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속담은 내게도 통했다. 달리기를 한 지 삼 년을 넘겼더니 많은 러너들을 알게 됐고 주워듣는 것도 많아졌다. 실제로 해보지 않은 경험도 어느 정도 입으로 떠들 수준이 됐다. 달리기만큼 돈이 적게 드는 운동이 없다는 생각은 이즈음 금이 갔다. 세계 메이저 마라톤 대회가 계기였다. 그런 마라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다음부터는 봇물 터지듯 했다.
호감이 없던 사람도 자꾸 보면 좋아지듯 처음엔 남의 일 같던 세계대회도 내 일처럼 다가왔다. 늘 그렇듯이 문제는 돈과 시간이었다.
시간과 돈을 극복할만한 메이저 대회를 알게 됐다. 세계 방방곡곡으로 달리기 여행을 하는 지인이 일본에서 열리는 도쿄 마라톤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세계 6대 마라톤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며 도쿄 마라톤이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메이저 대회라고 강조했다.
세계 5대 메이저 마라톤은 보스턴, 런던, 베를린, 시카고, 뉴욕 마라톤까지이다. 거기에 도쿄까지 넣으면 6개 메이저 마라톤이 된다. 여섯 개 대회를 모두 완주한 러너는 <World Marathon Majors>을 통해 6개 대회의 메달이 하나로 뭉쳐진 큼지막한 메달을 받을 수 있다.
어느 방송인이 쓴 책에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봤다. 아이들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사촌이 땅을 사면 어떻게 할래?"라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보러 간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흐뭇했고 대답 또한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마냥 지인을 마냥 부러워하는 대신 직접 가기로 했다. 마침 도쿄는 시간과 돈을 극복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도쿄 마라톤은 매년 2월에 열리는데 모집은 전년 8월에 한다. 어느 날 이해할 수 없는 정보를 알게 됐다. 도쿄 마라톤은 추첨으로 선수를 모집한다고 했다. 설마 그럴까 싶은 생각에 지인에게 물었다. “도쿄 마라톤은 추첨방식으로 모집한다는데 사실입니까?"
”어, 맞아. 그걸 말해주지 않았군. 여행사를 통하면 추첨 없이 갈 수 있긴 하지. 돈이 많이 들긴 하지만 100% 갈 수 있다네"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행사를 통해 돈을 많이 내고 가고 싶지도 않았다. 막상 그렇게 되니 지인들과 함께 가려했던 계획도 틀어졌다.
도쿄 마라톤은 왜 그렇게 콧대가 높을까? 서울 국제마라톤보다 역사가 짧은데 어떻게 메이저 마라톤에 등극했을까? 높은 자리에 있는 누군가를 돈으로 구워삶은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들면서 지인들 모두 당첨되길 바랐다. 어느 날 메일이 왔다. “Congratulations”
달리지 않는 사람은 그게 뭐길래 그리 기쁘냐고 했지만, 정말 기뻤다. 도쿄 마라톤에 대해 알아가면서 더 가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당첨된 사람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혼자 갈지 다음에 누군가와 함께 갈지 또 다른 선택의 순간이 왔다. 다음으로 넘기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여행도 인생처럼 타이밍이다’라는 어느 여행서의 문구를 따르기로 했다.
도쿄는 처음이고 일본어는 모른다. 대회를 열흘쯤 앞둔 날부터 걱정이란 놈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내렸다. 인천공항을 떠나는 날 근심은 더 짙어졌다. 하네다 공항에서 만난 한글이 바람처럼 걱정을 날려주었다.
대회 출발지 도쿄 시청과 도착지 빅사이트 한가운데 위치한 호텔은 웅장한 건물과 세련된 인테리어로 5성급 호텔이 아닌가 싶을 만큼 멋졌다. 객실로 다가갈수록 기대는 점점 부풀어 올랐다. 잔뜩 기대하며 문을 연 순간 난생처음 보는 상황에 기가 막혔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걸리버가 난쟁이의 방에 들어간 순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일본의 호텔이 좁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마라톤 엑스포가 열리는 도쿄 빅사이트로 향했다. 보스턴 마라톤과 도쿄 마라톤에 다녀온 지인들이 마라톤 엑스포에 대해 워낙 많은 이야기를 해서 기대가 하늘을 찌를 태세였다. 빅사이트가 있는 오다이바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은 마치 부산 해운대를 보는 듯 낯설지 않았다. 레인보우브릿지는 광안대교, 고층 빌딩은 마린시티였다.
