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에서 고마움으로
누구나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감정과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연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연민이 아닌 다른 감정이 필요했습니다. 아이들이 자꾸 할아버지에 대해 물었으니까요. 그래서 늘 아버지에 대한 다른 모습을 찾고 싶었습니다. 제 마음속 불쌍한 아버지가 아닌 아이들에게 멋진 할아버지의 모습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늘 가슴 한쪽에 담아 두고 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기록도 없었으니 특별하고 멋진 모습을 들려줄 수 없었으니까요.
"아빠, 할아버지는 어디 갔어?"
아이들이 지금보다 어렸을 때 수시로 물어본 말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할아버지는 저기 하늘나라에 가셨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할아버지에 대해 더 물으면 얼버무리기도 하고 대화의 주제를 돌리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 아이들은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모두 없습니다. 두 분 모두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셔서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에 대해 물을 때마다 마음은 무거워지고 아이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부재가 저의 잘못이 아닌데 마치 제 잘못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에 대해 물을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동시에 나쁜 기억도 없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 자체가 거의 없는 사람이니까요.
아버지는 군대에서 얻은 지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수시로 병원 신세도 졌지요. 돌아가실 때도 병원을 퇴원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병원에서 제법 차도가 있어 퇴원을 하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농사일을 하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이미 어른이던 사촌 형이 학교에 왔습니다. 나쁜 예감은 항상 적중한다고 하지요? 형은 아버지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사람의 삶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나쁜 소식을 너무 일찍 들었습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무덤덤했고 병원에서 상주로 있을 때도 크게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무덤에 흙을 뿌리며 마지막 작별을 할 때는 어디서 그런 눈물이 났는지 모를, 세상에 없는 통곡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자간의 관계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라고 온몸이 소리쳤던 거지요. 물론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누구도, 누구와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삶 자체가 슬프고 불쌍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가끔 아버지 생각을 했습니다. 최소한 아버지 제사 때와 명절에 차례를 지낼 때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아버지에 대한 저의 마음은 늘 연민이었습니다. 한 인간으로도, 나의 아버지로도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마흔이 되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하구나.’
그 생각이 들자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더 짙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집에 집수리할 일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큰어머니와 어머니 두 분이 살고 계시는 집이지요. 고향집에 도착하니 어릴 적 고향에 살다가 지금은 낙향하신 초로의 두 분이 공사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할 일은 그분들의 조수로 공사 일을 거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연치고는 너무나 거짓말처럼 아버지의 멋진 모습을 듣게 됐습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일화, 드디어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할아버지의 멋진 모습이 생겼습니다.
두 분 중 한 분이 제가 그토록 바라던,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할아버지의 멋진 모습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혼잣말처럼 이야기하셔서 관심도 없었고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 저분이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하시는구나’라는 느낌이 온 거지요. 그때부터 아저씨의 말을 차분히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너무나 뿌듯해 온전히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가족 밴드에 저장해놓았습니다.
그 양반 참 똑똑하고 운동신경이 기가 막힜다(막혔다) 아이가
우리 소믹일(소 풀 먹일) 때 맨날(매일) 그 양반 따라 댕깄지(다녔지). 우리는 어리고 그 양반은 대장이었다 아이가
그 양반 병처이(병천) 동생 물에 빠짔을(빠졌을) 때 죽은 아를 살맀삤다(살렸다) 아이가.
다 죽었다 캤다(말했다). 거 바우(바위) 사이 보이도(보이지도) 안 하는 아(아이)를 건져가 물 토하게 해가 살맀뿠는데(살렸는데) 말도 마라. 진짜 대단했데이.
병처이 저거 집이 너거집(너의 집)에 그냥 있으마(있으면) 안됐을 낀데 뭐라도 해준지는 모르겠다.
그 분은 그 이야기를 너무나 무심히 말했습니다. 듣고 있는 저는 너무나 고마웠는데 말이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말했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돌이켜 보니 그 아저씨께 막걸리라도 한잔 더 드리며 감사의 말을 전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조금은 아쉽습니다. 아버지의 멋진 모습에 빠져 그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을 잊어버렸던 거지요. 다음에라도 다시 만나면 꼭 감사하다는 말을 할 생각입니다.
아버지의 영웅담을 들으며 아이들에게 들려줄 할아버지의 멋진 이야기가 생겨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그런 모습이 있었는지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늘 힘없이 초췌한 모습이었으니까요. 아버지가 용감하고 운동도 잘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뿌듯했습니다.
'내가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아버지를 닮았구나.'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연민에서 감사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음날 오전에 고향집 공사 일을 일찍 마치고 집으로 올라오자마자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서영아 서준아, 옛날에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동네 물에 빠진 여자아이를 구했다더라......"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온갖 질문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몇 살 때였는지, 물에 빠진 아이는 몇 살이었는지, 할아버지는 물 근처에 있었는지, 수영은 잘했는지, 구명조끼는 입었는지..."
그날은 아이들의 호기심 천국이 저에겐 기쁨의 천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들뜬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아주 상세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하나씩 없앨 때마다 뿌듯함은 조금씩 더 생겼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바닷가나 물놀이장에 가면 할아버지 이야기를 엮어 아이들에게 안전사고를 주의하라고 이야기합니다. 할아버지의 멋진 모습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려주며 기억하게 하는 거지요.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웅담이 손자 손녀의 자부심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몇 년 전 추석 때 처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아버지의 산소에 갔습니다. 할아버지 산소에 가려면 고향집에서 걸어 2Km 정도는 걸어야 합니다. 몇 년 전이었지만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그날 받은 뭉클함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이들이 흔쾌히 아빠를 따라나섰습니다. 아마 가본 적이 없었으니 힘들 줄 몰랐겠지요. 두 아이 모두 성묘를 가는 아빠와 함께 산길을 따라 고개를 넘고 넘어 처음 할아버지의 산소를 마주했습니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에게 절을 하는데 뿌듯하면서도 왜 눈에서는 그렇게 눈물이 나던 지요.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아이들도 대견하고 저도 대견했습니다. 그날은 별 탈 없이 어른이 된 제가 조금은 기특했습니다.
아이들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바뀐 사람이 저뿐일까요?
아이 덕분에 아버지와 화해하게 된 지인이 있습니다. 그 지인은 몇 년간 아버지와 관계를 끊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됐을까요?
예상한 대로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다시 부자간의 인연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본인이 아빠가 되고 나니 아버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그분의 아버지도 손자가 생기니 아들과 화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겠지요. 저도 아버지라서 지인 부자의 화해 과정이 이해됐습니다. 제 지인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는 아이 덕으로 부모와 화해하거나 부모와의 관계가 변화된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는 감동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그런 힘을 갖고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로 인해 가슴 뭉클함을 느끼고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빠에게 감동을 준 우리 아이들을 더 예뻐하고 사랑해야겠습니다. 요즘은 이런 생각도 듭니다. 최소한 손자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는 살아야겠다는 생각 말이지요. 아이들에게 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여전히 미안하거든요. 다행인 건 어느 날부터 미안함은 조금씩 퇴색되고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건강하게 조금은 더 오래 살아 할아버지로 손자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살면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완전히 없어질 것 같습니다. 나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손자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거지요. 그래서 그렇게 하려고요. 인명이 재천이라지만 최소한 노력은 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