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육아일기는 우리가족의 실록입니다

아빠의 수양록이 된 육아일기

by 막시

첫 아이가 태어나기 두 달여를 앞두고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창 출산용품을 준비할 때였습니다. 병원에 다녀온 일, 육아용품을 산 일 등 아이를 위한 우리의 일상이 주된 내용이었지요. 그때 뱃속에 있던 딸이 벌써 12살이 되어 육아일기를 쓴지도 11년이 넘었습니다. 가끔 육아일기를 뒤져보면 완전히 잊고 있었던 옛날 기억이 다시 되살아납니다. 어떤 것은 아예 기억이 나지도 않는 내용도 있습니다.


다른 아빠들은 잘 쓰지 않는 육아일기를 저는 왜 쓰기 시작했을까요? 제가 육아일기를 쓴 이유는 둘째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쓴 일기에 적혀 있습니다.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이 일기는 네가 성장했을 때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너의 일상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란다. 대부분의 내용은 우리 가족 이야기가 될 것이며 너와 네 누나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아빠는 전편(딸아이 위주의 육아일기)에 너의 누나 이야기를 주로 썼지만 이제 너의 이야기를 주로 하려고 한다. 물론 네 누나 이야기도 많을 것이기에 나중에 똑같이 하나씩 전해줄 것이다. 아빠는 너와 네 누나가 항상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의지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물론 네가 성인이 되고 아빠가 될 때, 사회에서 훌륭한 역할을 할 때까지 아빠도 함께 하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제가 육아일기를 쓴 이유는 사람은 아주 어릴 때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육아일기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아이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쓰려고 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스스로 일기를 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육아일기를 쓰다 보니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는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간다고 바로 일기를 쓰는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둘째가 올해 여름방학부터 일기를 조금씩 쓰고 있으니 열 살이 되면 본인의 일기를 스스로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쓰는 육아일기는 말 그대로 일기라서 형식과 내용이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꼭 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분기에 한 번이나 반기에 한번 정도 쓰는 내용으로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일, 아이의 최대 관심사, 우리와 선생님이 판단하는 아이의 성격 등 나중에 아이가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미래를 찾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아이의 생각과 관심사는 수시로 변하고 다양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도 바뀌고 좋아하는 놀이도 바뀝니다. 이런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일기를 쓰면 나중에라도 아이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본인의 재능을 보다 잘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득 과거 오늘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일기장을 뒤적여 봤습니다. 2017년 6월 18일 일요일 육아일기를 보니 그날 우리 딸이 태권도 2품 심사를 본 날이네요. 아들은 한창 레고를 즐기던 때라 레고 놀이방에서 2시간을 놀았던 날이기도 합니다.

2016년 6월 20일 월요일 육아일기를 보니 직전 토요일 딸이 처음 친구들과 함께 체험학습을 간 날이었습니다. 아들은 놀이터에서 열심히 딱지치기를 한 날이고요. 한창 딱지치기를 좋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2015년 6월 18일 목요일 육아일기에는 딸이 생명과학 수업을 제일 좋아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집에 다양한 식물과 달팽이, 새우를 한창 키우던 때였습니다. 아들은 승부욕이 강하고 칼싸움, 총싸움, 자동차를 좋아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근데 이 일을 어쩌나요? 고작 3년 전인데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마지막으로 4년 전인 2014년도 한번 찾아봤습니다. 2014년 6월 16일 월요일 육아일기에는 주말에 처가와 본가에 간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와 기차로 처갓집이 있는 대구로 갔고 저는 출장지였던 춘천에서 처가로 갔다고 적혀있네요. 춘천을 떠올리니 약간은 희미하게 기억이 날 듯합니다. 다음날 본가에 가서 저의 생일 파티도 했다고 되어있네요. 육아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영원히 기억하지 못할 추억입니다. 이처럼 육아일기는 우리 가족의 생생한 가족 역사가 되고 있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이 일기장을 보면 자기들의 어린 시절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사랑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요.

작년 제가 일찍 집에 와서 저녁식사 준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날은 운동을 안 한지 며칠이 지나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운동보다 딸이 너무나 좋아하는 장모님 표 쇠고기 된장찌개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집에 오는 길에 쇠고기와 각종 야채를 샀습니다. 집에 와서 쇠고기 된장찌개와 고등어구이를 준비했지요. 음식을 많이 해본 엄마들은 잘 알겠지만 쇠고기 된장찌개를 만드는데 의외로 시간도 제법 걸리고 손도 많이 갔습니다. 그래도 우리 딸이 좋아하니 제대로 된 장모님 표 쇠고기 된장찌개를 끓이겠다는 마음으로 청양고추로 매콤한 맛을 만들고 대파와 표고버섯으로 비주얼도 갖췄지요. 거기에 고등어도 구웠고요. 쇠고기 된장찌개로는 제대로 된 만찬 느낌이 안 나니까요.

