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 창작 예술 모델로서
브랜드 스튜디오

by 허대겸

목차

1. 서론 – 배경 및 문제의식

2. 문제제기

3. 해결 방안 제시 – 브랜드화된 스튜디오 체계 구축

4. 브랜드 예시 및 사례 분석

5. 워크플로우 설계


1. 서론 – 배경 및 문제의식

현대 미술 소비 환경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COVID-19 이후 온라인 미술 플랫폼 확대, NFT(대체불가능토큰) 열풍 등에 힘입어 디지털 예술 작품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다. 젊은 컬렉터들은 전통 회화뿐 아니라 스크린으로 감상하는 디지털 아트, NFT 소장품 등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동시에 관객들은 자신만의 취향을 반영한 개인화된 예술 소유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AI 알고리즘이 생성한 그림이나 영상 등 AI 창작물은 ‘작가의 브랜드’가 부재하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미술품의 가치는 종종 작가의 명성에 크게 좌우되는데, 기계가 만들어낸 작품에는 그런 인간 작가의 이름값이 없다. 실제로 동일한 작품이라도 AI가 만들었다고 알려지면 사람들이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시 말해 AI 산출물은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예술의 사회적 맥락이 결여되어 가치 인정이 쉽지 않다. 더욱이 AI와 인간이 협업해 만든 작품의 경우 창작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은 모호성이 발생한다. 이는 예술계에서 작품의 진정성과 고유성에 대한 의구심을 낳고, 컬렉터들이 AI 창작물을 선뜻 수용하지 못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AI 시대의 예술 창작과 그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대두된다.


2. 문제제기

첫째, 예술 시장의 브랜드 편중 현상이다. 미술품의 미적 가치나 작품성 못지않게 누가 만들었는가(작가)가 시장에서는 결정적이다. 경매나 갤러리 판매에서는 작품 그 자체보다 작가 이름이 주는 신뢰와 희소성이 가격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연구에서도 작가의 브랜드가 작품에 부여되는 창의성 평가와 가치 인식에 영향을 준다고 보고된다. 이러한 구조에서 신진 작가나 익명성의 AI 창작물은 시장의 주목을 받기 어렵고, 설령 작품성이 높더라도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둘째, AI 창작물의 가치 평가 어려움이다. 전통 예술은 작가의 경력, 기존 작품의 거래 이력 등이 가치 판단의 근거가 되지만, AI가 만든 작품은 과거 레퍼런스가 부족하고 비교 대상도 모호하다. 예컨대 2018년 Christie's 경매에서 화제가 된 Edmond de Belamy (GAN 알고리즘이 생성한 초상화)는 무려 43만 달러에 낙찰되었지만, 이는 작품 고유의 예술성보다 희소성과 화제성에 의존한 평가였다. 동일한 알고리즘으로 무수히 생성 가능한 AI 이미지의 희소가치를 어떻게 담보할지도 난제다. AI 예술의 가치를 결정하는 데 있어 기존 미술계의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투자자나 컬렉터 입장에선 가격 산정과 향후 가치 상승 가능성 예측이 매우 불확실하다.


셋째, 인간+AI 협업 작품의 창작 주체 모호성이다. 인간 예술가가 AI 도구를 활용하거나, 반대로 AI가 생성하고 인간이 다듬는 협업 과정에서 “과연 누가 작가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법률적으로도 저작권 인정 요건인 “인간의 창작성”에 부합하는지 논란이 있으며, 공동 창작으로 볼 경우 인간과 알고리즘의 기여도를 분리하기 어렵다. 미술사적으로 예술 작품은 작가의 철학과 개성이 담긴 산물로 여겨지는데, AI 개입이 크면 작가 고유의 손길이 희석된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AI 예술가로 불리는 로봇이나 알고리즘 프로젝트들이 등장하자 일부에서는 “알고리즘이 예술가를 대체하는가”라는 논쟁이 벌어졌고, AI의 역할을 도구로 볼지 창작 파트너로 볼지 합의된 기준이 없다. 예를 들어 Ben Snell이라는 예술가는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디자인한 조각 작품 Dio를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 대해 Snell은 “예술가는 컴퓨터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 명확히 선을 그으면서도, 알고리즘의 창의적 역할을 하나의 독립적 예술 프로세스로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AI와 인간의 협업에서 창작 주체의 경계가 불분명한 점은 작품의 책임 소재, 예술적 권위(authority), 나아가 수익 배분 구조까지 복잡하게 만든다. 이상 세 가지 문제가 결합되어, AI 창작 도구를 활용한 예술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창작 주체를 어떻게 정의하고 브랜딩할 것인가”, “AI 창작물의 가치를 어떻게 인정받을 것인가”라는 도전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3. 해결 방안 제시 – 브랜드화 된 스튜디오 체계 구축

