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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일기 (14)모 아니면 도

by 지윤정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하다가

넘어진 적이 있다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맨 앞줄에 앉는 작은 키인데

맨 뒷줄에 앉는 친구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물구나무까지 서며 고무줄을 넘으려했다

역부족이었다.

왼쪽 종아리, 무릎, 허벅지까지

운동장 바닥에 까이고 패였다.


“ 이년아, 그거 하면 밥이 나와, 떡이 나와

뭘 그렇게 악착같이 해”

엄마는 까진 다리에 빨간 약을 발라주며

내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까진 무릎이 쓰라렸고

쥐어박힌 머리가 자존심 상했다


“ 내 다시는 고무줄은 안한다.

키 말고 다른 걸로 이겨야지 ”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여전히 뭐든 목숨걸고 한다

시작을 했으면 잘 해야 하고 ,

못할 바에는 시작을 안 한다


이런 극단적 성격이 내게 준 폐해는

늘 나보다 잘 하는 사람과 비교하느라 충만감이 없다

잘하지 못하는 일은 빨리 포기해서 기회를 잃는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너무 과몰입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다

누구보다 잘 해야 하니 누가 지적을 하면

발끈하고 자존심 상해한다

완벽하게 하려는 욕심에 걱정과 염려가 많다

결과가 기대보다 안 나오면 자책하고

흥미를 잃고 심지어 회피한다


잘 하거나 안 하거나

모 아니면 도..

그게 내게 익숙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나를 뛰어넘겠다

이 방식이 유용할 때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다른 옵션이 필요한 때다


잘 하는 일 말고

중요한 일 하는 사람.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헌신하는 것에 몰입하는 사람..

걸이 나오든 빽도가 나오든

끝까지 하는 사람...

나. 이제 그런 사람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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