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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May 31. 2021

작가들의 글쓰기 독서모임<글너머>2기를마치며

조정래의 <혼자 쓰고, 함께 살다>로 함께 읽고 함께 성장한다.

조정래.

그를 알기 전에 그의 책부터 알았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내 주위엔 늘 그런 책들이 있었다. 주위에 책을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다면 누구나 조정래 선생님의 책을 보거나 잡거나 읽었을 것이다. 당신이 이런 책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면 주위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촌 형은 책벌레였다. 그는 늘 책을 붙들고 살았지만,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했다. 혼자 힘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었을 텐데도 집안 형편과 분위기는 일찌감치 그에게 말했다. "대학은 포기해"

그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다 읽었다. 어떻게 아냐고? 그는 늘 책을 읽었고 책장엔 그런 책들이 항상 꽂혀 있었으니까. 덕분에 나는 조정래는 몰랐지만 그가 쓴 대하소설을 알게 됐다. 사촌 형의 책장을 잘 아는 이유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나는 사촌 형과 함께 자랐기 때문이다. 문학을 좋아하는 그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결국 대학을 갔다. 공고를 졸업하고 LG전자에 들어가 적당한 돈을 벌었지만, 책은 그를 그렇게 두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단히 잘 나가는 삶을 살지는 않지만 여전히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는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됐을 때 조정래 선생님이 쓴 <풀꽃도 꽃이다>와 <정글만리>를 읽었다. 두 소설을 읽을 즈음엔 그를 알고 책을 선택했다. 시간이 꽤 흘러선지 <정글만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풀꽃도 꽃이다>는 어렴풋이 기억난다. 이때까지도 나는 조정래 작가와 그의 삶, 그의 생각, 그의 가치관, 그의 작가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아무리 내 삶에 소중한 사람이라도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다. 대작가가 아니라 대작가 할아버지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조정래 작가를 알게 될 계기가 생겼다. 우연히! 인생에서 '우연'이 차지하는 비율은 꽤 높다. 친구가 한 달간 거제에서 거제로운 달리기 여행을 한다고 했다. 나는 나도 좋고 그도 좋은 선택을 했다. 그건 내가 거제로 가는 것이었다. 거제에서 3박 4일간 여행을 했고, 그중 하루는 통영에서 여행을 했다. 어느 날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삶의 일부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는 자연스럽게 통영에서 유명하다는 동네책방 <봄날의 책방>에 갔다. 그즈음부터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작가들의 독서모임 <글너머>의 멤버이자 조콤 더 책임 있는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 달 읽을 책을 선택할 시기가 됐다. 책방을 한 바퀴 둘러봤다. 천권 이상의 책 중에서 유난히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 있었다. 그건 바로 <혼자 쓰고, 함께 살다>였다. 그 책을 펼쳤다. 저자는 조정래였고, 책은 등단 50주년 기념 '독자와의 대화'를 정리한 것이었다.


목차부터 훑어보았다. 책은 독자들의 질문을 3부로 나눠 편집돼 있었다. 1부는 문학에 대해서, 2부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 대해서, 3부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였다. 글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이 읽을 책으로 적합한지 생각했다. 1부는 당연히 적합했지만 2부와 3부는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조정래 작가를 믿었다. 함께 하는 작가들의 단톡방에 의견을 물었다. 모두가 찬성이었다. 흐뭇했다.


<혼자 쓰고, 함께 살다>를 읽으면 당신이 지금까지 한 노력은 노력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또 조정래 같은 작가는 삶 자체가 작가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작가도 그를 넘어설 수 있다는 마음이나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행운으로 더 많이 팔리는 책을 쓸 수는 있지만 조정래 작가처럼 모든 삶을 담아 글을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나는 앞으로 어떤 글을 쓸 것이며 어느 정도 수준의 작가가 될지 마음속으로 정리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끝이 없지만, 시간과 재능의 한계는 분명하고 내 삶 전부를 글에 쓸 마음도 없다.


