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최고의 명의
아들이 여섯 살이 넘어서면서부터 점 점 더 저를 닮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더 어릴 때는 몰랐는데 그때쯤 되니 얼굴도 더 닮아지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아들은 살이 찔 겨를이 없을 만큼 활동적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녔습니다. 제가 딱 그랬습니다. 그러니 아들의 얼굴과 행동에서 제 어린 시절이 떠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한 번은 저의 초등학교 입학 즈음의 사진을 꺼내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의 아들과 얼마나 닮았던 지요. 그즈음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보며 유난히 자주 떠올랐던 제 어린 시절 기억이 있습니다. 제게는 마음 아픈 이야기입니다. 그 기억이 날 때마다 저는 아들을 더 많이 안아주고 쓰다듬어주었습니다. 가끔은 이 아이가 제 아들인지 어린 시절 저인지 혼동이 들기도 했습니다.
일곱 살이던 저는 유치원에서 친구와 싸운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친구의 아버지가 유치원에 찾아와 저를 아주 심하게 혼냈었지요. 어릴 때 기억이라 친구와 왜 싸웠는지 얼마나 심하게 싸웠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건 친구와 싸웠고 그다음 날 친구 아버지가 어린이집에 찾아와 저를 혼낸 두 가지입니다. 친구 아버지에게 혼나며 눈물을 뚝 뚝 흘리던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안 그러겠습니다...”
눈을 감으면 눈물을 그렁그렁하는 아이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인 채 집으로 돌아가는 한 외로운 아이가 희미하게 나타났습니다. 살아오면서 일 년에 한 번씩은 떠오른 기억입니다. 그 기억은 제 삶에 가장 큰 상처가 되어 수시로 저를 아프게 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30여 년간 그 친구 아버지에 대한 제 생각은 이랬습니다.
‘참 나쁜 사람’
그 시절 저의 부모님은 저를 위해 어린이집에 찾아올 상황이 못 됐습니다. 제가 살던 시골은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만큼 좁은 동네여서 친구 아버지도 제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친구 아버지가 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의 일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결혼하고 나서 아내에게 처음으로 털어놓았습니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니 조금은 후련해지더군요.
아빠가 되고 아들이 어린 시절 제 나이가 되고 나니 친구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들은 그때 그 일이 있었던 제 나이보다 한 살이 많은 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친구 아버지가 어려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친구의 아버지였지만 그래 봐야 30대 초반이었을 것입니다. 내 아이가 아닌 누군가를 배려하기에는 어린 나이였고 또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의 아이를 아프게 한 아이니 혼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 친구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은 지워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지가 이제 2년쯤 됐습니다. 아버지가 되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아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영원히 친구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아들이 참 고맙고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아이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됩니다.
올해 초 푸름이 아빠로 유명한 최희수 님이 쓴 <푸름이 아빠의 아이를 잘 키우는 내면 여행>이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저자는 '내면 아이'는 성인이 되었지만 성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아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내면의 상처를 잘 치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제가 왜 이토록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아이들을 예뻐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며 어린 시절 상처 받은 저를 치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 상처 받은 저를 치유하는 싶은 마음이 저의 내면에 늘 있었던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사연 하나씩은 있었습니다. 아무리 겉으로는 화려하고 행복한 사람이더라도 조금 들여다보니 남에게 말 못 할 사연이 하나는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입사 초기에 업무 관계로 알게 지인의 사연을 알고 난 뒤부터였습니다. 그분은 발걸음조차 리듬을 타며 걸었고 항상 웃으며 말씀하시던 긍정의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딸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 이후로 제 주위에 그런 말 못 할 사연을 갖고 살아가는 분들이 참으로 많이 보였습니다.
저도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사연 하나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사연과 다른 면이 있다면 보통은 살아가면서 사연을 만드는데 반해 저는 사연 있는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제 사연이지만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는 제 내면 아이가 상처 받는데 저의 잘못은 하나도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홀어머니에 가난한 집 막내아들이었지만 미래에는 누구보다 잘 살 것이라는 꿈 많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꿈 많던 아이는 청년이 되어 입대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인지, 그 아이는 군대 가서 마음의 병을 얻어 죽을 때까지 병원을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픈 아들이지만 결혼은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이 아이는 저의 아버지이고 그의 어머니는 저의 할머니입니다.
