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가심비 최고의 행복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영화를 좋아합니다. 혼자 영화를 보는데 익숙하고 가끔은 독립영화를 보기도 하니까요. 다들 비슷하겠지만 제가 영화를 처음 만난 것은 어릴 때 TV를 통해서였습니다. 명절이나 어린이날 TV에서 만화영화를 방송했으니까요. <머털도사>나 <독고탁> 같은 만화영화를 봤었지요.
가끔은 명절이나 어린이날이 아닐 때도 영화를 봤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 유일하게 비디오가 있던 이웃집에서 영화를 봤었지요. 그 집에는 저보다 두 살 많은 형과 한 살 어린 동생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번씩 그 형이 어깨를 으쓱하며 "우리 엄마가 새로운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왔어"라고 말하면 온 동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쏜살같이 그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TV 앞에 온 동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때로는 숨죽이며 때로는 박장대소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그때 그 집의 TV 모니터는 20인치도 채 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멀티플렉스의 대형 상영관보다 더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그때 봤던 영화가 <철인 28호> 같은 만화영화나 <우뢰매> 같은 어린이 영화였습니다. 그때 모습을 생각하면 저절로 얼굴에 웃음이 피어납니다.
아쉽지만 영화와 관련한 저의 추억은 한동안 공백이 있습니다. 어이없지요? 그런데 사실입니다. 제가 극장에 처음 간 것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학교에서 단체로 <쉰들러 리스트>를 봤을 때입니다. 그것조차 중간고사(또는 기말고사) 마지막 날 보는 바람에 전날 밤샘의 여파로 졸면서 봤습니다. 어쩌면 졸아서 더 기억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제가 살던 곳은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는 시골이었고 읍내에는 당연히 극장도 없었습니다. 극장에 가려면 대구로 나가야 했는데 극장에 갈 만큼 가정형편에 여유가 있지도 않았지요. 그러니 영화가 즐거운 오락인 줄은 알았으나 볼 수 없었고 영화를 몇 번 보지 않았으니 영화가 가진 오락 이상의 것을 발견할 수도 없었습니다.
영화의 진면목을 알게 된 건 결혼을 하고 난 이후였습니다. 서른 살이 돼서야 그때까지 보지 못한 명화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게 된 것이지요. <인생은 아름다워>, <아이 엠 샘>,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영화가 서른 이후에 본 영화입니다. 아이와 함께 극장에 가지 못하니 혼자서 때로는 아내와 VOD로 좋은 영화를 하나씩 찾아보게 된 것이지요. 좋은 영화를 볼 때마다 왜 이렇게 좋은 영화를 이제야 보게 됐는지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 영화를 많이 못 본 것도 아쉬운데 제대로 된 영화를 거의 못 봤다는 생각을 하니 억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뒤늦게 제대로 된 영화를 봤지만 영화는 제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다큐 영화입니다. 매일매일 신혼 같은 삶을 살아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입니다. '나이 들어도 이렇게 낭만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 영화입니다. 그 영화 이후로 노부부가 손잡고 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멋지고 행복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고 주인공이었던 조병만 할아버지처럼 나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 얼간이>라는 인도영화도 많이 보셨을 텐데요. 영화는 부모가 정해준 꿈과 본인이 하고 싶은 삶 사이에게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 영화를 보고는 영화 속 아버지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하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로마시대를 그린 <글래디에이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에서 러셀 크로우가 주연한 주인공의 이름이 막시무스입니다. 그 영화를 봤는데 주인공이 너무 멋있었습니다.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멋질 수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지요. 그 영화를 본 이후로 닉네임을 써야 할 모든 상황에서 막시무스를 닉네임을 쓰고 있습니다. 특히 육 년째 활동하고 있는 마라톤 동호회에서는 늘 본명이 아닌 막시무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요즘은 제 이름보다 막시무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횟수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글로 써 놓고 보니 영화가 제 삶에 끼친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은 영화를 당연히 아이들도 봐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어리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첫째가 5살이 돼 극장에 갈만했을 때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영화는 DVD와 VOD로 시작했습니다. 처음 두 아이들과 함께 본 영화는 DVD로 봤던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극장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는 2010년 아들이 네 살이 됐을 때였고 가장 즐겁고 재미있게 본 영화는 <겨울 왕국>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매달 한 번 정해서 극장에 갔고 주말 일정이 꼬이거나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도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습니다. 2014년 <겨울 왕국>, 2015년 <인사이드 아웃>, 2016 <주토피아>, 2017년 <미녀와 야수>, 2018년 <인크레더블 2>가 특히 기억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선과 악의 구도가 뚜렷해서 통쾌합니다. 항상 선한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악을 응징하니까요. 화려한 영상미과 주옥같은 OST는 덤으로 오는 거지요. <겨울 왕국>의 'let it go', <미녀와 야수>의 'beauty and the beast'는 아직도 꾸준히 듣는 OST입니다.
아들이 7세, 딸이 11세가 됐을 때는 12세 영화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모험, SF, 가족영화 위주로 시작했지요. 모험, SF 영화로는 <스타워즈>, <토르>, <쥬만지>, <쥬라기월드> 같은 영화가 있었고 가족영화로는 <아이 캔 스피크>, <신과 함께>,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영화를 봤습니다.
