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오늘은 무엇을 가르쳐 줄 거니?

아이는 꼬마 선생님

by 막시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예전보다 지금이 더 멋진 배우들이 있습니다. 그런 배우를 볼 때면 더 기분이 좋습니다. 이건 배우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요. 주위 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날이 괜찮아지는 사람을 만나면 더 기분이 좋아지고 더 자주 만나고 싶어 집니다. 인지상정이니까요.

가끔 스스로 묻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조금 부끄럽지만 저도 예전에 비해 꽤 괜찮아진 사람의 부류에 속합니다. 한편으로는 예전에는 괜찮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제가 오늘이 제일 괜찮은 사람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에서도 부성애에 관해 말했지만 '아빠가 된 것'이 그 이유입니다. 아빠가 되면서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더 크게 느끼게 되었고 좀 더 열심히 살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삶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하루 만에 '짠'하며 마법같이 괜찮은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루가 더해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더해 1년이 되었고 그렇게 쌓이고 쌓여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가끔은 10여 년 전의 저와 오늘의 저를 비교하며 ‘내가 어떻게 이만큼이나 성장했을까’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지금이야 10년이라는 세월이 쌓여 성장이 느껴지지만 1년 전, 2년 전의 나를 비교하면 변화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빠가 되어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뀌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지요.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저의 성장은 늘 멈추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늘 제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하나씩 만들어주었습니다.


가만히 누워만 있던 아이들이 걷고 뛰어다니고 말을 하면서 저의 행동과 말을 따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딸아이는 어렸을 때 유난히 각종 물건들의 냄새를 많이 맡았고 아들은 본인의 귀를 많이 만졌습니다. 딸의 습관은 없어졌지만 아들은 여전히 귀를 만집니다. 그 행동은 제가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습관이었습니다. 조금은 버리고 싶던 습관이었지요. 아이들의 그런 행동을 본 순간 ‘내 아이들이 나를 따라 하는구나, 오늘 나의 말과 행동이 아이의 내일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나의 거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저는 냄새를 맡거나 귀를 만지는 사소한 행동부터 작은 기다림조차 참지 못하는 습관들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버렸으면 하는 습관들이 하나씩 제 곁을 떠났습니다.


아이들이 나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든 이후 변화된 저의 가장 기특한 행동은 인사하기입니다. 조금만 얼굴이 익숙해도 인사를 합니다. 경비 아저씨는 물론이고 동네 요구르트 아줌마까지 얼굴을 몇 번 본 사람은 가리지 않고 인사를 합니다. 한 번은 출근을 할 때 자주 보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에게 인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자주 뵈니 오늘부터 인사를 드릴게요."

그랬더니 그분도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하하, 저야 좋지요."

그렇게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한 날이 있습니다. 그날 인사도 전혀 계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그냥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해답은 아이들이 제 기대만큼 인사를 잘하지 않았던 것에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인사도 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니 조금 더 인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천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전보다 훨씬 인사를 잘하는 아이들이 됐습니다. 역시나 아이는 아빠를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가끔 아이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열심히 인사 잘하는 사람이 되었을지, 지금처럼 감사하며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자문합니다. 그리고 대답합니다.

‘아마도 아이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딸은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더니 도덕심과 양심으로 무장하고 질서의식으로 똘똘 뭉친 아이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공중도덕이나 질서에 관해 배울 시기니까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둘째를 키워보니 모든 아이들이 그런 건 아니었고 딸이 유난히 바른생활 어린이였습니다. 딸은 엄마 아빠에게 높은 수준의 양심과 도덕심을 요구했고 딸의 요구에 부응하다 보니 조금은 더 도덕적인 사람이 됐습니다.

한 번은 어느 체험관에 가서 동생의 입장료를 내지 않았더니 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서준이 입장료는 왜 안내? 돈을 내야지."

엄마 아빠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고 본인의 도덕성과 양심에 납득되지 않는 상황일 때는 꼭 지적을 했습니다. 그럴 때는 늘 합리적인 이유로 딸을 납득시켜야 했습니다. 그때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저기 표시된 나이는 만을 이야기하는 거야. 우리 나이 기준이 아니고 만 나이 기준이야, 미국나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때서야 딸은 납득을 했습니다. 때로는 사실이었고 때로는 거짓이었습니다. 어쨌든 딸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로 설명해야 했습니다.

딸의 지적은 체험시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식당에서도 여행지에서도 영화관에서도 아들의 이용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됐을 때는 여지없이 지적했습니다.

