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놀라며 건강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운다. 주위에 풀코스 마라토너가 즐비한 러너는 우쭐함과 태연함 사이를 오간다. 물론 마음의 뿌리에는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풀코스 달리기는 몸에 부담이 된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거나 외계인이다. 풀코스를 달린 후에는 충분한 휴식 기간이 필요하고 10km나 하프 달리기가 더 건강에 좋다고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가끔 마라토너의 돌연사를 소식을 접할 때면 더럭 겁이 나기도 한다. 남들에겐 그 사람이 달리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고 반론을 펼치지만, 진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마라톤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기사에 유독 신경 쓰인다.
의사는 누구보다 달리기와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해 잘 안다. 달리는 의사를 만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다. 대마도 달리기 여행 둘째 날 저녁에도 그랬다.
민박에 투숙한 부녀 여행자와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마흔 넘게 살면서 모녀 여행자들은 수없이 봤지만, 부녀 여행자를 본 건 처음이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마라톤 대회 참가를 위해 왔고 아빠는 하프 코스 딸은 10km를 달린다고 했다. 같은 러너이자 여행자라는 동질감으로 서로 간의 경계는 베를린 장벽처럼 무너졌고 축하주가 몇 번 돌고 나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됐다.
부녀 여행자의 아빠가 달리는 한의사였다. 그는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 가끔 스스로 환자가 된다고 했다.
"......" 말문이 막혔다.
그는 우리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환자들의 말만 듣는 것과 직접 아파보는 건 차원이 달라요. 저는 직접 아프도록 달려봅니다. 과하게 달리면 어느 부위든 부상이 생기거든요. 발바닥, 발목, 무릎, 장딴지, 허벅지, 허리, 안 아파본 곳이 없어요. 물론 다 치료했지요. 그러면서 환자를 더 잘 이해하게 치료할 수 있게 됐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에요."
처음에는 그를 사차원이라고 생각했지만, 대화를 이어갈수록 대단한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달리기 의학과 의사로서의 달리기 예찬에 빠져들었다.
마침 잘 됐다 싶어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달리다 보면 가끔 배가 아플 때가 있잖아요. 주로 빨리 달릴 때 그렇더라고요. 훈련이 덜 되어 배가 아프다는 짐작은 하는데요. 의학적으로 설명이 되나요?"
그는 흐뭇하게 웃었다. "갈비뼈와 장기 사이에 횡경막이 있어요. 횡경막도 일종의 근육이니 다른 근육과 다르지 않아요. 갑자기 달리거나 빨리 달리면 종아리나 허벅지에 경련이 오잖아요. 같은 이치로 배가 아픈 건 횡경막에 경련이 와서 그래요. 운동 강도에 비해 횡경막이 훈련이 덜 된 거죠. 그럴 땐 속도를 늦추거나 휴식하면 금방 통증이 없어지니 걱정할 일은 아니에요. 그런 상황을 안 겪으려면 평소 달리기 연습을 할 때 횡경막을 단련하면 돼요. 굳이 의학적 지식이 없어도 달리기 오래 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횡경막을 강하게 해요. 빠른 속도로 달리고 복식호흡을 하면서요. 다들 그렇게 하고 계시죠?"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역시 달리는 의사는 다르네요."
국경 마라톤 대회는 대마도가 자랑하는 미우다 해변에서 열린다. 숙소 앞 버스정류장에는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까지 따라온 할아버지는 우리를 응원하러 오겠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말한 장소는 부산 사투리를 쓰는 청년이 일하던 카페 근처였다.
대회장은 민박집에서 멀지 않았다. 미우다 해변에 도착해서도 출발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눈앞에 반가운 사람들이 단체로 우리를 불렀다. 우리와 따로 온 달리기 클럽 회원들이었다. 우리 다섯에 그들 열 명이 더해져 천군만마가 됐다.
대회를 마친 후에도 미우다 해변에 갈 시간이 있겠지만 대마도 최고 해변이라는 명성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았다. 해변으로 다가갈수록 고운 모래사장과 쪽빛 바다, 바다를 감싼 푸른 병풍 숲, 파아란 하늘과 뭉게구름, 만화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대마도 여행기를 볼 때마다 설렜던 바위섬도 우뚝 솟아있었다. 모두 인생 사진을 찍겠다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 나도 뒤질세라 위아래 좌우로 정신없이 움직이며 애썼다. 아무리 많이 찍어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역시나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었다. 에잇!
