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전환기에 들어가다 보니 신체 여기저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딱히 어디가 심하게 아픈 게 아니라 기분 나쁜 통증이나 결림등이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하나둘 시작한다.
오늘 산부인과에 가서 간단한 수술을 진행했다. 여자라면 한 번쯤을 했을 시술에 가까운 수술인데 그래도 겁나는 건 매한가지다. 수술을 결정하기까지 세 번 정도 병원에 방문했는데 어디가 아픈 것 보다도 의사 선생님의 사무적이면서 딱딱한 태도에 마음이 상했다.
선생님은 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반복되는 일상일지 모르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찾은 나는 그 자체로 공포였다. 질문도 못하게 말을 끊는 것은 기본이고 어쩌다 질문을 할라치면 그런 것도 질문이냐는 뉘앙스로 무시당했다. 다른 병원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또 처음부터 검사를 줄줄이 해야 하는 상황이 싫어서 스케줄을 잡고 수술까지 진행했다.
몸보다는 마음이 너무 상해서 수술 당일인 오늘 정말 맥이 빠진다. 수술대에서 선생님을 20분 이상 기다렸다. 그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간호사님들이 서로 눈짓하거나 오늘 좀 늦으신다는 말뿐 환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전화라도 한 통화 주었으면 편한 자세로 기다렸을 것이다.
모든 병원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기억을 되살려 보았을 때 정말 친절하고 걱정할 환자를 위해서 편하게 이야기를 해주시는 선생님들도 많이 있다. 특히나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격려가 정말 큰 힘이 된다.
꼭 의사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누군가에게는 대단함으로 다가와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배려는 또한 나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가끔은 지친 나를 위해 하루를 쉬어 가도록 허락하고, 실패 앞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며 스스로를 감싸 안을 줄 알아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결국 자기 연민과 자기 돌봄으로 이어져, 더 깊은 공감의 씨앗을 틔운다.
이처럼 배려는 크고 화려한 제스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의식을 기울이고, 사소한 움직임 하나에도 따뜻한 마음을 담을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 배려는 우리 모두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실이다. 그 실을 놓지 않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