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막시 May 21. 2021

부자 제주 여행 4화. 스타벅스 텀블러

환경까지 생각하는 여행자?


"아빠 나 물먹고 싶어"

아들이 헬맷을 쓰며 말했다. 인생과 나 사이에 머피의 법칙이 있다면 아이들과 나 사이에도 머피의 법칙이 있다.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는 대체로 내 손에 없거나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근처에 화장실이 없고 배고프다고 하면 먹을 것이 없다. 물도 그랬다. 내 수중에는 물이 없었다. 스쿠터 핸들 사이엔 텅 빈 물통 홀더만이 나를 쳐다보며 한 마디 하는 것 같았다. '어휴, 아버지란 사람이 이렇게 준비성이 부족해서'

"서준아 조금만 참아. 옆에 편의점 가서 사줄게" 말과 동시에  머릿속에는 텀블러가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스타벅스 텀블러.

아들은 사계절 내내 차가운 물을 원했다. 지금 나는 계절과 다른 온도의 물을 마시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릴 때는 한결같이 차가운 물을 찾았다. 그건 아이의 법칙이 아닐까 싶다. 텀블러는 우리가 여행하는 내내 차가운 물이나 커피를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게 말했다. "서준아 스타벅스로 가자!"


삼양해변에서 가까운 스타벅스를 검색했다. 바람이 우리 곁에서 춤추는 사이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스타벅스 텀블러는 생각보다 비쌌다. 갖고 있는 쿠폰 여러 개를 끌어모아야 했다. 나에게 커피를 선물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았다. 그 사람들의 마음이 한 데 모여 텀블러가 됐다. 텀블러는 제주 여행을 하는 동안은 물론 앞으로도 나와 그분들을 연결하는 메신저가 될 것이다. 던져도 부서지지 않는 텀블러니까 어쩌면 영원히.


요즘 직장인들은 모바일 커피 쿠폰을 수시로 선물하거나 받는다. 기업들도 고객 서비스나 프로모션으로 커피 쿠폰을 활용한다. 그러니 누구나 커피 쿠폰 하나 정도는 갖고 있다. 나도 그런 직장인 중에 한 명이다. 커피 쿠폰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면 복 받은 사람이다. 누군가 당신을 간절히 생각하는 증거니까. 그런데 아직까지 한 번도 받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걱정하거나 자책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받기 전에 먼저 보낸다. 나도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커피 쿠폰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선의는 선의로 돌아온다고 굳건히 믿는다.  혹시 당신의 스마트폰에 스타벅스 쿠폰이 하나도 없다면 오늘 그 씨를 뿌리길 바란다. 그러면 그 씨가 싹을 틔워 그대 품에 안길 것이다. 요즘 우리 집에는 아들이 뿌린 강낭콩이 자라고 있는데, 사흘 만에 싹이 났다. 당신이 커피 쿠폰을 누군가에게 씨처럼 뿌린다면 사흘이 뭐야, 하루도 걸리지 않아 누군가 당신에게 커피 쿠폰을 보낼 것이다. 혹시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제보하길 바란다. 내가 기꺼이 그대에게 커피 한 잔을 선물할 테니.


'제주', '한라봉', '해녀'가 그려진 감성 충만한 텀블러가 손에 들어왔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아들은 아이스 초콜릿을 주문해 한 모금씩 마셨다. 목을 축이고 텀블러를 감싼 우아한 포장박스를 뜯어내고 제주 텀블러를 손에 쥐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화장실에 가서 얼른 깨끗하게 씻었다. 나가서 첫 번째 만나는 식당에서 물을 채울 생각이었다.


여행자에게 카페는 쉬는 공간이다. '여행 자체가 쉼인데, 무슨 쉼이 또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누군가 할 수 있지만 여행에도 쉼표는 필요하다. 카페에서 커피를 물 마시듯 벌컥벌컥 마시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최소 30분에서 길면 한 시간 정도는 머물며 무엇인가를 해야 카페가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아들은 태블릿을 꺼내고 나는 책을 꺼냈다. 아들은 언제 어디서나 게임에 몰입했지만, 나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내 마음은 지도에 가 있었다. 제주 지도를 펼치고 앞으로 방문할 여행지와 그곳에서 무엇을 할지 생각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에코랜드가 있었다.


일로 만난 형이 생각났다. 그는 본인이 방문한 제주 여행지 중에서 에코랜드를 최고로 꼽았다. 사람은 결이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소박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내세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내가 일하는 업계를 떠났다. 일로는 만나지 못하지만 가끔 연락하며 지낸다. 일로 만난 사람을 일을 떠나 연락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내가 그에게, 그가 나에게 연락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인간적으로 서로를 좋아하니까.


