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달리기가 소풍이라고?

달리기의 의외의 쓸모/서울

by 막시

프로는 다르지만 아마추어들의 달리기는 승부를 겨루는 운동이 아니라서 다른 스포츠 경기에 비해 재미가 덜하다. 그래도 러너는 재미있는 달리기를 하고싶다. 러너들의 뇌를 뜯어보면 어딘가에 분명히 그런 고민을 하는 세포들이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달리기 계획은 달릴 때 다 잘 떠오른다.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면 심장은 뇌와 연결되어 있으니 당연하다고 말할 것이다.

주말을 맞아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달리기를 하던 중 한 친구가 말했다. “봄을 맞아 학창 시절 봄가을에 했던 소풍처럼 마라닉 한 번 어때요?"

난생처음 들어보는 단어라 설명을 들어야 했다. 마라닉은 마라톤과 소풍의 합성어였다. 친구들에게 한마디 했다. “왜 그 좋은 걸 이제야 알려준 건가요? 진작 좀 알려주지…."

한 주가 지난 토요일, 우리는 중랑천에서 다시 달렸다. 얼마 전 남양주 별내로 이사한 친구가 마라닉을 하는 날 집들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최종 목적지를 우리 집으로 하시죠.”

“오~ 진짜?” 그의 말이 진담인지 농담인지부터 확인했다.

“당연하지요.” 그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며 호언장담했다.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 내기가 쉽지 않은 요즘 시대 친구의 호의가 고마웠다.

벚꽃과 목련이 활짝 핀 4월 중순 봄날이었다. 봄바람 살랑 불어오면 봄처녀만 설레는 게 아니다. 겨우내 좀이 쑤신 러너들도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처럼 한꺼번에 밖으로 뛰쳐나온다. 우리도 그랬다.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라 소풍하는 것이었으니 더 신나게 뛰어올랐다. 약속 장소인 당현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곳으로 달렸다. 중랑천은 나의 건강과 달리기를 책임지는 공간이다. 중랑천이 고맙다.

미세먼지가 심하던 어느 날 트레드밀에서 달린 적이 있다. 이상하리만치 지루하고 어색했다. 트레드밀 달리기를 끝내고 내려왔을 때 두 다리는 머리와 따로 놀았다. 몸이 불편하니 마음도 불편해졌다. 실내와 야외의 미세먼지가 차이 날까 싶었다. 학교 교실이 바깥공기보다 나쁘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그날 이후 나는 한 번도 트레드밀에서 달리지 않았고 중랑천을 더 가까이했다. 미세먼지가 있는 날 아내는 극구 달리지 말라고 하지만, 그런 날에도 가끔 달린다. 인생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때 더 좋다. 대신 의사들은 미세먼지가 나쁠 때 달리지 않기를 권한다.


500m쯤 떨어진 곳에서 달려오는 친구들이 보였다. 사람의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 사람마다 달리는 모양새도 다르다. 얼굴은 안 보여도 달리는 자세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러너에겐 달리기 자세도 얼굴이니까.

친구 여섯이 모이니 제법 소풍 느낌이 났다. 모두 소풍 가는 어린이가 됐다. 쌀쌀한 시간이었지만 그런 것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고 싱글렛을 입은 친구도 있었다. "역시 젊은이야."

나이로 따지면 젊은이로 부르기 애매하고 나보다 나이 많은 친구지만, 항상 열정으로 가득해서 나는 수시로 그렇게 부른다. 격의 없는 사이이기도 하고 그의 정신과 육체가 진짜 젊은이와 차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풍이니 모두 가방을 멨다. 가방에는 거창하지는 않지만 각자 준비한 소풍 간식이 들어있다. 봄날의 아침은 어느 날보다 싱그러웠다. 중랑천 둑길에 만발한 벚꽃이 설레는 마음을 더했다. 어릴 때는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어느 날부터 꽃을 만나면 기분이 날개를 단다. 나이를 먹을수록 좋아하는 음식이 바뀌듯 세상을 향한 취향도 조금씩 바뀐다. 바람이 불어 꽃비가 내렸고 나는 그 꽃을 잡겠다고 폴짝 뛰었다. 곧 새치가 날 나이였지만 하는 행동은 여전히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다.


소풍은 운동회와 함께 가장 좋아하던 행사였다. 소풍 전날에는 잠도 오지 않았다. 새벽까지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고 정작 아침에는 늦잠을 자기도 했다. 소풍 가방 안에는 고작 사이다나 환타, 김밥과 삶은 계란, 과자 몇 개가 전부였지만 세상을 다 가진 아이였다. 친구들과 김밥을 나눠 먹고 수건 돌리기나 보물찾기 할 때는 즐거움의 정점을 찍었다.

좋아하던 이성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있는 옷 없는 옷 다 뒤져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옷을 고르던 모습도 떠올랐다. 가끔 손자를 사랑하는 할머니가 새 옷을 사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기세 등등 개선장군이 됐다.