조정래 선생님은 완전한 문학인생을 위해 갖춰야 할 세 가지 요건을 <재능+노력+독거>라고 한다. 이 요건은 그가 생각하는 성공 공식이기도 하다. 그는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삶 전체를 글 쓰는 데 투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선 그분과 생각이 다르다. 문학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내가 생각하는 성공 공식은 <성공=재능×노력×행운>이다. 재능, 노력, 행운 중 하나라도 0이라면 성공도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무리 재능이 출중하더라도, 노력을 다하더라도, 행운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이유로 나는 인생 전체를 글쓰기에 투자하는 건 무모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 즈음 나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글을 쓰다가 어느 날 작가가 되면 좀 더 좋은 책, 써보지 않은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난다. 다른 작가들도 나와 비슷할 것이다. 나는 관심 있었던 인문학과 소설 중에서 소설을 선택했다. 좋은 소설이 되고 안 되고는 독자가 선택하지만 양을 채우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조정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소설 쓰기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영원히 중단한 것은 아니고 좀 더 공부를 하고 쓸 것이다). 뭐랄까, 내가 소설을 너무 대충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동안 나는 매일 책 한 권씩 읽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책을 읽었다. 책을 통해 다양한 작가를 만났지만 누군가가 대단하다거나 위대하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작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정래, 그는 달랐다. <홀로 쓰고, 함께 살다>를 읽으면 대충 쓰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다른 건 몰라도 소설은 확실히!


조정래 작가님은 타고난 작가이자 삶 자체가 작가다.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삶이 치열할수록 일과 일상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의 일은 글쓰기였고, 글쓰기가 일상이었다는 말이다. 이분처럼 노력한다면 누구라도 그에게 행운을 주고 싶을 것이다. 신이 있다면 신도. 그래서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그가 쓴 책은 최고의 책으로 인정받는다.   


그는 작가계에서 가장 공적인 삶을 추구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기여해야 한다" 그가 쓴 소설을 한 번 떠올려보자.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천년의 질문>, <풀꽃도 꽃이다>. 이 모든 책들이 역사와 미래를 담았다. 그가 쓴 책은 요즘 베스트셀러가 되는 가벼운(?) 책들과 차원이 다르다. 아무나 역사와 교감하는 책을 쓰지 못한다. 사회와 시민에 기여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조정래는 그런 사람이다. 한국 문학사에서 단 한 분의 작가를 꼽으라면 그를 꼽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에 비견될만한 사람을 한 분만 더한다면 <토지>의 박경리 선생님이 아닐까 싶다.


그의 인생관에 대해서는 반은 공감하고 반은 공감하지 못한다. 특히 결혼관에서. 그는 결혼하면 출산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생각하면 저출산은 심각하다. 국가 존립의 문제다. 하지만 그 문제는 국가가 해결할 문제이지 개인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조정래 선생님의 생각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상식과는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선생님이 내 옆에 계시다면 슬그머니 묻고 싶다. 어떤 대답을 하실지 궁금하다.


삶에 대해 가장 공감된 통찰력은 성공에 대한 판단이다. 사람은 객관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삶이 있고 주관적으로 스스로 평가하는 삶이 있다는 대목이다. 객관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삶은 공인의 삶이고 주관적으로 스스로 평가하는 삶은 시민의 삶이다. 나도 시민이니 남의 객관적 평가는 의미가 없다. 시민은 주관적으로 스스로 평가하는 삶을 살면 된다.


끝으로 성공한 인생에 대한 그의 의견을 인용한다. "자기가 꼭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그 일을 혼신을 다해나가고, 그러면서 나날이 재미있고 즐거우며, 세월이 흘러갈수록 사는 의미와 보람을 느끼면서 행복이 커져가면 그 인생은 틀림없이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대가 꼭 하고 싶은 일이 '글쓰기'라면 이 책을 꼭 읽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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