우리들의 입꼬리와 눈꼬리는 평소보다 더 가까워졌다. 여행은 사람을 순식간에 친해지게 만든다. 여행을 떠나 싸우는 사람도 있지만, 고작 이틀이나 삼일만에 본성(?)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대회장에 모인 선수가 오백 명 정도 될까? 우리가 해변에서 노는 사이 많은 선수들이 도착했다. 해외 마라톤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규모가 작았지만 대회장도 그만큼 작아 러너들로 빽빽했다.
포토월에서 와타즈미 신사에서 봤던 울산 러닝 크루 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먼저 웃었다. 역시 젊음은 멋졌지만, 어제처럼 부러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하루면 커플이 생길 거라고 했던 여학생의 당찬 말이 생각나 물었다. “어제 몇 커플 생겼어요? "
"아 그게 좀 잘 안되더라고요." 그녀가 유쾌하게 웃었다.
"곧 생길 거예요."
어쩌면 그녀도 모르게 커플이 생겼을 수도 있다. 대략 스무 명쯤 왔으니 한두 커플은 나오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커플을 선언하고 시작하는 연인은 없으니까. 꼭 여기서 커플이 되지 않더라도 가슴 뛰는 달리기를 함께 하면 분명 서로의 매력에 풍덩 빠질 것이다. 'Boys be ambitious'를 'Boys trip and run'으로 바꿔야 한다.
열다섯 명이 출발선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서서 사진을 찍었다. 독수리 오 형제가 아닌 십오 형제가 됐다. 다섯 명이 여행하기에 최적의 숫자라면 열다섯 명은 무엇을 해도 든든한 숫자다.
출발 총성이 울리자 선수들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나는 선수들 틈에 청개구리가 됐다. 사람들이 모두 출발선을 통과한 뒤에야 발을 움직였다. 주위 풍경에 집중하며 거북이처럼 나갔다. 바다가 보이면 어촌이 되고 바다가 사라지면 농촌이 됐다. 여행자가 찾을 만한 관광지는 아니었다.
마을이 나오면 어김없이 줄지어선 사람들이 ‘화이또’를 외쳤다. 대마도에서 달리는 한국사람도 특별하지만 한국 사람들을 바라보는 대마도 사람도 특별했다. 동원된 건지 자발적으로 나왔는지 궁금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나왔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결승선에 가까워질수록 확신했다. 평소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그들은 사람의 향기에 춤이라도 추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새 할아버지가 있을 히타카츠 항구 마을에 들어섰다. 눈알을 좌우로 쉴 새 없이 굴렸다. 우로 눈알을 굴리는 사이 왼쪽에서 누군가 외쳤다. "탄조비"
민박에서 저녁식사 음식을 도와줬던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 옆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힘차게 달려 할아버지와 포옹했다. 할아버지와 포옹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역시나 아는 일본어라고는 '아리가또고자이마스'뿐이었다. 달려가면서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반복해서 외쳤다.
할아버지는 40대 중반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와 고작 한 살 차이였다. 여행 기간 아버지가 수시로 생각났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았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40대에 멈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했다. 여행하다 보면 가끔 만나는, 피할 수 없는 삶의 흔적이다.
아버지의 흔적을 바닷바람에 날리려 애쓰며 달리기에 집중했다. 때마침 나타난 언덕은 감상에서 벗어나게 했다. 힘들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으니까.
탁 트인 바다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언덕길을 따라 풍경은 점점 더 절정으로 치달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는 가슴까지 탁 트이게 했다. TV에서 봤던 남태평양의 어느 섬과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말문이 막히는 풍경을 보며 BGM을 찾느라 머리를 굴렸다. 거기서부터 골인 지점까지는 내리막이라 달리기 엔딩곡으로도 어울리는 곡을 떠올렸다.
콜드 플레이의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응원했다. 응원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맙다. 뿌듯한 마음으로 곧장 바다로 뛰어들었다. 시원한 바닷물은 뜨거워진 몸의 체온을 낮추면서 나이도 낮췄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배가 고파 더 놀지 못할 때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미우다 해변에서도 그때처럼 수영하고 잠수하며 놀았다
배가 밥 달라고 사정없이 졸랐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받아 어린 시절 소풍 가면 먹던 풍경을 재현했다. 친구들과 빙 둘러앉아 막 도시락을 여는데 일행 중 맏형이 물을 하나씩 돌렸다. 어딜 가나 남을 먼저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 물을 받아 들면서 미안한고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는데, 얼마 전 아들이 한 말이 생각났다. “아빠, 아빠는 나이가 많으니까 어린 사람들에게 맛있는 걸 많이 사줘야 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베푸는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참 멋지고 고맙다.