소풍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으면 소풍날까지 매일매일 기도를 했다. 어떤 날은 기도가 통해 날씨가 맑았지만 어떤 날은 예보대로 비가 왔다. 맑은 날은 기도가 통해서 두 배로 기뻤다. 비가 온 날은 신을 저주하며 세상을 다 잃은 모습으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선생님이 실내에서 소풍한다고 선언하면 환호성이 터졌다. 반대로 소풍이 취소되고 정상적인 수업을 하면 무거운 탄식이 교실을 메웠다.


여섯 러너는 화랑대 사거리까지 6km쯤 달렸다. 달리는 중에 꽃을 만나면 꽃놀이를 했고 풍경이 예쁘면 사진으로 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따뜻해졌고 달리기로 올라간 체온으로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간식을 먹을 차례였다. 작은 눈을 두 배로(그래 봤자 다른 사람 보통 눈 크기밖에 안 되지만) 뜨고 주위를 살폈다. 서울여대 옆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나무 벤치와 테이블이 세트로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를 위한 맞춤 공간이었다. 여행하다 보면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 같은 신비한 날을 만날 때가 있다. 여행에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각자 가져온 음식을 펼쳤다. 포도, 고구마, 빵, 과자, 거기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커피까지. 세상에 모든 소풍이 뛰어나와 공원을 가득 메웠다. 고구마를 먹으며 뜨거운 커피를 홀짝였다. 달콤한 고구마에 쌉싸래한 아메리카노의 조합이 잘 어울렸다. 주위를 보니 목련꽃이 흐드러져 있었다. 흰색 바탕에 물든 붉은색의 조화가 더없이 매력적이었다.

나는 달리기를 닮은 열정의 색, 빨강이 좋다. 빨강이 유혹했다. 빨강을 배경으로 오두방정을 떨었다. 마음은 이미 구름 위에 있었다. 개구쟁이 모습으로 돌아가야 더 재미있다는 건 경험이 준 삶의 지혜다.

목련꽃 아래서 사진을 찍었다. 목련꽃은 곧 질 테지만 우리와 함께 찍힌 목련꽃은 사진과 함께 영원할 것이다. 흔히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거기에 기록을 추가하고 싶다. 과거의 여행을 쉽게 되살리는 건 일기장이나 SNS 같은 기록이다. 기록과 사진으로 남기지 않는 모든 추억은 돛단배처럼 아스라이 사라진다.


러너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법, 자리를 깔끔히 정리하고 삼육대로 들어갔다. 봄과 대학 캠퍼스는 잘 어울린다. 낭만이 어울리는 젊음과 젊음을 유혹하는 봄꽃은 조화롭다. 몸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하는 여행에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대학생을 바라보니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봄이 오면 꽃놀이를 하고 잔디밭에 앉아 술도 한잔 마시던 그 시절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학교 여기저기 지천으로 깔려있던 매실을 주워 술을 담은 적이 있다. 몇 달 뒤 학교 잔디밭에서 선후배들과 그 술을 나눠 마셨다. 흥에 취해 교내 호수를 운동장 삼아 릴레이 달리기도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달리는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달리기를 한 건 소풍만큼이나 운동회를 좋아하던 사람이어서다. 릴레이 달리기를 꺼냈을 때 모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동의했고 어린이처럼 신나게 달렸다. 릴레이 달리기는 금방 끝났지만, 왁자지껄 웃음은 이어졌다. 그때 생각에 흐뭇한 미소가 일었다.

별내로 넘어가는 불암산으로 올라갔다. 언덕길은 하늘을 가려주는 나무들로 숲 터널이 됐다. 봄꽃과 꽃비에 우리를 끊임없이 들떴다. 언덕 위에 오르자 호수가 펼쳐졌다. "와우, 산속에 이런 멋진 호수라니!"

벚꽃은 호수를 향해 손을 뻗었고 호수는 둘레를 메운 나뭇잎을 품어 연둣빛을 뿜어냈다. 나무들이 호수를 보호하듯 둘러싸여 호수는 나무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호수 초입에는 물레방아가 있어 운치를 더했고 호수 한쪽에서 나무로 둘러싸인 정자는 누군가의 운치 있는 휴식처가 됐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연인들도 보였다. 호수는 달콤한 속삭임을 나누는 청춘들에게 언제나 자리를 내어줬을 것이다. 호수는 수많은 연인들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수줍은 마음으로, 때로는 흐뭇한 웃음으로. 호수가 품은 모든 장면은 분명 사랑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뿜어낼 수 있을까?

불암산 자락에 앉은 호수, 그 안에 잉어, 호수 둘레에 수놓아진 꽃과 나무. 어느 봄날 산에서 만난 그림 같은 풍경은 마라닉에 운치를 더했다.