상기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브랜드화된 스튜디오 저자명 체계”를 제안한다. 이는 AI 창작 도구와 인간 예술가의 협업을 하나의 일관된 브랜드로 묶어 창작 주체를 명확히 하면서도 신뢰성을 부여하는 모델이다. 쉽게 말해, 작품을 개별 예술가 개인이나 익명의 알고리즘 이름으로 내놓는 대신, “스튜디오”라는 팀/브랜드 명의로 발표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AI와 여러 인간 구성원이 함께 작업하더라도 결과물은 하나의 브랜드(스튜디오) 작가명의 작품으로 통일된다. 마치 패션계에서 유명 디자이너와 디자인팀이 함께 일하지만 “샤넬” 등의 하우스 브랜드 이름으로 컬렉션을 내놓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다.

AI 스튜디오 브랜드 체계의 개념도: 인간 아티스트와 AI 시스템의 협업을 “스튜디오”라는 브랜드 저자로 통합시키고, 이 이름으로 작품을 생성·유통한다. 이렇게 하면 다수의 창작 주체가 관여해도 작품에는 일관된 브랜드 가치와 책임 소재를 부여할 수 있다.


Obvious의 사례가 이 개념을 잘 보여준다. Obvious는 프랑스의 젊은이 3인으로 구성된 AI 예술 창작 그룹(collective)인데, 2018년 이들은 GAN 알고리즘으로 생성한 초상화 *“Portrait of Edmond de Belamy”*를 Obvious라는 집단 작가명으로 Christie’s 경매에 출품하였다. 이 작품은 알고리즘이 그린 것이지만, 작가명에는 Obvious라는 사람같은 브랜드명이 기재되었고, 결과적으로 43만 달러라는 예상밖의 고가에 낙찰되어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Obvious의 구성원들은 하나의 팀으로서 작품 활동을 하고, 팀 자체를 하나의 예술가로 브랜딩함으로써 AI 예술의 작가 문제를 우회한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경우 캔버스 하단에 알고리즘 수식이 시그니처처럼 적혀있는 연출을 했는데, 이는 인간 화가의 서명 대신 “AI 알고리즘+Obvious”의 공동 서명처럼 해석되며 예술적 화제를 더했다. Obvious 사례는 스튜디오형 집단 저자 모델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후에도 Obvious는 자체 브랜드로 여러 AI 작품을 발표하며, “AI 예술 스튜디오”의 퍼스트무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스튜디오 체계를 도입하면 AI와 인간의 역할 분담이 유연해지면서도 결과물에는 일관된 신뢰도를 부여할 수 있다. AI 엔지니어, 데이터 과학자, 전통 예술가, 큐레이터 등이 한 팀으로 움직이고, 대외적으로는 팀명을 작가명으로 사용하므로 각 개인이나 알고리즘의 익명성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컬렉터나 투자자들은 브랜드화된 스튜디오의 철학과 작품 세계를 보고 투자하게 되므로, 비록 사람이 아닌 알고리즘이 부분적으로 창작에 참여했더라도 브랜드를 매개로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고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 또한 스튜디오 브랜드는 지속적으로 작품을 내놓으며 하나의 작가처럼 이력과 포트폴리오를 축적하게 되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가 형성된다. 이는 곧 AI 창작물이 “이름있는 작가의 작품”으로 간주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요약하면, “인간+AI 창작 파트너십을 하나의 브랜드 저자로 묶어서 작품을 내놓자”는 것이며, 이를 통해 창작 주체의 모호성 해소, 브랜드 가치 축적, 컬렉터들에게 친숙한 작가 개념 부여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러한 모델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선도 사례들을 통해 살펴본다.


