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어른이 되서도 나날이 성장해요

부성애, 나를 성장시킨 근원

by 막시

아이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말은 꼭 저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철부지 어른 아이에 머물러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모성애와 부성애는 아이를 낳고 안 낳고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성애와 부성애가 아이를 낳아야 생기는 것이라면 애초부터 저에게 부성애는 존재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부성애는 아이를 내 아이로 생각하는 순간부터 생기는 아이에 대한 아빠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엄정화 씨가 주연한 영화 <미스 와이프>에서 영혼이 바뀌어 갑자기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모성애를 보여주는 주인공 연우와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아기 오리 초록의 엄마가 되는 암탉 잎싹은 아이를 내 아이로 여기는 데서 모성애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제 생각을 잘 보여주는 엄마의 모습입니다.


모성애와 부성애에 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부성애를 보여준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감동하게 했던 영화로 ‘부성애란 이런 것이다.’를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영화 속 아빠인 귀도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들 조슈아와 함께 나치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아빠는 아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수용소에 갇힌 상황을 놀이라고 이야기하고 아이가 실제로 놀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아빠 귀도는 아들 조슈아를 위해 시종일관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아빠의 노력이 힘겹다거나 처절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아빠의 모습을 보며 실제로 그 상황을 놀이로 받아들입니다.

영화의 끝이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빠 귀도는 독일의 패전 소식을 듣고 아빠와 함께 같은 수용소에 있는 아내를 찾아 나섭니다. 불행의 끝이 코앞으로 왔는데 안타깝게도 아빠 귀도는 독일군에게 들키고 말지요. 다행히 아들은 독일군에게 발견되지 않습니다. 아빠 귀도는 아들에게 자기가 찾으러 올 때까지 숨어있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끌려가는 순간까지 아이에게 웃음과 윙크로 아빠의 부성애를 보여주며 결국 아이를 살립니다. 아빠의 부성애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순간이지요. 저는 그 장면을 보며 눈물을 제법 흘렸습니다. 혼자 봐서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과 함께 봤으면 애써 눈물을 감추며 제 감정을 숨겼을 테니까요. 그랬다면 아빠 귀도가 보여준 부성애의 감동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소화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영화의 여운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그래서 그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가끔 영화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아빠 ‘귀도’를 생각해보면 그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힘겨웠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리고 저에게 묻습니다.

‘나는 영화 속의 귀도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나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 귀도가 보였던 부성애를 보여줄 수 있을까?’

영화를 본 직후에도 ‘모르겠다.’가 저의 대답이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상황에서도 ‘모르겠다.’가 저의 답입니다. ‘못한다.’도 아니고 ‘한다.’도 아닙니다. 정확히는 ‘그 상황이 되어봐야 알겠다.’가 저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믿음은 있습니다. ‘나의 부성애도 주인공의 부성애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 말이지요. 이 믿음은 저만이 아닌 세상 모든 아빠의 믿음일 것입니다.


아빠가 된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부성애가 생기던 순간)과 지금을 비교하면 지금이 더 괜찮은 사람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괜찮은 아빠보다는 괜찮은 사람을 말합니다. 첫째가 뱃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한 2007년 봄부터 2019년 오늘까지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금씩 변해 항상 어제보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있는 거지요. 12년 전에 제가 한 행동을 떠올리면 참으로 어리석고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많습니다.

예전에 입에 욕을 달고 다니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고나서부터는 조금 나아졌습니다. 물론 평소에는 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버릇이 쉽게 고쳐질까요? 화가 나거나 옛날 어린 시절 함께 욕을 하며 지내던 친구들을 만나면 여지없이 욕을 했습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접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시절입니다.

저는 아빠가 되고 나서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바꿔야 할 것이 없을까?’

스스로 물어보며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다짐을 했습니다.

'일단 욕은 하지 말자. 최소한 내 아이가 있는 우리 집에서라도 절대 욕을 하지 말자. ‘

그렇게 괜찮은 사람을 향한 여정을 한지가 11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저의 모습은 어떨까요? 누가 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다들 짐작한 대로 아이가 만들었고 부성애의 힘입니다.

물론 지금도 스스로 만족할 만큼 괜찮은 사람이 되기에는 멀었습니다. 하지만 예전 저와 지금의 저를 비교하면 제법 괜찮게 변화된 제 모습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입가에 미소도 지어지고 기분도 좋습니다.

얼마 전에 어린 시절 같이 욕하며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만나 술 한 잔 하게 됐습니다. 친구가 제 술잔에 술을 채우며 말하더군요.

“너는 아가 참 괜찮게 많이 바뀌었다. 멋지다.”

기분이 좋더군요. 그러면서 저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야, 너도 참 많이 바뀌었다. 지금 이렇게 내 앞에 앉아있는 네가 옛날 그 사고뭉치라고 하면 누가 믿겠냐?”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특히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더 바뀌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도 그 말에 굉장히 공감합니다. 제가 아는 많은 사람들도 정말 바뀌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사람을 바꾸는 계기가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으뜸이 부성애가 싹트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주위에는 아이들 덕에 바뀐 친구들이 많습니다. 방금 이야기했던 친구도 그중에 하나지요. 제가 지금도 꾸준히 만나는 친구 그룹 중에 가장 험하게 놀았던 친구들이 중학교 친구들입니다. 다들 욕을 생활언어로 사용하고 일탈과 정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친구들이지요. 3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모두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짐작하는 대로 다들 많이 바뀌었고 사람 구실을 하며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습니다.

'그때 그 꼴통들이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을까?'

예전에는 정말 궁금해서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바뀌는 제 모습을 느끼며 스스로 답을 찾게 됐습니다. 우리 모두를 바꾼 힘은 바로 부성애라는 것을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됐으니까요.


블로그에서 인상 깊게 봤던 글을 소개합니다. 어느 여자분이 담배를 피우던 남자 친구에게 미래에 태어날 아이를 위해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그 멋진 미래의 남편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하고 실제로 담배를 끊었다고 합니다. 그 글을 읽으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와! 되게 멋지다.'

그분은 최소 수년에서 최대 10년 이상 담배를 피웠을 텐데요. 정말 대단한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흔히 남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합니다.

"담배 끊는 사람과는 친구 하지도 마라."

무슨 말일까요? 담배를 끊기가 그만큼 어렵고 담배를 끊는 사람은 참으로 독하다는 것이지요.

이 분에게 담배를 끊게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요?

제가 그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부성애가 조금은 일찍 생겨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빠들은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다짐을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괜찮은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다짐 말이지요. 그렇게 남자는 아빠가 되고 부성애를 키우며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해갑니다. 저도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부성애가 생기고 좋은 아빠가 되는 행동을 하나씩 하나씩 시작했습니다. 벌써 10년이 넘었고 되돌아보니 그 모든 행동들이 단지 아빠로서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저를 많이 성장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빠로서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기록했던 육아일기,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다양한 책,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읽었던 책들과 다양한 방법의 부모공부, 혹시나 아이들이 보고 따라 할까 봐 더 철저히 지켰던 공중도덕...

이 모든 것들이 부성애로 시작했지만 결국 나를 성장시켰습니다. 부성애가 없었다면 애초에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고맙고 왜 생겼는지도 모를 이 부성애가 너무나 감사한 사람입니다. 더 좋은 것은 이 부성애가 멈추지 않는 샘물처럼 제가 죽는 날까지 솟아날 거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2년 동안 성장했지만 아직 40년, 50년, 길게는 60년 이상 더 성장할 여지가 남은 사람입니다. 지금도 바뀐 내 모습이 흐뭇하지만 앞으로는 더 흐뭇할 것이라는 생각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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