제가 저녁 준비를 마칠 때쯤 아내가 아이들을 태권도장에서 데리고 왔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식사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먼저 자기는 간단하게 먹어서 식사를 안 해도 된다고 하더군요. 김이 채 빠지지도 않았는데 딸도 간식을 먹었다며 몇 숟가락만 먹고 숟가락을 놓았습니다. 제 마음이 어땠을까요? 갑자기 굉장히 화가 나더라고요. 운동을 하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을 참고 정성 들여 음식을 준비했는데 남편과 아빠의 마음을 너무나 몰라줬던 거지요. 아내와 딸의 입장에서는 그냥 평소대로 행동하고 있었던 것뿐이지만요. 어쨌거나 그 상황에서 제가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지요. 딸은 하필 그때 아빠의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거나 가로젓기를 했습니다. 안 그래도 화나는데 딸의 행동이 나름 화 낼 명분이 됐습니다. 그걸 꼬투리 삼아 딸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딸은 이유 없이 제 화풀이 대상이 됐고 가장이 화를 내니 가족의 분위는 정말 얼음처럼 차가워졌고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날 우리 가족의 상황은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무도 대화가 없었고 냉기가 도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 각자 잠이 들었던 거지요.

모두가 잠든 사이 혼자 육아 일기장을 꺼냈습니다. 그날 저녁 있었던 시간을 돌아보고 일기를 쓰는데 단순히 일기장이 아니라 저의 반성문이었습니다. 미리 아내에게 저녁을 준비한다고 알렸더라면, 딸에게 화를 내지 않았더라면, 아내와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사과를 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일기장에 저의 반성문을 썼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딸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아빠가 미안하다. 그렇게 화를 내지 않아도 됐는데 아빠가 너무 화를 냈구나. 정말 미안하다, 딸. 그리고 서영이도 아빠 이야기에 고개로 답하지 말고 말로 답해주면 좋겠구나.” 그리고는 딸을 포근하게 안아줬습니다.


이런 일이 처음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어릴 때는 더 많았지요. 처음에 부모가 되고 나서 초보 부모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제법 힘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아이들에게 화도 많이 냈습니다. 제가 성인군자라면 속으로 삭히고 참았겠지만 저도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화도 많이 냈고 짜증도 많이 냈습니다. 그럴 때마다 육아일기를 쓰면서 잘못된 말과 행동에 대해 반성했고 아빠로서 고쳐야 될 부분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물론 제가 전날 반성했다고 바로 고쳐 다음날부터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잘못과 반성을 반복하는 사이 잘못된 행동은 하나씩 하나씩 없어지고 좋은 행동은 하나씩 새로 생겼습니다.

문득 육아일기가 단순히 가족의 역사 넘어 저의 수양록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와 다퉜을 때나 아이들에게 화를 냈을 때는 늘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반성과 어떻게 개선해야 될 것인지에 대한 기록을 육아일기로 꾸준히 남겼으니까요. 돌이켜보면 실수나 잘못을 한 날 육아일기를 쓰면서 반성하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빠로서 좀 더 나은 저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해가 갈수록, 아이가 성장할수록 아빠인 나도 성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요즘은 마지막이 될 일기장에 육아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일기장이 제법 두껍거든요. 마지막 육아 일기장을 어떤 내용으로 채울지 늘 고민합니다. 우선 내용을 더 풍부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아이들이 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 요즘 제가 실천하는 한 줄 아침편지,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친구와 학업에 관해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 아이들이 오늘 읽고 있는 책, 아이들의 선생님, 엄마 아빠의 근황 같은 이야기를 수시로 써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내용만 채워도 제법 그럴듯한 일기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저의 수양록의 역할도 변함없겠지요. 실수나 잘못을 할 때는 모두가 잠든 후 어김없이 혼자 거실에 앉아 육아일기에 반성문을 쓰고 있는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반복을 하게 될 테지요.

아이들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지금처럼 아이들이 건강함에 감사하고, 행복한 아이로 자라길 바라면서요. 이것은 마지막 육아일기를 쓰는 저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요. 늘 아이들에 대한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이고 아이는 늘 건강하니 감사한 마음보다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앞설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 오늘은 조금 힘들어도 괜찮다는 생각도 언제든지 살아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겠지요. 육아일기를 쓸 때만이라도 한 번씩 되새기고 반성하고 또 다짐하면 실수와 잘못은 또 조금씩 줄어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으니까요.


아이들에게 이 일기장을 언제 줄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결혼을 할 때 줄 수도 있고 제가 좀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또는 유품으로 남겨줄 수도 있겠지요. 물론 그전에 제가 모르는 사이 아이들이 이 육아일기를 차근히 읽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언제 보든 아이들에게는 의미 있는 기록이 될 것입니다.

퇴근 후 아이들을 태권도 도장에서 집으로 데려오면서 수시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딸, 오늘 즐거웠어?"

"어, 오늘은....."

"아들, 오늘 즐거웠어?"

"어, 오늘은... 아빠, 그리고 내일은...."

"아들, 딸 즐겁지 않으면 아빠한테 꼭 이야기해야 한다. 아빠는 늘 너희들을 즐겁게 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알겠지?"

이렇게 보내는 우리 가족의 일상은 고스란히 육아일기에 담깁니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날 저와 아내가 또는 아이들이 오늘 우리의 일상을 강제 소환할 것입니다. 때로는 웃음과 행복으로 때로는 감동과 눈물로 오늘의 일상을 떠올릴 것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면 육아일기를 쓰다 멈추고 미래의 어느 날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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