그 형의 말을 믿기로 했다. 다음 여행지를 결정하니까 책이 눈에 들어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책을 한쪽 읽고, 또 한 모금 마시고 책을 한쪽 읽고, 가끔은 게임에 몰두해 있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서준아"라고 부르면 아들은 나를 쳐다보며 장난 가득한 웃음을 보였다. 그 모습은 나에게 상큼한 비타민 이상이었다. 언젠가 아들이 내게 "아빠 A+가 뭐야?"라고 물었다. 나는 아들에게 "가장 좋은 등급 이상이야"라고 설명했는데, 아들의 웃음은 항상 나에게 'A++'였다.


스타벅스 텀블러를 구입하고 음료 쿠폰을 선물로 받았다. 선물 쿠폰은 매장에서 판매하는 음료 중 아무거나 선택할 수 있는 쿠폰이었다. 평소에는 비싸서 먹지 못하는 음료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단, 제주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제주를 여행하는 동안 한 번 더 스타벅스에 들를 일이 생겼다.


4박 5일 제주에 머무르는 동안 세 번 스타벅스에 방문했다. 첫 번째는 텀블러를 사려고, 두 번째는 제주를 여행하는 우리를 응원하는 지인이 스타벅스 디저트 쿠폰을 선물해서, 마지막은 텀블러 선물 쿠폰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아들의 새 태블릿을 사기 위해 서귀포에 있는 삼성전자 서비스센터를 방문했다. 내가 칠칠맞지 못해 부순 까닭이다. 마침 서비스센터 옆에 스타벅스가 있었다. 지인이 보내준 디저트 세트 쿠폰을 썼다. 치즈와 각종 야채가 들어간 샌드위치와 치아바타, 커피와 망고주스를  점심으로 먹었다. 아들이 깔끔한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좋아하는 걸 깜빡했다. 그렇다고 뜯은 걸 반품할 수도 없었다. 네 조각 중 아들은 한 조각을 먹었고 나머지는 모두 내 뱃속으로 사라졌다.


아들은 딸기잼을 바른 식빵과 패티만 들어간 햄버거만 좋아하지, 치즈니 양상추니 하는 것들이 들어간 음식은 내켜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편식을 하는 건데, 나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나도 아들처럼 어릴 때 야채나 생선 같은, 몸에 더 좋다는 음식을 싫어했다. 하지만 건강하게 자라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이에 따라 좋아지는 음식이 있게 마련이라 아들도 나이가 들면서 야채와 생선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내가 그런 DNA를 물려줬을 것이다. 가끔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시원하다"라고 말하는데 아들의 표정이 가관이다. '아빠가 정신 줄 놨나'라는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짓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 아들 또한 나와 같아질 것이 뻔하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도 스타벅스였다. 여행 계획을 짤 때 마지막 여행지는 스쿠터 대여소에서 2km 떨어진 용두암으로 정했다. 용두암 근처에는 카페거리가 있는데 스타벅스가 없을 리 만무했다. 역시나 용두암 근처에서 스타벅스를 만났다. 제주를 떠나기 전에 들른 스타벅스 매장에서 텀블러 음료 쿠폰을 썼다. 매장 직원이 추천한 음료를 주문했다. 마음은 게임에 가 있는 아들은 나 혼자 음료를 다 먹으라 했다. 내가 음료를 먹기 시작하자 아들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게임을 하다 중간중간 내가 먹는 모습을 곁눈질하더니 곧 게임을 멈추고 말했다. "아빠, 나 한 번만 먹어볼게"


한 번이 뭐야? 바로 컵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겨 말없이 먹는 데 집중했고, 어느새 음료는 깡그리 사라졌다. 그 음료는 제주 까망크림 푸라푸치노였다. 마치 광고 같지만 독자 여러분, 절대 광고가 아닙니다.  


텀블러만 있으면 제주는 어디나 스타벅스였다. 하늘색 바다와 텀블러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앉으면 다양한 여행 감성이 우리를 찾아왔다. 아들과 나는 그 풍경에 마음을 맡겨놓고 여유와 자유를 누렸다.


우리는 물과 커피를 스타벅스에서 사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어느 편의점에서나 살 수 있었고 물은 어느 식당에서나 구할 수 있었다. 텀블러 덕분에 1회용 물이나 커피를 사지 않고도 시원한 물과 커피를 원 없이 마셨다. 텀블러는 우리를 환경까지 사랑하는 멋진 여행자로 만들어줬다.

매거진의 이전글 삼양해수욕장에서 물 피하기 놀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