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건 가족
2015년 늦가을 강화도로 가족캠프를 떠났습니다.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덤으로 부모교육도 받기 위해서였지요. 1박 2일 동안 아이들과 다양한 체험과 놀이를 했습니다. 종이 로봇도 만들고 케이크도 만들었습니다. 미션 놀이도 하고 체육활동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우리는 흐뭇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아내와 저는 1년엔 몇 번씩 그때 추억을 떠올립니다.
“참 좋았다. 기회가 되면 또 가고 싶어”
“그러게...”
그때 아이들과 함께 한 체험과 활동만으로도 좋은 추억이 됐는데 우리가 매년 몇 번씩 그때를 떠올리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건 바로 가족캠프에서 만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덕분입니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라틴어입니다. 제가 메멘토 모리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된 때는 20대였습니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해석하는 사람은 주로 "삶은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 당신도 죽음을 맞이하니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겸손하게 살아라."라고 말합니다. 20대였던 제가 그 글을 읽으면서 큰 깨달음을 얻고 '아, 나도 언젠가는 죽는구나. 오늘 하루도 정말 소중히 여겨야겠다.'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랬을 리가 없지요. ‘메멘토 모리, 좋은 말이네.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0대가 되고 40대가 가까워지면서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닌 게 됐습니다. 친인척이 돌아가시고, 저의 소중한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구나 동료의 안타까운 소식도 듣게 됐습니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이야기입니다. 저보다 한 살 많던 직장동료가 생을 마감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회사 대내외로 평판도 좋았던 친구라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습니다. 자전거를 잘 알던 그 친구는 저에게 자전거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도 해주었지요. 그때 그 친구는 아이가 두 명 있었습니다. 저보다 고작 한 살 많았고 저와 같이 두 아이를 둔 아빠의 죽음이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것도 나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죽음은 남의 일인 양 살아가고 있었지요. 대신 그즈음부터는 <메멘토 모리>를 어디선가 보게 되면 단순히 좋은 단어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제 삶을 돌아보는 말이며 저의 죽음을 한 번은 생각해보는 말이 됐습니다.
다시 가족캠프의 이야기입니다. 그날 저와 아내는 우리의 메멘토 모리를 경험하게 됐습니다. <임종체험>이 우리의 메멘토 모리였습니다. 임종체험은 본인의 장례식 상상하기, 묘비명을 쓰고 가족에게 마지막 편지 쓰기, 입관체험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체험이었지만 진짜 죽음을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족캠프에 참가한 모든 부모들이 강당에 모였을 때 모두들 즐겁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아이들과 놀고 추억을 쌓고 의미 있는 교육도 받았으니까요. 거기다 저녁식사까지 맛있었으니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었지요. 그러다 진행자의 임종체험 설명과 동시에 엄숙한 분위기가 연출됐습니다. 차분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진행자는 최면 걸듯 모든 부모를 임종의 분위기로 몰아갔습니다. 엄마 아빠들의 밝았던 초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모두가 슬픈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물론 그 흐느낌 속에는 저와 아내도 있었습니다. 진행자가 앉아있는 부모들에게 말했습니다.
"본인의 장례식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있는지 누가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는지 보십시오."
저는 누가 떠올랐을까요?
먼저 슬퍼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십여 명의 친인척들, 대여섯 명의 친구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렸을 때 제 눈에는 눈물이 코에는 콧물이, 그리고 어느 순간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됐습니다. 제가 그렇게 슬픔에 빠졌을 때는 다른 사람의 흐느낌은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옆에 있는 아내의 슬픔까지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로지 저의 장례식장에 있었고 장례식장에서 슬퍼하는 아내와 아이들만 생각났을 뿐입니다. 조금씩 슬픔이 잦아들 즈음 진행자가 말했습니다.
"이제 묘비명을 쓰시기 바랍니다. 어떤 묘비명이 쓰이기를 원하시나요?"
제 장례식을 떠올려 보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도 가족이었고 가장 중요한 가치도 가족이었습니다. 그 이상 중요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위해 살기로 다짐하며 <가족을 가장 사랑하고 가족에게 가장 멋있었던 누구보다 행복했던 사람>이라는 묘비명을 썼습니다.
묘비명을 쓰면서 마음이 제법 차분해졌습니다. 그런데 진행자는 슬픔의 끝을 보려는 듯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삶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남겨진 소중한 사람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시길 바랍니다."
진행자의 그 말은 또 왜 그렇게 슬프던 지요. 멈추던 슬픔은 다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울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고 한 손으로는 눈물을 훔치고 한 손으로는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우리 만나서 결혼하고 서영이 서준이 낳아서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다.
내 가족이라는 울타리 없이 자란 내게 첫 가족의 시작이었고 딸, 아들 하나씩 채우면서 나는 참 행복했다.
좀 더 잘 살겠다고 욕심내며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결국 우린 정말 멋지고 행복한 한 쌍이고 가족이었어.
혼자 먼저 떠나게 되어 너무나 미안하고 고마워.
우리 서영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밝게 자라고 훌륭한 성인이 되길 바라.
우리 서준이, 누구보다 씩씩하고 멋진 성인으로 키워주길 바라고.
지난 삶 나는 당신 덕분에 너무나 행복하고 멋진 삶을 살았어. 너무 고맙고 다음 생이 있다면 서영이, 서준이와 다시 가족으로 만나고 싶어.
여보, 사랑해, 앞으로도 씩씩하고 행복하게 멋지게 살아가길 바라.
여보, 영원히 보고 싶을 거야.
