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여행에 익숙해졌을 무렵부터 어떻게 하면 달리기 대회가 재미있는 여행이 될까를 궁리했다. 달리기 따로 여행 따로 하는 건 이미 구식이 됐다. 비슷한 느낌이지만 당일치기 나들이는 소풍이고 하루 정도는 숙박을 해야 여행 같다. 쉬울 것 같은 1박 2일 여행은 의외로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철원 마라톤 대회를 몇 주 앞둔 날이었다. 어느 주말 여느 때처럼 중랑천에서 친구들과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친구가 곧 다가올 철원 마라톤 이야기를 꺼내며 불쑥 생뚱맞은 말을 던졌다. "철원 가서 번지점프 한번 하시죠!"
20여 년 전, 이병헌(인우)과 이은주(태희)가 주연을 맡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가 생각났다. 줄거리는 이렇다. 태희를 본 인우는 한눈에 사랑에 빠지고 우여곡절 끝에 둘은 연인이 된다. 인우가 입대하는 날 태희는 그를 배웅하러 용산역으로 가다 뺑소니차에 치여 죽는다. 인우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입대하고 시간이 흘러 군 생활을 마친다. 학교 교사가 된 그에게 남학생 제자가 나타나는데, 인우는 그에게서 태희를 느낀다. 인우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학교에 퍼지고 결국 그는 불명예스럽게 퇴직한다. 어느 날 제자는 자신이 전생에 태희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다시 만난 둘은 태희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뉴질랜드로 떠난다. 두 사람은 줄을 몸에 묶지 않은 채 번지점프를 한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시리도록 아픈, 그러나 아름다운 영화였다. 그 후 여주인공의 자살과 맞물려 그 영화는 가슴에 박혔다. 번지점프를 하고 싶은 마음은 그때부터 자리 잡았다.
‘번지점프와 달리기가 무슨 상관이지?’라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우리를 향해 싱긋 웃은 그는 말을 이었다. “철원에 가면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습니다. 번지점프 말고 래프팅도 있어요. 미리 가서 제대로 된 여행 한번 하자는 거죠. 당일치기 말고 1박 2일”
그제야 모두 그의 의도를 이해하고 즉석에서 의기투합했다. 철원에 가서 무엇을 할지 더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번지 점프하자는 의견과 한탄강 래프팅을 하자는 의견이 엇갈렸지만, 곧 둘 다 하기로 했다. 1시간 동안 10km를 달리며 여행 하나가 계획된 것이다.
철원으로 떠나는 날이 됐다.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물을 챙기는데 연이은 카톡 알림 소리가 났다. 다들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나온다는 내용일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일행 중 한 명이 못 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도 딸려 보냈다. "새벽에 주방 싱크대 쪽 배관이 터져 집에 물난리가 났어요. 당장 공사를 해야 되네요. 도저히 갈 상황이 안되네요..."
김이 빠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그를 위로했다. 남은 자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남았다. 다음에 넷이 가거나 그냥 지금 셋이 가거나. 참으로 애매한 시간과 침묵이 흘렀다. 나는 선택의 주사위를 허공에 던졌다. 잠시 뒤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의견을 전했다. “갑시다.”
출발선에 선 러너가 친구 한 명 못 온다고 달리기를 포기하는 경우는 없다. 넷이 하는 여행은 다시 계획하면 된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다. 다행히 친구들도 동시에 가자고 했다. 가라앉던 분위기는 성냥불이 켜지듯 살아났다.
약속된 장소에 모여 한 차에 탔다. 신나는 댄스 음악을 따라 부르며 철원으로 향했다. 셋 다 옛날부터 번지점프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며 기대감을 키웠고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순식간에 한 시간이 흘러 철원 태봉대교에 도착했다. 번지점프대를 바라본 순간 침묵이 흘렀다. 영화로 볼 때는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던 번지점프를 직접 마주하니 두려움이 찾아왔다. 잠시 뒤 우린 너나 할 것 없이 괜찮은 척 헛기침을 하며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제일 어리고 번지점프를 하고 싶은 마음도 컸던 내가 먼저 뛰기로 했다. 번지점프대로 오르는 계단을 하나씩 밟을 때마다 설렘은 줄고 긴장이 늘었다. 안전요원의 안내에 따라 장비를 착용하고 번지점프대로 이동했다. 점프대에 서는 순간 두려움이 튀어나왔다 “와, 이거 장난 아니네.”
