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나침반이 된 아침편지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작년 3월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한 줄 아침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첫째는 5학년, 둘째는 초등학생이 되더니 취침시간은 조금씩 늦어지고 그만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늦어졌습니다. 아침 돌봄 교실에 가는 첫째는 일찍 일어나지만 둘째는 우리가 출근할 때쯤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가 딸과 아침에 이야기할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딸은 우리가 출근할 때쯤 제 방에서 겨우 나와 인사를 하는 것이 우리 집의 상황이었습니다. 아이와 대화를 할 여유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딸이 늦게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인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저는 뭔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아침에 아이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한번 못하고 헤어진다는 사실이 불편했으니까요.
그즈음 저는 초등학교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제법 읽고 있었습니다.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첫째도 본격적으로 고학년이 되다 보니 육아하는 아빠에서 교육하는 아빠로 방향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지인에게서 현직 교사인 김진수 님이 쓴 <독서교육콘서트>라는 책을 추천받았습니다. 아이들의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게 딱 맞는 책이라 아주 만족하며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인 김진수 선생님은 아이들의 행동에서 칭찬이나 격려할 거리가 생기면 바로 작은 쪽지에 써서 건넸다고 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 문득 아침 출근 전에 아이들에게 한 두 줄로 된 아침편지를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아침편지를 남길까 생각하던 중 집에 있던 화이트보드에 눈이 갔고 거기에 매일 아이들에게 아침 편지를 남기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딸아이의 방 앞에 화이트보드를 걸어놓고 매일매일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 줄 편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딸은 우리 부부가 출근한 뒤에 아침편지를 읽습니다. 한 줄 편지는 식탁 바로 옆 딸의 방 앞에 걸려있는 화이트보드에 있으니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사를 해서 아침 편지의 위치를 조금 바꾸었습니다. 지금 아침편지를 쓰는 화이트보드는 딸의 방과 현관 사이에 걸려있습니다. 예전보다 더 잘 보이도록 했습니다.
처음에 아침 편지를 시작했을 때는 아침 편지 쓰는 것을 깜빡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아침 돌봄 교실을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아들이 한마디 했습니다.
“아빠, 오늘 아침 편지 안 썼어? 아직 어제 편진데?”
“어, 그러네. 아빠가 깜빡했네.”
그렇게 대답하고 바로 오늘자 편지로 바꿨습니다. 아빠가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아들입니다. 아들은 유난히 호기심도 많고 말도 많습니다. 자는 동안 엄마 아빠에게 무슨 말을 할지 말풍선을 머릿속에 그리는 건 아닐까라는 착각이 들 때도 있을 만큼 말이지요. 아들은 아침마다 오늘은 무슨 내용이 써져 있을까 궁금해하며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아침편지를 읽습니다. 딸에게 남기는 아빠의 마음이 더 큰 목적이었는데 아들과 아침편지를 소재로 대화를 하고 있으니 예상치 못한 효과도 얻었습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묻기도 하고 본인의 이야기가 없으면 자기 이야기는 왜 안했냐며 섭섭해하기도 합니다. 저는 아들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렇게 매일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 아침편지를 쓸 때는 언제까지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가능한 오래, 최소한 아이들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아침편지를 보는 아들을 보며 제게 말했습니다.
"여보, 서준이도 나중에 저렇게 편지 쓰겠지?"
“어???”
아내는 아들이 아빠의 편지 쓰는 모습을 보고 자라니 아들도 손자 손녀에게 아침편지를 당연히 쓰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저 말을 했을 때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되물었던 거지요. 그런데 되물으면서 아내의 생각을 이해했습니다. 아내의 말이 이해되니 우리가 쓰고 있는 아침편지가 되게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과 아들이 자라 손자 손녀에게 편지 쓰는 모습을 상상하니 더없이 흐뭇해졌습니다. 이 아침편지가 우리 가족의 문화가 되고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유산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처음에 아이들에게 쓴 아침편지는 아이들의 일상에서 찾아낸 내용이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관심과 애정을 더 많이 가질수록 전할 말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화이트보드 앞에 서면 쓸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많은 글감 중에 아이들에게 어떤 말이 더 어울릴까 고민하는 순간도 찾아왔습니다.
제가 썼던 한 줄 아침편지를 몇 개 소개하겠습니다.
학교 가서 친구에게 칭찬을 해봐. 친구야! 너 오늘 멋지다. 2018. 3. 15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멋있다. 놀 때도. 2018. 3. 17
4월의 첫날 봄처럼 따뜻하고 정다운 날 보내자. 예쁜 서영, 귀여운 서준. 2018. 4. 1
서영아 서준아, 배우지 않은 것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때론 배움이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단다. 하지만 배우려는 의지와 노력 없이는 성장도 없음을 알아야 한단다. 2018. 4. 16
아빠도 너희들처럼 속상할 때가 있단다. 어제가 그랬단다. 생각해보니 아빠가 미안하구나.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우리 모두 속이 상했네. 대신 너희들도 아빠가 왜 속상했는지 생각하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2018. 6. 8
늘 스스로 생각하고 바른 행동을 하는 멋진 서영이와 궁금한 것이 많고 무엇이든 잘하고 싶은 서준이. 고운 마음으로 우리 집을 더 예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엄마. 아빠는 이런 우리 가족이 너무 좋단다. 2018. 7. 10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엄마 아빠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칭찬을 한 날도 있고 격려를 한 날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날도 있지요. 이렇게 아침에 아침편지를 남기고 나니까 딸과 여유 있는 대화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서영아, 아빠 출근한다. 아빠 편지 읽고 밥도 잘 먹고 학교 가. 알겠지”
“네, 잘 다녀오세요.”
