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호기심이 많다는 건 많은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해서 나는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성향이 강한 아이 었다. 고집도 세서 한번 마음먹은 것은 성취할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런 성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감당하기에는 조금은 버거운 딸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린 시절 피아노학원, 주산학원, 영어과외등 많은 것을 해봤는데 슬럼프라는 것은 항상 오기 마련이다. 이럴 때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있으니 그것은 "엄마, 나 피아노 치러 가기 싫은데." "엄마, 주산이 너무 어려워졌어, 그래서 가기 싫어." "엄마, 영어선생님이 바뀌었는데 나랑은 조금 안 맞는 것 같아."이렇게 푸념 섞인 말들을 할 때면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게 아이가 흔들릴 때 단호함으로 딴생각을 못하게 격려와 칭찬들을 해준다면
우리 엄마는 "그래, 하기 싫으면 하지마!"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린 나이에 가고 싶지 않은 말을 뱉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얼마나 신났을까?
그렇게 해서 나는 변덕스러운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무엇을 하다가 조금 싫증 나면 그만둬 버리는 아이 말이다.
자라면서 철이 들고,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그때마다 왜 엄마는 나에게 그때 꾸준하게 뭘 시켜주지 않았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도 곧잘 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피아노를 시작한 친구가 명문대 피아노과에 합격했다는 소식과 졸업 후에 유학까지 갔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 이면에 그 친구의 피나는 노력과 부모님의 지원이 만들어낸 결과이리라.
나는 나의 노력이 부족했고, 부모님의 지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랐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부모님에게 원망을 하지 않는다
그런 작은 시련과 아픔들이 나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자양분이 되었고, 힘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버거웠을 딸이 알아서 그만하겠다고 하니 미안한 마음에 앞서 그로 인해 가벼워졌을 삶의 무게가 더 피부로 느껴졌으리라.
이제는 내가 40대 중반이 지나가니 알 것 같다.
40대의 여자가 혼자 두 아이를 키우면서 견뎌내야 할 삶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하기 싫으면 하지마!"라는 말은 엄마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말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엄마가 나의 엄마여서 나는 사랑스럽고, 엄마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도록 앞으로도 노력할 거야!"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