애써 긴장하지 않은 척했지만 땀으로 흥건한 손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심장은 진작부터 뛰었고 믿었던 다리마저 떨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번지점프의 두려움보다 못했을 때 생길 부끄러움이 더 컸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냐는 생각으로 내 허리를 감싼 줄을 믿었다. “괜찮으세요?”
안전요원의 물음에 큰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래야 두려움이 사라질 것 같았다. 대답하자마자 '될 대로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뛰었다. 아래는 무서워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앞만 바라보았다.
점프대를 이탈하는 순간 공포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점프대 앞에 서는 그 순간이 가장 두려운 순간이었다. 줄의 탄력으로 강 아래로 쑥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힘차게 솟구쳤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한탄강 풍경을 바라보았다. 물 깊이는 얼마나 될지, 여기서 줄이 끊어지면 살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에 갇혀 있을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는데 여유를 찾고 나니 오만가지 생각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아래위로 몇 번 왔다 갔다 한 후 공중에서 정지됐다. 안전요원이 허리를 감싼 줄을 천천히 내렸고 나는 낚싯바늘에 걸린 힘 빠진 물고기처럼 보트 안에 담겼다. 매도 먼저 맞는 사람이 좋듯 제일 먼저 두려움을 떨친 나는 생기를 되찾았다. 번지점프를 준비하는 친구를 바라보며 킥킥댔다.
막 점프대에 오르는 친구는 늘 근엄하고 자신만만한 사람인데 지금은 멀리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물쭈물 멈칫하던 그는 용기를 냈는지 아니면 포기를 했는지 준비 자세도 없이 쑥 뛰어내렸다. 엉거주춤한 자세에 폭소가 터졌다. 우스꽝스럽지만 길이길이 남을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 아쉬웠다.
마지막 친구의 사진을 찍으러 쏜살같이 달렸다. 친구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나를 바라봤다 “무서워서 못하겠다. 나 대신 네가 하면 안 되냐?”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에이 뭐 이걸 못한다고 그럽니까? 그냥 하면 되지? 한번 해봐요"라고 말하며 공을 그에게 넘겼다. 그는 숨소리조차 죽이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울상이 된 그의 반응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색한 시간만 흘렀다. 위에 있던 안전요원은 다음 사람이 기다린다며 우리를 재촉했고 이미 계산한 돈도 아까웠다. 울며 겨자 먹기였지만 나이 어린 내가 한 번 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알겠어요…."
그 말이 왜 튀어나왔는지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불가사의다. 다시 점프대로 향했다. 다행히 처음보다는 괜찮았다. 점프대에 올라섰을 때 안전요원이 한마디 했다. “뒤로 뛰어내리면 좀 더 재미있어요.”
“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 안전요원 덕분에 혼란에 빠졌다. 이미 이판사판이라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수영 다이빙 선수처럼 두 팔을 위로 들고 뒤로 자유 낙하했다. 처음과는 완전히 달랐다. 나는 몸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깃털보다 가벼운 사람이 됐다. 내 몸에서 중력이 사라진 순간 우주인이 된 것 같았다. 번지점프는 내가 낸 용기 이상으로 큰 보답을 했다.
귀신 본 얼굴을 하고 있던 친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에게선 일말의 아쉬움도 보이지 않았다. "에이, 번지 점프하러 왔는데 했어야죠. 이게 뭡니까?"
넉살 좋은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이, 무서운데 어떻게 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되는 이방원의 시조가 생각났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무서운데 어쩌라고!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활동인 ‘여행’을 하러 온 거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됐다.
갑자기 허리가 욱신거렸다. 최근에 좋지 않은 허리에 무리가 됐나 보다. 허리를 만지며 한마디 했다. “번지점프는 딱 한 번만 해보면 충분한 경험이네요."
친구는 조용히 혼잣말하며 웃었다. “한 번이 뭐야, 안 해도 돼."
친구에게 번지점프 사진을 보내면서 같이 못 와서 아쉽다는 말을 딸려 보냈다. 우리의 번듯한(?) 번지점프 사진을 본 친구는 각종 이모티콘과 감탄사를 보냈다. 겁먹은 표정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실루엣만 나오는 사진이니 사진만으로는 친구가 우리의 실제 상황을 알 길이 없었다. 그것 또한 사진의 매력이다. "이 비밀은 영원히 지킵시다."
