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20대에 달리기를 했다면!

젊은 달리기란?/대마도

by 막시

달리기가 좋아질수록 ‘이 좋은 달리기를 왜 이제야 시작했을까?’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마라톤 대회 때 나를 질러가는 청년들을 볼 때마다 그 생각은 더 짙어졌다. 달리기가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나이 탓을 하는 건 실력이 부족할 때 러닝화 탓하는 것과 같았지만, 그런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다.

나이를 되돌리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대신 언제든 젊은 시절을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라는 말처럼 옛날 추억을 떠올리면 기분도 좋아진다. 이십 대를 돌이켜 보면 MT만큼 즐겁고 신나는 때가 없었다. 친구들과 마시고 먹고 놀고, 그걸 반복하면 우정이 쌓이고 때론 사랑이 싹트기도 했다. 그때는 두려움보다 용기가 앞섰다. 징검다리를 먼저 두드리고 건너도 좋지만, 물에 빠지더라도 과감히 건너던 그때가 그립다.

친구가 대마도 마라톤 대회에 함께 가자고 했다. 대마도라는 말을 듣자 대학 시절 영일대 해변에서 열심히 놀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왜 달리기 친구들과 MT 갈 생각을 못 했을까 하는 생각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MT 가기에 딱 좋은 다섯 명이 뭉쳤다.

각자 역할을 분담했고 나는 숙소 담당이었다. 처음에는 히타카츠항에서 가까운 아무 호텔을 예약했다. 여행을 기다리는 동안 블로그에서 대마도 여행기를 봤다. 나츠마루 민박을 발견했다. 각종 회, 생선조림, 소라찜, 튀김 같은 직접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는 해산물 요리를 본 순간 그 민박은 이미 내 운명이 됐다. 즉시 함께 여행할 달리기 친구들에게 공유했다. 잠시 뒤, 네 번의 알림음이 연속으로 울렸다. "여기로 가자!", "오우, 굿", "훌륭하네", "역시", "대박"

일사천리로 예약한 건 아니다. 카톡으로 문의하면 한참 뒤에야 응답이 왔다. 예약 확정까지 더디고 귀찮은 상황이 이어지며 며칠이 흘렀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럴수록 더 가고 싶어 졌다. 식당 바깥에 손님이 많으면 음식이 맛있어 보이는 것과 같은 심리였다.


예약했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대마도 여행도 이틀째다. 어제저녁,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일 전야제를 보냈다. 예수님도 아닌데 전야제라니 웃기지만, 달리기 친구들 덕분에 누린 영광이다.

저녁 식사 자리에는 우리 일행 다섯, 민박집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저녁상 준비를 도와준 동네 아주머니까지 모두 여덟 명이 있었다. 민박 주인장 할아버지는 일본어로 말했다. 일행 중에 일본어를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원활한 대화를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의 일본어에 우리는 눈을 멀뚱멀뚱 깜빡였고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는 예상했다는 듯 웃으며 태블릿을 꺼냈다. 태블릿을 몇 번 터치하더니 태블릿에 일본어로 말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건넸다. 태블릿은 자동으로 한국어를 말하고 한국어로도 표시됐다. 지금까지 살면서 '번역기'를 사용할 일이 없었던 나는 눈이 댕그래졌다. 모두의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우왓!"


생일 전야제의 추억을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주인 할머니가 불렀다. 민박 조식 대신 호텔 조식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저녁과는 완전히 다른 식단을 준비한 할머니가 고마웠다. 기분 좋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달릴 준비를 했다.

대마도는 북쪽 히타카츠항과 남쪽 이즈하라항 주위에 주요 관광지가 몰려있다. 처음 대마도 여행을 계획할 때는 대마도를 아주 작은 섬이라 여겨 뛰어다니면 하루에 섬 전체를 다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도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나서야 그건 말도 안 되는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마도는 직선거리가 제주도의 74Km보다 긴 80Km였다.

여행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이즈하라 쪽은 포기하고 대마도의 반만 둘러보기로 했다. 에보시다케 전망대는 숙소가 있는 히타카츠항과 이즈하라 항의 가운데 있어 자연스럽게 오늘 여행의 목적지가 됐다. 니이까지는 버스로 이동하고 거기서부터 달려서 여행하기로 했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우리를 반긴 건 바닷가 어촌마을 풍경이었다. 일본어 간판과 캐리어를 든 여행객이 없었다면 그곳이 일본인지 한국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다.


