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달리기 여행을 떠나볼까요?

by 막시

달리기야 여행하자, 제목이 좀 특이하지요? 달리기가 여행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정답은 잠시 뒤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막 달리기 클럽에 가입했을 때입니다. 열심히 달리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달리기를 그만둔 거지요.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남의 인생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고요. 몇 년 뒤 달리기 클럽의 운영자가 되자 회원 수에 신경 쓰였습니다. 한 분이 나가면 그믐달 한 분이 들어오면 보름달이 됐습니다. 그제야 그만두는 회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주 옛날을 돌이켜보니 저도 달리기를 그만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운동회를 좋아하는 아이였고 그때마다 열심히 달렸습니다. 손목에 찍히는 순위 도장과 상품으로 주는 공책에 흐뭇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달리기 선수를 하라고 하더군요. 선생님 말씀은 명령이었고 부모님도 선생님이 권하는 건 마땅히 해야 하는 줄 여겼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 제가 살던 시골은 그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달리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시키는 달리기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달리기가 의지와 인내의 영역이었던 까닭이지요. 하기 싫었지만, 싫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달리기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달리기는 더 싫어졌고 어느 날 달리기를 하지 않기로 선언했습니다. 그제야 내 주장을 펼칠 만큼 머리가 커진거지요. 선생님 말씀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시대도 조금씩 저물어갔고요.


다시 달리기를 만난 건 20년이 지난 뒤입니다. 달리기에 완전히 질린 사람이 왜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을까요?

달리기 선수가 아닌 제가 다시 달린 이유도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건강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어 만난 달리기는 어린 시절 달리기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다시 시작한 달리기는 스스로 진화했습니다. 일단 출발한 달리기는 실력이 쌓이며 취미가 됐고, 사람과 대회를 만나 재미있는 놀이가 됐습니다. 다른 러너들과 어울리며 유대감을 느끼고 우정도 깊어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삶의 지혜와 자아도 발견하게 됐지요.

이제는 달리기를 놓을 수 없게 됐습니다. 달리기의 진화를 더 보고 싶거든요. 저 혼자 달리기의 진화를 발견했을까요?

아닙니다. 저보다 먼저 달린 수많은 러너와 길 위에서 만난 다양한 경험과 깨달음으로 알게 됐습니다. 달리기의 진화 덕분에 이제는 죽는 날까지 달릴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달리기의 진화를 저만 알고 싶지 않습니다. 여전히 달리기가 벽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과 언제든지 그만둘 준비가 된 모든 러너에게 함께 달리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러너이거나 막 달리기를 시작한 분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여행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활동입니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굿 라이프」에서 한국인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활동이 여행이라고 말합니다. 여행은 친구와 가족처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놀고 먹고 즐기는 활동을 복합적으로 하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하는 활동 중 가장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이기도 하고요.

달리기를 시작하고 2년이 훌쩍 지난 후에야 달리기 여행을 알게 됐습니다. 이렇게 행복한 여행을 달리기와 연결할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미리 달리기 여행을 알려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대나무가 높이 자라는 이유는 마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행은 러너에게 마디와 같은 존재입니다. 고난만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여행처럼 행복한 경험도 사람을 성장하게 만듭니다. 특히 러너에겐 달리기 여행이 그렇습니다.

이제 처음에 드렸던 질문에 대한 정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진화하는 달리기를 행복한 여행에 담으면 달리기는 여행을 진화시키고 여행은 달리기를 좀 더 행복하게 하지 않을까요? 이것을 반복하면 러너의 인생은 좀 더 진화하고 행복하지 않을까요?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 또는 닉네임을 사용했습니다. 99% 이상 사실에 기반하였으나 십여 년간의 달리기와 여행을 엮다 보니 제가 잘못 기억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니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독자의 재미와 이해를 돕는 데 더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달리기에 관한 의학적인 부분은 달리는 의사와 관련 전문 도서에 근거하였으나 간혹 개인적 경험에 기인한 부분도 있으니 여러분의 경험과 다르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끝으로 이 책을 펼친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럼 우리 함께 달리기 여행으로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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