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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정 Oct 18. 2022

성찰일지(8)그 석양이 그 석양


그 석양이 그 석양

도시에도 석양이 인다. 

횡성 석양만 그윽한 줄 알았는데 도시 석양도 만만치 않다.


석양이 지는 시간, 내가 너를 못 알아봤구나 

도시 석양에게 사과한다. 


도시에 사는 동안 석양이 없어서 못 본게 아니었다.  

석양을 볼 겨를이 없었던거다. 


도시가 각박했던게 아니라 내 마음이 각박했다

도시에 살면서 도시의 석양을 고즈넉히 본 적이 없었다


저녁약속을 지키기 위해 차 막히는 올림픽대로에서

운전대와 시계를 주시하다 언뜻언뜻 봤던 게 고작이다. 

약속시간에 쫓기느라 동동거리는 마음은 

석양을 알아볼 여유가 없었다.


도시에서는 슬리퍼 신고 3분만 걸어가면 

커피숍, 마트, 다이소가 있었는데

여기선 차를 몰고 8km를 가야 겨우 마트가 있다 

장은 5일장뿐이다. 그나마 세가지 옵션이 있다. 

5일은 둔내장, 6일은 횡성장, 7일은 봉평장이다. 

그마저 서울 출근하느라 장날을 못 맞추면

몇일동안 김치만 볶아 먹어야 한다

나의 지병인 변비를 위해 그릭 요거트 만드는 기계도 샀다

이제 더 이상 슬리퍼를 신고 요거트를 사러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속도와는 다르게 느슨한 태엽이 감겨 있다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니라 여유롭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이다

그 덕분에 밥도 천천히 먹고 걷는 것도 느려졌다

그 덕분에 여명도 음미하고 석양도 향유한다


횡성 군민이 되고서야 비로소 도시의 석양을 존중한다

붉은 빛도 아닌 것이 노란 빛도 아닌데 분홍빛이라 하기도 서운하다

여러 색을 품고 있는 오묘함이 나의 나이와 닮았다

내 인생이 하루라면 지금 이 시절이 석양이 질 때겠지..  

눈부시게 밝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아직 어둡다고 말하기엔 찬란한 


석양이 지는 시간을 내 인생의 시간으로 음미하며

내 인생을 존중한다. 내 삶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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