아담한 카페에서 피어난 커피 향이 우리를 감쌌다. 같은 커피라도 언제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향과 맛은 천차만별이다. 그중에서 으뜸은 여행지에서 마시는 커피다. 짙은 커피 향은 마음을 들뜨게 하고 쌉스럼한 맛은 온몸의 세포를 깨운다.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카페에서 일하는 바리스타 청년은 부산 사투리와 억양에 능숙했다. 당연히 한국 사람이라 여기고 물었다. "한국 사람이죠?"

우리의 물음에 그는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댔다. "많이 알려고 하지 마세요. 어디 사냐, 가족은 있냐, 애인은 있냐, 나이는 몇이냐, 결국 내가 네 형이다 라고 끝낼 거란 거 다 알아요."

그의 말투에서 '한국인은 오지랖이 넓다'라는 뉘앙스가 느껴져 일순 당황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잠시 뒤 그의 능청스럽고 익살스러운 말투와 부산 사투리에 배꼽을 잡았다. 그의 말이 끝나자 웃으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 "네 맞습니다. 우리도 네 형입니다요."

그는 예의 바른 우리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대마도에 대한 몇 가지 여행 정보를 알려주었다.

카페를 나서며 누군가에게 편하게 하는 질문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의 문화적 차이도 느꼈다. 어떻게 해서라도 공통점을 만들어 보려는 한국인과 친절한 얼굴로 마음의 벽을 세우는 일본인은 비슷한 생김새와 달리 두 나라의 거리만큼 차이가 있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반가운 네 명의 20대 청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쳐다봤다. “와우! 여기서 또 만났네요. 반가워요."

어제 해변에서 만난 대구 청년들이었다. 우리가 해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각양각색의 모습이었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은 말을 하지 않고서는 국적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궁금해 귀를 쫑긋하니 경상도 사투리를 연발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억양에 웃음이 났다. 고향에서 듣는 사투리는 아무렇지 않지만, 외국이나 서울에서 들으면 미묘하게 특별하다. 그중에 인성이 제일 좋아 보이는 청년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대구서 왔죠? 나도 고향이 경북인데 대마도서 보니 되게 반갑네요. 하하하, 우리 단체 사진 한번 찍어 줄래요?"

청년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와, 진짭니까? 진짜 반갑네예. 근데 어디서 왔어예? 이래 보니까 진짜 신기하네예.”

짧은 순간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헤어질 때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청년들을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얼마나 반갑던지 서로를 향해 웃고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방금 벽을 세우는 일본인을 만나서 그런지 허물없이 대하는 경상도 청년들이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들을 향해 한참이나 손을 흔들었다.


버스에 탑승했는데 웬걸, 우리 외에 버스에 탄 사람이 고작 두 명이었다. 관광지답지 않은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버스는 히타카츠항 주변을 벗어나 곧바로 오지로 들어섰다. 산과 들이 번갈아 나오는 우리나라 시골길과 달리 원시림이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라 스마트폰에 담았다.

한 시간 반쯤 걸려 니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식사 시간이 지난 시간이었다. 점심을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사이 친구들의 폭풍 검색질이 시작됐다. "와타즈미 신사 근처에 빨간 푸드트럭에서 파는 고로케가 명물이래"

쾌재를 불렀다.

달리기 여행이 시작됐다.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해 학교 몇 개를 지나니 완연한 시골길이었고 동네 크기는 딱 우리나라 어느 시골 마을의 면 소재지 수준이었다. 길도 하나뿐이라 지도를 볼 필요도 없었다. 가끔 갈림길이 나오면 친절한 표지판이 우리를 안내했다.

수시로 불어오는 바람, 잊을만하면 만나는 나무 그늘, 이야기 속에 피어나는 웃음, 이런 싱그럽고 단란한 요소들이 모여 달리기 여행의 매력이 된다.

언덕을 지나 내리막을 쏘아 내달렸다. 달리기 여행을 할 때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달린다. 중간중간 달리는 속도에 변화를 줄 때 달리기는 더 살아나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와타즈미 신사와 관광버스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틀째 여행하다 보니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마도는 일본인지 한국인지 구분하기 애매해 '일본 속의 한국'이 더 어울렸다.

신사를 벗어나자마자 빨간 푸드트럭이 보였다. 하필 우리 앞에서 막 버스가 도착해 주린 배를 부여잡고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기다린 시간과 유명세와 비해 맛은 별로였지만 배고픈 우리는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먹는데 정신 팔린 사이 관광객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그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우리만의 조용한 아지트가 됐다. 실컷 먹은 음식을 소화할 겸 우거진 숲의 피톤치드를 마음껏 섭취하며 커피를 마셨다. 자동차는 기름을 먹어야 달리고 사람은 음식을 먹어야 달린다.