평소 제가 아내에게 쓰는 편지보다 많이 짧습니다. 눈물이 나서 편지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편지를 쓰면서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행복의 근원은 다름 아닌 아내와 두 아이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 아내와 아이들이 진심으로 고마웠고 다음 생에도 꼭 다시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아내의 편지는 어땠을까요?
사랑하는 여보, 서영아, 서준아
항상 내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 기쁨이 되어주는 내 소중한 사람...
여보야, 나는 오늘 이렇게 떠나나 보다.
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이 앞으로도 많을 텐데.
이렇게 먼저 떠나니 아쉽지만, 그래도 서로 사랑한 시간, 즐거운 시간, 행복한 시간들이 많이 떠오르니 참 다행이야.
법륜스님이 책에서 3일 간만 슬퍼하라 하더라.
내가 살아온 함께 즐거웠던 기억들을 추억하면서 많이 생각해주고 많이 눈물 흘려주고 그렇게 슬퍼해줘.
여보는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 하니까.
아이들 앞에서는 항상 강한 아빠가 되어야 하니 약한 모습 보이지 말고.
건강 잘 챙기고 지금처럼 운동도 많이 하고.
우리 서영이 까칠한 얼음공주 그래도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하는 우리 딸,
엄마 빈자리 덜 느끼게 내가 없어도 주말에 여행도 자주 다니고, 산책도 하고 자전거, 인라인, 수영 자주 해주고 외롭지 않게 얘기도 많이 해주고. 아빠가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해주는 다정한 아빠가 돼주길 부탁할게.
내 사랑하는 강아지, 우리 서준이,
엄마 잊어버리지 않게 자주 사진 보여주고 엄마가 우리 강아지를 너무 사랑한다고 앞으로도 쭉 그럴 거고, 항상 지켜줄 거라고 전해줘.
서준이가 자라서 아빠 속 썩일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혹시 사춘기가 거칠게 지나가더라도 묵묵히 큰소리치지 말고 우리 아들 믿고 지켜봐 줘.
사랑하는 내 딸 서영아, 내 강아지 서준아
시간이 앞으로 많이 흐른다고 해도 가끔은 엄마를 기억해 주겠지? 엄마가 매일 바쁘다고 화내고 소리쳐서 너무 미안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맘 편하게 그냥 너희들과 즐겁게만 살 걸 그랬다. 엄마는 사실 안 그런 척했지만 아침마다 너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단다. 그래도 너희들이 이해해줄 거라고 믿었어. 엄마는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았고 또 매일매일 너희들을 사랑하고 그런 기쁨으로 산거 같다. 너희들은 사랑받는 아이들이야. 엄마가 없더라도 어깨 쫙 펴고 밝게 학교생활하고 아빠 말씀 잘 듣고. 엄마가 항생 말했듯이, 서영이 서준이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남매, 서로를 잘 지켜주면서 즐거워하고 같이 슬퍼하고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는 남매가 되어주길 바란다. 엄마가 항상 너희들을 지켜주고 기억할게.
너희들은 그 자리에서 오늘 하루도 많이 웃고 행복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길 바라.
여보, 서영아, 서준아
내 소중한 사람들, 너무너무 사랑한다.
미안해, 사랑해, 건강해, 행복해~
이 편지를 캠프에 다녀온 후에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아내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미안함과 사랑이 한없이 느껴졌습니다. 이 편지를 쓰면서 아내가 얼마나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을지 짐작됐습니다. 이때 우리 아이들은 고작 아홉 살과 다섯 살이었으니까요. 그 어린아이들을 남기고 떠난다는 생각을 했으니 슬프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가족캠프를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가족캠프에서 만난 메멘토 모리 덕분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됐으니까요. 가족과 친구, 사랑과 우정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고 가치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족과 친구는 조금 더 확장된 겁니다. 가족은 친척도 포함하고 친구는 나이와 관계없이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포함했습니다. 그런 가족과 친구에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제 삶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관계와 가치는 조금씩 걷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퇴근 후에 별 의미 없이 단지 술을 마시기 위한 모임과 같은 것들 말이지요. 그때까지 당연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모임들이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도 소중하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모임을 하나씩 없앴더니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아이들과의 식사 횟수도 늘고 대화시간도 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 많이 듣게 되었지요. 가족과 모여 함께 웃는 저를 느낄 때마다 '가족캠프 정말 잘 다녀왔구나, 내가 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즈음부터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분들에게 작은 선물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의 생일에는 큰돈 들이지 않고 소소한 선물을 하나씩 보내드렸지요. 가끔은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 날에는 그냥 카카오 톡으로 커피 한잔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커피 한잔이 하루 온종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기분 좋고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관계는 더 돈독해지고 우애와 우정도 깊어졌습니다. 작은 노력과 정성이 만들어내는 힘은 정말 컸습니다. 저는 이 선물을 만원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캠프를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있는 재테크 책을 싹 버렸습니다. 심경의 변화가 온 거지요. 그 전에는 돈과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10년에 10억 모으기 같은 재테크 열풍도 한몫했었지요. 그런데 돈이 제 삶에 큰 행복을 준다거나 죽을 때 제 삶을 더 의미 있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물론 돈도 중요하고 필요하지요. 하지만 늘 돈 생각을 하고 돈을 모으기 위해 공부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재테크는 돈 전문가에게 맡기고 저는 그 시간에 운동을 하고 인생을 더 가치 있게 사는 방법에 관한 공부, 아이들과 함께 더 행복해지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재테크로 가득했던 책장이 이제는 행복, 가족, 관계 같은 주제의 책으로 채워졌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며 정리를 하고 보니 가족캠프에서 만난 메멘토 모리가 제 삶에 끼친 영향력이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그래서 이 기회를 빌려 가족캠프의 기회를 준 <생명의 전화 종합사회복지관>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