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루에서 2루로 뛰어가던 상대편 주자가 쓰러졌다.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누군가 119에 연락했고 곧 구급차가 나타났다. 경보음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그가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 야구 경기는 흐지부지됐다. 집을 향하는 발걸음은 신발 하나당 타이어를 하나씩 끌고 가는 듯 무거웠다. 찝찝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더러워진 야구 유니폼을 벗으며 아내에게 부상 사고를 전했다. 아내는 지금이 기회인 양 주말마다 함흥차사가 되는 나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귓등으로 흘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몸에 묻은 흙먼지를 씻었다.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야구장으로 향하는 내 곁엔 늘 아내와 딸이 있었다. 아내는 응원을 하거나 딸아이와 산책했다. 가끔은 동호회 사람들과 어울려 즐거운 주말을 보내기도 했다. 2010년 월드컵 한국 대 아르헨티나 경기가 열렸을 때였다. 회원들과 함께 치맥을 하며 외쳤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열렬한 응원에도 경기 결과는 4:1, 우리의 완벽한 패배였다. 영원할 것 같던 나의 즐거운 야구 생활도 그때를 정점으로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임신 8개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야구장에 발길을 끊었다. 이후 나는 야구를 하러 갈 때마다 아내의 눈치를 살폈고 아내는 내가 나가는 횟수만큼 불만을 쌓아갔다. 아내의 불만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면서 어느 순간부터 야구는 재미는커녕 스트레스가 됐다.
얼마 전부터 언제 야구를 그만둘지 생각했다. 오늘 사고는 그만둘 마음에 숟가락을 얹었다.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아내는 하던 말을 이었다. "움직이기도 힘들고 일요일마다 집에 혼자 있고 싶지도 않아. 곧 둘째도 태어나잖아. 집에 좀 있어."
귀가 번쩍 뜨였다. 아내의 말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럴듯한 명분이 됐다. 아내의 이야기는 계속됐지만,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이어진 아내의 고속 속사포는 그때나 지금이나 기억나지 않는다.
한 주 뒤 만난 동호회 회원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제 야구를 못 하게 됐습니다. 출산이 임박한 아내가 일요일에 집에 있기를 바라네요. 나중에 다시 올게요."
‘아내가 쏟아내는 불만이 스트레스라 도저히 야구를 지속하기 힘들다’라는 본심을 말하지는 못했다. 알량한 남자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회원들은 아쉬워하면서도 공감하며 위로했다. “아쉽지만 어쩌겠어? 둘째가 태어나고 여유가 되면 꼭 다시 와."
야구와 시원섭섭한 작별을 했다. 지금은 누군가 왜 야구를 그만뒀냐고 물으면 솔직하게 말한다. “아내가 반대하는 취미생활은 백해무익합니다.”
야구를 그만둔 후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야구를 하며 한 주간의 스트레스를 푸는 대신 주말마다 집안에 처박혀 군것질만 해댔더니 상상도 하지 못한 몸무게가 찾아왔고 지방 덩어리의 참을 수 없는 무거움도 느꼈다. 덩달아 무거워진 공기는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어느 날 체중계에 올랐더니 80kg을 오르내렸다. 찰나의 순간에도 체중계의 앞자리 숫자가 7이 되길 바랐다. 좌우로 떨리던 화살표는 내 기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80을 넘어버렸다. 기계에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휴"
직장 동료와 친구들은 살쪘다는 말을 수시로 했고 바지와 셔츠는 점점 터질 것 같았다.
어느 날부터는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과음이나 스트레스로 생기는 별일 아닌 일로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지속됐다. 대대로 단명하는 집안 내력이 생각나 덜컥 겁이 났고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면 어쩌지?
건강을 위한 운동을 결심했다. 야구든 뭐든 이전에 하던 운동의 목적은 취미와 놀이였지 건강은 결코 아니었다.
달리기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하기 싫은 달리기에 더해 군대서 입은 무릎 부상으로 달리기라면 학을 뗐다.
어떤 운동을 할지에 대한 고민은 진지했지만, 결론은 의외로 쉬웠다. 아파트 바로 뒤에 수영장이 있다는 이유로 수영을 시작했다. 자유형과 개헤엄만 할 수 있었던 나는 1년 가까이 수영강습을 받으면서 개구리헤엄은 물론 접영과 배영도 두루 섭렵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수영 수준은 개헤엄과 개구리헤엄 사이에 있다.