전시장에서 제일 먼저 나를 반긴 건 'We have Dreams'이라는 슬로건이었다. 도쿄 마라톤이 나의 꿈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꿈일 수는 있기에 흐뭇했다. 엑스포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다음 날 부착할 배번을 받는 것이다. 배번부터 받고 전시장 구경에 나섰다. 전시장에는 세상의 모든 달리기 용품이 있었다. 기념 티셔츠 전시관에는 ‘이 많은 티셔츠를 왜 만들었을까?’ 싶을 만큼 다양한 티셔츠가 벽면을 장식했다. 양말 가격에 0이 하나 더 붙은 걸 보고는 경악했다. 누군가 쉬지 않고 말했던 마라톤 엑스포는 신세계였다. 나도 엑스포 유경험자가 됐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도쿄 마라톤은 신주쿠에 있는 도쿄도청에서 출발한다. 지하철로 얼마나 걸리는지, 어떻게 찾아가는지 사전 답사를 하기로 했다. 대회 당일 길을 못 찾아 대회 참가를 못 하면 길이길이 남을 인생의 흑 역사가 될 게 뻔했다.
사전 답사를 마치고 러너에서 여행자로 변신했다. 마침 코앞에 야경 명소로 유명한 도쿄도청 전망대가 있었다.
여행할 때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야경을 보는 편이라 도쿄 야경을 보는 것도 당연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야경이 펼쳐졌다.
한 바퀴 돌며 창밖으로 보이는 화려한 도쿄를 감상하는데 혼자라는 허전함이 밀려왔다. 후지산 방향에서 반가운 한국말이 들렸다. 서로 한눈에 대회 참가자라는 걸 알아보고 자석이 된 것처럼 가까워졌다. 어떻게 달릴 것인지, 언제 한국에 돌아가는지, 다시 만나면 응원하자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의 온기를 느낀 나는 그들과 헤어질 때 쓸쓸함과도 이별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휘황찬란한 도쿄 시내를 쏘다녔다. 기념품 상점 매대에 올려진 태극기 배지가 나를 뚫어지라 바라보았고, 그것은 원래부터 내 것인 양 잡아 들었다. 대회의 패션 코드를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정했다.
내일 입을 옷과 장비를 정성스럽게 세팅했다. 모자, 싱글렛, 러닝 타이즈, 양말, 태극기 배지, 배번, 기록칩, 운동화. 대회 배번은 엑스포에서 산 단추로 달고 기록칩은 운동화에 끼웠다. 모든 준비가 끝났지만, 일찍 자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대회 전에는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대회보다는 여행이었기에 소소한 일탈을 하기로 했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으며 맥주와 안주를 준비했다. 홀라당 알몸이 되어 양손에 맥주 두 캔과 과자를 들고 목욕탕으로 갔다.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누워 맥주를 마셨다. 일본에서 마시는 일본 맥주라서인지 더 맛있었다.
혼자서 해외여행 온 건 처음이었다.
늘 친구나 가족이 함께였다. 자유스러운듯하면서도 약간은 허전한 복잡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김 과자를 씹다가 남은 맥주를 단번에 들이켰다. "크아아아"
의도적인 감탄사를 내며 마치 누군가와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냈다. 내가 어쩌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어떻게 일본까지 달리러 왔는지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특별히 답을 찾을 이유는 없었다.
맥주 한 캔을 더 따 홀짝이고 김 과자도 입에 넣었다. 짭조름하니 안주로 딱 좋았다. 맥주가 사라질수록 한 잔 더 하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참기로 했다. 종일 긴장된 상태로 여기저기 다니고 따뜻한 탕에서 맥주를 마셨더니 급격히 노곤해졌다. 일본에서 첫날밤이지만 고민하지 않고 불을 껐다.
눈을 뜨자마자 정성스레 정돈해놓은 유니폼과 장비를 보았다. 서둘러 나갈 준비를 마쳤다. 이름이 박힌 싱글렛부터 시작해서 타이즈를 입고, 양말을 신고 모자를 쓰고 고글을 끼고, 제일 중요한 러닝화를 마지막으로 신었다.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비춰보니 국가대표가 된 듯 뿌듯해졌다. 가방을 메고 빠뜨린 게 없는지 방을 둘러본 다음 대회장으로 향했다.
대회장에는 이미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고 선수 출입문 앞에서는 선수들의 가방 검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 없는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가방을 검사원에게 건네고는 아무 문제없다는 투로 어깨를 으쓱했다. 가방을 뒤적이던 관계자는 우산과 셀카봉을 들고 뭐라 떠들었다. 잘못도 없는 바닥을 쿵 찍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산과 셀카봉이 위험하다나 뭐라나.
가방을 맡기고 출발선으로 가는 길은 선수들로 미어터졌다. 쌀쌀한 날씨에 팔다리는 이미 닭살이었고 사람들이 가득 차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닭장 속 진짜 닭이 됐다. 닭들의 체온으로 추위는 멀어졌다.
키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중년의 백인 어르신과 살이 부딪혔다. 처음에는 서로 웃으며 'sorry'라고 하다가 점점 공간이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 붙어버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화를 시작했다. “Hi”
미국 뉴햄프셔 출신인 'John eddy'는 세계 6대 메이저 대회 중 남은 건 베를린 마라톤 뿐이고 100km 울트라마라톤도 수시로 뛴다고 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동네 할아버지였던 에디는 어느새 마라톤 도사가 됐다. 10박 11일 동안 여행할 거라는 말에 부러움 병이 발동했다. “나도 당신처럼 살고 싶다”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혹시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꼭 연락해라. 혹시 Facebook 하니?"
