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버킷리스트, 가족을 품었어요

가족 버킷리스트는 영원한 추억

by 막시

버킷리스트라는 개념을 제법 의미 있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강창균, 유영만의 <버킷리스트>라는 책을 통해서입니다. 그 이후에는 버킷리스트라는 영화도 보게 되었습니다. 책과 영화 둘 다 인생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훌륭한 인연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분들에게 버킷리스트 책과 영화를 추천합니다.


이 버킷리스트를 부모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 계기는 두 번의 경험을 통해서입니다. 한 번은 어느 날 지하철로 출근하던 중 인터넷 카페에서 글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그 글은 이렇습니다.

“아버지가 많이 아프세요. 돌아가시기 전에 무엇을 하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 댓글에 달린 수많은 글들을 보고 주책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빠와의 좋은 추억이 하나도 없는 저는 그 글이 너무나 맘이 아팠습니다.

저는 부모에게 받은 것도 없고 해 드린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 글 이후 제법 오랜 시간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좀 더 오래 사셨다면 내 머릿속엔 어떤 추억이 남아 있을까?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나는 지금 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하고 스스로 답했습니다.

‘내가 아이라면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다. 그래서 자주 안기고 애교도 부리고 아빠의 얼굴도 만지고 싶다.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공놀이도 같이 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처럼 어른이라면 노인이 된 아빠를 자주 안아드리고 싶다.’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와 아들의 관계로 연결됐습니다. 나는 아빠로서 아이와 무엇을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그 글은 나에게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어렴풋하게 생각했던 버킷리스트가 선명하게 다가온 계기가 됐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이와 함께 할 버킷리스트를 구체적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됐습니다. 몇 년 전 우연하게 찾아왔습니다. 많은 중요한 일들은 정말 거짓말처럼 우연히 생긴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날 지인의 부친상 조문을 갔습니다. 상주였던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아버지가 저를 목마 태워 한라산까지 올라가신 적이 있어요. 지금 유난히 그때가 떠오르고 눈물이 많이 나네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지인의 선친께서 처음부터 목마를 태워 한라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인의 기억엔 목마를 탄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영원히 남는 기억이 됐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이런 다짐을 했습니다.

‘나도 아이에게 그런 좋은 기억들을 최소한 열개는 남겨주어야겠다.’


아이들과 함께 할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것 자체가 설레는 일입니다. 너무 많아서 열개를 뽑기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중에서 정말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열개를 정해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후회 없는 삶이 될 것이고 아이들은 두고두고 부모를 회상할 좋은 추억을 갖게 될 것입니다.

아이 입장에서 부모와 함께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에는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지금 당장 즐거운 주제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버킷리스트를 진지하게 생각하기에는 아직 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위한 제대로 된 버킷리스트를 정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생각을 물어보고 유추하고 거기에 아빠의 마음을 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 중에는 놀이공원이 꼭 들어갑니다. 우리 아이도 가장 즐거운 놀이로 에버랜드에서 노는 것을 꼽습니다. 그런데 이 에버랜드를 버킷리스트로 삼기엔 뭔가 빈약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에버랜드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빠의 마음을 입히기로 했습니다.


버킷리스트를 삼을만한 놀이공원으로 무엇이 있을까?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아이들과 해외에 있는 테마파크,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고 나중에도 두고두고 기억날 최고의 추억이 될 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아빠가 아이들과 테마파크에 가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 아빠와 아이 모두에게 부모 자식 간의 의미 있는 추억을 남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모에게는 아이와 함께 한 여행 중 하나 정도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아이는 테마파크는 좋았으나 테마파크와 우리를 분리하여 기억할 거야. 테마파크 안에 우리가 없게 되는 아쉬운 기억이 될 수도 있겠어. 그래서 우리와 아이 모두에게 버킷리스트다운 기억으로 남으려면 함께라는 가치를 부여해야지. 아이가 하려는 모든 체험을 함께 한다. 공포체험이 있다면 함께 들어가서 아이의 든든한 지킴이가 되고 공상 과학체험을 하면 함께 감탄하며 놀라야 한다. 함께 배트맨이나 슈퍼맨이 되어 하늘을 날고 바다를 가르는 경험을 해야겠어.’

저는 옛날 어린 시절과 달리 지금은 놀이기구를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교적 젊은 아빠지만 놀이기구를 타면 머리는 어질어질하고 가끔은 구토 직전까지 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버킷리스트를 실현할 때는 아이와 최대한 함께 모든 것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냥 아재였다면 못하겠지만 아빠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으로요. 버킷리스트를 최대한 빨리 실현할 것이라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디즈니랜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최종 결정은 아이들에게 맡겼습니다. 책과 인터넷으로 아이들에게 정보를 주고 아이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의견은 이랬습니다.

“둘 다 가고 싶다.”

“둘 다 가고 싶어 결정을 못하겠다.”

결국 선택은 우리 부부의 몫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디즈니랜드에 가기로 결정했고 비행기 티켓을 끊는 순간부터 설렜습니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엄마 아빠인 우리 부부가 더 설렜습니다. 아이들에게 기대감과 설렘을 주기 위해 최대한 여유를 두고 일정을 공지했습니다. 그 기간에 아이들은 도쿄 디즈니랜드에 관한 알아가면서 기대감을 키워갔습니다. 티켓을 예매한 지 두 달 뒤 우리 가족은 도쿄에 도착하여 도쿄 디즈니씨에서 버킷리스트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디즈니씨에서, 하루는 디즈니랜드에서 아이들과 아주 즐거운 이틀을 보냈습니다.