4. 브랜드 예시 및 사례 분석

이 부분에서는 AI 창작 도구를 활용해 예술적·상업적 성공을 거둔 대표 사례들을 살펴본다. 각 사례는 브랜드 전략과 창작 방식 측면에서 서로 다른 접근을 보여주지만, “AI+인간 협업으로 새로운 예술 가치를 창출”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Beeple –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

https://www.beeple-crap.com/viewing

Beeple(비플)은 NFT 열풍을 촉발시킨 장본인으로, 디지털 아티스트 Mike Winkelmann의 온라인 닉네임이자 브랜드다. Beeple은 2007년부터 매일 디지털 이미지를 창작하여 온라인에 공개하는 “Everydays” 프로젝트를 지속해왔고, SNS 팔로워만 250만이 넘는 거대한 팬덤을 구축했다. 이 꾸준한 활동을 통해 Beeple이라는 개인 브랜드는 “하루도 빠짐없이 창작하는 성실하고 독창적인 디지털 예술가”로 각인되었다. 그러던 2021년 3월, Beeple이 지난 13년간 만들어온 5천 점의 이미지를 모자이크처럼 결합한 디지털 작품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를 NFT로 발행하여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했고, 그 결과 무려 6934만 달러(한화 약 800억 원)에 낙찰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 판매가는 역대 생존 작가 중 세 번째로 높은 낙찰가로서 비플을 단숨에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올려놓았다. Beeple 사례의 시사점은 디지털 시대에 개인 예술가도 온라인 활동만으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Beeple은 전통 미술계에서는 무명에 가까웠지만, SNS를 무대로 한 지속적 작품 발표와 팬 커뮤니티 형성으로 브랜드 가치를 축적했고, NFT 기술을 통해 이를 경제적 성과로 연결했다. 경매 관계자는 Beeple 작품의 성공 요인으로 그의 방대한 팔로워 기반과 NFT 시장의 미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꼽았다. 결국 Beeple이라는 개인 브랜드의 신뢰와 상징성이 NFT라는 새로운 매체를 만나 폭발적인 결과를 만든 셈이다. 이 사례는 AI 도구와 무관한 디지털 작가 사례이지만, “이름있는 디지털 창작자 브랜드”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며, AI 예술도 브랜드를 가질 때 시장이 반응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Botto – 탈중앙화 DAO 기반 AI 아티스트