개와 개구리의 수영 시합을 상상한다. 출발 총성과 함께 개와 개구리가 동시에 출발한다. 개구리는 멋지게 다이빙을 하고 개는 퍽 소리를 내며 배치기를 한다. 개가 겨우 허우적대며 개헤엄을 치는 사이 개구리는 벌써 결승선에 도착해 개굴개굴 노래를 한다. 어쩌면 출발과 동시에 개가 개구리를 삼킬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반칙패라는 것을 개에게 단단히 알려주어야 한다.
사람은 왜 수영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물속에 들어가면 개구리가 되지 않고 개가 될까?
궁금하면서 안타깝다.
여러 영법을 두루 섭렵하며 수영 실력은 일취월장했지만, 몸무게는 8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남들은 수영의 운동량이 많다고 하지만 내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강습과 대기하는 시간을 빼면 실제로 수영을 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은 까닭이다.
체중이 더 늘지는 않았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과 단명에 대한 걱정은 여전했다. 수영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지금은 체중 관리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식단 조절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오로지 운동만이 정답이라 여겼다.
주말을 맞아 집 앞 중랑천으로 산책하러 갔다. 마침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나를 휙휙 지나갔고 때마침 불어온 시원한 바람이 달리기를 권했다. 체중감량에는 달리기가 최고라고 했던 지인의 말이 떠오른 순간 나는 달리는 사람들 뒤에서 그들을 흉내 내고 있었다. 무릎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출장 간 상태였다. 숨이 차 곧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군대 전역 후 15년 만에 처음 제대로 달렸다. 고작 1km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심장은 터지기 직전이었고 다리는 누군가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벤치에 앉아 숨 고르기를 하고 다시 달렸다. 이마에 땀이 난 순간 알 수 없는 쾌감이 나를 휘감았다. 내 무릎에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일었다.
다음날부터 수영과 달리기를 병행했다. 평일에는 수영하고 주말에는 달렸다. 달리기를 추가한 효과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한 달이 지나기 전에 몸무게의 앞자리 숫자는 8에서 7로 바뀌었다. 고작 1kg을 감량한 것뿐이지만 주위를 맴돌던 공기는 조금씩 가벼워졌고 배를 둘러싸고 있던 둘레살도 조금씩 사라졌다.
주말마다 중랑천에서 달리며 땀 흘리는 기쁨도 누렸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야구를 할 때도 땀이 나긴 했지만 그건 운동으로 난 땀이 아니었고 수영을 할 때는 땀이 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달리는 내게 불어온 바람이 땀을 씻어 줄 때는 시원했고 달린 후 샤워를 할 때 생긴 상쾌함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어졌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낼 때는 더 건강해졌다는 기분까지 들었으니 주말마다 중랑천을 찾는 건 당연한 일과가 됐다.
땀이 잘 나는 초여름에 달리기를 시작한 건 행운이다.
몸무게는 더 가벼워졌고 8이라는 숫자는 영원히 사라졌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횟수도 줄어들었고 단명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다. 달리기 효과를 보자 좀 더 자주 달리게 됐고 실력도 따라왔다.
수영을 그만두고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달리기를 했다. 1km 달리기가 힘들던 나는 어느새 3km, 5km, 10km를 달리는 사람이 됐다. 10km 달리기를 무리 없이 하게 됐을 무렵 회사 선배가 마라톤을 권유했다. 다리가 없는 강에 거북이가 나타나는 기분이었다.
몇 달 뒤 열리는 하프 마라톤을 신청했다. 첫 마라톤 대회는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소풍 가는 설렘에 밤잠을 설쳤지만, 막상 대회장에 가면서는 고작 10km 언저리만 뛰어본 내가 하프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많은 사람과 함께 출발선에 섰을 때 손에서 땀이 났다. 목표 기록이 없던 나는 출발 총성과 함께 평소처럼 달렸다. 예상과 달리 하프 마라톤을 힘들지 않게 완주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동네 러너에서 마라토너가 된 순간이다. 하프 마라톤 완주는 달리기에 대한 자신감을 급격히 키웠고 어린 시절 달리기를 꽤 잘했다는 향수에 취했다. 다음 해 서울 국제마라톤 대회에서 3시간 30분 안에 들겠다는 과욕을 품었다. 확실한 목표 덕분에 달리기 열정은 한 해가 지난 뒤에도 여전했다.
