묘사도 있어야 한다. 대화는 글이 살아있게 한다. 그는 플롯은 없다고 하는데, 인위적인 인과관계보다는 자연스럽게 녹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생뚱맞은 서술이 이어진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을 것이다. 책을 덮고 담배를 피우러 나가거나 욕을 하거나. 점잖은 사람이라면 아무 말 없이 책을 덮고 두 번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킹은 무엇보다 스토리를 강조한다. 두고두고 옳은 말이다. 이야기의 힘이 있으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된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가 단어와 문법과 문단을 알았겠는가? 플롯이니 나발이니 하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가 재미있었고 끝나면 다시 해달라고 졸라댔던 단 하나의 이유는 스토리의 힘이었다.


킹은 퇴고에 대해서도 말한다. 수정 작업을 통해 주제와 상징성을 점검하라고 한다. 군더더기를 날리고 수동태와 부사를 없애라고 한다. 나도 다 아는 말인데 참 쉽지 않다. 부사와 접속사는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가끔은 왜 수동태로 썼을까 싶을 만큼 어처구니없는 문장도 꼭 있다. 이런 단어와 문장들을 싹 날리는 걸 퇴고할 때 한다. 스티브 킹 말대로 원고에서 10%를 빼면 더 나은 원고가 될 것이 분명하다.


킹은 후기를 대신해 인생론을 펼친다. 글쓰기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나는 왜 쓰는가? 글쎄요. 나도 잘 모르겠네요. 확실한 건 더 잘 쓰고 싶은 야심이 내 안에 가득하다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건 천만다행이다.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한 밑도 끝도 없는 여정을 하고 싶지 않다. 돈은 본캐에서 글쓰기는 부캐로 하는 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다.

만약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는 분이 있다면 나는 조정래 선생님의 말로 대신하고 싶다.

"죽기를 각오했습니까?"

죽기를 각오하면 무엇이든 되지 않을까? 작가계의 신데렐라,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링을 떠올려보자. 그녀는 죽을 각오로 글을 쓰지 않았을까? 덧붙여 이런 말을 다시 하고 싶다. 글쓰기는 더 나은 인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생이 글쓰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 글쓰기를 위해 존재한다면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안 그래요?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는 푸른 별, 지구에 태어난 내가 인생을 허비하는 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함께 한 글너머 분들 덕분에 나는 <유혹하는 글쓰기>를 냠냠 곰탕으로 먹었다. 공감하고 다시 읽고 필사하고, 그러는 사이 내 글쓰기 실력도 포동포동해졌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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