도시락을 열자 돼지고기볶음과 닭튀김이 등장했다. 하프 코스를 달린 러너의 식사량으로는 조금 부족했다. 일단 먹어보고 배고프면 무엇이든 더 사 먹기로 했다. 첫 숟가락부터 마지막 숟가락까지 쉼 없이 움직인 젓가락 덕분에 먹었는지 마셨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음식이 사라졌다. 숟가락을 놓는 순간 더 먹어야 한다는 배와 참으라는 머리의 다툼이 시작됐다. 항구 근처에 가면 여기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많다는 머리의 말에 배의 불만이 조금씩 꼬랑지를 내렸다. 머리와 배의 승부가 정리되자 곧바로 소금에 쩐 피부가 불만을 제기했다. 샤워장에서 소금에 찌든 몸을 씻어냈다. 그제야 온몸이 평화로웠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룰루랄라 흥얼댔다.
여행을 마감할 시간이 다가왔다. 떠나는 마음은 무겁지만, 기다리는 누군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복잡한 대합실을 벗어나 크루즈를 타러 갔다. 대회 관계자들이 <다시 대마도를 찾아주세요>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를 향해 작별 인사를 했다. 난생처음 만나는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일본인 특유의 친절과 섬세함이 느껴졌다. 고마우면서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들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게 됐다.
크루즈는 출발하자마자 쏜살같이 달렸다. 대마도가 눈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즈음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머릿속에 부산할매돼지국밥이 그려졌다. 친구들과 만장일치로 선택한 메뉴였다.
크루즈가 대마도와 부산의 중간쯤 이르렀을 때 배의 흔들림이 심해졌다. 덩달아 내 배도 울렁였다. 괜찮아질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참을 수 없었다.
신물이 올라왔다.
초등학교 다닐 때 차멀미를 한 후 멀미는 처음이었다. 돼지국밥은 머릿속에서 산산이 조각났고 아름다운 여행도 거기서 멈췄다. 화장실에 가서 뱃멀미하며 조금이라도 빨리 부산에 도착하기를 애원했다. 바닷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정신이 도망간 후에야 크루즈는 부산항 도착을 알렸다.
출구에서 기다리다 있는 힘을 다해 밖으로 뛰었다. 바깥바람을 맞으니 호흡이 트였다. 멀미는 잦아졌지만 도망간 정신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밖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던 나는 찌그러진 깡통이었다. 뒤늦게 나온 친구들이 괜찮냐고 물었지만 대답할 힘조차 없었다. 친구들은 나를 데리고 약국으로 갔다. 문 연 약국 찾기가 숨은 그림 찾기 수준이었다. 편의점에서 겨우 소화제를 하나 먹고 친구들은 식사하러 갔다.
약발은 꽝이었다. 천근만근인 몸을 끌고 약국을 찾아 부산역으로 갔다. 다행히 약국이 있었고 약사에게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상태를 알렸다. 알약과 물약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대합실 귀퉁이에 앉아 잠을 청했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몸이 조금씩 나아지며 찌그러진 깡통 상이던 얼굴도 조금씩 펴졌다.
30분쯤 지났을 때 친구들이 왔다. “돼지국밥 맛있게 먹었나요?"
”아니, 그냥 대충. 돼지국밥은 부산 달리기 여행 와서 같이 먹자."
친구들의 의리에 고마움이 밀려왔다. "아이고 그럴 것까지는 아닌데…."
친구들도 나처럼 됐다. 열정과 마찬가지도 멜랑꼴리도 쉽게 전파됐다. 약 기운 덕에 정신 차린 나는 기운을 더 내려고 노력했다. 친구 중 하나가 잠깐만 기다리라며 어디론가 뛰어갔다. 잠시 뒤 물과 음료수를 사서 건넸다. 고마움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기차를 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미 증상은 완전히 사라졌다.
살아오는 동안 뱃멀미는 없었다. 이 좋은 여행에서 왜 뱃멀미를 했을까? 상상조차 못 한 뱃멀미로 여행은 막다른 골목에 이른 듯 길을 잃었다. 연이어 이어진 과한 생일파티, 3일 연속 계속된 뙤약볕 달리기, 여행 오기 한 달 전부터 이어진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여러 가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원인은 하나가 아니었지만, 중심에는 몸에 대한 자만이 있었다. 무엇을 하던 천하무적이라는 오만함이 이 지경을 만들었다. 건강에 자만하면 큰코다친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그 와중에 친구들의 배려는 하늘에 닿았다. 하찮다면 하찮은 돼지국밥조차 아픈 친구와 함께 먹겠다는 마음이 참 고마웠다. 조용히 고개를 들어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러너이자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