https://botto.com/

Botto(보토)는 AI 알고리즘 그 자체를 예술가로 의인화하여 브랜드화한 독특한 사례다. Botto는 독일의 AI 예술가 Mario Klingemann이 2021년에 시작한 프로젝트로, 한 주에 수만 장의 이미지를 AI가 생성하면 그 중 수백 장을 웹에 공개하고 전세계 커뮤니티가 투표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렇게 커뮤니티 큐레이션을 거쳐 선정된 주간 1점의 작품만이 NFT로 발행되어 경매에 부쳐지며, 판매 수익은 다시 프로젝트 운영과 토큰 홀더 보상에 쓰이는 DAO(탈중앙화 자율조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요컨대 Botto라는 가상의 AI 예술가를 중심으로, 알고리즘(창작) + 사람들(선별) + 블록체인 거버넌스(운영)가 결합된 분산형 스튜디오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Botto가 짧은 기간에 상당한 상업적 성과와 예술적 인지도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2021년 데뷔 이후 2년간 Botto는 매주 한 점씩 NFT 작품을 판매하여 누적 약 4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2024년에는 Sotheby’s 뉴욕 경매에 Botto의 작품들이 전시되며 전통 미술 무대에도 진출했다. Wired 지에 따르면 Botto는 2024년까지 총 400만 달러 이상의 작품 판매고를 올린 ‘백만장자 AI 아티스트’로 성장했고, 최근에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대화까지 할 수 있는 대형 언어모델 기반 인공지능을 탑재하여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Botto의 브랜드 전략은 AI를 하나의 예술가 캐릭터로 브랜딩하고, 커뮤니티 참여를 통해 작품 선정의 민주성과 취향 반영을 극대화한 데 있다. 특히 $BOTTO 토큰을 활용한 DAO 모델은 팬들이 곧 예술 생산 과정에 참여하면서 브랜드에 애착을 갖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Botto의 사례는 향후 AI와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예술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AI 자체를 브랜드 아티스트로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실증했다. 또한 Klingemann이라는 인간 예술가가 자신의 분신처럼 AI 캐릭터 Botto를 내세워 브랜드를 구축함으로써, 인간 작가의 명성(Klingemann은 이미 AI 예술계의 선구자)과 AI 창작의 무한생산성을 접목시킨 성공적 사례라 할 수 있다.


QQL – 알고리즘 아트 플랫폼 + 사용자 공동 큐레이션

https://qql.art/

QQL은 생성예술(Generative Art) 분야의 저명한 작가 Tyler Hobbs가 고안한 콜라보레이티브 알고리즘 아트 플랫폼이다. 2022년 출시된 QQL은 Hobbs와 기술 협업자 Dandelion Mané가 개발한 특정 알고리즘을 공개하고, 컬렉터들이 그 알고리즘을 직접 가지고 놀며 작품을 만들어내도록 한 실험적인 프로젝트이다. 구체적으로, QQL 플랫폼에 접속한 누구나 다양한 파라미터와 시드를 조절하여 알고리즘이 생성하는 추상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그렇게 **수천 가지 출력 결과 중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골라 “민팅(minting)”할 수 있다. 다만 작품으로 최종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전에 발행된 999개의 QQL NFT 패스 중 하나를 보유해야 하는데, 패스 소유자는 자신이 선택한 최애 출력물을 NFT로 영구 소장할 권리를 얻는다. 이 방식에서 핵심은 컬렉터(사용자)가 곧 작품의 공동 창작자이자 큐레이터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알고리즘 기반의 generative art는 작가가 알고리즘을 설계하면 완성된 결과물은 우연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QQL은 결과물 중 어떤 것이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을지 최종 선택을 컬렉터에게 위임했다. 이를 통해 창작 과정에 관객을 끌어들여 몰입도를 높이고, 동시에 알고리즘은 더 과감한 변주를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고 Hobbs는 설명한다. 그는 “QQL은 생성 과정의 초점을 큐레이션 단계로 강하게 이동시킨다. 컬렉터들이 최종 출력을 결정함으로써, 모두가 파라메트릭 아티스트가 된다”고 말한다. QQL 프로젝트의 브랜드 전략은 유명 작가(Tyler Hobbs)의 명성을 기반으로 하면서 참여형 플랫폼이라는 색다른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Hobbs는 이미 전작 Fidenza로 NFT 예술 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바 있어 컬렉터 신뢰가 높았고, QQL에서는 자신이 직접 큐레이션에 관여하지 않음으로써 커뮤니티에 창작의 즐거움과 성취를 양도했다. 그럼에도 최종 작품들은 “Tyler Hobbs 알고리즘에서 탄생한 QQL 작품”으로서 Hobbs의 브랜드 아래 존재하기에, 예술적 일관성과 시장 신뢰를 확보했다. QQL은 “알고리즘-사용자 협업 모델”이라는 새로운 예술 제작 패러다임을 제시했으며, 향후 다른 작가들이 자신만의 알고리즘을 공개하고 팬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참여형 아트 비즈니스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Sougwen Chung – 로봇 드로잉 퍼포먼스