어제 술을 마시기는 했냐는 듯이 일찍 일어나 대회장으로 갔다. 음악이 빵빵하게 울리는 가운데 춤추며 몸을 푸는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군인들의 눈길을 따라갔더니 미스코리아들이 걸그룹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동원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장병들의 환호성은 끊이지 않았고 그녀들의 몸짓에 맞춰 세상의 모든 열정을 모아 춤을 추고 있었다. 군생활을 해본 남자들에겐 전혀 낯설지 않다.
군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은 단연 걸그룹이 등장하는 음악 프로그램이다. 걸그룹에 빨려 들어갈 듯이 앉아있던 내무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
철원 마라톤 주최 측은 매년 대회 홍보모델인 미스코리아를 대회장에 초청해 이벤트 행사를 한다. 미스코리아에 빠진 군인들을 보니 그들이 이 대회에 많이 참가하는 미스코리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부대마다 참가인원 제한이 있고 여기 온 장병들은 추첨에 당첨된 행운의 선수는 아닐까?
출발 총성이 울리자마자 선수들이 힘차게 출발했고 우리는 천천히 뒤따랐다. 이번 대회는 여행을 위한 핑계일 뿐이니 완주만 하면 목적을 이루는 셈이다. 철원평야를 여유로운 속도로 달렸다. 가을이 왔으나 여름은 가지 않아 시간이 지날수록 햇볕이 따가웠다. 두 계절이 사이좋게 우정을 나누는 사이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내 곁에서 달리는 사람을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조금씩 힘이 났다. 빨리 뛰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도 속도가 빨라졌다. 그들의 열정에 내가 전염된 것이다.
유난히 많은 군인에 다시 한번 놀랐다. 둘에 하나는 군인이었다. 미스코리아의 힘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확신으로 바뀌었다.
군 체육복을 입은 그들은 나를 군 생활로 데려갔다. 그때와 비교하면 나는 천국에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맥주를 마시고 싶으면 마음대로, 전화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여행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달리고 싶으면 마음대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는 인생의 진짜 주인이었다. 한층 더 기분이 좋아졌다.
1시간 넘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고 어느새 골인 지점이 눈앞에 보였다. 없던 힘도 다시 생기게 하는 결승선을 바라보며 두 팔을 힘차게 흔들었다.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찍은 사진을 집 지키는 친구에게 보냈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경험은 공유하고 싶었다. 이번에도 친구는 ‘멋지다’, ‘수고했다’, ‘와우, 최고’ 같은 감탄사와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함께 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카톡으로 끝까지 함께해준 친구가 고마웠다. 친구가 이탈했을 때 다음을 기약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우리는 번지점프와 장병들과 함께한 오늘의 달리기 추억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고 친구는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한동안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이번 여행을 시작한 우리가 괜히 멋지게 느껴졌다.
아담한 한탄강 유람선을 탔다. 가이드를 겸하는 유람선 선장은 고석정에 얽힌 이야기를 누룽지 억양으로 풀었다. 나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손자처럼 그의 곁으로 바짝 붙었다. “임꺽정은 조선 중기 때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신분제의 설움을 느끼고 누구나 평등한 세상을 꿈꿨지라.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은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을 조선 3대 도적으로 꼽았는디, 이는 임꺽정이 보통 도적은 아니었다는 말씀이어라”
그는 관군에 쫓길 때 천혜의 요소를 두루 갖춘 고석바위를 은신처로 삼았다고 한다. 그의 삶이 해피엔딩이 됐다면 우리 선조들이 좀 더 빨리 평등한 세상을 맞았겠지만, 역사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완전히 평등하다고 말할 순 없다.
그는 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살았다는 생각에 뿌듯했을까? 세상에 순응하며 살았어야 했다는 후회를 했을까? 그의 마음을 알 길은 없으나 여한이 없지 않았을까?
여행이나 달리기를 하다 보면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물이 영감을 준다. 고석정에서 만난 임꺽정은 멈추지 않고 달리는 러너를 닮았다. 평등을 향해 달렸던 수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평등한 삶을 산다.
다른 건 몰라도 달리기를 할 때 러너는 모두 같은 출발선에 선다. 달리기 아닌 사람의 삶도 동등하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의 끝에서 아쉬움이 찾아왔다.
불평등한 세상이 평등해질 때까지 달려볼까? 말도 안 되는 억지 생각이 들었다. 1년 365일 매일 달리면 늘 평등한 세상에 있는 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