세상에 이 어머니와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한 명은 아니었습니다. 똑같은 생각을 하신 또 다른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아들과 비슷한 사연을 가진 딸의 어머니였던 것이죠. 이렇게 두 사람의 아들과 딸이 결혼을 하게 됐고 몇 년 뒤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제가 그 아이이고 이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은 제 할머니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인 두 분은 제가 성장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병원을 전전긍긍하다 할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할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몸은 할머니지만 생각은 8세인 제 아들보다 어린 '아이 할머니'입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숀 펜과 미셸 파이퍼가 주연한 <아이 엠 샘>이라는 영화를 봤을 것입니다. 지능이 낮은 아버지가 본인보다 지능이 높은 딸의 양육권을 빼앗기고 그것을 찾아오는 과정을 그린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제 어머니는 영화 속의 아빠인 샘보다 지능이 더 어립니다. 저의 어릴 적 상황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영화를 보며 영화 속 샘의 딸인 루시의 입장을 공감하면서도 ‘어머니가 영화 속의 샘 정도만 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그 영화를 다시 보면 아버지의 입장에서 샘을 보고 루시를 보게 되겠지요. 한 번 더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또다시 눈물을 많이 흘리게 될까 약간은 주저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비행청소년으로 자랄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난꾸러기로 학창 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비행청소년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시골학교였지만 중학교 때는 학급 반장은 물론 학생회 회장도 할 만큼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도 인정받았으니까요. 부모가 학교일에 관여를 안 하는 시골 학교라 가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어쨌든 비행청소년이었다면 언감생심이었겠지요. 그래서 저는 성인이 되어 한 번씩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자라 성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스스로 결론 내렸습니다.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무조건적 사랑 덕분이다.'
물론 할머니와 외할머니 외에도 제가 살아가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늘 할머니와 외할머니십니다. 한분이 아니고 두 분인 이유는 두 분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해서 상처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면 정말 새빨간 거짓말이지요. 일곱 살에 제가 친구 아버지에게 혼이 난 이후로도 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학교에 입학하고 한 년이 올라갈 때마다 나눠주는 설문지에는 늘 보호자와 보호자와의 관계를 적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 번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하는 행사는 왜 그리 계절마다 돌아오고 해마다 있던 지요. 물론 제가 학교에 올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어서 더 자주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를 위해 보호자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저에겐 조금씩 상처가 쌓여갔습니다. 그게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그 시점까지는 지속된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추억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늘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놀이공원은 물론이고 가까운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공놀이 한 번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냥 제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생기고 어릴 적 부모님과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하나씩 하나씩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불쌍하다는 마음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물건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는 편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거나 여행을 가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렇게 제가 아이였을 때 하지 못한 것을 어른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저를 치유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푸름이 아빠의 <내면 여행>이라는 책을 만나기 전에는 아이들이 저와 함께 놀고 여행을 하면서 저를 치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아들은 앞으로도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어린 시절 상처 받은 아빠를 더 많이 치유할 것입니다. 그때는 저를 돌보듯이 아들을 더 안아주고 사랑하리라 다짐합니다. 아빠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아들과 하나하나 할 생각입니다. 저의 뺨을 수시로 아들에게 비빌 것입니다. 아들과 매일 목욕을 할 것입니다. 주말이면 아들과 운동장에 나가 축구와 야구를 할 것입니다. 함께 수영도 하고 자전거도 탈 것입니다. 등산도 가고 여행도 갈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생각하니 앞으로 살아가면서 아들로 살 때는 한 번도 못했지만 아빠가 되어서는 어릴 때 아빠와 하고 싶었던 것을 모조리 다 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상처는 얼마나 아물었을까요? 글쎄요. 100%는 아니지만 90%는 치유됐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 자체가 저의 내면 아이가 많이 완치됐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아들을 한번 쳐다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저를 닮은 제 아들이자 저를 치유해주는 명의 이기도 하니까요.
고맙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