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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석 Aug 12. 2023

두물머리에 앉아서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

 두 물 머리, 두 물이 만나는 곳을 ‘두물머리’라 한다. 아직 은행잎 물들기 전 초가을 날씨는 쾌청한 맑은 하늘에 흰 구름이 둥실둥실 떠가는 상쾌함, 그 자체였다. 우리 부부는 운 좋게 들어간 곳이 두물머리의 메인 포인트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커피숍에서 운영하는 잔디가 깔린 정원, 500년 된 느티나무 그늘아래 앉아 눈앞으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니, 심호흡이 절로 되는 쾌적함이다. 


 편히 앉아 한숨 돌리고 눈도 좀 멀리 둘러보니, 멀게는 푸른 산이 가깝게는 초록 산이 문자 그대로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다. 가까이 초록 산에는 초가을임을 알리는 무슨 나무인 지 보이지 않으나 빨갛고 노란 점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아직은 짙푸른 녹음이 대세를 이루는 산이라 강물도 초록으로 물들어 있다. 흐르는 강물이라 저 산들의 반영을 볼 수 없음이 아쉬움이다. 


 오른쪽으로는 석양의 황금물결 오후 햇살에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 바다 같다. 왼쪽으로는 초록 강물 위로 푸른 산 보이며 그 산 너머 멀리 한국의 마터호른이라 불리어진다는 운주산 자락의 백운봉이 뾰족 삼각형으로 내 눈을 잡아끌며 놓아주지를 않는다. 그 아래에는 4층 아파트보다 더 높아 보이는 메타세쿼이아 일곱 그루가 수문장인양 버티고 서서 위용을 뽐내고 있다. 500년 된 느티나무가 서 쪽에서 나도 여기 있노라 하며 인자한 위엄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산책 나온 사람들이 다정하게 걷기도 하고, 사진을 찍느라 하하 호호 즐겁다. 드론을 하늘 높이 올렸다 내렸다 혼자 놀고 있는 젊은 청년도 있고, 어머니를 태운 휠체어를 밀며 천천히 걷는 아들내외도 행복해 보인다. 카메라를 든 중년 남자가 우리 테이블 앞까지 와 사진을 찍는다. 테이블 바로 앞에 아주 잘 물든 핑크색 코스모스가 탐 스러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핑크색 유혹에 끌려 카메라 앵글을 대고 숨을 참아가며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정겹다. 그 옆으로 서리가 내릴 때까지 백 일을 핀다는 백일홍이 끝물을 자랑하고 있으며, 조금 멀리는 곧추세운 가시가 석양에 반짝거리는 ‘가시박’ 열매도 있고, 그 아래쪽에는 며느리배꼽이 노란 바가지에 파란 열매를 두세 개씩 담고 있는 모습이 귀엽고 앙증스럽다. 


 일행이 화장실에 가고 나만 혼자 앉아 있다.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상념에 사로잡힌다.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의 이름이리라. 한강의 위치가 남쪽이라 남한강, 북쪽이라 북한강일 텐데, 어찌 내 머리에는 조선인민공화국에서 오는 북한강과, 대한민국에서 오는 남한강으로 착각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석양에 반짝거리는 강물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자 하니 갈라진 우리의 현실이 한탄스러워 서글퍼진다. 북한의 강물과 남한의 강물이 이렇게 만나듯, 우리 민족도 이렇게 만나 하나의 한강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지 75년이 지나고 있다. 25년만 더 있으면 100년이 된다. 우리는 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 스스로 갈라 선 게 아니더라도, 또 누가 갈라놓았더라도 하나로 되어야 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다른 누구도 우리만큼 절실하지는 않다. 다른 누구도 우리만큼 부끄럽지 않다. 


 우리가 앞장서서 이 일을 해야 한다. 힘이 없어서, 강대국의 겁박에 눌려서, 이러한 핑계는 우리 이제 그만하자. 헤어진 지 100년이 되기 전에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저 강물이 하나 되어 흐르듯 우리도 하나 되어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두 개의 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두물머리’, 합치어 흐르기에 ‘합치머리’라고도 한단다. 빨리 합치어 우리 손자는 두물머리에 앉아 이러한 감상에 젖지 않고, 합쳐진 나라가 과거에 갈라졌던 사실조차 모르는 채, 아름다움만을 감상할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갈라졌던 것은 오직 역사책에서만 보고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칠십 중반의 노년이 앉아 깊은 시름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물머리의 바람은 시원해서 좋지만, 슬픈 바람이 아니었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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