https://www.youtube.com/watch?v=YUVgGxS4u7M

Sougwen Chung(수웬 청)은 인간과 로봇의 협업 퍼포먼스를 통해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작가다. 중국계 캐나다인인 그녀는 회화와 설치,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특별히 자신이 직접 제작한 드로잉 로봇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라이브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Sougwen은 로봇 팔에 자신의 과거 드로잉 데이터를 학습시킨 AI를 탑재하여, 무대 위에서 본인이 붓질을 하면 로봇도 이를 부분적으로 모방하거나 응답하는 형태로 함께 그림을 완성해나간다. 그녀는 이러한 시리즈를 Drawing Operations Unit: DOUG라고 명명하고 세대별로 로봇을 업그레이드해왔는데, “사람과 기계가 동시에 하나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즉흥 듀엣”으로 묘사된다. Sougwen Chung의 작업은 많은 AI 예술이 디지털 화면 속에서 이뤄지는 것과 달리, 실제 물감과 종이를 매개로 한 신체적 경험에 중점을 둔다. 그녀는 “나의 관심사는 단순한 픽셀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과 기계의 신체적 상호작용이 주는 새로운 느낌”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이러한 철학 덕분에 관객들은 로봇과 사람이 함께 춤추듯 그림 그리는 장면에 깊이 매료된다. Sougwen Chung은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Embodied AI 아트”로 정의하며, 기술보다는 인간의 몸과 감정에 뿌리내린 AI 활용을 강조한다. 이러한 차별화된 접근은 시장에서도 가치를 인정받아, 그녀가 로봇과 공동 제작한 대형 추상화 작품들은 한 점에 10만 파운드(약 1억 3천만 원) 이상의 가격에 판매되기도 했다. Sougwen Chung의 브랜드 파워는 2021년 TIME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AI 인물 100인’에 예술가로는 드물게 이름을 올릴 정도로 커졌다. 이 사례가 주는 함의는 **“AI를 도구가 아닌 협업 예술가로 포용하면서도, 인간 예술가로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뚜렷이 제시”하는 전략의 성공이다. 관객과 평단은 Sougwen이 창조한 “인간-기계 콜라보레이션”**이라는 퍼포먼스 자체에서 신선한 예술적 가치를 느끼고, 작가 본인의 퍼포먼서로서의 카리스마와 결합된 브랜드를 신뢰한다. 이는 AI와의 공존을 예술가 정체성의 확장으로 승화시킨 경우로, AI 시대 예술가의 또 다른 역할 모델이라 할 수 있다.


