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다한 이별
어제저녁까지 처절하게 울부짖던 태풍 ‘마이삭’의 절규는 어느 산골계곡에 묻혔는지 조용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파란색 하늘이 싱그럽다. 서둘러 창문을 열어젖혔다. 상쾌한 공기가 가슴 저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짜릿한 공기 맛이 뇌를 자극하여 밖으로 나가고 싶어 진다.
손녀 아리가 왔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은채라는 좋은 이름이 있는데 아리가 더 좋단다. 아리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내와 함께 밖으로 나오니 기분이 참 좋다.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고 심호흡을 여러 번 한다. 아!! 좋다!! 경복궁 높은 담을 끼고 서문인 영추문으로 들어갔다. 노인이라고 주민등록증만 보이고 무료입장이다. 궁 안으로 들어서니 도심 소음이 차단된 완벽한 고요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다. 몇 발짝 가면 경회루이다.
못(池)의 물결이 햇살에 반짝이고, 무성하게 늘어진 수양버들이 바람에 산들거린다. 결 고운 아가씨 머리칼같이 탐스럽게 찰랑거린다. 소나무 진한 녹색이 잉크를 부어놓은 듯 못(池)을 초록으로 물들여놓았다. 파란 하늘이 하얀 구름사이로 언뜻언뜻 색깔도 곱다. 못 가 벤치에 앉아 경회루의 아름다운 반영에 넋을 놓고 있었다. 마흔여덟 개의 하얀 민 흘림 석주, 두 개 작은 섬에 심어진 금강송의 진한 녹색과 소나무기둥의 인주색, 하늘의 구름, 모든 것이 선경(仙境)이다. 천상에 온 것 같이 아름답다.
그때 엄청난 크기의 이무기가 물속으로 뛰어드는 듯한 ‘첨벙’ 소리가 났다. 소리만 난 게 아니고 눈앞의 수면 위로 커다란 파도가 일렁이고 파문이 흩어져 갔다. 그리고 바로 조용해졌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가까이 가서 영문을 살폈다. 못 가에 심어진 버드나무가 어제 태풍 ‘마이삭’ 바람을 견디고 견디다 지금 막 부러진 것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백 년은 되었을 수양버들이었다. 수양버들의 일생이 백 년이라면, 1920년 생일 것이다. 오늘까지의 모든 영욕을 견디고 견디다 그 명을 다하여 쓰러지는 하나의 생명, 참으로 가슴 시린 슬픔이다.
어느 다큐에서 본 장면이 머릿속 스크린에 나타나 클로즈업된다. 늙은 사슴이 무리와 같이 이동을 하다가 생의 마감시간을 직감하고 동아리에서 이탈하여 홀로 걷는다. 동료 아니 가족들은 저 멀리 가고 있는데 홀로 떨어져 먼 눈으로 가족을 바라보며 힘없는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다가 멈추어 선다. 멍하니 멀어져 가는 가족들이 일으키는 흙먼지만 바라보고 서있다. 한쪽 무릎을, 그리고 또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앞으로 쳐 박는다. 조금 있다가 가족들이 가는 방향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떨구고 만다.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하나의 생명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회향식은 참으로 장엄하나 간단하였다. 아마도 새끼인 듯 한 작은 사슴이 들여다보고, 가려다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떠난다. 새끼 사슴의 표정에는 눈물은 없지만 어찌도 그리 쓸쓸하던지. 서둘러 무리를 따라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현실에 충실하는 것이 죽은 엄마 사슴도 바라는 바일 것이다. 새끼 사슴은 그렇게 엄마 곁을 떠나갔다.
아름다운 경회루를 배경으로 마지막 무릎을 꿇은 수양버들의 일생이 경외스럽다. 어찌 백 년을 살아오는 동안 회한과 미련이 없을 수 있을까? 지친 나머지 포기해 버리고 싶은 날이 없었을까? 그러면서도 하루하루를 전력을 다하여 살아왔다. 잘 산 날도 있고, 잘 못 산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여 살았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경원하지 않았으며 미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음은 정해져 있는 것, 그럴수록 살아있는 시간을 사랑하면서 살아왔다. 최선을 다하여 오늘을 지탱하였으며 내일을 기대하였다. 이룬 것이 없어도, 못다 한 것이 많아도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두 무릎을 꿇고, 흙먼지 일으키며 멀어져 가는 가족들에게 하직 인사를 하여야 한다.
사랑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열심히 사랑했다.
너희도 그렇게 사랑하여라.
사랑하는 아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