가끔 산에서 호수를 만나면 가보지 않은 스위스 알프스의 어느 호수가 이렇게 아름답지 않을까 상상한다. 언제 갈지 기약이 없지만, 그곳을 달리러 떠나는 날은 올 것이다. 제대로 마음먹어야 볼 수 있는 스위스의 어느 호수에 비해 제명호는 언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라 고마웠다.

별내로 향했다. 오를 때는 묵직한 호흡을 쏟아 냈고 내려갈 때는 가벼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중간중간 봄꽃을 만나면 꽃향기를 맡았다.

꽃잎을 따서 귀에 끼웠더니 친구가 광남(狂男)이라 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쁠 거라는 믿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광남이 나를 쳐다봐서 얼른 꽃잎을 빼다.

걷고 달리고 멈추고, 느릿느릿 움직였지만 산은 친구의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별내 친구는 아내를 돕는다고 먼저 집에 가고 우리는 급한 갈증에 물과 맥주를 샀다. 어느 정자에 둘러앉아 서로 질세라 맥주캔을 땄다. 연이어 들린 맥주캔 따는 소리는 경쾌했다. 땀 흘린 후 마시는 맥주 맛은 기가 막힌다. 맥주 광고 속 모델도 우리만큼 생생한 표정을 짓지는 못할 것이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여장을 하고 달리는 남자를 가끔 만난다.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달리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동성애를 주제로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살면서 동성애자를 만난 적이 없지만, 누구나 동성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도 대체로 비슷하게 생각했는데,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두 친구는 실제로 주위에 동성애자가 있다고 했다.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반인보다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다 보니 커밍아웃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고 했다. 내 주위에도 본인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소수자로 외롭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성 소수자의 비율은 어디서나 같을 테니까. 퀴어축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지만, 그들을 비난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가끔 종교계에서 그들을 향해 과한 비난을 퍼붓는데, 그들이 성적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하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주위에서 동성애자가 절대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달리기와 동성애는 어울리지 않는 주제지만 달리기를 통해 만나는 세상의 장면 중 하나다. 우리의 생각과 상식, 경험과 이해를 더 폭넓게 하는 달리기의 의외의 쓸모다.


언젠가 나는 일을 하지 않고 365일을 보내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는데, 그중 하나가 매달 전국에 있는 친구 집에 1박 2일 방문하고 나도 똑같이 매달 한 번 친구를 1박 2일 초청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24일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24일은 서울에서 여행할 수 있게 된다. 1년에 48일 동안 우정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설렌다.

하루라도 빨리 은퇴하고 싶은데 정작 정부는 국민연금 수령 나이를 계속해서 늦추고 있다. 기분이 과하게 좋지 않다. 죽을 때까지 일하는 삶보다 연금 받으며 사는 삶이 좋다. 이런 생각을 하면 정년과 연금수령 나이를 늦추는 정부가 괜히 미워진다.

친구와 약속한 시각이 됐을 때 그의 집으로 향했다. 푸짐한 음식에 감탄했다. "어마어마하네."

친구 집에서 내가 쏟아낸 감탄사는 수 없이 만큼 많다. 달리기는 이제 다리가 아닌 손의 몫이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손은 쉼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다 어느 순간 속도를 점점 낮추더니 완전히 멈췄다.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다.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집주인 친구가 소화도 시킬 겸 카페거리로 가자고 했다. 요즘은 대체로 밖에서 식사하고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친구는 반대로 했다. 그런 친구는 정겨웠다.

옛날보다 집들이 문화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친구를 초대하고 누군가는 친구 집에 간다. 친구 집을 오가며 더 깊은 우정을 쌓는다.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이 문제라고 하니 앞으로 더 자주 친구를 초대하고 친구 집에 방문해야겠다. 외로움이란 녀석이 내 근처에 얼씬도 못 하도록 말이다.

카페거리는 집에서 가까워 금방 도착했다. 하천 양쪽에는 선택 장애를 일으킬 만큼 많은 카페가 줄을 섰다. 가장 밝은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카페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우리는 '두 시간 동안 통화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라고 말하는 어느 정겨운 여자들이 됐다.


마라닉 예찬론이 펼쳐졌다. 벌써 서너 시간 지난 추억에 빠졌다. 친구, 설레는 길, 좋은 날씨만 있으면 언제든 마라닉이 가능하다. 한 친구가 말했다. "마라닉을 꼭 봄가을에만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여름 겨울에도 합시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화답했다. “옳소."

덥거나 추운 날에도 시원하고 따뜻한 공간은 어디에나 있다. 지금처럼 예쁜 카페에서 더위를 식히거나 몸을 녹이며 이야기를 나누면 즐거운 마라닉이 될 것이다. 마라닉을 알려준 친구들이 참 고마웠다. 잠시 친구들과 말을 멈추고 카페로 들어오는 햇살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 4월의 햇살은 어느 때보다 싱그럽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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