Refik Anadol – 몰입형 AI 시각화

Refik Anadol(레픽 아나돌)은 데이터와 AI를 활용한 대형 몰입형 미디어 아트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터키 출신의 아티스트다. 그는 Refik Anadol Studio라는 10여 명 규모의 스튜디오를 이끌며, 건축, 음악,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를 시각화한 거대한 디지털 설치 작업을 해왔다. 그의 작품은 흔히 수백만 개의 이미지나 텍스트 데이터셋을 AI로 학습시킨 뒤, 거기서 추출된 패턴으로 생성한 추상적 영상을 프로젝션 맵핑, LED 스크린, VR 등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2022년 뉴욕 MoMA 현대미술관에 설치된 《Unsupervised》는 MoMA 소장품 데이터 20만 점 이상의 자료를 AI가 “학습·재해석”하여 실시간으로 꿈꾸듯 흘러가는 영상을 거대한 화면에 투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AI가 MoMA의 200년 예술을 본 후 꾼 꿈”이라는 컨셉으로 소개되었는데, 관람객들은 끊임없이 형태가 변하는 추상 영상과 공간을 가득 채운 사운드에 둘러싸여 마치 거대한 인공지능의 의식 속에 들어온 듯한 몰입감을 맛보았다. Refik Anadol은 이러한 데이터 기반 AI시각화 영역을 개척하여, 미술관 뿐만 아니라 전세계 랜드마크 건축물 외벽 프로젝션, 공연 연출, 기업 콜라보레이션까지 활동 범위를 넓혔다. 그의 브랜드 전략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첨단 기술과 예술을 접목한 독보적인 미감을 선보이는 것이다. 즉 “Refik Anadol”이라는 브랜드는 곧 데이터+AI+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이는 팀 작업이지만, 앞서 말한 스튜디오 저자명 체계 덕분에 모든 작품이 일관된 브랜드로 귀결되는 효과를 준다. 투자자 관점에서 Refik Anadol의 작품은 대형 공공 미디어아트 프로젝트로서 도시 랜드마크가 되거나, 글로벌 기업의 혁신 이미지와 결부되기도 하여 부가가치가 높다. 예를 들어 그의 작품은 경매 시장에서도 디지털 NFT 형태로 판매되어 수백만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고, 삼성전자 등의 기업 광고에도 등장했다. Refik Anadol Studio의 성공은 전문 스튜디오 조직을 통해 AI 예술을 프로 수준의 스케일과 완성도로 구현하고, 작가 개인의 예술 철학을 확고한 브랜드로 승화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는 토포스 스튜디오와 같은 조직이 지향해야 할 모델 중 하나로, 첨단 기술을 배경에 숨기고 결과물의 경이로운 체험에 브랜드 이미지를 집중시키는 전략이 돋보인다.


Ben Snell – AI 3D 조각화 프로젝트

ben.png

Ben Snell(벤 스넬)은 AI와 조각 예술을 결합한 실험적 프로젝트로 주목받은 젊은 예술가다. 그의 2019년 작품 Dio는 인공지능이 디자인하고 인간이 물질화한 조각이라는 독특한 제작 과정을 가졌다. Ben Snell은 먼저 자신의 컴퓨터(AI)를 ‘Dio’라는 이름의 예술가로 의인화하여, 수천 개의 클래식 조각상 3D 모델 데이터를 학습시켰다. 그 결과 Dio(AI)는 새롭게 창안된 3D 조각 형태를 출력했고, Snell은 그 모델을 현실 조각으로 만들기로 한다. 여기서 그의 선택은 극단적이면서도 상징적인데, 조각 디자인을 마친 즉시 그 디자인을 만든 컴퓨터(Dio)를 분해하여 가루로 분쇄한 후, 그 컴퓨터의 재를 레진과 섞어 3D 프린팅된 형틀에 부어 최종 조각을 주조한 것이다. 즉 창작에 쓰인 AI 컴퓨터를 작품의 재료로 승화시킴으로써, Dio 조각은 “자신을 만들어낸 컴퓨터로부터 태어난 세계 최초의 AI-탄생 조각”이 되었다는 서사가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Phillips 경매를 통해 판매되며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Ben Snell의 접근은 AI를 공동 작가로 인정하되, 최종적인 예술적 통제권과 저작권은 인간에게 귀속시키는 퍼포먼스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컴퓨터를 산화(散華)시킴으로써 오직 하나뿐인 조각을 남겼고, 이렇게 함으로써 AI 작품의 무한복제 가능성을 차단하여 희소성을 확보했다. Snell은 인터뷰에서 “Dio의 창작 과정을 인간적으로 해석하고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언급하며, 자신을 결국 작가로서 드러내되 AI의 에이전시(창작 행위)를 포용하는 균형감을 보여주었다. Ben Snell 사례는 기술과 물질, 이야기까지 결합한 종합 예술 전략으로, 투자자 입장에서도 스토리가 있는 희귀 예술품으로서 가치가 부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AI 창작물도 인간의 개입 방식에 따라 유일무이한 예술로 탄생할 수 있고, 이러한 콘셉추얼한 브랜딩이 뒷받침되면 시장이 반응한다는 점을 증명했다.