달콤한 휴식을 누린 우리는 든든한 마음으로 다시 에보시타케 전망대로 향했다. 올라가는 길 한쪽에는 일본 특산종인 삼나무가 줄지어 솟아있었다. 멋진 아우라를 뿜어내는 삼나무를 배경으로 달리는 친구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배경이 좋은지 인물이 좋은지, 달리는 친구들의 모습은 아무렇게나 찍어도 러닝 잡지의 화보가 됐다.

‘전망대 60m 앞’ 표지판을 만난 후부터는 달리기를 걷기로 바꿨다.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오르는 동안 기대도 부풀었다. 말로만 듣던 에보시타케 전망대가 실제로 어떤 경치 일지 궁금했다.

"우와아아아"

아소만은 고작 176m 높이에 있는 전망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 싶을 만큼 멋졌다. 여기저기 쏟아내는 감탄사로 왁자지껄했다. 끊임없이 몰려들어 사람들로 사진 찍기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만의 단독 사진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적당한 타이밍에 사진을 찍었다. 에보시타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수많은 섬이 배처럼 떠 있었다.

몇 년 전 통영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전망대에 오른 적이 있는데 그때도 지금처럼 감탄사를 쏟았다. 과거의 통영과 현재의 에보시타케가 모자이크가 됐고 두 바다를 나란히 두어도 서로의 우위를 비교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쓸데없는 비교는 애당초 말라.'라는 듯 세찬 바람이 나의 뺨을 때렸다. 얼른 비교하는 마음을 떨치고 고개를 들고 두 팔을 벌렸다. 산과 바다가 만들어낸 기운을 온몸으로 받았다.


신화의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웠고 등 뒤에서 불어온 바람은 누군가가 나를 밀어주는 느낌이었다. 올라갈 때와 달리 내려갈 때는 한순간이었다.

와타즈미 신사를 막 지났을 때 한 무리의 20대 청춘 남녀를 만났다. 진짜 MT를 온 모습이었다. 한 청년은 사진 찍어 줄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스무 명쯤 되는 그들은 플래카드를 펼치고 청춘의 기운을 두 팔로 뿜어내는 포즈를 취했다. 울산에서 온 그들은 대학생 러닝 크루였고 우리처럼 국경 마라톤에 참가한다고 했다. 대학생이란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혹시 여기 커플도 있나요? "

"아직 없지만 오늘 몇 쌍 만들어질 거예요." 당찬 여학생의 유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내일 만나겠네요. 내일 봐요."

일찍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여유가 있었다. 문구점에 들어갔다. 친구들이 선물을 고르는 사이 잡지 가판대를 구경했다. 손흥민 선수가 표지 모델인 축구 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챔피언스리그 4강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2골을 넣던 모습이 머리에서 재생됐다. 뿌듯한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혼자 웃다 달리기 잡지를 들었다. 우리나라에선 대형 서점에 가야 겨우 볼 수 있는 달리기 잡지를 본토도 아닌 대마도의 어느 동네 서점에서 보게 될 줄 몰랐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종류나. 손흥민으로 우쭐했던 마음이 일본의 달리기 저변에 겸손해졌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유독 울산에서 온 대학생 러너들이 떠올랐다. 나보다 10년은 더 빨리 달리기를 시작한 그들이 부러웠다. 좀 더 일찍 달렸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짙어졌다.

그들 또래의 나를 떠올렸다. 달리기와 여행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더라면 건강하고 풍요로운 추억이 가득 남았을 것이다. 지난 시간을 후회해봐야 소용없지만 아쉬움이 진해졌다. 바깥 원시림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뱉었다.

옆에 있는 친구를 보는 순간이었다. 후진을 하다 전진을 하듯 생각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미래의 어느 날 오늘을 돌이켜 보면 후회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남은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흔한 문장도 떠올랐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달리기와 여행을 하며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오늘이 좋았다. 우울했던 기분이 급격히 흩어지고 태양이 하나 더 뜬 것처럼 주위가 환해졌다. 앞으로는 늘 달리기와 여행을 가까이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하며 다시는 20대에 달리기를 했더라면 따위의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젊어질 수는 없지만, 새로운 길을 친구들과 함께 달리면 해마다 바뀌는 나이 숫자와 관계없이 젊은 러너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을 바라보니 반은 졸고 반은 창밖을 봤다. 나도 미소를 머금은 채 친구들을 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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