짧은 대화로 끝나는 아침이지만 딸에게 미안하거나 불편한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아침편지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지요.
벌써 아침편지를 쓴 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편지도 조금씩 진화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아이들에게 제가 가장 감명 깊게 본 책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 번째 책을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다 결정한 책이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입니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하버드대 4년 과정과도 바꾸지 않겠다!>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말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책입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줄 긋고 포스트잇 붙여가며 읽었으니까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의 문구에 저의 해석을 보태 아이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데일 카네기는 책에서 ‘사람들에 대한 비판, 비난, 불평을 삼가라’라고 말합니다. 물론 책에서는 이 말이 가슴 깊이 납득될 수 있도록 충분한 사례를 제시한 한 후 정리하는 말로 합니다.
저는 이 글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아침편지로 썼습니다.
“말은 되돌아오는 힘이 있단다. 내가 누군가를 칭찬하면 나에게 칭찬이 되어 돌아오고 비난을 하면 비난이 되어 돌아온단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의 지혜를 아이들에게 전해줄 생각입니다. 이렇게 반년 정도 지나면 책 한 권의 지혜를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습니다.
가끔씩은 책에서 만난 명언을 아빠의 해석과 함께 아이들에게 전하기도 합니다.
‘실수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누구나 아는 명언이 있습니다.
저는 이 명언을 아이들이 태권도 승급심사가 있는 날 아침편지로 썼습니다.
“서영 서준! 태권도 승급심사 자신 있게 하고 실수해도 괜찮아. 실수는 다음 성공을 위한 힘이 되니까.”
이렇게 명언과 고전이 아빠인 저의 해석을 거쳐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 문장이 무슨 큰 힘이 있겠느냐마는 이 문장 문장이 모여 아이들에게 큰 지혜가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론>과 명언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면서부터 이 아침편지가 단지 아이들에게만 전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아침편지를 쓰면서 그 멋진 글을 저도 똑같이 머리와 가슴에 새기게 되더란 말이지요. 아이들에게 "실수는 다음 성공의 힘이 된다"라고 말하고 스스로에게는 이런 다짐을 했습니다.
‘실수했다고 의기소침하지 말자. 이번 경험을 기억하면 다음에는 좀 더 괜찮아질 거야. 그다음에는 조금 더 괜찮은 성과가 나고 그 뒤엔 내가 원하는 대로 될 거야.’
친구들에게 먼저 인사하라는 아침 편지를 쓰고는 이런 다짐을 했습니다.
‘나도 회사에 가서 선후배들에게 먼저 인사해야겠다.’
아침 편지를 쓸 때는 먼저 생각하고, 내용을 쓰고, 다시 읽어보는 과정을 거칩니다. 결국 아침편지의 내용을 세 번 마음에 새기게 되는 거지요.
화이트보드에 쓴 글이 ‘나를 바라보는구나’라고 느끼게 된 건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씨가 쓴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이 책은 육아전문가이기도 한 저자가 트위터로 부모들에게 짧게 건넨 말을 모아서 펴낸 책입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면 신기하지요. 심각한 문제를 보이던 부모와 아이가 놀랍게 변합니다. 그런데 그걸 보고 따라 해도 변하기 쉽지 않아요. 비밀은 카메라에 있습니다. 카메라가 계속해서 자신의 행동을 보고 있으니 창피해서라도 실천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 글을 읽는데 제가 쓰는 아침 편지가 번쩍 생각났습니다. 우리 집 아침편지가 제겐 딱 카메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침편지를 볼 때마다 그 글도 저를 쳐다보고 있었거든요. 마치 사람이나 카메라가 된 것처럼 말이지요. 저도 아침편지가 저의 행동을 보고 있으니 무시할 수가 없었고 최대한 그 내용대로 하겠다는 무의식이 은연중에 저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맞벌이 부부로 살아가면서 아침 시간 아이와 대화가 부족해서 시작한 아침편지가 저를 성장시키는 편지가 됐습니다. 요즘은 이 아침편지가 저를 가르치고 바꿔가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거지요. 아이가 없었다면 시도는 물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침편지를 쓰면서 마음의 불편함이 없어지고 아침편지를 진지하게 읽고 질문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습니다. 거기다 세상의 명언과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하나씩 가슴에 새기니 저도 아이와 함께 느끼고 배웁니다. 아이들에게 전하는 아침 편지를 쓰기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큰 힘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아침편지가 앞으로 또 얼마나 제 삶을 바꿀지 조금은 기대되고 가슴이 두근대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