풀코스 완주를 위한 체계적인 준비를 해야 했으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10km를 뛰듯이 풀코스를 달리면 3시간 30분 안에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대회 준비 기간 장거리 달리기는 16km 달리기 한 번이 전부였지만, 자신감은 넘쳐흘렀다. 달리기 하기 전 81kg이던 몸무게는 73kg으로 8kg이나 줄어 있었다.
대회 당일 출발지인 광화문으로 향하는 마음은 기대로 가득했다. 마라톤 기록이 없던 나는 제일 마지막 조에서 몸을 풀었다. 출발 총성과 함께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수많은 사람을 뒤로 보내며 거들먹거렸다. "역시 나는 타고난 러너야, 음 하하하!"
영상 10도가 안 되는 쌀쌀한 날씨였지만 5km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추위는 사라졌다. 10km를 넘어서면서 몸에 땀이 살짝 솟았다. 몸이 풀리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하프를 지나면서 몸은 더 가벼워지고 자신감은 날아올랐다. 30km 지점을 지날 때까지도 330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머릿속에선 더 좋은 기록을 계산하며 골인 지점에서 활짝 웃는 모습을 그렸다.
32km를 지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무릎이 고장 났고 330은 조금씩 멀어졌다. 다리는 펑크 난 타이어처럼 굴러가지 않았다.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솟구치는 통증을 억누르고 몇 번이나 달리기를 시도했다. 더해지는 건 통증일 뿐 걷는 속도는 전혀 더해지지 않았다. 타이어가 펑크 나면 교체라도 하겠지만 다리를 새것으로 교체할 수는 없었다.
330은 완전히 떠났지만 완주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한쪽 다리는 끌고 한쪽 다리는 끌려갔다. 부끄러웠지만 걸었고 더 부끄러울 수 없어 완주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최종 기록은 목표한 기록보다 44분이나 늦은 4시간 14분을 찍었다.
대회는 끝났지만, 무식함과 과욕이 부른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마라톤이 끝났으니 부상도 함께 끝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어느 날 내게 마라톤을 추천한 회사 선배의 권유로 '달리는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에 갔다. 달리는 의사는 쉬면 낫는다고 했다. 그 병원뿐만 아니라 다른 병원에서 만난 의사들도 하나같이 말했다. “그냥 쉬면 낫습니다.”
저런 말은 나도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의사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들었다. 초보운전자의 마음처럼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던 까닭이다.
내가 만난 의사들은 하나같이 병명이나 증상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불친절한 공통점이 있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이 있음에도 굳이 난생처음 들어보는 전문용어를 썼다. 답답하고 짜증 날 때가 많았지만,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그러려니 했다.
달리기를 하지 못하니까 몸무게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조급한 마음에 무작정 낫기만을 기다리지 못했다. 달리기를 완전히 멈춘 후 한 달이 지났을 때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증상이 있으면 바로 멈추고 쉬었다. 뛰고 멈추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됐다. 그때부터 천천히 거리를 늘리고 속도도 높였다. 올라가던 몸무게가 잠시 멈추더니 다시 후진하기 시작했다.
첫 풀코스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마라톤을 권했던 선배가 누누이 경고했다. "첫 마라톤에서 3시간 30분? 그건 미친 짓이다. 절대 그렇게 하지 마라. 잘못하다간 큰일 난다."
그때마다 혼잣말했다. "나는 나야. 나는 다르다고. 내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겠어."
결과는 남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목표 달성 대신 인간은 모두 같은 몸뚱이를 가진 존재라는 교훈을 얻었다.
330은 실패했지만 달리기를 만나 얻은 혜택은 대단했다. 체중감량에 성공하며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현상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단명에 대한 두려움도 떨쳤다. 달리기만 하면 언제든 몸무게를 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하프 마라톤을 가뿐히 완주하고 아쉬운 기록이지만 풀코스를 완주한 마라토너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