어느 날 와튼스쿨 심리학 교수가 애덤 그랜트 교수가 쓴 <오리지널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애덤 그랜트 교수는 책에서 테슬라의 앨런 머스크,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등 4차 산업을 선도하는 CEO들이 스타워즈,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소설과 공상과학영화를 보고 꿈을 키웠고 영화에 나왔던 기술을 현실화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 내용을 읽었을 때 제 생각이 전문가에게 공인됐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흐뭇했습니다.
가족영화는 그 자체로 의미 있습니다. 가족 간의 사랑과 화해를 그린 영화니까요.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그린 <아이 캔 스피크>는 동생과 화해를 다루고 이병헌이 주연한 <그것만이 내 세상>은 형제간의 우애를 다룹니다. <신과 함께-죄와 벌>은 부모의 사랑에 대해 다룹니다. 잔잔한 감동은 물론 어떤 삶이 의미 있는 삶인가를 은연중에 알게 해 준 울림 있는 영화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맛있는 식사를 하는 코스는 큰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노력 없이 얻기에는 너무나 좋은 영향을 줍니다.
영화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볼까요?
작년에 아들이 자기 별명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한때 "나는 자라서 공룡이 될 거야."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나 “티라노”로 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는 타르보가 더 좋아. 타르보로 할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아들의 애칭은 <타르보>입니다. 이 <타르보>는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이라는 영화에서 왔습니다. 이렇게 우리 아들의 애칭은 <축 타르보>가 됐습니다.
작년 우리 가족은 신석기인과 청동기인의 축구 경기를 주제로 한 <얼리맨>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봤습니다. 그 축구를 보고 아들은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1학년 2학기부터는 방과 후 수업으로 <로봇과학>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화요일 첫 수업을 하고 금요일인 오늘까지 계속 로봇과학을 이야기하더니 급기야 로봇 과학자가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로봇 과학자는 어디서 왔을까요? 힐링 로봇이 등장하는 <빅 히어로>가 씨앗을 뿌렸습니다.
작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본인이 공룡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아들은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아이가 됐습니다. 영화 덕분에 아이가 더 다양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참 고맙습니다.
딸은 어떨까요? <해리 포터>를 보고 영국의 해피포터 박물관을 가고 싶어 하고 <패딩턴>을 보고 패딩턴 역을 가고 싶어 합니다. 딸은 아들에 비해 영화에서 좋은 영향을 못 받는 것 같지요? 정말 그럴까요?
딸은 천상 자유 영혼입니다. 그래서 세계 여행을 꿈꾸고 여행을 하고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은 제가 바라는 딸의 삶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딸에게 말하지 않은 아빠의 바람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니 영화가 딸에게 더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지 않나요?
아이들이 12세가 되지도 않았는데 왜 12세 관람가를 보는지 궁금해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아이들은 이미 영화의 12세 영상 수준에는 노출되어 있고 그 정도는 봐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의 지적 수준이 미치지 못해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이 있을지언정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정도의 폭력성과 선정성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12세 영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가 앞에서 이야기한 영화 <신과 함께>, <아이 캔 스피크>, <그것만이 내 세상> 전부가 12세 관람가 영화입니다. 아이들이 보기에 적합하지 않을까요? 제 기준에는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데요? 특히 부모와 함께 봤을 때는 말이지요.
대신 15세 관람 영화는 부모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적절한 영화도 있다는 거지요. 최근 아들에게 이순신 위인전 책을 읽어준 적이 있습니다. 문득 이순신 장군을 그린 영화 <명량>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봤습니다. 이 영화가 15세 영화입니다. 전쟁영화다 보니 살생 장면이 많이 나오고 목이 잘리는 등 잔인한 장면도 나옵니다. 15세 영화로 판정될 만했습니다. 하지만 그 영화는 아이에게 교육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서준아, 전쟁은 정말 무섭고 잔인한 거란다. 전쟁은 비정상적이고 유일하게 살인이 인정되는 상황이란다. 현실에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범죄란다. 이순신 장군과 군인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왜군을 무찌른 거야. 저렇게 하지 않으면 가족도 나라도 없어지니까."
모든 영화가 <명량> 같지는 않았습니다. 한 번은 딸이 사정사정하는 바람에 11세이던 작년에 둘이서 사기꾼 조희팔을 모티브로 한 영화 <꾼>을 봤습니다. 15세 영화라 조금 꺼림칙했지만 딸이 꼭 보고 싶다고 해서 아들은 두고 둘이서만 봤습니다. 결론은 괜히 봤습니다. 욕이 너무 많았습니다. 한 번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는 제가 보지 않은 15세 관람가 영화는 안 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보호자가 있으면 아이의 나이가 어리더라도 15세 영화까지는 볼 수 있도록 <보호자 동반 관람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영화 관람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이지요.
앞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영화를 함께 볼 생각입니다. 모험, SF, 가족, 애니메이션 등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영화를 골라서 말이지요. 아이들과 함께 볼 영화를 고르고 극장을 향하는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볍고 즐겁습니다. 극장에서 먹는 팝콘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요. 재미있고 꿈과 희망을 주는 영화를 볼 때는 또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지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영화를 되돌아보며 한 번 더 웃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는 또 얼마나 의미 있는지요. 영화를 볼 때마다 즐거움이 쌓이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도 쌓이니 내일 당장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