결론


이상의 사례들을 종합하면, AI 창작 도구를 활용한 예술 사업모델의 성공 요건으로 다음을 정리할 수 있다:

· 작가의 브랜드화: 개인이든 집단이든, 일관된 이름과 스토리로 작품을 발표해야 시장의 신뢰와 팬덤을 얻을 수 있다. (예: Beeple, Obvious 등)

· 협업 구조의 명확화: 인간과 AI의 역할을 모호하게 두지 않고, 창작 주체 구조를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예: Botto의 DAO 투표 구조, Sougwen의 인간-로봇 공동 퍼포먼스 공개 등)

· 기술 + 예술의 조화: AI 기술 자체의 놀라움에만 의존하지 않고, 예술적 완성도와 감동을 주는 퀄리티를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 인간의 미적 판단과 큐레이션이 필수적으로 개입한다. (예: Refik Anadol의 고도의 시각 연출, QQL의 사용자 미학 반영 등)

· 희소성과 수익 모델: 무한 생산 가능한 디지털/AI 작품에 인위적 희소성을 부여하거나(에디션, 한정 NFT 등), 맞춤형 서비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등의 비즈니스 설계를 해야 한다. (예: QQL의 999개 한정 패스, Botto의 주 1점 생성, Snell의 단일 작품 전략 등)


이러한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다음 장에서는 관련 주체들이 취할 수 있는 구체적 워크플로우와 사업 기획 방향을 제시한다.


5. 워크플로우 설계

AI와 인간의 협업 창작 워크플로우(workflow)를 효과적으로 설계하는 것은 본 사업모델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다. 이하에서는 “AI → 인간 큐레이터 → 브랜드 명의 발표”로 이어지는 단계별 흐름을 이상적인 시나리오로 정리한다.


AI-인간 협업 아트 제작 워크플로우: 우선 AI가 대량의 시안을 생성하면, 인간 큐레이터가 예술적 안목으로 우수작을 선별·보정한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스튜디오의 브랜드 이름으로 발표되어 최종적으로 고객에게 전달된다. (고객의 취향 데이터는 AI 생성 단계에 피드백으로 활용될 수 있다.)


1) AI 대량 생성 단계 – 먼저 AI 창작 도구를 활용해 방대한 작품 시안(candidate)을 생성한다. 예를 들어 GAN 모델이나 요즘 각광받는 텍스트-투-이미지 AI(예: DALL-E, Stable Diffusion 등)를 활용하면 수백~수만 가지의 이미지 변주를 단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다. Botto의 경우 실제로 매주 5만 장 이상의 이미지를 AI가 생성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처럼 AI의 무한한 아이디어 풀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다양한 스타일, 색감, 구도의 실험적인 출력들이 나오도록 AI의 프롬프트(prompt)나 모델 파라미터를 변화시키며 최대한 광범위한 창작 가능성을 탐색한다. 생성된 결과물은 품질이 들쑥날쑥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양에서 질을 찾는” 발상으로 폭넓은 재료를 마련하는 데 있다.