몇 번은 임기응변으로 넘길 수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우리 부부의 양심 수준을 높이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딸아이에게 설명할 일은 몇 번 더 생겼습니다. 아이는 여전히 우리 나이와 만 나이가 헷갈리는 시기가 있었으니까요. 그럴 땐 엄마 아빠로서 당당히 돈을 아낄 수 있었습니다. 굳이 안내도 되는 돈을 내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요.

처음에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장소마다 기준이 다르고 약간은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미취학 아이는 무료로 하고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이용료를 내면 좋겠습니다. 대중교통 이용료처럼 말이지요.


딸은 요즘도 본인의 기준으로 불합리하거나 도덕적이지 않은 일이 생기면 항상 엄마 아빠에게 본인의 생각을 바로 이야기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부부는 이야기합니다.

“이 아이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판사나 경찰이 되어야겠다.”

저는 제 인생에서 지금이 공중도덕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딸 덕입니다. 딸은 유치원을 다니면서 빨간불에는 건너지 않아야 하고 파란불에 건너야 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손을 들고 건너기도 했지요. 선생님이 가르쳐준 건 배운 대로 해야 한다며 꼭 지켰습니다. 이것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빨간불과 파란불을 몰랐을 때는 빨간불과 파란불을 잘 지키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횡단보도가 아닌 길로도 건넜고 빨간불이라도 차가 없으면 건넜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빨간불인데 왜 건너?"

아차, 내가 잘 못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그 말은 정말 한 번으로 족했습니다. 그때부터는 횡단보도를 찾아서 건너고 파란불이 아니면 건너지 않으려고 하지요.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누구보다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있었으니까요.

이제는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제법 마음이 불편합니다. 예전에는 제가 그랬는데 말이죠.


우리 집 아이 둘 다 초등학생이 된 지금은 두 아이 덕분에 생활 속에서 인성을 배우고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영화 <쥬라기공원 폴른 킹덤>을 봤을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 영화는 저의 기대에 살짝 못 미쳤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 다른 사람들은 영화를 어떻게 봤나 궁금해하며 관객 평을 검색해봤습니다. 관객들은 영화에 대한 내용과 평가보다 극장에 와서 시끄럽게 하는 아이들, 그걸 제지하지 않는 부모들에 대한 비난이 더 많았습니다.

“극장도 <No Kids Zone>이 필요하다.”라는 말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우리도 옆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 아들이 조금 지루해하며 밖에 나가자고 할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귀에는 작은 소리였지만 옆 사람에게는 분명히 거슬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때 밖으로 나올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아이들이 시끄러워 영화에 몰입 못했다는 평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며 물었습니다.

“우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겠지?”

“그건 우리 생각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는지가 중요하지, 아무튼 더 조심해야 되겠어.”

“우린 괜찮았을 거야...”

우리는 괜찮았을 거라는 자기 위안과 희망 섞인 대답으로 아내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우리 부부는 극장이나 식당에서 다른 사람을 충분히 배려하고 있는지 아이들에게 배려에 대한 교육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늘 자문합니다. 식당이나 극장에 가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거나 여기저기 다니며 다른 사람을 방해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면 아이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것을 아니까요.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말보다 행동으로 저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무엇인가를 배워왔을 때는 마치 꼬마 선생님처럼 저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늘 성장의 근원인 부성애가 발휘되었지요. 아이의 성장과 부성애의 상호작용으로 저는 늘 아이와 함께 조금씩 성장해 왔습니다. 그렇게 아이도 자라고 저도 자라고 있습니다.

첫째인 딸이 곧 6학년이 되고 중학교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사춘기가 되겠지요.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또 어떤 상황으로 저를 성장시킬지 기대가 됩니다. 그런 상황이 내일 당장 올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그 상황을 마주했을 때 기분 좋고 유쾌하진 않을 것입니다. 저는 또 바꿔야 하고 때로는 인내와 노력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는 반드시 성장이라는 뿌듯함이 따라왔습니다. 앞으로 1년 2년이 차곡차곡 쌓여 10년이 지나면 저는 또 지금과는 달리 더 많이 성장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저도 같이 성장시킬 테니까요.


문득 아이가 없었다면 결혼하던 29세 청년의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나에게만 더 관대한 사람, 조금도 기다리지 못하는 여유 없는 사람, 공중도덕은 너만 지키면 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말이지요.

41세가 되었는데 여전히 29세라면...

조금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아이의 성장 덕분에 함께 성장하는 저는 오늘이 제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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