우리 가족 첫 번째 버킷리스트에서 아이들과 부모인 우리 부부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는 지금까지 엄마 아빠와 함께 한 시간 중 가장 즐거운 날 중 하나였습니다. 아이들은 노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놀이공원을 좋아하는 것은 진리니까요. 우리 부부는 하나도 빠짐없이 아이들과 함께 어트랙션을 타고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아내가 조금 피곤해했지만 대부분의 시간 함께 즐기고 웃었지요. 다행인 것은 디즈니랜드의 어트랙션이 힘들거나 광속으로 움직이는 것이 없어 아이들과 함께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살아가는 동안 수시로 엄마 아빠를 떠올릴 추억을 갖게 됐습니다. 디즈니 영화를 보거나 캐릭터를 볼 때마다 엄마 아빠가 생각날 것입니다. 언제까지일까요? 아마도 영원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해마다 디즈니 영화가 나오고 디즈니 캐릭터를 활용한 장난감과 옷가지들이 나옵니다. 엄마 아빠는 디즈니랜드와 함께 아이들 가슴속에서 영원히 간직될 것입니다.

혹여 나중에 자라 친구들과 디즈니랜드에 가거나, 자기들의 아이들과 함께 디즈니에 간다면 엄마 아빠와의 추억들이 더 크게 살아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엄마 아빠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많은 경험들입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느꼈는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도쿄 여행을 다녀온 초등학생 딸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빠, 나 일본어 배우고 싶어.”

아들은 디즈니랜드에서 치킨을 먹으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빠, 일본음식이 우리나라 음식보다 맛있는 것 같아.”

아이들은 100엔이 천 원쯤 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가서야 배우는 환율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지요. 물론 이것이 디즈니랜드에서만 느꼈던 것은 아닙니다. 디즈니랜드 일정 후에 긴자와 시부야 같은 도쿄 시내 여행도 했으니까요. 확실한 건 아이들은 세상이 정말 넓고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무엇을 얻었을까요?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행복한 추억을 주었다는 뿌듯함입니다. 아이들이 웃고 즐거워할수록 뿌듯함도 함께 커지는데, 우리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했으니까요. 아들은 자기가 기분 좋을 때 독특한 스텝으로 뛰는데 이틀 내도록 그런 스텝으로 뛰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하고 뿌듯하던지요. ‘우리가 부모 노릇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는 정말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얻었습니다.

우리 부부도 디즈니랜드가 처음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가보지 않았을 곳입니다. 아이들 덕분에 디즈니랜드에 갔고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어렸을 때 해보지 못했던 경험들을 했지요, 그 가운데 우리들이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함께 소리 지르고 웃고 환호하면서 행복했습니다. 가족이라는 운명공동체로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떠오를 장면을 남겼습니다.

셋째는 디즈니 영화를 볼 때마다 아이들과 나눌 이야깃거리를 만들었습니다. 디즈니 영화는 해마다 개봉하고 일 년에 여러 편씩 개봉하기도 합니다. 디즈니 영화를 볼 때마다 즐거웠던 디즈니랜드의 이야기를 하고 디즈니랜드에서 먹었던 돈가스와 닭다리를 찾아 일식당을 찾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와 함께하는 첫 버킷리스트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적정한 시점에 했습니다. 세상 많은 일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하는데 도쿄 디즈니랜드에서도 그 우연은 찾아왔습니다.

디즈니랜드의 몇 개 놀이기구는 117cm 키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들의 키는 115~116cm 사이였지요. 이 일을 어쩌나 하고 아들을 바라보는데 통과가 됐습니다. 운동화의 마법으로 117cm 이상이 됐던 겁니다. 만약 117cm가 안되어 누나는 어트랙션을 타고 둘째는 타지 못했다면 우리 부부는 난감했을 테고 둘째는 실망스러운 기억을 갖게 됐을 것입니다. 아주 다행이었지요. 우연을 가장한 필연,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다음 버킷리스트를 생각합니다. 다음 버킷리스트는 온 가족 한 달 유럽 자유여행입니다. 내년이면 우리 아이들이 초등 6학년, 초등 2학년이 됩니다. 우리 부부는 40을 넘긴 엄마 아빠...

초등 6학년 딸은 호기심도 많고 체력도 충분합니다. 해외여행을 하며 무엇인가를 배우기에 가장 적정한 나이라 생각합니다. 딸아이는 본인의 생각이 마구마구 넘치지만 아직은 엄마 아빠의 영향력 아래 있습니다. 온 가족 조화로운 여행이 되는데 문제없을 것입니다. 물론 내년은 어떻게 될지 모르긴 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엔 더 모르지요. 그래서 중학생이 되고 중2병이 생기기 전에 꼭 가려고 합니다.

초등 2학년은 집 떠나 유럽여행을 하기에 충분한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 가족은 넷이니 초등 2학년 아들이 살짝 양보를 해야겠네요. 그래도 아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한 달 동안 건강하게 여행을 하고 그 기간 동안 몸과 마음이 훨씬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40대, 50대가 인생의 황금기라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이때 하지 못하면 앞으로 영영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제가 하려는 온 가족 유럽 자유여행을 더 나이가 들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땐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지금과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잠깐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귀여운 우리 아이들은 자립할 나이가 된 성인이 되겠지요. 더 이상 부모를 찾는 나이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보다 체력과 열정이 많이 줄어들 테고 어쩌면 아이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될 수도 있겠지요. 결국 그때는 부모로 아이에게 무언가를 경험하고 보여줘야 할 때가 아닌 각자의 방식대로 보고 여행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먼 훗날이 아닌 지금 당장입니다. 아이들과 에펠탑을 보러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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