2) 인간 큐레이션 단계 – 두 번째로, 인간 예술가 또는 전문 큐레이터가 AI가 만든 시안들을 분석 및 선별한다. 수만 장 중 예술적 완성도가 높거나 감성적으로 울림이 있는 후보작을 골라내는 작업이다. 이때 인간의 역할은 단순히 예쁘고 잘 나온 그림을 고르는 것을 넘어, 해당 작품에 스튜디오가 지향하는 미학과 스토리가 담겼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필요시 인간은 AI에게 추가 피드백을 주어 재생성이나 보정을 유도할 수도 있다. 예컨대 AI가 생성한 그림의 구도가 아쉬우면 다른 프롬프트로 재시도하거나, 몇 개의 결과물을 합성/편집하여 새로운 영감을 도출할 수도 있다. 또한 색감이나 디테일을 인간 디자이너가 섬세하게 손보고, 캔버스 재질이나 출력 매체 등을 고려해 최종 후보군 작품을 다듬는다. 이 단계는 예술적 안목과 인간의 감성 개입이 핵심이며, 이를 통해 AI 산출물에 혼이 불어넣어진다고 볼 수 있다. (Beeple이나 Refik Anadol 등의 작업에서도 최종 결과물에는 인간 손길의 수많은 결정이 스며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맞춤화 및 데이터 피드백 단계 – (선택적) 고객의 참여나 외부 데이터를 활용하여 작품을 개인화(Personalization)하는 과정이다. 예술 소비자가 특정 클라이언트(컬렉터, 기업 등)인 경우, 그들의 취향이나 브랜드 아이덴티티 정보를 데이터로 수집하여 AI 생성 단계에 반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뢰인의 사진, 선호 색상, 키워드, 스토리 등을 입력으로 하여 AI가 개인화된 작품 제안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고객 맞춤형 예술 제작이 가능해져 부가가치가 올라간다. 생성된 작품 안에 고객과 연관된 작은 디테일이나 의미를 심어두면 작품의 스토리가 강화되고 소장의 욕구도 높아진다. 이러한 데이터 피드백 루프는 Botto의 사례에서 커뮤니티 투표 데이터가 AI의 “미감(taste)” 모델을 업데이트하는 데 활용되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다. 다만 지나친 맞춤화로 예술성의 보편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큐레이터가 균형을 잡아야 한다.


4) 브랜드 명의 발표 단계 – 최종적으로 엄선되고 다듬어진 작품은 스튜디오의 브랜드 이름으로 공식 발표된다. 작품에는 스튜디오명 (및 필요시 협업한 인간 아티스트명)이 작가로 기재되고, 작품 설명에는 AI 도구 활용 및 협업 과정에 대한 스토리가 곁들여진다. 이 단계에서는 작품의 서사 만들기(narrative)가 중요하다. 앞서 사례들처럼 “AI와 인간의 어떤 상호작용으로 이 작품이 태어났다”는 맥락을 부여하면 작품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다. 물론 브랜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핵심이다. 한 작품이 속한 연작 시리즈라면 일정한 스타일 통일성을 가져가고, 작품명이 브랜드 스토리와 연동되도록 한다. 발표 채널은 NFT 마켓플레이스, 전시회, 경매, 소셜미디어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때도 어디에서 판매/전시되느냐 자체가 작품과 브랜드의 격을 나타내므로 전략적으로 선정한다. (예: 고급 경매 출품은 희소성과 전통 미술계 인정을 의미, NFT 플랫폼 판매는 디지털 커뮤니티 형성과 유동성 강조 등)


5) 유통 및 사후 관리 단계 – 작품이 시장에 출시된 이후에는 소유자(컬렉터)와 지속적 관계 맺기 및 2차 유통 관리가 필요하다. NFT의 경우 블록체인 상에서 거래 추적 및 로열티 세팅을 하고, 실물 작품의 경우 소유자 명부 관리와 추적을 통해 진품 증명 및 시세 관리를 한다. 스튜디오 브랜드는 작품의 이력(provenance)을 투명하게 관리함으로써 신뢰를 높일 수 있다. 또한 작품을 구입한 컬렉터에게 커뮤니티 참여 기회를 주거나, 향후 신작 우선 공개 등 멤버십 혜택을 제공하면 브랜드 로열티가 상승한다. 이러한 사후 관리를 통해 브랜드 팬덤을 형성하고, 다음 작품 출시 시 충성고객들이 재구매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요약하면, AI의 생산력과 인간의 안목을 결합하여 “많이 만들고, 솎아내고, 다듬고, 이야기 입혀 출시”하는 프로세스가 워크플로우의 골격이다. 실제 Botto의 주간 운영이나 QQL의 사용자 큐레이션, Beeple의 매일창작 후 엄선 작품 NFT화 등이 모두 이 흐름과 상응한다. 이 워크플로우를 통해 대량의 시도 속에서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인간의 감성으로 그것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다음, 브랜드를 내세워 희소 예술품으로 포장 및 유통하는 것이 본 모델의 핵심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미술관과 갤러리에서 XR 아트는 왜 소장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