페이스북에서 자기 이름을 검색하고 친구 추가를 했다. 고마운 마음에 물었다. "서울에 온 적은 있니?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었다.
출발을 알리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 총소리에 이은 눈꽃이 쏟아졌다. 주자들이 꽤 빠져나간 후에야 달릴 공간이 생겼다. “에디, 행운을 빈다. 페이스북에서 만나자.”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길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주위는 온통 응원하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응원하는 사람, 관광객, 주최 측의 공식 응원단이 주로 양쪽으로 인간 띠를 만들고 목이 쉬어라 외쳤다. "간빠레, 화이또"
킬로미터당 6분으로 편안하게 달리며 주위 사람들과 도쿄 도심의 풍경을 감상했다. 나를 향해 “코리아 파이팅”을 외친 사람의 등을 보니 한국어로 된 이름이 있었다. 나도 그를 향해 외쳤다. "파이팅"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찾아왔다. 배가 고팠다. 풀코스가 장난이 아닌데 여행에 빠져 제대로 먹지 않았다. 1km가 쌓일 때마다 배는 더 고팠고 달리기는 더 힘들었다. 간식 보급소까지 갈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파지며 혼란스러웠다. 멈출 수도 달릴 수도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구세주가 나타났다. 먹거리를 나눠주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음식을 넉넉하게 받아 들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반복했다. 에너지가 조금씩 솟았다. 지인의 도쿄 마라톤 칭찬이 이해되고도 남았다.
30km가 지나자 당연하다는 듯 찾아온 마라톤의 벽에 다리가 무거웠지만, 4시간 대보다 3시간대의 기록이 탐났다. 속도를 냈고 한 사람 한 사람 뒤로 보내며 결승선과 가까워졌다. 황궁, 도쿄타워, 긴자, 아사쿠사, 도쿄 스카이트리 등 도쿄 여행 가이드북에서 본 다양한 여행 명소를 지나 결승선이 있는 오다이바에 들어섰다. 속도가 느려져야 정상인데 더 힘이 났다.
순전히 응원의 힘이었다.
마지막 1km는 두 손 불끈 쥐고 최선을 다해 달려 결승선을 넘었다. 결승선을 빠져나오는데 자원 봉사자가 내 어깨에 대형 타월을 덮어주고 메달을 목에 걸어주었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고마움이 솟구쳤다. 또다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연발했다. 일본은 밉지만 나를 응원한 일본인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호흡이 편해지자 마라톤 도사 에디가 궁금했다. 스마트폰을 작동시키고 그와 함께 찍은 사진과 결승선에서 찍은 내 사진을 같이 보냈다.
오다이바에 있는 관광 온천에서 배를 채운 후 냉온탕을 왔다 갔다 하며 다리를 마사지했다. 에디가 사진을 보내왔다. “친구 잘 뛰었나? 나도 잘 뛰었다네. 남은 여행 잘하게나. 보스턴에서 다시 만나길 기대하네.”
언젠가 나도 6대 메이저 대회를 찾아다니며 여행하고 달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먹는다면 최소한 6년간은 꾸준히 달릴 이유가 생긴다. 어쩌면 오늘 달린 도쿄 마라톤은 끝이 아니라 6대 메이저 마라톤의 시작이고 에디는 나에게 그 씨앗을 심었을 수도 있다.
한국 최고 대회인 서울 국제마라톤은 왜 아직 메이저 대회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는지 의아스러웠다. 가능한 한 빨리 그렇게 되면 좋겠다. 그러면 굳이 해외에서 열리는 메이저 대회를 찾지 않아도 되고 시간과 여건이 안 돼 해외에 나가지 못하는 러너들도 메이저 대회를 달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해마다 국내에서 메이저 대회를 뛰는 모습을 기대하며 도쿄도 보스턴도 아닌 서울에서 미국인 마라톤 도사 에디와 함께 달리는 날을 상상했다.
에디를 만나는 상상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한 건 친구의 카톡이었다. "도쿄 마라톤 완주 파티는 신주쿠에서 하자."
외국에 사는 유일한 벗의 연락에 몇 시간 전에 풀코스를 달린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몸이 가벼워졌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드는데 완주 메달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도쿄.
그 순간, 어떤 공간을 달렸다는 자체가 달리는 목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덮쳤다. 빨리 또는 길게 달리기만 목표로 생각하던 내게 새로운 달리기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덧붙이며)
많은 러너의 기도 덕이겠지요? 2019년 서울 국제마라톤은 세계에서 세 번째 세계육상 문화유산에, 일곱 번째 플래티넘 라벨에 선정됐습니다. 국제육상연맹(IAAF)에서 선정하는 세계육상 문화유산과 플래티넘 라벨을 동시에 보유한 대회는 서울 국제마라톤과 보스턴 마라톤 두 개뿐입니다. 서울 국제마라톤이 메이저 대회에 입성하여 해마다 우리나라에서 메이저 대회를 달리는 날이 곧 현실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